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핑크 전자 제품

아이폰 로즈 골드 피니시의 등장으로 내가 사랑하는 핑크의 시대가 다시 온 것 같다. 예전엔 핑크색을 입은 가전제품이면 무조건 갖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디지털 기기에 핑크처럼 감성적인 컬러를 입힌다는 것 자체가 로맨틱해보였으니까. 물론, 지금도 그 컬러에 혹하는 건 똑같다. 오래전 내 로망이었던 핑크 제품을 몇 개 모아보았다. 그 시절의 별 볼 일 없는 사연과 함께.


2005년 모토로라 핑크레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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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에 나는 대학 새내기였다. 재수 생활로 억눌린 감성이 폭발해 한껏 멋을 부리고 캠퍼스를 누볐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 떨리게 촌스럽지만 말이다. 고작 10년 전인데 그때 내가 가지고 싶어 했던 것들은 대부분 지금 나의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나는 촌발 날리는 새내기에서 성숙한(혹은 찌든) 도시 여성으로 진화했으니까.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근사해 보이는 제품이 있다. 바로 모토로라 핑크레이저.

피처폰 시절엔 수많은 핑크폰이 있었다. 그러나 역사(!)가 기억하는 것은 오직 모토로라 레이저 핑크 뿐.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이다. 슬림한 바디를 표현하기 위한 ‘레이저’라는 네이밍부터 기가 막힌다. 실버와 블랙에 이어 핑크가 출시됐을 땐 사랑에 빠질 것 같았다. 그냥 파스텔 핑크도 아니고, 당시로선 생소한 ‘핫핑크’.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섹시한 컬러였다. 셀러브리티들이 워낙 많이 사용해서 그 제품을 가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센스있어 보이기도 했다. 슬프게도 당시의 난 S사의 슬라이드 폰을 약정으로 구입한 탓에 핑크레이저를 살 수 없었다. 참 가난했었지.


2007년 닌텐도 DS 라이트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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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신기한 시절이었다. 수많은 여대생의 가방에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휴대용 게임기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꽃향기 풍기는(물론 내 친구들에겐 주로 소주 향기가 났다) 어여쁜 여대생들이 카페에 앉아 화장품을 꺼내듯 닌텐도 DS의 커버를 여는 풍경이란! 게다가 하나같이 핑크 컬러였다. 다들 모여 작은 터치 펜을 손에 쥐고 분노의 플레이를 벌이는 것이다. 당시 닌텐도 DS 라이트 유저 중 내 친구 L양의 실력은 군계일학이었다. 리듬히어로 보스전을 클리어하던 그 빠른 손놀림이란. 나는 동물의 숲을 제일 좋아했는데 혼자 묵묵히 채집 활동을 즐기곤 했다. 여하튼 친구 L양은 닌텐도 DS를 시작으로 훗날 수많은 MMORPG를 섭렵해 연신내 PC방의 거물로 거듭나게 된다.

닌텐도 DS 라이트는 국내에 2007년 무렵 출시됐었는데, 닌텐도 DS를 조금 더 가볍고 작게 만든 모델이었다. 대부분 이 모델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통신 기능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전자수첩 기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순수하게 게임기로서 그런 판매량을 이끌어 냈던 게 놀랍다. 작고 예쁜 디자인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핑크를 비롯한 파스텔톤 컬러가 소녀 감성을 자극했다. 듀얼 스크린과 키패드, 터치펜 등의 요소를 활용해 만든 콘텐츠 인터페이스도 매우 훌륭했다.

오늘 막 닌텐도가 창사 이래 최초로 만든 모바일 게임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내년 쯤 ‘미모토’라는 게임을 출시한다고 하더라. 그간 모바일 게임 개발에 부정적이던 닌텐도가 결국. 어쩐지 슬프다. 세월이 야속하다.


2007년 소니 바이오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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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여대생들 사이에서 카페에 펼쳐놓기 가장 근사한 노트북은 맥북이 아니었다(일단 그때 우리는 맥북이 뭔지 몰랐다). 과제한답시고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가장 근사한 액세서리는 바로 소니 바이오 노트북이었다. S는 함께 어울려 다니던 대학교 친구들 가장 유복한 집 딸내미였다. 예쁘기도 예뻤고, 언제나 제일 좋은 물건을 들고 다녔다. 그녀가 들고 오는 물건은 다 뭔가 특별해보였다. 어느 날 S가 핑크색 소니 바이오 노트북을 가지고 학교에 왔을 땐 우리 모두 까무러쳤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노트북이 있다니. 당시 우리 집에 있던 노트북은 사람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벽돌 두께였는데 말이다. 간만에 바이오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소니의 좋은 날과 S양의 어여쁜 나날이 떠올라 흐뭇해진다.

정확한 가격은 모르겠지만 당시 바이오 시리즈는 상당히 고가의 노트북에 속했다. S가 쓰던 모델은 VGN-CR13L/P. 8년이 흘러 지금 사양을 살펴보니 재미있다. 인텔 코어2듀오 T7100 CPU에 1GB 메모리, 100GB HDD를 내장한 제품이었다. 깜찍한 컬러나 디자인과는 다르게 무게는 무려 2.5kg. 대학 시절 내내 로망이었던 소니 바이오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제품은 지금 봐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디자인이다.


2007년 소니 사이버샷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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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엔 디지털 카메라를 가진 친구가 몇 없었다. 특히 디지털 기기에 약한 여자 친구들 중에는 더욱 더. 그러다 한 친구가 생일선물로 받았다며 들고 온 그 작은 카메라는 놀라움 자체였다. 바로 소니의 사이버샷. 화장품처럼 작은 크기에 핫핑크컬러를 입은 카메라라니. 게다가 사진도 예쁘게 나왔다. 지금 보면 끔찍하지만… 엠티갈 때도 사이버샷을 들고 가서 수많은 인생 사진을 남기곤 했다. 액정 틸트도 안되건만 동물적인 감으로 각도를 조정해 셀카도 즐겨 찍었다. 그야말로 소녀들을 위한 완벽한 카메라였지. 물론 슬픈 추억도 담겨있다. 대학 친구들과 함께 대천 바닷가로 놀러갔던 어느 여름, 우리는 만취 상태로 모래 사장을 거닐다가 이 어여쁜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안녕, 사이버샷.

친구가 사용했던 제품은 사이버샷 DSC-T2. 4GB의 내장 메모리를 갖추고 있어서 SD 메모리를 따로 넣지 않아도 사진을 저장할 수 있었다(그래서 우린 오래도록 다른 디지털 카메라엔 SD 메모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810만 화소의 카메라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사진을 찍던 우리가 깜찍할 따름이다. 저래봬도 터치스크린까지 지원하는 첨단 전자 제품이었다. 전면 커버를 아래로 밀면 렌즈가 나타나는 것도 상당히 미래적인 디자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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