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저항군, 쉐보레 크루즈

지루했던 준중형차시장에 매력적인 저항군이 등장했다. 파워트레인부터 골격까지 치밀하게 담금질한 신형 크루즈 이야기.

사회초년생으로 요즘 한창 바쁜 막냇동생이 물었다. “형! 차 뽑으려고요. 형편에 큰차는 안 되요. 준중형차 중에서 한 대 추천해주세요.” 사고 싶은 차가 뭐냐고 우선 묻는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정해둔 차가 있다. 단지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지 확인하고 싶은 심리의 발동이다. 항상  “그냥 그 차 사서 잘 관리하며 타라”고 한다. 국산 준중형차 중 한 대를 콕 집어 추천해달라는 지인의 질문에 내 대답은 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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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준중형차시장에 훈풍이 불기 시작한 이때, 더욱 활기를 돋우는 강력한 저항군이 전장에 가세했다. 바로 2세대로 진화한 신형 크루즈. 새로운 크루즈 탄생에 걸린 시간만 9년. 인고의 세월이었다. 기존 크루즈도 인기가 좋았다. 115개 나라에서 무려 400만 대가 넘게 팔렸다. 그야말로 글로벌 스테디셀러였다. 신형 크루즈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판매된다. 쉐보레에게 크루즈는 단순한 준중형차 이상의 의미인 셈이다. 브랜드 이미지와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세계시장에서 보다 탄탄한 입지와 강력한 지위를 굳혀야 한다. 그런 만큼 쉐보레는 신형 크루즈에 공을 들였다. 세상에 없던 모델을 만들 듯 고군분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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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크루즈는 제법 매력적인 준중형차로 진화해 돌아왔다. 심심한 국산 준중형차시장에 훌륭한 레지스탕스의 출현이었다. 우선 디자인부터 달라졌다. 임팔라와 신형 말리부에서 선보인 패밀리룩을 잘 따랐다. 범퍼를 기준으로 아래위로 나눈 듀얼포트 그릴은 인상이 강했다. 블랙베젤 헤드램프와 그릴을 이어붙여 커진 차체를 더 넓고 다부지게 만들었다. 날카로운 쐐기형 또는 돌격형 차체는 패기 넘치는 도전자 같았다. 범퍼 밑에는 펴고 접어 각을 만든 고무립도 달았다. 가파르게 내리 꽂힌 A필러와 자연스럽게 이어진 보닛에 다섯 가닥 주름을 잡아 젊은 맛도 냈다. 휠하우스를 빼곡히 채운 18인치 듀얼 5스포크 알로이 휠은 사회초년생 혹은 젊은 아빠의 차로 그만이었다. 앞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캐릭터라인과 보닛에서 출발해 앞쪽 펜더로 흐르는 곡선의 에지라인, 선과 면이 겹치고 만나 트렌디하고 시크한 맛을 잘 살렸다. 트렁크 끝에 붙은 붉은색 터보 엠블럼은 일신한 파워트레인의 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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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크루즈는 중형차가 아쉽지 않을 만큼 덩치가 커졌다. GM D2XX 플랫폼에서 탄생한 첫 번째 모델이었다. 구형보다 68밀리미터 길어지고, 25밀리미터 낮아졌다. 실내공간을 가늠하는 휠베이스는 25밀리미터나 늘었다.

무턱대고 덩치만 키운 것도 아니었다. 초고장력 강판을 74.6퍼센트나 썼고, 충돌하중분산설계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엔지니어링, 핫스탬핑공법 등 섀시공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덕분에 차체강성은 27퍼센트나 좋아졌다. 그러면서 무게는 110킬로그램 덜어냈다. 9년이란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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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진 차체만큼 실내는 여유로웠다. 앞뒤좌석 모두 넉넉하다. 쿠페처럼 매끈하게 빠진 C필러 탓에 뒷좌석 헤드룸이 다소 줄었지만, 불편한 수준은 아니니 걱정은 마시길. 군더더기 없어 실용성 좋고 여유로운 시트에 앉아 ‘이 정도면 충분한데 꼭 중형차가 필요할까’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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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테마는 검정. 도시적 인테리어에 크롬으로 포인트를 줘 미국차 나름의 멋도 냈다. 소재와 마감재는 준중형차급 이상이고 조립품질은 만족스러웠다. 대시보드 가운데 터치스크린 모니터는 애플 카플레이나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와 순식간에 연결됐다. 운영체제와 상관없이 USB단자에 선만 이으면 알아서 풍악을 울렸다. 다루기 쉬운 첨단기능에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게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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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트레인은 1.4 가솔린터보엔진과 GEN3 자동 6단 기어박스. 터보로 힘을 더한 다운사이징엔진은 153마력과 24.5kgm 토크로 제법 힘을 썼다. 시동버튼을 눌렀다. 걸렸나 싶을 정도로 공회전은 정숙했다. 배기량 적은 엔진은 조용하고 부드럽게 피스톤을 움직였다. 가속페달에 힘을 실었다. 초반부터 강력한 토크로 통쾌하게 가속하는 건 아니지만, 내내 일정하게 기대 이상으로 힘을 냈다. 주행 중 가속감도 아쉽지 않았다. 조용하고 착한 모범생의 일정하게 좋은 성적처럼 속도계 바늘은 쉼없이 올라갔다. 5천600rpm에서 터져나오는 최고출력은 고속에서 뒷심을 챙겼고, 2천400rpm부터 시작하는 최대토크는 일상에서 쓰임새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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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3 자동 6단 기어박스 반응도 칭찬할 만했다. 운전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똑똑하고 부드럽게 반응했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단수를 낮춰 터빈을 돌려 차체를 밀어댔고, 힘을 빼면 빠르게 단수를 높여 낮은 rpm으로 효율을 챙겼다. 주행모드를 수동으로 바꿨다. 콩알 같은 토글스위치를 손가락으로 깔딱거리던 과거는 잊어라. 노브를 화끈하게 왼쪽으로 젖혀 움켜잡고 위아래로 움직이며 단수를 가지고 놀았다. 인간공학적 설계를 바탕으로 한 기어노브는 다루기 쉬운 위치에 자리했고, 또 모는 맛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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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를 더한 가솔린엔진은 끈기있게 힘을 냈다. 시속 170km를 수월하게 넘어섰다. 이후부터는 약간 더디지만 그 이상도 어렵지 않았다. 경쾌한 풋워크는 고속으로 갈수록 낮고 차분하게 무게중심을 낮추며 거동을 추스렸다. 참고로, 시속 100km 주행 중 엔진회전수는 2천(6단)을 유지하며 연비를 챙겼다.

스티어링은 한결같이 묵직하고 차분하며 날카로웠다. 동급에서 유일한 랙타입 프리미엄 전자식 차속감응 파워 스티어링(R-EPS) 덕이 컸다. 엔진 아래 랙&피니언 모듈에 모터를 직접 달아 중형차 뺨치는 스티어링 감각을 만들었다. 메이커 입장에서 그리 달갑지 않은 시스템이다. 성능은 좋지만 구조가 복잡한데다 비쌌다. 하지만 쉐보레는 준중형차 이상의 주행질감을 만들기 위해 과감히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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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크루즈는 묵직한 맛으로 제법 잘 달렸지만 날쌘 맛이 덜했다. 신형은 안정감 있고 단단한데다 경쾌한 맛도 컸다. 줄어든 무게와 다부진 출력은 가속뿐 아니라 코너링도 적극적이어서 운전재미도 쏠쏠했다. 작정하고 풀드로틀 하면 어지간한 2.0리터 엔진보다 통쾌했다. 상황에 따라 알아서 작동하는 스타트 & 스톱시스템은 지속적으로 효율성도 챙겼다. 연비를 고려하지 않으며 300킬로미터 넘게 달린 트립컴퓨터에 나온 연비는 리터당 11킬로미터 대. 공인연비는 리터당 13.5킬로미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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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크루즈의 또 다른 장점은 풍부한 편의장비다. 사각지대경고시스템 덕에 차선변경이 수월했고, 차선이탈경고 및 유지보조시스템은 차선을 밟으면 경고했다. 그래도 운전자가 인지하지 못하면 스스로 스티어링을 움직여 차선을 유지했다. 자동주차와 스마트 하이빔, 전방추돌경고시스템도 없으면 모르지만, 경험하면 엄지를 치켜 올릴 장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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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했던 국산 준중형차시장에 기세등등한 저항군이 가세하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국내시장을 선점 중인 라이벌과 펼칠 진검승부는 강 건너 불구경만큼 흥미로울 것이다. 신형 크루즈를 두고 혹자는 차는 좋은데, 가격이 아쉽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자본주의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저렴해서 잘 팔리고, 비싸다고 안 팔리지 않는다. 상품성과 만듦새, 기본기, 브랜드 이미지, 역사와 철학, 서비스 등 실로 다양한 요소들이 평가 받고 결과를 도출한다. 우리는 차의 기본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크루즈를 제대로 경험할 필요가 있다. 준중형차 이상의 상품성과 다양한 장점을 지닌 레지스탕스를 한 가지 이유로 지레 외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차 자체를 제대로, 그리고 꼼꼼히 살피고 충분히 경험한 후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신형 크루즈를 보고 느끼고 경험해야 할 이유는 열 가지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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