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골프 다시 보기

기자가 처음 골프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자동차잡지에 등장한 3세대 골프를 보고부터다. 작은 해치백 주제에 무려 V6 엔진과 수동기어를 얹고 스포츠카를 따돌리는 골프 VR6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작고 볼품없는 외모지만 도발적인 성능으로 반전매력을 발산했던 골프. 당시 우리나라는 세단에 심취해 있느라 골프의 매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여기 남다른 안목의 소유자가 자신의 골프를 몰고 왔다. 새빨간 1993년식 폭스바겐 골프 GL. 골프 GTI가 아니어도 실망하지 말라며 차키를 건넨다.

3세대 골프는 1991년 처음 나왔다. 당시 서민의 발이 되어준 독일 국민차였다. 3세대에 이르면서 운전석과 보조석에 에어백을 적용하고, ABS와 함께 안전에 있어서 혁신을 보여주었다. 또한, 크루즈컨트롤, 에코매틱 기어, 최초의 직분사 디젤엔진, 디젤 최초의 산화촉매변환제, 동급최초로 V6 엔진을 올리는 등 골프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시도가 이루어졌다. 폭스바겐은 골프에 최신기술을 아낌없이 담았고, 덕분에 첨단기술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 새빨간 골프의 도발적인 뒤태. 빵빵한 볼륨감은 해치백의 특권이다

레드 컬러에 압트(ABT) 드레스업으로 단장한 3세대 골프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순한 눈매에 작고 가벼운 경량 휠을 신은 꼬마 레이서. 작아도 비율은 제대로 갖췄다. 엔진룸과 캐빈룸을 정직하게 나눴고, 루프 끝에서 야무지게 떨어지는 해치백 특유의 라인이 풍만한 뒤태를 연출했다. 볼륨감이 좋다.

▲ 외관 컬러와 시트까지 빨간색으로 대동단결

외장 컬러와 똑같은 빨간색 시트가 자리를 권했다. 얼마나 많이 매만졌을까? 스티어링 휠과 뭉툭한 기어레버를 감싼 가죽이 반들반들 빛난다. 센터페시아에는 쓸데없는 멋 부림 대신 꼭 필요한 버튼을 가지런히 모아놓았고, 기어레버 옆에는 아주 친절하게도 동전꽂이까지 마련해 두었다. 손에 든 커피를 놓아두고 시동을 걸려던 참이었 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컵홀더가 없다. 운전이 너무 재미있어서일까? 아니면 운전에만 집중하라는 골프의 훈계? 아무튼 그때는 차 안에서 즐기는 커피도 사치였나 보다.

▲ 친절한 골프 씨.동전꽂이까지 마련해 두었다

커피를 깔끔하게 목구멍에 털어놓고 엔진을 깨웠다. 몸을 몇 번 흔들더니 이내 우렁찬 엔진소리로 응답한다. 성질도 알아볼 겸 가속페달을 몇 번 밟았다. 아날로그식 계기반이 빠르게 춤추기 시작한다. 1.8리터 4기통 엔진의 최고출력은 고작 90마력. 하지만 반응속도는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엔진은 발 냄새만 맡아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rpm을 끌어올렸다.

시작부터 경쾌하게 치고 나갔다. 쉽게 끓어오르는 엔진의 활기가 대단했다. 3rpm을 넘어서면서 화끈하게 토크를 쏟아냈다. 하지만 토크컨버터가 달린 자동기어가 재미를 반감시켰다. 차라리 수동기어였다면 사나운 엔진을 고스란히 요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요란한 소리에 비하면 속도계는 느리게 올라갔다. 하지만 체감속도는 스포츠카 뺨친다. 작은 콕핏 안에 있노라면, 마치 레이싱 게임 속 화면처럼 빠르게 창 밖 배경이 흘러갔다.

▲ 순백색 경량 휠은 핫해치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작은 나들목이 눈앞에 나타났다. 앞에 보이는 가파른 코너에서 꼬마 레이서 실력을 가늠해볼 요량이다. 빠르게 달리던 골프는 단숨에 속도를 줄였다. 워낙 가볍다 보니 세우는 일도 가뿐하기만 하다. 그리고 코너를 향해 모모 스티어링 휠을 잡아 돌리자, 마침내 골프가 신경을 곤두세우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앞 타이어는 굳세게 아스팔트를 잡아챘다. 이어서 짧은 휠베이스 끝에 달린 뒤쪽 타이어가 야무지게 따라 돌았다. 스티어링은 노면정보를 알리며 쉼 없이 떠들었고, 꾹 눌린 댐퍼가 횡G에 맞서 싸우며 호들갑을 떨었다. 다소 덜컹거렸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엄살을 피우면서도 제 할 일은 말끔히 끝내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골프는 7세대까지 진화하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지만, 3세대 골프에 비하면 하염없이 온순해졌다. 좋게 말하면 소비자 입맛 따라 점잖게 성숙한 셈인데, 사실 우리가 원하는 골프는 발랄하고 경쾌한 해치백이다. 조금 느리고, 시끄럽고, 투박해도 좋다.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사랑받는올드 패션드칵테일처럼 때로는 오래된 골프가 더 매력적인 법이다.

Back to the 1990’s

꼭 골프가 아니어도 좋다. 1990년대를 주름잡은 명차를 노려보자. 상태만 좋다면 골프 못지않은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 BMW E36 318i [500~700만 원]

근대 BMW 중 가장 본질적인 주행감성을 느낄 수 있다. 전자장비가 많지 않아 잔고장이 적고, 중고부품도 많아 국내에서도 쉽게 정비할 수 있다. 예산을높이면 M3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 Mitsubishi Lancer Evolution Ⅲ [700~800만 원]

WRC에서 왕좌를 차지했던 랠리 머신. 여전히 강력한 출력과 네바퀴굴림은 당신의 질주본능을 충분히 자극한다. 튜닝 여부에 따라 성능도,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 Hyundai Galloper [300~500만 원]

최근 올드카 복원 붐이 불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정통 4×4 SUV. 각진 외형과 클래식한 디자인 때문에 빈티지 마니아에게 주목받고 있다. 순정상태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매물이 더 비싸다.

▲ Mercedes-Benz SLK [500~700만 원]

출시 당시 파격적인 스틸 배리오 루프를 선보인 정통 로드스터. 작고 날렵한 외모에 터프한 엔진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상태 좋은 매물도 많고,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오픈 에어링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