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레이 롱텀 시승기 1편

내 소개를 먼저 할까? 이름은 레이. 태어난 곳은 동희오토. 대부분 기아자동차에서 태어난 걸로 알고 있을 거야. 그렇다고 너무 동정의 눈길을 보낼 필요는 없어. 나 말고도 모닝이라는 또 다른 형제가 있으니까. 기아에서 계획은 했지만, 나같은 경차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동희오토에서 태어나게 만들었지. 원망? 이런 걸로 무슨 원망을 해. 당신들도 금수저 문 채 태어나고 싶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거랑 뭐가 다르겠어.

‘151128-1XXX’라는 등본을 받고 공장주차장에 있을 때, 주인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어. 옆에 같이 있던 친구들은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등 일반적인 주인들을 만났더라고. 그런데, 나는 자동차잡지를 만드는 곳에서 데려간다고 하더라고. 나보고 잡지 싣고 다니라는 건가? 그럴 거면 뒷좌석 없는 밴을 데려가야 좋을 텐데? 뭐 상관없어. 차를 잘 아는 사람들일 테니 많이 아껴주겠지.

서울 종각이라는 곳에 처음 도착했어. 아직 내 몸은 각종 비닐로 덮여있어 너무 답답했었지. 멀리서 세 명이 걸어오는 게 보였는데, 동물 같은 감각으로쟤들이다라는 느낌이 들었지. 사실 세 명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었거든.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 오자마자 비닐을 다 걷어내 주더라고. ‘~ 역시 차를 좀 아는군’. 비닐을 벗고 나니 배고프더라고. 태어나자마자 공장에서 아주 약간 기름을 먹고 난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했거든. 때마침 차에 타더니밥 주러 가자라고 누군가 말을 하길래 주인 잘 만났다 싶었지. 나의 멋진 주행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기지개를 켰더니가솔린인데 진동이 있네”, “3기통이라 그래등등 별 말을 다하더라고. 초면에 정말이지…. 왜 그러니. 잘 좀 지내자고.

내가 알기에는 요즘 식당 가솔린 평균가격이 리터당 1300원 정도로 알고 있는데 동네가 좋아 그런가 1900원 하더라고. 내심 포식하겠구나 생각했는데어우! 더럽게 비싸네라는 말이 들렸어. 쟤들도 처음 와본 곳이었던 거야. 좀 사는 애들은 아니었던 듯. “아저씨 죄송하지만 만 원만 넣어주세요”. 8초 마셨나? 5리터 조금 더 먹여주더라. 급한 대로 허기만 달랬지 뭐.

▲ 최첨단 하이테크놀로지 옵션인 2단 열선기능. 근육통이 동반될 만큼 꽁꽁 얼어버린 엉덩이를 녹이기에충분하다

열선 핸들이네, 엉뜨도 2단계야, 공간 넓다.”

나의 멋진 장비들을 보며 감탄하더라고. 엉뜨는 엉덩이 뜨겁게 해주는 열선시트야. 모르는 사람들이 오타로 생각할까 봐. 뭐 거기까지는 너무 좋았는데…,

▲ 알루미늄휠로 위장한 채, 검은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연탄 휠. 빈티지 스타일이라고 해주면 고맙지

뭐야 이거 연탄 휠이야? 휠 닦을 때 커버만 떼서 세면대에서 닦나?”

어 맞아. 나 연탄 휠이야. 남들은 알로이 휠을 신지만, 난 연탄 휠에 커버만 두른 신발을 신고 있어. 너무 많은 걸 바라지마. 그럴 거면 다른 놈 사지 그랬어. 내 계산에도 너희 같은 주인은 없었다고. 그렇게 이곳에서 생활은 시작됐어. 주인이야 누구든 간에 소모품 제때 갈아주고 사고 없이 다니면 될 거라 생각했지.

어느 날은 아침 일찍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더라고. 운전하는 놈만 있으니 아무 말도 안 해서 어디로 가는지 당최 알 수 없는 상황이었어. 아무튼, 잠시 후 엄청나게 큰 짐가방을 든 두 사람을 태우더라고. 뭐 이 정도야 문제없지. 한적한 곳으로 가더니 누군가를 또 기다려. 새빨간 원피스를 입은 독일 여자애가 또 오는 거야. 난 저렇게 예쁜 애는 처음 봤네. 이름도 예뻐 아우디 TT. 그런데 갑자기 다짜고짜 TT가 달리더라. 무슨 추격전도 아닌 데 따라가느라고 심장 터지는 줄 알았네.

▲ 언제 멎을지 모르는 심장. 제발 경차에 맞는 달리기성능을 바랐으면 좋겠다

, 다 좋은데 역시 엄청 안 나가네”, “경차에 많은 걸 바라지마, 카니발 사자니까.”

이것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짜증 나게 진짜. 그렇게 채찍질을 하더니 결국 TT 사진 찍어주는 거였어. 우아하게 내달리는 TT 사진 찍을라고 내 가속페달을 그렇게 밟아댄 거지. 자동차잡지니까 이런 일이 이제 일상이지 싶었어. 그래도 뭐 예쁜 애들은 자주 볼 수 있겠지.

2016년이 밝았다고 다들 들뜨더군. 2015 11월생이니까 벌써 두 살인 건가? 새해가 밝았다고 지들은 사우나 가면서 나는 이게 뭐니? 요즘 식당은 5만 원어치만 먹으면 사우나 공짜로 시켜준다고 그러던데, 왜 난 그런 거 안 시켜줘. 동네 창피해서 돌아다니지도 못하겠다

그리고 왜 나한테 뾱뾱이를 실었는지 모르겠어. 뾱뾱이는 물건 깨지지 말라고 포장할 때 사용하거나, 가정집 유리에 붙여 따뜻하게 하는 거 아닌가? 내 유리에 붙이려고 그러는 거니? 너네 성질 급해서 내 심장 따뜻해지기 전에 따뜻한 바람 안 나온다고 난리 치잖아. 그거 못기다려서 그런 거야? 그리고 뭐 어떤 차는 시동 걸자마자 동남아처럼 따뜻해지는 차도 있냐?

내가 다른 건 바라지 않을 테니, 제발 이것 좀 떼줘라. 내가 실내에 두루마리 휴지 매달아 놓으라고 공간을 높인 건 아니잖아. 나 진짜 유리 틴팅 안 했으면 자살했을 거야. 내가 물티슈를 바라니, 기름 먹고 나눠주는 티슈를 바라니? 두루마리 휴지를 왜 손잡이에 달아놓은 거야? 자기들 차에는 이런 짓 안 하면서…. 

미안하지만, 두 달 동안 너희를 만나서 좋았다는 말은 못하겠어. 이제 촬영한다는 말만 들어도 심장 멎지 말아 달라고 항상 기도하게 돼. 제발 살살 다뤄줘. 잘 달리는 애들 따라다니려면 왜 날 골랐니. AMG, M 뭐 그런 애들 이름 참 특이하다고만 생각했지, 그렇게 무식하게 달리는 애들인 줄 몰랐어. 2단 넣고 보니까 없어졌더라? 그런 애들을 어떻게 따라가니.

값이 싸서 날 골랐잖아. 모든 제품은 그 가격에 대한 이유가 있다는 것 알지? 난 싸다고. 지금 시대에 연탄 휠 신는 애한테 뭘 바라니. 제발 부탁인데 3월부터는 조금만 더 신경써줘.

car 매거진 201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