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직 안 죽었다! 캐딜락 XT5

캐딜락의 성장세가 매섭다. 고향땅 미국보다는, 가장 거대한 자동차시장으로 떠올라 여러 자동차메이커가 군침 흘리는 중국에서의 활약이 돋보인다. 지난해 중국에서 11만 대가 넘는 판매량 올리며 폭발적 성장세를 기록한 캐딜락은 지난 1월, 미국(1만298대)보다 중국(1만8천11대)에서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금껏 없었던 일. 중국에서의 성장세를 이끄는 3인방은 바로, 세단 ATS와 XTS, 그리고 상하이공장에서 만드는 중형 크로스오버 XT5다. 지난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시장 판매에 돌입한 XT5는, 크로스오버 인기에 힘입어 12월까지 3만5천여 명에 가까운 주인을 찾아갔다. 캐딜락의 주력라인업이 세단인 걸 생각하면, XT5의 역할이 대단한 셈. 과연 한국인 입맛에도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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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SRX의 자리를 이어받은 XT5는, ‘크로스오버 투어링’이란 뜻의 ‘XT’로 차명만 바꾼 게 아니라 캐딜락 최신 디자인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강렬한 인상으로 탈바꿈했다. 둔탁했던 SRX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방패문양 엠블럼을 형상화한 프런트그릴과 곧게 내리뻗은 램프, 예리하게 가다듬은 캐릭터라인 등을 버무려 조화롭게 빚어냈다. 차체 길이는 SRX보다 약간 짧아졌지만, 휠베이스를 50밀리미터 늘이고 차고도 40밀리미터 높여 실내공간을 넓혔다. 다리공간을 81밀리미터 늘인 뒷좌석에 앉아보니 널찍한 기분이 절로 든다. 짐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뒷좌석을 최대한 앞으로 당겨 접어 평평한 공간으로 만들면 된다. 다양한 쓰임새를 위한 크로스오버의 기능성을 최대한 살리려 고민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널찍하고 쓰임새 좋은 뒷좌석보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거듭난 앞좌석에 시선이 쏠렸다. 뭐가 뭔지 모를 조작버튼 가득한 복잡한 구성보다, 간결하게 마무리한 인테리어에 마음이 간다. 먼지 달라붙는 스웨이드를 대시보드에 너무 과하게 사용했지만, 밋밋한 분위기의 고급차보다는 차라리 이게 낫다. 그런데 버튼 수를 줄이고 기능을 8인치 터치스크린 안으로 쓸어담은 탓에, 기능을 조작하기 쉽지 않다. 캐딜락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큐(CUE)조차 쓰기 불편하다.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기에 아이폰을 꽂고 14개 스피커가 기분 좋게 울려대는 보스 사운드를 만끽하는 게 속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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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차는 최고급트림 플래티넘 모델. 3.6리터 V6 가솔린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앞바퀴굴림 기반의 네바퀴굴림시스템 조합은 기본모델과 같다. 이밖에 자동충돌대비시스템과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등의 안전장비, 룸미러 후방 카메라와 헤드업디스플레이, 자동주차시스템 등 각종 편의장비를 더하며 7천480만 원까지 값이 뛰었다. 주차에 자신 없거나, 앞차와의 간격을 스스로 조절하는 크루즈컨트롤을 즐겨쓰고, 트렁크조차 손 안 대고 열고 싶은 귀차니스트라면 플래티넘을, 그렇지 않은 이라면 6천580만 원부터 시작하는 기본 트림을 선택하는 게 낫다. 워낙 기본장비가 충실한 덕분이고, 추가적인 장비의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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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부드럽다고 얘기하는 미국차의 성격은, XT5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자연흡기 가솔린엔진은 부드럽고 일관적으로 힘을 내며, 8단 자동변속기도 느긋하게 기어를 바꿔 문다. 투어모드로 주행모드를 맞춰 시내를 느긋하게 누빌 때는 앞바퀴만 굴리거나 정지신호에서 스스로 엔진을 멈춰 연료를 아꼈고, 신호 없는 간선도로에서 미끄러지듯 달릴 때는 네 개 실린더만 사용해 연료를 아꼈다. 경량구조를 사용해 예전보다 최대 126킬로그램 감량했지만, 그래도 2톤 넘는 무게와 3.6리터 엔진의 식성 탓에 여전히 한 자릿수 표시연비만 얻는다는 게 안타까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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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 무시하고 6천600rpm에서 나오는 최고출력 314마력을 온전히 느껴보고자, 스포츠모드로 두고 뒷바퀴의 도움을 받아 힘차게 달렸다. 뒷바퀴로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맹렬하게 질주하길 원했건만, 주행조건 맞춰 스스로 조절하는 댐핑시스템은 여전히 차체가 부드럽게 기울도록 허용했다. 스티어링 휠 무게감도, 핸들링 능력도 기대와는 크게 달랐다. 그동안 탔던 캐딜락 세단을 머릿속에 떠올린 탓이었다. 유럽식 주행감각을 노리고 세팅한 그들과 달리, XT5는 온전한 미국식 SUV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가혹하게 몰아붙이기보다는, 넉넉한 배기량에 기대 느긋하고 여유로운 감각을 느끼는 주행이 잘 어울렸다. 중국에서만 판매하는 2.0리터 가솔린 터보엔진은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캐딜락은 XT5를 시작으로, 네 종의 크로스오버 라인업을 완성할 계획이다. XT5는, 성장동력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새로운 발판인 셈. 그렇다면 국내 성공가능성? 주유비 걱정 없이, 공간 넉넉한 캐딜락을 느긋하게 운전하고 싶은 이들은 좋아할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