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전 C-클래스를 만나다

인제 스피디움 서킷에서 CJ슈퍼레이스 경기가 열리는 날. 화려한 데칼로 치장한 레이스카 사이로 순백색의 메르세데스가 존재를 알렸다. 오너는 오환 씨. 국내 모터스포츠계의 거물 사진기자다. 네모난 헤드램프와 각진 몸매, 그리고 빛나는 세 꼭지 별을 보닛 위에 품고서 첫인사를 나눴다. 이 메르세데스의 모델명은 C 220. 그 시절 우리는 ‘C-클래스대신벤츠라고 불렀다.

차를 타보기에 앞서 역사부터 따져보자. 이 차는 메르세데스벤츠 190 후속모델로 1993년 처음 선보였다. 당시 메르세데스는 코드명 대신 새로운 작명법을 도입했다. 덕분에 W202 ‘C-클래스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얻게 됐다. 새로운 이름만큼 신기술도 다양하게 들어갔다. 멀티밸브가 적용된 4기통 가솔린엔진을 비롯해 운전석 에어백과 ABS를 기본으로 채택하고, 당시는 흔치 않았던 트랙션컨트롤도 선보였다. 엔진라인업은 더 풍요로웠다. 4기통 엔진을 기본으로 직렬 6기통을 비롯해 AMG 배지를 단 V8까지 존재했다. 또한, 세계에서 처음으로 터보 디젤엔진을 받아들인 승용차이기도 했다.

▲ 오너의 깔끔한 성격이 반영된 콕핏. 도저히 흠잡을 데가 없다

오늘 만난 C 220 150마력을 자랑한다. 자연흡기엔진에 자동 4단 기어를 물린 단출한 구성. 오랜만에 키를 돌려 시동을 걸자 엔진이 부드럽게 기지개를 켠다. 무려 21년 동안 27만 킬로미터를 달린 엔진. 하지만 세월을 거스른 듯 생기발랄하다. 실내는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기품이 서려 있다. 시트와 윈도 모두 전동으로 작동했고, 손에 달라붙는 가죽핸들과 우드트림으로 장식한 센터페시아는 상징적인 메르세데스 방식 그대로였다. 주인의 철저한 관리도 한몫 했다. 가죽시트는 여전히 촉촉하고, 대시보드 위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순백색의 도장은 수 차례 반복된 왁스로 더 없이 깊은 광택을 자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내린 빗방울마저 주르륵 미끄러져 버렸다.

▲ 세 꼭지 별이 달린 기어레버. 이 소중한 걸 없애버리다니

서둘러 세 꼭지 별이 달린 기어레버를 D로 옮겼다. 가속페달은 두꺼운 용수철마냥 묵직하다. 여유로운 파워를 재료 삼아 기어박스가 요리를 시작했고, 꾸준히 솟구치는 속도계 바늘은 도저히 지칠 줄 몰랐다. 속도가 붙으면서 엔진은 더욱 흥을 돋운다. 마치 진한 우유로 뽑아낸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모든 파워를 부드럽게 쏟아냈다. 구불구불한 국도로 접어들기 시작하자 푸근한 서스펜션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1995년식, 늙은 C-클래스를 강원도 산자락에서 매몰차게 잡아 돌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C 220은 연속되는 굽이를 야무지게 파고들었다. 마치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우직하다가도 한계를 만나면 솔직하게 반응했다. 한계라고 여겨지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었다. 그러자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신사적인 주행을 이어나간다. 날렵한 구석은 없어도 우직하게 뻗어 나갔고, 속도에 상관없이 언제나 쾌적했다. 덕분에 운전자는 편하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다. 이게 바로 메르세데스의 철학이며, 21년 된 C-클래스가 몸소 알려준 사실이다.

▲ 세로로 실린 4기통 엔진은 최초로 멀티밸브를 적용했다

물론 요즘 메르세데스처럼 잔재주는 없지만 진중한 주행품질로 운전자를 사로잡는다. 사각지대 없이 정직한 시야, 언제나 푸근한 승차감, 그리고 기본기 탄탄한 동력성능을 버무려 당대 최고의 C-클래스임을 증명했다. 가끔 고장도 나지만 정비하는 데는 여전히 문제가 없다. 복잡한 전자장비 대신 간단한 기계식 구조가 솔직하게 반응했고, 덕분에 소모품만 제대로 갈아주면 언제나 생기있게 달려준다. 심지어 쌍용 체어맨과 호환되는 부품이 많아 저렴하게 고칠 수 있다.

▲ 주인을 배려한 휠 디자인. 세차하기 얼마나 편할까?

C 220은 주인과 함께 어디든 달려주었다. 그 동안 정성 어린 관리에 보답하듯 별 탈 없이 전국을 누빈다. 주인은 앞으로도 메르세데스와 동행을 다짐했다. 유별난 올드카는 아니지만, 오랜시간 동고동락하는 오너와 C-클래스의 만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The History of C-Class

프리미엄 컴팩트 세단의 표본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연대기

▲ 1세대, 190(1982~1993)

메르세데스벤츠가 생산한 최초의 프리미엄 컴팩트 세단. 5링크 서스펜션으로 다져진 뛰어난 핸들링으로 유럽에서 불티나게 팔렸다당시 190 에볼루션 고성능 모델도 투입했다.

▲ 2세대, W202(1994~2000)

코드명 대신 처음으로 ‘C-클래스라는 이름을 도입했다. 새로운 이름과 함께 편의장비와 안전장비를 대폭 투입하고, 오래도록 인기를 누렸다. 또한, 세계최초로 터보 디젤엔진을 받아들였다.

▲ 3세대, W203(2000~2007)

당시 디자인 유행에 따라 둥근 헤드램프를 채택. 메르세데스벤츠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깨기 위해 스포츠쿠페 모델을 추가했다. 다양한 보디 타입으로 C-클래스 영역을 확장했다.

▲ 4세대, W204(2007~2014)

C-클래스가 본격적으로 몸집 및 판매량을 동시에 불린 시기. 너비와 휠베이스를 대폭 늘이고, 풍부한 편의장비를 투입해 BMW 3시리즈를 바싹 추격했다.

▲ 5세대, W205(2014~현재)

베이비 S-클래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S-클래스와 똑 닮은 디자인이 화제가 됐다. 주행성능으로 보나 첨단기술로 보나 최고의 컴팩트 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