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품질조사, 얼마나 믿으십니까? 

요즘 가장 쓰기 힘든 자동차 관련 글은 단언컨대 ‘시승기’다. 차를 타보고, 몰아보며, 평가해는 일은 전문기자의 숙명과도 같은데, 애석하게도 시승을 하기 싫을 정도로 어렵고, 헤매게 되는 것이 이 ‘시승기’다. 아마 나 말고도 많은 기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업체와 기자의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 관계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즘 자동차, 솔직히 말해  상향평준화가 너무 잘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동차에 등수를 매기려고 한다. 막상 타보면 큰 차이가 없는데도, 줄을 세우려고 한다. 그래서 시승기가 요즘은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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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을 대신 해주기라도 하듯, 매년 이 즈음, 미국에서 자동차 품질평가 보고서가 하나 도착한다. J.D. 파워의 자동차 내구품질조사(VDS)다. J.D.파워는 1963년 제임스 데이비드 파워 3세가 설립한 미국의 마케팅 회사. 주로 설문조사를 통해 고객 만족과 제품 품질, 구매자 행동을 파악하는데, 자동차는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는 것 중 하나다.

보통 자동차는 두 번의 조사를 진행한다. 해당 자동차를 실제구입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VDS(The Vehicle Dependability Study, 내구품질조사)와 IQS(Initial Quality Study, 초기품질지수) 등으로 구분지어, 전자는 구매한 지 3년이 지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고, 후자는 구매한 지 90일이 지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 사용 경험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꽤나 공신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조사로 여겨지며, 조사결과는 고객만족 개선활동이나 경영지표 등으로 사용되고, 제품홍보에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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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역시 이 내구품질조사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회사 중 하나다. 그리고, 이번 2017 VDS에서 최고성적을 거두었다는 보도자료를 어김없이 냈다. 자료에 따르면 일반 브랜드 중 현대차는 전년 대비 6계단 순위가 상승해, 토요타와 뷰익에 이어 3위를 차지했고, 기아차는 6위를 기록했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 재미있는 사실은 J.D. 파워는 ‘일반 브랜드’를 따로 분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J.D파워가 공개한 전체 브랜드 순위에서 현대차는 6위, 기아차의 경우 11위로 나타났다. 물론 이것도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3계단, 6계단 상승한 순위다. 현대기아차의 품질이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소비자 사용 경험을 중시하는 조사의 특성상, 이 내구품질조사는 절대적인 품질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소비자가 느끼기에 이 회사의 제품이 더 좋고, 때로는 더 나쁘게 느낀다는 것을 수치상으로 제시할 뿐이다. 아무리 표본 숫자가 많더라도 100퍼센트 객관적일 수 없고, 어떤 면에서는 다분히 감정적인 조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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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방식의 자동차 품질조사는 지역 소비자의 성향이 틀림없이 반영된다. 때문에 지역별 품질만족도 역시 브랜드의 시장 전략에 따라 천차만별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특정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다가서는 시장이라면, 그 브랜드의 순위는 높아지는 게 뻔하다. 반대상황이라면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 한국의 소비자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다르다. 그래서 해외에서 나온 조사를 가지고 국내 품질도 나아졌다고 홍보하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유독 일본차가 수위에 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렇게 미국에서 일본차가 압도적인 인정을 받는 배경은 무엇보다 품질이다. 점유율 확대를 위해 철저한 품질관리를 병행한 일본차는 미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고장 나지 않는 차로 명성을 쌓았다. 현대차가 그토록 미국에서 품질에 힘을 쓰는 이유다.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차를 사는 사람에게 ‘고장 나지 않는 차’는 만족도를 결정짓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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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현대차는 고장 나지 않는 차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작은 고장도 부풀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대차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과 같은 현상도 종종 목격되는데, 이는 결국 같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세계최대 시장인 미국과 안방인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상품성은 분명하게 상승했지만, 브랜드 신뢰는 점점 떨어져갔고, 곧 판매량 하락, 점유율 후퇴로 이어졌다.

과거 우리 소비자들은 품질보다 브랜드를 강조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독일 프리미엄에 대한 신뢰가 꽤나 견고했다. 두 브랜드가 한국을 주요시장으로 묶어 특별관리하는 것도 이런 남다른 브랜드 선호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세계 다섯 번째 시장이다. 인구 대비 판매량으로 따지면 압도적인 1위다.

최근 들어 브랜드 선호에 품질을 따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국내서 렉서스가 다시 반등하고, 볼보의 인기가 높아지는 건 이런 ‘합리성’이 덧붙은 덕분이다. 무조건 비싼차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품질도 좋아야 시장에서 먹힌다는 의미다. 외국의 품질조사 결과에 일희일비 해서는 결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없다. 그건 해외 소비자의 목소리일 뿐, 결코 우리 소비자의 목소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