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더욱 빠져드는 트랜스미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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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T: Honda HR-V

가솔린엔진 SUV에 CVT 조합? 정말 생뚱맞다. 조용한 엔진과 매끄러운 미션의 조합이지만 운전재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실망스럽다

트랙스가 국내 소형 SUV시장을 열었지만, 대박은 르노삼성 QM3가 터뜨렸다. 기아차도 니로를 통해 시장에 뛰어들었고, 쌍용차는 뒤늦게 출시한 티볼리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수입차시장에서는 푸조 2008에게 영예가 돌아갔고, 혼다가 뒤늦게 HR-V를 들여와 무이자할부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반응은 ‘글쎄.’ 어쨌든 소형 SUV의 인기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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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SUV는 공통적으로 실용성을 강조한다. 크기는 작지만, 내실을 다져 젊은 층에게 다가가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차를 움직이는 방법에 있어서는 많이 다르다. 엔진을 움직이는 연료도 디젤과 가솔린으로 나뉘고, 배기량에 따라 힘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엔진에서 나오는 힘을 바퀴에 전달하는 트랜스미션의 차이가 가장 크다. 자동기어와 듀얼클러치, 수동 기반 자동, 그리고 CVT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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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V는 무단기어의 장점 중 하나인 변속충격이 없기에 시내주행에 적합하다. 조용하고, 매끄러운 파워트레인은 디젤엔진에서 느낄 수 없는 안락함이 매력이지만 힘이 부족한 단점도 있다. HR-V의 1.8리터 가솔린엔진은 143마력의 최고출력과 17.5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하지만, 최고출력과 토크를 발휘하는 구간이 6천500, 4천300rpm이기에 힘을 내려면 가속페달을 제법 깊게 밟아야 한다. 일반적인 미션은 기어를 올리면 rpm이 떨어지며 가속을 이어나가지만, CVT는 rpm이 고정되고 속도계만 올라간다. 때문에 ‘웅~’하는 소리가 계속 들리지만 음의 높낮이가 없다. 따라서 운전재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CVT가 많은 이유와 비슷하다. 운전재미보다는 연료효율과 정숙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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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CVT가 그런 건 아니다. 닛산 D-스텝 X-트로닉 CVT는 일반적인 미션처럼 rpm이 오르내리며 속도를 올려 기존 CVT의 단점을 극복했다. 한편, CVT를 포기하는 브랜드도 있다. 아우디는 멀티트로닉이라고 불렀던 CVT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퇴출시켰다. 연료효율도 연료효율이지만 운전의 재미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혼다가 야심차게 준비한 HR-V는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쟁모델은 더 싸고, 연료효율에서도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HR-V가 많이 팔린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솔린엔진과 CVT의 조합에 매력을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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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P: Peugeot 208

MCP만큼 호불호가 강한 트랜스미션도 있을까? 모두들 실패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2008의 대박에 프랑스 본사도 놀란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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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기어의 불편함을 없애고, 자동기어의 편리함을 이어받은 PSA그룹 MCP(Mechanical Compact Piloted)는 2009년 푸조 308에 적용되며 국내에 첫 선을 보였다. MCP는 수동 기반이지만 클러치페달 대신 액추에이터를 이용해 클러치를 조절, 바퀴에 힘을 보내고 끊는 역할을 한다. 기어레버는 ‘R’, ‘N’, ‘A’만 존재할 뿐 ‘P’는 없다. 주차할 때 중립에 기어를 넣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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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강하다. 푸조의 고향 유럽이야 워낙 수동기어 보급이 많기에 앞서 언급한 ‘장점’이 그대로 먹혔지만, 우리나라는 자동기어가 대부분이라 수동기어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동기어만 몰 수 있는 운전면허증이 존재하고 많은 이들이 그 종목에 응시하는 상황이라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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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P의 단점은 ‘이질감’. 그렇다면 왜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걸까? 이런 현상은 윗기어를 바꿔물기 위해 액추에이터가 동력을 차단하면서 나타난다. 가속페달은 밟고 있지만 힘은 전달되지 않고 있으니 자연적으로 속도가 줄어든다. 그리고, 시프트업이 완료되면 클러치를 다시 이어줌으로써 바퀴에 힘을 보내 줄어들고 있는 속도계를 밀어 올린다. 자동기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클러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보니 이질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MCP에 대한 시승기를 보고 있으면 으레 ‘변속할 때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라’라는 문구를 자주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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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뗀다는 건 줄어들 속도에 대비할 수 있는 준비도 마쳤다는 의미다. 반대로 발을 떼지 않으면 전진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는 자동차에 액추에이터가 순식간에 동력을 끊음으로써 상대적으로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쉬운 예로 날아오는 축구공을 가슴으로 트래핑 하는 동작을 보자. 공을 가슴으로 받기 전에 상체를 뒤로 젖혀 다가올 충격에 대비한다. 이는 날아오는 공을 어떻게 받아야 충격이 최소화 되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멀리 찬 공이 지나가던 행인 가슴에 떨어진다면 숨이 5초간 쉬어지지 않음은 물론, 공은 충격완화를 하지 못한 가슴의 영향으로 멀리 튕겨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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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기반 자동기어는 생각보다 많은 차에 사용됐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BMW SMG 역시 수동 기반 자동이다. 람보르기니 E-기어, 페라리 F1 미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은 이질감이 느껴지기 전 시프트업을 끝낸다. 물론, MCP와는 반대로 너무 빠르기 때문에 , 스포츠감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쿵’하는 변속충격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래서 안락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로지 빠르게 달리는 걸 목적으로 한다. MCP도 그렇게는 가능하지만, 작고 실용적인 모델을 만드는 브랜드에서 그럴 이유는 없다.

MCP로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걸까? 현재 308에는 MCP대신 자동기어를 얹는다. 모델명이 숫자 2로 시작하는 208과 2008까지만 MCP를 얹고 있다. 물론, 같은 트랜스미션이지만 시트로엥에서는 EGS라고 부르는 이 녀석을 DS3, C4 칵투스에 달고 있다.

싸고 좋은 건 없다. 수동기어박스에 클러치페달을 없애려면 오른발이 그만큼 움직여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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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 Lotus Elise

자동기어가 판치는 요즘, 불편하고 성가실 것만 같았던 수동기어가 내 입꼬리를 화끈하게 끌어 올렸다

엔진과 자동차, 둘의 관계를 따지면 백년해로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리고 둘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체가 있으니 바로 트랜스미션. 엔진이 힘을 내면 기어는 효율 좋게 힘을 나누고, 가감속할 때 엔진과 한 몸이 되어 운전자에게 필요한 동력을 선물했다. 물론 기어 선택의 주도권은 온전히 운전자에게 있었다. 하지만 게으른 운전자를 위해 자동기어가 나왔다. 더 이상 절묘하게 클러치 조작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기어레버를 휘저을 필요도 없었으며, 기계적인 이해도 필요 없게 되었다. 모든 걸 트랜스미션이 알아서 변속했다. 사람들은 자동기어의 편리함에 빠르게 동요되었다. 언덕을 오르거나 주차할 때조차 더 쉽고 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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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대중화가 상대적으로 늦었던 우리나라는 수동기어보다 자동기어에 더 친숙하다. 요즘은 수동기어를 고를 수 있는 차가 손에 꼽을 정도다. 수동기어에 인색한 시대에 여전히 수동기어를 고집하는 차를 만났다. 바로 경량 로드스터의 표본 로터스 엘리스. 엘리스는 오직 달리는 데 집중한 순수 스포츠카다. 주행성능을 위해 철저히 경량화를 실현하고, 운전자의 통제 아래 짜릿한 운전 재미를 선사한다. 트랜스미션은 당연히 수동. 그동안 편리하고 똑똑한 자동기어를 비롯해 듀얼클러치까지 쏟아져 나왔지만, 엘리스의 수동 예찬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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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노란색 엘리스는 라인업 중 엔트리 모델이다. 미드십에 올라간 1.6리터 자연흡기엔진은 최고출력 134마력. 하지만 수치만 보고서 무시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고작 866킬로그램의 무게로 시속 0→100km를 6.5초 만에 돌파, 최고시속은 204km에 달한다. 트랜스미션은 오직 수동 6단.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모두 토요타에서 공급받는다. 엘리스의 기어박스는 ZR-시리즈 엔진과 궁합을 맞춘 EC60이다. 과격한 스포츠주행에 대응하도록 허용토크와 강도를 높이고, 미드십 엔진에 맞도록 최적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기어박스는 1단부터 6단까지 촘촘한 기어비와 가속력 위주의 4.294 종감속 기어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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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콕핏은 작은 스티어링 휠과 우뚝 솟은 알루미늄 기어레버가 전부다. 엔진 열도 오르고 기어오일이 적당히 부드러워지자 기어레버가 절도 있게 움직인다. 클러치페달을 밟아 동력을 끊고, 2단과 3단을 오가며 엘리스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무뎌진 손과 발이 수동기어에 빠르게 적응했다. 오랜만에 더블클러치로 깔끔하게 변속을 이어가며 본격적으로 엘리스를 탐닉한다. 엘리스는 철저하게 운전자 명령에 복종한다. rpm을 한껏 띄우자 시프트 램프가 번쩍이며 변속을 재촉한다. 손과 발이 하나가 되어 재빨리 시프트 업! 약이 바싹 오른 엘리스는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이어지는 코너는 드라이버를 더 바쁘게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서툴거나 기어 선택을 잘못하면 경운기만큼 털털거렸고, rpm을 보정하며 기어를 완벽하게 내리면 물찬 제비처럼 코너를 빠져 나왔다. 엘리스는 전적으로 드라이버에게 의지했다. 빠르든 느리든 오직 운전자에게 모든 권한을 양보했다. 뜨거운 기계를 완벽하게 다루는 과정이 쾌감으로 이어진다. 수동기어를 고집하는 드라이버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다. 포르쉐조차 수동에서 멀어진 오늘날, 나는 수동기어의 진한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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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al Clutch: Renault Samsung SM6

레이싱 드라이버의 손놀림조차 무용지물이다. 듀얼클러치는 그 어떤 운전고수보다도 빠른 변속실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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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기어는 편리함을 주제로 끊임없이 발전했다. 덕분에 우리의 오른손은 음료수를 들거나 연인의 손을 맞잡게 됐으니, 그 어떤 기술보다 환영 받으며 빠르게 보급되었다. 최근에는 편리를 넘어 효율과 성능에 초점을 맞췄다. 토크컨버터식 자동기어처럼 편리하고, 수동기어처럼 효율적이며, 변속은 더 빠르고 매끄러워야 했다.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조건을 모두 갖춘 기어박스가 바로 듀얼클러치 트랜스미션(Dual Clutch Transmission, 이하 DCT)이다. DCT는 두 개의 클러치가 연동하는 자동기어다. 즉, 하나의 기어박스 안에 두 개의 클러치가 들어가고 변속은 자동화로 이루어진다. 핵심은 빠른 변속시간이다. 변속하려면 반드시 동력차단이 필요한 수동기어에 비해, DCT는 하나의 클러치가 1, 3, 5단, 다른 하나가 2, 4, 6단과 맞물려 동력단절 없이 빠르게 변속한다. 즉, 당신이 아무리 빨리 수동기어를 다룬다 해도 DCT보다 한참 느릴 수밖에 없다. DCT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구조적으로 수동기어와 같기 때문에 토크컨버터 자동기어보다 효율이 높다. 즉, 변속은 수동보다 빠르고, 연비는 수동만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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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T의 시작은 모터스포츠였다. 빠른 변속이 가능했던 DCT는 100분의 1초를 다투는 레이스에서 빛을 발했다. 그리고 폭스바겐이 DCT의 대중화에 성공했다. 대중이 열광하는 DSG(Direct Shift Gearbox)가 바로 그것이다. 마침내 DCT는 빠르게 진화하며 소형차에도 올라갔고, 현재는 누구나 우월한 DCT를 누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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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T의 특혜를 온전히 받아들인 건 르노삼성 SM6다. 치열한 중형세단시장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SM6는 2.0리터 가솔린엔진 GDe, 1.6리터 가솔린 터보엔진 TCe, 1.5리터 디젤엔진 dCi에 모두 DCT를 올렸다. 가솔린엔진은 7단, 디젤엔진은 6단으로 기어 수는 달라도 효율성과 다이내믹한 변속감각에는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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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량을 줄인 1.6리터 터보엔진은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 26.5kg·m를 발휘한다. 트랜스미션은 독일 게트락의 파워시프트 7DCT300. 최근 다단화 트렌드에 맞춰 7단 기어를 갖추고 습식클러치를 사용한다. 눈 여겨 볼 점은 가변형 변속 프로그램이다. 운전자의 취향에 맞춰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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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SM6의 멀티-센스 기능을 다시 주목했다. 컴포트 모드를 누르자 트랜스미션이 부드럽게 톱니를 바꿔 문다. 집중하지 않으면 변속기운조차 느끼기 힘들 정도다. 트랜스미션은 주행속도보다 빠르게 기어를 올리며 rpm을 뚝뚝 떨어뜨렸다. 다음은 스포츠 모드. 우선, 계기반이 붉게 상기되어 타코미터를 중앙에 띄웠다. 트랜스미션은 재빨리 기어를 내린 채 팽팽하게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가속페달에 힘을 주자 SM6는 꿈틀거렸다. 타코미터 바늘이 단번에 레드존까지 치솟았고, 기어레버를 당기자 전광석화처럼 기어를 올린다. 바쁘게 주문을 쏟아내도 마찬가지다. 기어를 내릴 때도 정확하게 rpm을 보정하며 언제든지 튀어나갈 태세다. 이토록 빠르고 똑똑한 기어변속은 DCT의 고유영역이었다. 수동기어를 다루는 내 손놀림을 한참이나 앞섰고, 자동기어보다 짜릿했으며, 복잡한 과정 없이 말끔하게 가속을 이어갔다. 30년 전 레이스에서 쓰였던 기술을 이제는 중형세단으로 누린다. DCT는 모터스포츠가 내린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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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형, 김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