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감각 가득한 실용주의자,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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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굳이 난해한 프랑스차를 머리로 애써 이해해보려 하지 않았다. 피카소 입체주의 그림이 그러하듯, 억지 이해를 해봤자, 어차피 들어오지도 않는다. 프랑스 관용정신으로 두고 보아야 애정이 어렴풋이 생긴다. 물론 존재감은 더할 나위가 없다. 주차장 어느 곳에도 비슷한 차를 찾을 수 없다.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는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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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한 외관 디자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야말로 프랑스 실용중의 정점이다. PSA의 신세대 플랫폼 EMP2은 경량화와 다재다능함이 주요특징이다. 이 다재다능함을 다시 말하면 공간활용도가 높다는 의미. 이전 세대와 비교해 전체길이는 줄었는데, 휠베이스를 오히려 늘렸다. 거주성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뜻이다. 차에 여러 사람이 올라타도 어디 하나 좁은 느낌이 없고, 게다가 널찍널찍한 유리창 덕분에 시야가 탁트인다. 파노라믹 선루프는 어떤가? 신세계다. 선바이저까지 천정으로 수납하면 오픈카도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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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가 그저 실용성 충만한 공간일 것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부분은 계기반이다. 계기반이 스티어링 휠 뒤쪽에 위치하지 않아서다. 엔진회전계와 속도계 모두 센터페시아 상단의 12인치 모니터에 담겼다. 한참을 달리다가 속도를 확인하려면 시선을 옮겨야 한다. 조금 불편하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몸이 편한 것보다 예쁜 게 더 중요하다는 게 프랑스 방식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예쁘지도 않다는 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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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공간은 또 광활하니,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기본용량만 537리터다. 앞뒤로 슬라이딩이 가능한 2열시트를 앞쪽으로 최대한 당기면 630리터까지 늘어나고, 접으면 1천851리터의 공간이 열린다. 이렇게 품이 넉넉해서 3열시트도 넣었는데, 활용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성인이 타기에는 좁다. 구색맞추기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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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통 1.6리터 블루 HDi 엔진은 큰 차체에 비하면 부족할 법도 하다. 하지만 120마력의 최고출력은 꽤나 풍요로운 힘으로 차를 떠받친다. 평소에 와일드한 운전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충분하다. 최대 30.6kg・m인 토크도 순발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역동적이지는 않아도 그렇다고 모자르지도 않다. 가족들을 태우고 드리프트를 할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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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기준 리터당 14.2킬로미터의 효율은 장점이다. 비슷한 크기의 웬만한 차보다 효율이 높다. 작은 엔진을 얹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PSA 디젤엔진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MCP가 달려있었다면 성적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었을텐데, 여기저기서 울컥거리는 변속감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 최근부터 1.6리터 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덕분에 변속은 매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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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궁둥이 같은 외관일지언정 주행감각은 꽤 영민하다. 물리법칙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도 굽이길을 지나칠 때 돌아가는 느낌이 상쾌하다. 하체도 꽤 충격을 잘 흡수한다. 과속방지턱을 구렁이 담넘어가듯 부드럽게 넘는다. 엔진소음은 최대한 억제되어 디젤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다만 환경을 위해 요소수를 넣어야 한다는 점이 약간 번거롭다. 자주 넣지 않아도 되는데도, 요소수 함량이 떨어지면 시동 자체가 걸리지 않으니, 늘 챙겨야 한다는 게 부담이다. 그래도 지구를 살린다는 생각에 큰 불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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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3천990만 원. 가진 상품성에 비해 착한 가격이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연효효율 훌륭한 7인승 수입 디젤 MPV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떠올릴 필요가 있다. 게다가 곧 출시할 그랜드 C4 피카소 2.0에는 액티브 시티 브레이크(시속 30km 이하에서 전방충돌 위험감지 시 자동 제동), 액티브 크루즈컨트롤, 블라인드 스폿 모니터링, 차선이탈방지 등의 안전장비도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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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은 이런 좋은 차를 소비자에게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는 데 있다. 영업사원들의 능력부족인지, 마케팅 부서가 일을 소홀히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소비자가 환호하는 독일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도 약점이 될 순 있겠다. 그럼에도 이 차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의 삶을 중시하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한 가장이라면, 이 차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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