애플 너 변했다, WWDC 2015 총정리

안녕하세요, 여러분. 기어박스 에디터H 입니다. 저는 여전히 미국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촌스럽게 시차 적응에 실패한고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네요. 하지만 오늘 아침엔 팀 쿡을 만날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모르겠더군요.

지금부터 저의 WWDC 2015 참관기가 시작됩니다. (애플의 세계 개발자 회의 WWDC가 뭔지 모르시겠다면, 일단 ‘이 기사’를 읽고 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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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엔 대체 밖에 무슨 일이 있는가 두려울 만큼 시끄러웠는데, 이른 아침의 샌프란시스코는 평화롭습니다. 노숙자들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이들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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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붐비는 장소는 바로 여기. 모스콘 웨스트 센터입니다. 부지런한 개발자들은 이미 새벽부터 모여 행사장 안에 들어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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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제가 모스콘 웨스트에 도착하기 전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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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한 WWDC 2015 출입증을 받았습니다. 첫 참가니까 남사스럽게 이런 것도 찍어봅니다. 참고로 파트너사나 개발자들은 다른 디자인의 출입증을 받더군요. 하나 하나 모아보고 싶은 수집욕이 치솟아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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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만 해도 볼 수 없었던,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오늘의 화두는 확실하군요. iOS와 OS X, 워치 OS에 대해 들을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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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이 위치한 3층에서 한 시간 정도 대기해야 입장할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취재진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곳곳에서 다양한 언어가 울려 퍼집니다.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제각각 다릅니다. 어떤 무리는 파티에 온 양 웃고 떠들고, 어떤 기자는 행사 시작도 전에 자리를 펴고 앉아 기사 집필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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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니 사람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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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굳게 닫혀있던 셔터문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행사장 규모가 엄청나니 눈치껏 움직여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침을 꼴깍 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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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거대한 규모에 놀랐습니다. 분명 카메라를 똑바로 잡고 셔터를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급한 나머지 사진이 이렇게 찍혔습니다. 아아. 게다가 이 초현실주의 사진을 찍는답시고 굼뜨게 움직이는 바람에, 썩 만족스런 자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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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론 이런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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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자리 전쟁에 이어 인증샷 열전이 시작됩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음이 책장 넘기는 소리 마냥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열기 가득한 현장의 분위기에 괜히 격양되는 것 같습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을 즐기며, 저 역시 신나게 사진을 찍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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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6로 찍은 파노라마 사진입니다. 사과 로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지시나요. 침 꼴깍, 삼키고 지금부터 WWDC 2015 키노트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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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꺼집니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환호가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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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팀 쿡 등장. 실물이 더 낫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너무 멀리서 봐서 제 마음을 전할 길은 없었습니다. 개발자석에서 “사랑한다”는 애정공세가 쏟아집니다. 곧장 새로운 OS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에게 바통이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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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봐도 유쾌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남자입니다. 먼저 시작되는 이야기는 늘 그렇듯, 얼마나 많은 애플 사용자들이 최신 OS를 채택했는지에 대한 수치입니다. 매년 진행되는 메이저 업데이트에 절반 이상의 사용자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결과입니다. 그만큼, 사용자들이 소프트웨어 자체에 매력을 느낀다는 뜻도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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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OS X의 이름은 ‘엘 캐피탄(El Capitan)’. 매버릭스와 요세미티가 그랬듯 캘리포니아 내의 지명을 따왔습니다. 엘 캐피탄은 요세미티국립공원 안에 있는 바위산으로, ‘대장 바위’로 불리기도 합니다. 새로운 맥북이 공개된 것도 아닌데, 바위산이면 어떻고 설산이면 또 어떻겠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OS X 엘 캐피탄의 모습은 썩 새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OS X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분이라면, 멋쩍은 감탄사를 내지르게 될만한 의외성을 갖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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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스포트라이트 검색 창을 보다 더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됐습니다. 크기 조절이나 위치 이동이 가능해졌죠. 검색 결과도 훨씬 풍부해졌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파일 명이나 특정 단어를 이용해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어 검색도 가능해졌습니다. “내가 작년 6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촬영한 사진” 같은 문장도 매끄럽게 인식합니다. “내가 읽지 않은 메일 중 혜민이가 보낸 메일을 보여줘”라는 문장도 인식해, 해당 메일을 검색하고 보여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검색 기능의 개선은 모든 OS에서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데이터와 콘텐츠, 기능은 넘쳐나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접근성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 자연어 검색이 한글에서도 제 몫을 한다면, PC에 자료가 넘쳐나는 저는 이미 스포트라이트의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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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태스킹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도 주목해볼까요. 일단 전체 작업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션 컨트롤 기능이 더욱 우아하고 편리해졌습니다. 보기 좋게 나열된 작업창 중 원하는 것을 상단의 ‘스페이스 바’에 올려, 다른 앱이나 파일에서 해당 창으로의 접근성을 확보합니다. 쉽게 말해 자주 쓰는 창을 찾기 쉬운 곳에 따로 정렬해 지름길을 마련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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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릿뷰는 두 가지 작업을 한 화면에 띄워놓을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억지로 두 창을 띄워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쓰는 게 아니라, 두 작업창이 찹쌀떡처럼 붙어서 드래그 앤 드롭 등의 접근성도 높아집니다. 문서앱과 웹사이트를 동시에 띄우고 작업하면 생산성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겠네요. 화면 비율도 조정이 가능하답니다.

개인적으론 메일 앱의 사용성 개선에 감동했는데요. A에게 받은 이메일에서 사진을 드래그해서 B에게 보내는 메일에 바로 첨부할 수 있는가 하면, 메일 작성 창에도 탭을 생성해 여러 통의 메일 작업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실생활을 바꾸는 깨알 같은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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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엘 캐피탄은 요세미티보다 앱 구동 속도가 1.4배 가량 빨라졌다고 합니다. iOS에 사용했던 메탈 API를 사용한 덕이라고 하는데요. 덕분에 그래픽 작업속도나 앱 전환 속도를 크게 개선했다는 설명입니다. 키노트 현장에서는 메탈로 제작한 게임 Fortnite를 시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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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캐피탄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여태까지 OS X가 제공했던, 견고하지만 경직됐던 사용자 경험에 유연함을 더했다는 느낌입니다. 사용자 경험과 성능 개선에 초점을 맞췄죠. 정식 업데이트는 가을로 예정돼 있으니 즐겁게 기다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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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다음 순서는 iOS9이겠죠? 아이패드와 아이폰의 새로운 기능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할 예정이니, 가볍게 다루고 넘어가겠습니다. 일단 iOS9의 특징은 애플의 아리따운(?) 음성인식 비서 시리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리는 기존에도 똑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활용하는 편은 아닌데 가끔 써볼 때마다 인식률이 무서울 정도로 개선돼 있어서 놀라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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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리는 40% 더 정확해졌으며, 40% 더 빨라졌습니다. 또 똑똑한 걸 넘어서, 알아서 사용자의 이용 패턴을 파악하는 능동적인 면모까지 갖췄다고 합니다. 기계가 어떤 식으로 능동적일 수 있냐구요? 물론 학습의 결과입니다. 사용자가 특정 응용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장소, 시간 등을 기억해두었다가 같은 행동이 반복됐을 때 다음 작업을 시리가 알아서 수행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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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용자가 자기 전에 특정 음악을 듣는 습관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시리는 그 점을 인지하고 있구요. 이 상태에서 사용자가 밤중에 아이폰에 헤드폰을 연결하면, 자연스럽게 그 음악을 듣겠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마법처럼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죠 (물론, 시리의 예상이 적중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요). 이런 기능은 음악은 물론 여러 가지 상황에서 응용될 수 있습니다. 또, 사용자가 직접 특정 이벤트나 작업을 추후에 상기시키기 위해 알림을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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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의 스포트라이트 기능도 개선됐습니다. 더 풍부한 검색 결과를 보여주며, 해당 앱이나 링크로 바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스포트라이트 검색창에서 바로 시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도 달라진 점입니다. 사진 검색 기능도 강화됐습니다. 키노트에선 크레이그가 가라오케 사진을 보여달라고 명령하니, 바로 해당 사진만 검색됩니다. 공포의 구글포토가 떠오르려는 찰나, 애플이 개인 정보에 대해 엄포를 놓습니다. 모든 정보 검색에 사용자의 애플 ID가 사용되지 않으며, 개인 기기에만 남는다는 것이지요. 서드 파티 업체와 사용자의 애플 ID나 정보를 공유하지 않음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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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S 메모 앱의 놀라운 변화와 애플의 약점인 지도 앱의 개선, 아이패드의 화면 분할 기능까지. iOS9 역시 이전까지 iOS가 고수해오던 세계관을 전면 개방하는 듯한 모습이 눈에 띕니다. 동영상을 팝업창으로 띄워놓고 다른 앱을 사용하는 풍경이 갤럭시가 아니라 아이패드에서 펼쳐지다니.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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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애플워치OS도 공개됐습니다. 아직 저는 애플워치를 구입하지도 못했는데 두 번째 OS라니. 어쩐지 씁쓸하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습니다. 스마트워치라는 카테고리를 정착해 나가는 과정인 만큼 활발한 업데이트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직접 찍은 사진이나 세계 주요 도시의 타임랩스 영상으로 워치 페이스를 바꿀 수 있게 되었으며, 오른쪽 측면 크라운을 이용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정보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타임 트래블 기능을 적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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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놀란 일은 숙소 앞에 있는 후즐근한 마트에 갔는데, 애플페이를 지원하더라는 겁니다. 정말 작고 물건도 별로 없는 곳인데 말이죠.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가 아니라, 경화네 슈퍼. 이런 느낌? 심지어 이젠 영국에서도 애플페이를 쓸 수 있다고 하네요. 영국의 교통카드인 ‘오이스터’처럼 버스나 지하철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는데, 국내 도입은 어려울까요. 애플워치로 지하철 타고 싶은데… 아, 기존의 패스북 앱은 애플페이를 만나 월렛 앱으로 재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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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레드불 한 캔을 원샷 했습니다. 오늘 워낙 많은 이야기가 나온 통에 가볍게 짚고 넘어가는 것도 힘이 드네요. 다음으론 애플이 새롭게 공개한 콘텐츠 서비스 ‘뉴스’ 앱을 이야기해볼까요. 사실, 키노트에서 뉴스 앱을 처음 봤을 때 애플이 플립보드를 인수했나 싶었습니다. 그만큼 수려한 레이아웃이 주는 느낌이 비슷하더군요. 콘텐츠 감상의 용도로 생각한다면 굉장히 아름답고, 흥미로운 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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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상, 인포그래픽 등 다양한 요소를 직관적인 터치로 감상할 수 있으며 검색 기능도 잘 갖춰놓았습니다. 레이아웃 자체가 근사해 보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프로그램이 기사 내용과 주제를 식별해, 분류한다는 점도 대단합니다. 벌써 뉴욕타임스와 ESPN, 보그 등 다양한 미디어가 이 서비스에 참여했더군요. 자체 지도와 결제 시스템에 뉴스 편집 서비스까지. 통일된 생태계 안에서 사용자의 모든 삶을 장악하려는 애플의 야심이 대단합니다. 다음으로 공개될 서비스까지 본다면 더더욱 이 말에 공감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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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키노트가 종료되나 싶었는데, 그 유명한 “One more thing…”이 등장합니다. 뭐지, 뭐지?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습니다. 팀 쿡은 갑자기 우리에게 음악의 역사에 관한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느낌이 옵니다. 아, 애플뮤직이구나.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제는 음원에서 스트리밍으로 음악 감상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명분을 만드는 것이죠. 음악이라는 영역과 애플이 얼마나 밀접한 지에 대한 설명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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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뮤직은 스트리밍 서비스 앱으로, 음악 팬들이 특정 아티스트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사용자의 선호도를 기반으로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주며, 비츠1이라는 라디오 생방송 채널을 운영해 영향력 있는 DJ들의 음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하네요. 문화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음악 자체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어필하려는 것 같습니다. 아티스트가 무대 뒤의 사진이나 영상, 코멘트 등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등 독자적인 콘텐츠도 확보해 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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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트 현장에 드레이크가 직접 등장해 지원 사격에 나서는 등, 단단히 준비한 모습이네요. 그는 애플뮤직이 아티스트에게 팬들과 소통하고 그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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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무료 혜택에 월 9.99달러면 충분한 경쟁력이죠. 게다가 안드로이드까지 지원한다고 합니다. 당장 제 경우만 봐도, 비슷한 월정액으로 현재 사용 중인 과일 이름 서비스를 계속 쓸 이유를 모르겠는 걸요.

아, 긴 여정이었습니다. 더러는 제품이 없었던 탓에 시시했다고 평가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는 넘쳐났습니다. 다 정리해서 기사에 담아내기 힘들 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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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의 양식에 직접 관여하고, 제품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애플의 욕심은 여전합니다. 아니, 여전하다기보다 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생태계를 조성해가고 있죠. 애플뮤직이나 뉴스 앱 같은 신규 서비스를 빼고, OS X와 iOS만 놓고 본다면 기능 자체를 더하기보다는 여태까지 구축해 놓은 시스템을 더 편리하고 야무지게 써먹을 방법을 강구해서 나타난 모양새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기엔 그대로인데, 속을 보면 완전 변했달까.

저와 함께 WWDC 2015 키노트를 살펴보신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 애플의 새로운 OS와 서비스에 ‘좋아요’를 눌러주실 건가요? 저는 의문이 남는 서비스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크네요.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해서 다음 기사로 찾아오겠습니다. 일단 레드불 한 캔 더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