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뮤직과 디지털, 그리고 아련한 추억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5학년. 그룹 ‘노이즈’의 카세트 테이프를 샀다.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빠져 ‘인어공주’, ‘미녀와야수’, ‘라이온킹’ 등의 OST를 카세트 테이프로 구매했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포카혼타스’부터 CD로 구입했었을 거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부모님이 미니 컴포넌트를 선물해준 기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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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는 애니메이션 취향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옮겨갔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신세기 그랑프리 사이버포뮬러’,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과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를 탐닉했다. 또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를 동경했다. 당시 일본문화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레 일본 뮤지션들에 대한 흥미도 생겼는데, ‘X-재팬’, ‘라르크 앤 시엘’, ‘루나 시’, ’딘’, ‘아무로 나미에’, ‘스피드’ 등에 빠져있었다. 당연히 이들의 OST CD나 비디오 테이프를 용돈 탈탈 털어 어둠의 경로로 구입했고, 중고등학교 문화생활의 전부를 차지했다.

Hand put the CD to the audio player.

그리고 시작된 대학생활. MP3를 만났다. 주로 ‘냅스터’, ‘소리바다’ 등을 이용했고, 처음으로 음악이 ‘구입’이 아닌 ‘다운로드’로 변했다. 집에 보유했던 수많은 CD들은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구세대의 유물로 변해갔고, MP3는 내 생활뿐아니라, 음악산업의 전체 판도를 흔들었다.

처음 갖게 된 휴대용 MP3 디바이스는 애플의 아이팟 미니.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서 손에 넣은 그 작은 기계장치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였고,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작은 클릭휠을 돌리고 눌렀을 뿐인데, 음악이 나오고, 또 멈추었다. 어떤 기술로 이런 신기한 일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애플의 멀티미디어 전용 소프트웨어 아이튠즈도 아이팟을 사용하게 되면서 처음 접했다. 지금은 아이폰에 음악 넣기가 옛날보다 훨씬 쉬워, 드래그 앤 드롭을 지원하는 어플리케이션을 쓸 수도 있지만(그래도 아이튠즈에는 접속해야 한다), 예전엔 아이튠즈가 없으면 아예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아이튠즈 조작이 서툴러서 아이팟 안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음악을 다 날려 먹어 화가 치솟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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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튠즈 스토어

그렇게 애플과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간 아이팟 셔플, 아이팟(5/5.5세대), 아이팟 나노, 아이팟 터치 등이 내 손을 거쳐갔고, 따로 가지고 다녀야 했던 MP3 플레이어와 휴대전화를 함께 쓰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에, 국내에도 아이폰 3GS가 출시되었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기기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아이폰은 기본적으로 아이팟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튠즈를 통해 음악을 듣고, 동영상을 감상했으며, 사진을 저장했다. iOS의 발달로, 아이팟 5세대에 등장해 앨범 커버 정리의 신기원을 이룬 커버 플로우는 지금 없지만, 아이폰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MP3 플레이어 중 하나다.

카세트 테이프에서 CD, MP3로 이어진 음악산업의 흐름도 이제는 스트리밍이 대세. 굳이 기기 안에 용량을 차지하는 일 없이, 인터넷 서버에 접속해 즉각적인 감상이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 클라우딩 컴퓨터 기술이 대표적인, 유비쿼터스 시대가 연 신생활이다. 당연히 디지털기기도 그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아이폰(아이팟도)과 아이튠즈 역시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애플뮤직은 애플이 내놓은 일종의 모범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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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뮤직

애플뮤직은 가장 디지털적인 기기 안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사용자에게 다가간다. 애플뮤직에 접속해서 보는 거의 모든 것들은 애플뮤직 에디터들이 ‘손수’ 꾸미는 것이다. 이들은 하루 24시간 동안 늘 음악을 들으며, 어떤 노래를 추천할지 고민한다. 애플뮤직의 둘러보기 섹션 상단에 위치한 앨범들은 이 애플뮤직 에디터가 직접 엄선해 고르고 고른 최신앨범들이고, 큐레이터 재생목록에 들어있는 추천 재생목록도 에디터가 모두 만들어 둔 것들이다. 우리는 그저 클릭 한 번으로 이들이 정성껏 꾸민 음악목록을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혹시 우리가 모르고 지나칠 천재 뮤지션의 앨범도 애플뮤직의 에디터들은 놓치지 않는다.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어떤 음악이 요즘 인기 있는지를 찾아내고,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운 카테고리는 ‘월드 뮤직’. 중학교 시절 일본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제3세계 음악들이 내 귀에 살랑인다. 이런 노래들은 어떻게 찾아내는 것일까?

해답은 애플뮤직의 장르, 국가별 담당자에 있다. 이들은 자기가 속한 나라의 눈에 띠는 아티스트들을 애플뮤직에 제안하고, 각종 음악 레이블과 함께 작업한다. 특정 국가에서 인기가 있는 음악들은 다른 나라의 에디터를 통해 전세계로 뻗어나간다.

물론 오직 나를 위한 메뉴도 존재한다. ‘For You’ 섹션이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선택해두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음악을 추천한다. 애플뮤직이 아직 라이센스 관계로 모든 걸그룹(특히 러블리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애플과 협업 중인 YG, SM에 속한 빅뱅이나 레드벨벳의 음악을 접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애플의 디지털기기와 함께 한 날도 거의 20년이 다 되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겪어온 애플 디지털기기의 변화는 애플은 물론, 나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애플 CEO 팀 쿡은 “음악은 언제나 우리의 모토”라는 말로 음악에 대한 애플의 애정을 표현했다. 나 역시 그렇다. 음악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기에. 오늘 퇴근길에는 애플뮤직 디렉터가 골라준 ‘봄이 왔어요’ 재생목록과 함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