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미래, 쉐보레 볼트 EV

솔직히, 전기차 시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짧은 주행거리, 부족한 인프라, 비싼 가격 등 어느 하나 확산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떠올려 봤을 때, 그랬다. 물론 지금도 유효한 담론. 전기차는 여전히 주행거리가 짧고, 충전소도 많지 않으며, 보조금이 없으면 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비싸다. 이 세 개의 벽 중에 뒤에 두개는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폭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지금이라도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다. 충전인프라는 곳곳에 있는 주유소처럼 전기차 충전소를 늘려주면 될 일이고, 보조금은 환경에 대한 투자개념으로 전기차 구매자에게 더 주면 된다. 물론 다른 이해관계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쉽게 나서지 못할 뿐, 해결책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2017 Chevrolet Bolt EV electric motor

짧은 주행거리를 보완하는 건 기술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몇몇 브랜드는 작은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내연기관의 연료탱크 크기를 키우면, 많은 연료를 담을 수 있어 그만큼 멀리 갈 수 있는 것처럼(무게는 고려치 않았다.), 배터리용량을 키웠던 것. 사람들이 전기차는 효율보다 얼마나 더 갈 수 있느냐에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실제로 그렇게 했고, 마케팅은 성공했다.

내연기관에서 연료 1리터로 달릴 수 있는 거리를 의미하는 km/ℓ 기준에 해당하는 전기차 효율단위는 km/kWh. kWh는 전력량의 보조단위로, 전력량을 산정하는 기준이다. 전기 1kW로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의 양을 의미하는데, 다시 말해 kWh가 높으면 그만큼 배터리용량이 크다는 뜻이다. 곧 국내 판매를 시작할 테슬라 모델 S 90D는 90kWh의 배터리를 넣어, 378킬로미터를 주행한다. 계산해보면 kWh당 주행거리는 4.2킬로미터에 불과하다. 같은 계산으로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배터리 28kWh)은 kWh당 6.8킬로미터를 달린다. 다시 말해, 모델 S의 효율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저 배터리용량을 키워 갈 수 있는 거리를 늘렸을 뿐이다.

쉐보레 볼트 EV도 긴 주행거리를 최대강점으로 들고 나왔다. 국내 인증기준으로 테슬라 모델 S보다 5킬로미터를 더 간다. 배터리용량은 60kWh. 역시 작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효율은 6.4km/kWh나 된다. 효율과 주행거리를 동시에 잡은 셈이다.

110 111 00001.MTS_20170407_090030

볼트 EV 배터리는 우리나라의 LG화학이 만든다. 용량을 키우기 위해 288개의 리튬이온 배터리셀을 세 개씩 묶은(각 96개) 셀 그룹을 다시 열 개의 모듈로 구성했다. 이를 통해 효율을 이전보다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볼트 EV가 가진 긴 주행거리가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다. 어렵긴 하지만, 어쨌든 멀리 효율적으로 갈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다.

볼트 EV가 효율을 높이기 위해 넣은 무기는 배터리 외에도 스티어링 휠 뒤쪽의 패들스위치가 있다. 게임기 패드를 조작하는 느낌으로 살짝 누르면 차가 덜컥거리는 느낌이 든다. 차가 멈추는 힘을 이용해 에너지를 모으는 것. 쉐보레에서는 리젠 온 디멘드시스템으로 부른다. 또 ‘L’이라는 주행모드를 둬, 가속페달 하나로 가감속은 물론, 완전 정차까지 제어하는 새로운 개념의 회생제동시스템, 월 페달 드라이빙을 선보였다. 평소 브레이크를 잘 밟지 않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꽤 재미있는 감각으로 조작을 할 수 있다. 페달을 깊게 밟으면 동력이 100퍼센트 전달되고, 반 정도 밟으면 속도가 줄며, 완전히 떼면 차도 선다. 마치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픽스 바이크를 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런 행동들이 모두 또 효율과 연결된다니 새삼 기술 발전에 놀랍기도 하고.

11 16 00004.MTS_20170407_090202

전반적으로 디자인도 만족할 만한 수준. 기존 플랫폼에 전기동력계만 얹었던 1세대~1.5세대 전기차들과 달리 최근의 전기차들은(분류상 2세대라고 한다) 디자인 수준이 한층 전기차에 최적화되어 있고, 또 미래적이다. 볼트 EV 역시 다르지 않은데, 판타스틱 듀얼포트 그릴이나 LED 주간주행등, HID 헤드램프 등이 독특하다. 사이드미러에서 이어지는 크롬라인도 깔끔한 느낌. LED 테일램프도 신선하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건 실내공간. 넓다. 차급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뒷좌석에 성인남자가 올라타도, 무릎이 거의 닿지 않는다. 트렁크 또한 배터리가 침범하지 않아 넓다. 모터 스타트버튼을 누르면, ‘레디’라는 글자가 8인치 계기반 왼쪽 하단에 뜬다. 그러고보니 계기반의 화면이 아기자기하다. 전기차 계기반은 보통 디지털화 되어 있는데, 볼트 EV는 마치 스마트폰 같은 색감을 넣었다. 센터페시아의 10.2인치 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배경색이나 아이콘들이 지금 사용 중인 아이폰의 아이콘들과 흡사하다.

15

본격적인 출발. 가속페달에 얹은 발 끝에 힘을 주니, 전기차답게 경쾌하게 튀어나간다. 204마력, 36.7kg∙m의 힘을 갖추었으니, 당연한 결과. 재미있는 건 스포츠모드의 존재. 고성능차에서나 보았던 그것이다. 극적으로 동력성능이 좋아지는 건 아닌데, 스티어링의 반응이 꽤 재미있다. 뒤에서 보면 볼트 EV는 키가 작지 않은데, 좌우로 쏠리는 느낌이나 위아래 움직임도 적다. 차체 바닥에 들어간 배터리 덕분이다. 제원상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이 7초 이내니, 그 작은 차가 얼마나 민첩하게 움직이는지, 타보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신세계다.

달리는 IT 기기라는 전기차 특성상, 각종 인포테인먼트시스템도 강점. 우선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하는 한편, 브랜드 최초로 ‘마이 쉐보레’ 어플리케이션으로 배터리 충전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자동차의 주요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어플로 문을 여닫을 수도 있다. 에어컨을 미리 켜는 것도 가능. 보스 오디오시스템 또한 귀를 즐겁게 한다.

13

2017 Chevrolet Bolt EV

볼트 EV가 신은 미쉐린 타이어는 펑크가 나도 스스로 구멍을 떼우는 똑똑한 녀석. 스페어 타이어와 타이어수리 키트를 없애 차의 무게를 덜기 위한 조치다. 다만 이 타이어는 가격이 일반타이어보다 비싸다. 정확한 가격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유지비를 부담케 하는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00011.MTS_20170407_090359

실제로 경험해 본 볼트 EV는 상당히 만족도가 높은 전기차였다. 뜬구름 잡듯 미래사회 이동수단을 굳이 꺼내지 않고, 이미 현실이 된 전기차 시대를 대변하고 있었다. 실내외의 높은 디자인 수준이나 성능, 주행거리, 안전성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차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올해는 더 이상 볼트 EV를 살 수 없다는 점. 계약접수 하루 만에 올해 국내 배정된 1천 대의 물량을 모두 소진했다. 인도는 이번달 말부터다. 부러우면 지는거라지만, 이번에는 분명하게 졌다. 이 차를 갖게 될 행운아들이 지금 너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