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킬로미터 운전, 그래도 좋기는 합디다

신형 그랜저. 막상 타보지는 못하고, 그저 귀동냥으로나마 들었다. 젊고 멋스러워졌다고, 고급스러워졌다고. 무엇보다 달리는 감각이 예전보다 월등히 좋아졌다고 했다. 시승해볼 길이 없으니 믿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그랜저 하이브리드 시승회를 찾았다. 사실 하이브리드보다는, 신형 그랜저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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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코스는 짧았다. 김포공항 옆 메이필드호텔에서 출발해 자유로를 거쳐 파주 헤이리까지 왕복 80킬로미터 정도. 2인 1조로 시승하기에, 기자 한 명이 운전하는 건 40킬로미터 남짓. 통행량 많은 코스인데다, 추적추적 내리던 봄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궁금한 것들을 해소할 시간도, 장소와 환경도 마땅치 않았다. 그저 느긋하게 다녀오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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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만 봐서는, 하이브리드라는 걸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하이브리드 전용 17인치 휠만 돋보였다. 사실 구형 그랜저도 하이브리드 모델이라고 해서 크게 티 내지는 않았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와는 달랐다. 현대차가 조사한 소비자 의견에서, 그랜저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모델의 디자인 차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트렁크리드 끝자락에 억지로 붙여놓은 것만 같은 ‘hybrid’ 레터링은 너무 단출해서 차라리 떼어버리는 게 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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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분위기를 강조하지 않은 건 실내도 마찬가지. 계기반 왼쪽에 타코미터 대신, 배터리 잔량과 에너지흐름을 살필 수 있는 전용 정보창을 달았다. 8인치 센터페시아 모니터에는, 하이브리드 모델에서만 볼 수 있는 정보를 담았다. 와인병 코르크마개를 생각나게 하는 도어트림 코르크 가니시는, 하이브리드 모델 중 최고급트림 전용 장식. 중요한 건, 기존에 뒷좌석 등받이 뒤에 놓았던 배터리를 트렁크 밑으로 옮겨 넣은 덕분에, 트렁크용량을 426리터까지 키울 수 있었다는 점. 골프백 네 개가 들어갈 공간이다. 트렁크 때문에 하이브리드를 고민했던 이들에게는, 반길 만한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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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석에 앉았다. 달리고 있는 신형 그랜저에 타보는 건 처음이다. 정말 끝내주게 조용했고, 나파가죽시트의 느낌과 승차감 모두 좋았다. 시승차는 뒤쪽까지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끼워 넣은 최상위트림 익스클루시브 스페셜 모델. 비 내리는 날이라 더욱 조용했을 거다. 젖은 길을 박차고 구르는 바퀴 소리, 연배 높은 선배기자와 나누는 이야기 소리뿐. 전기모터는 안 돌아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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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그랜저를 몰던 선배기자는, 얼마 전 신형 그랜저를 마련했다. 기름값을 생각해 선택한 건 LPG 모델. 하지만 짧게나마 스스로 달리는 기술인 스마트센스 패키지를 갖춘, 최고급사양이다. 실제로 스마트센스 기능을 가장 애용한다는 선배는, 시승 동안 정지할 때 빼고는 페달을 거의 쓰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앞차와 간격을 조정하며 생각보다 잘 달렸다. 빗발이 거세지는 와중에도 차선을 넘어가지 않도록 스티어링 휠이 조금씩 돌아갔다.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드는 상황에서는 제동해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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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첫인상을 품고, 운전석으로 갈아탔다. 주최 측에서 시동을 걸어놓은 탓에 전기모터만으로 출발하진 않았다. 밖에서는 2.4리터 세타엔진이 돌아가는 소리가 썩 좋지 않지만, 실내는 역시 조용하다. 내장재와 버튼들, 스티어링 휠 감촉도 나무랄 데 없다. 구형 그랜저의 실내 소재가 화장품 같은 거라도 뭐 한 번 묻으면 닦아내기 어려웠던 점을 생각하면, 훌륭하게 업그레이드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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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와 노멀, 스포츠 세 종류의 주행모드를 번갈아 사용했다. 주행모드에 따라 스티어링 휠 무게감, 드로틀 반응, 엔진회전수 사용범위를 달리했지만, 정도의 차이는 크지 않다. 운전습관과 주행상황을 분석해 알아서 모드를 바꾼다는 제네시스의 스마트모드를 넣었으면 어땠을까. 결국, 사람들이 신경 안 쓰고 주로 사용할 만한 노멀모드 위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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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출발과 가속, 제동에서 하이브리드 특유의 이질감이 거의 없었다. 민감한 사람 아니면, 전기모터가 언제 개입하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 심지어, 회생제동 때도 일반 내연기관차와 다를 바 없는 감각을 살렸다. 세팅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 배터리용량을 기존 1.43kWh에서 1.76kWh로 늘리며 전기에너지 활용도와 연료효율성을 높인 건 물론이고, 전기모터의 출력을 38kW로 높여 가속성능 또한 조금이나마 빨라졌을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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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부드럽게 만진 서스펜션은, 강성 높인 차체와 어울려 노면 굴곡에 매끈하게 대응했다. 이전과 확연히 다른, 탄탄한 감각까지 아우른 승차감에서 젊고 역동적으로 변한 그랜저가 보였다. 예리한 핸들링은 아니지만, 차체가 기울어지는 걸 어느 정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자동차는 다른 성격으로 탈바꿈하고는 한다. 좀더 정확한 성능을 확인해보려면 날씨와 장소 등 여러 주행환경을 따져봐야겠지만, 잠깐 타본 그랜저는 분명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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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에 오르자 빗줄기는 더 거세졌다. 도로 위 물웅덩이와 점차 많아지는 차들을 보고, 스마트센스를 최대한 작동했다. 앞차와의 거리를 재고 가속과 감속, 스티어링 휠 조향, 뒤쪽 사각지대까지 감지해 경고해주는 등 모든 기능을 켰다. 개인에 따라서 반응이 다를 수 있으나, 느낀 바로는 분명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졌다. 컴퓨터가 허둥대지 않고 똑똑하게 분석해 차를 다스렸다. 이따금 과속카메라가 나타나면 속도도 줄였다. 맑고 또렷한 헤드업디스플레이 그래픽 위에는, 사각지대 경고까지 표시해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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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나마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타보니, 가솔린과 디젤엔진을 품은 다른 그랜저들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가 타기에는 부담스럽고, 만약 아버지가 카니발 말고 그랜저를 생각해보신다면? 평소 느긋하게 운전하는 아버지 스타일대로라면, 2.4 가솔린과 2.2 디젤의 장점을 두루 품은 하이브리드를 권해드리고 싶었다. 컬러는 무조건 푸른 옥빛의 하이브리드 전용 컬러 ‘하버 시티’라야 했다. 그래야 좀 단조로운 색깔 가득한 도로 위에서 존재감을 뽐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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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장점을 누리려면 4천만 원에 육박하는 최상위트림이 필요하겠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스마트센스 패키지를 선택할 수 있는 최하위트림도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4월 5일 기준, 1천630명의 계약자 중 70퍼센트 이상이 스마트센스 패키지를 선택했다고 한다. 내가 탄다면 굳이 필요 없지만, 가족의 안전만큼 소중한 게 어디 또 있을까. 배터리 평생보증, 10년 20만 킬로미터의 하이브리드 부품 보증기간도 구미를 당기는 요소다. 어느덧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한 그랜저. 그랜저를 선택하는 수많은 고객 중 하이브리드에 혹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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