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에게 고성능이란?

주야장천 안전만 외쳐서 지루해진 볼보가 고성능 모델을 공개했다. 국내 첫 선을 보인 폴스타가 바로 그 주인공. 안전강박증 볼보에게 고성능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 깨질 수 있을까?

볼보 폴스타라고 들어봤어? 처음이라고? 그래 뭐 괜찮아, 우린 볼보 직원도 아니잖아. 사실 나도 생소했어. “볼보도 고성능 모델 폴스타가 있다더라” 정도밖에 몰랐으니까. “그런데 글쎄 우리나라에 폴스타가 들어왔대. 저기 저 주차장 모퉁이만 돌아서면 만날 수 있어. 물론 사진으로 봤지. 그런데 실물이 궁금하더라고. 사진 속 폴스타는 좀 평범했거든. 카리스마 넘쳐서 막 몰아보고 싶은 생각은 뭐 그렇게 들지는 않았어. 평범해 보였으니까.”

폴스타는 1996년부터 활동한 스웨덴 레이싱팀. 볼보의 작은차를 레이스카로 개조해 괜찮은 성적을 거두던 이들은 2015년 볼보에 인수합병되면서 볼보의 정식튜너가 됐다. BMW M이나 메르세데스-AMG처럼 볼보의 고성능 브랜드가 된 폴스타는, 정식으로 볼보 식구가 된 후 연간 생산량을 750대에서 1천500대로, 판매도 13개에서 47개 나라로 늘렸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폴스타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즐겁고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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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가운데 두 녀석이 서있다. 폴스타 S60과 V60이다. 같은 플랫폼에 세단과 왜건으로 형태를 달리하는 쌍둥이 차다. 눈에 띄는 컬러를 빼면 생김새는 평범하다. ‘고성능이요’ 하는 허세나 카리스마가 거의 없다. 여기저기 튜닝했지만 기본모델의 디자인과 골격을 그대로 쓴 탓이다. 펜더라도 좀 부풀렸으면 좋았으련만, 너무 수더분해서 심심하다. 휠하우스와 타이어가 닿을 듯 차체를 낮췄는데도 기본적으로 높은 차고 탓에 고성능의 아우라는 미미했다. 오호 통재라. 자고로 고성능이라면 빵빵한 펜더와 바닥에 낮게 웅크린 도발적 자세가 미덕인 것을. 그래도 과속방지턱이나 지저분한 길을 다닐 때 하체가 닿을 스트레스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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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스타의 진면목은 가까이 다가섰을 때 드러난다. 폴스타라서 어울릴 화려한 색상, 펜더에 닿을 듯 휠하우스를 꽉 채운 20인치 전용 휠, 검정 프런트 그릴과 트렁크 위 폴스타 배지, 트렁크(S60)와 루프(V60) 끝에 달린 스포일러, 검정 사이드미러, 리어 디퓨저와 범퍼 양 끝의 커다란 머플러 두 발이 범상치 않은 모델임을 은근히 과시한다. 그래도 요즘 시대에 표현이 너무 소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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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또한 기본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골격을 공유한 대신 마감재 등의 소소한 부분들을 손봤다. 가죽과 스웨이드로 무장한 공격적인 버킷시트는 덩치 큰 사람이라면 좀 끼일 만큼 다부지게 몸통을 감쌌다. 폴스타의 하늘색 스티치로 멋을 낸 스티어링 휠의 밖은 가죽, 안은 스웨이드로 감싸 손에 감기는 맛이 독특했다. 하지만 기본형 스티어링 휠과 크기와 생김새가 같아서 아쉽다. 같은 차라도 스티어링 디자인과 감촉에 따라 모는 맛이 다른 것을 볼보가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재질만 달리한 폴스타 스티어링 휠은 구경 작고 두툼한 D컷 정도는 됐어야 했다. 모름지기 신출내기 고성능이라면 자기자랑에 더 적극적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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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테마는 검정. 간간히 알루미늄과 하늘색 스티치로 지루함을 달랬다. 짧고 두툼한 기어노브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커버를 씌우고 안에 폴스타라고 새겨 넣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독특한 탓에 예쁘기보다 정신이 없다. 알루미늄이나 가죽 기어노브에 각인했으면 더 깔끔했겠다.

볼보는 안전의 대명사다. 그들의 안전강박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문제는 안전이 더 이상 강점이 아닌 시대가 됐다는 것. 요즘 웬만한 양산모델은 볼보만큼 안전하다. 이런 시대에 볼보의 안전은 장점보다 성장통의 원인일 확률이 높다. 안전해서 믿음직한 만큼 쾌감은 줄었다. 나긋해서 안락하지만 덜 도발적이었다. 시나브로 볼보는 오빠차보다 아빠차에 더 어울렸다.

그랬던 볼보의 걸음이 최근들어 빨라졌다. 스칸디나비안 럭셔리로 북유럽 트렌드의 주인공을 자처한 그들은 디자인을 가다듬고, 소재와 마감재에 투자했으며, 완성도에 집중했다. 변화는 판매성장으로 이어졌다. 2퍼센트 애매하던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번듯하게 한자리 꿰찼다. 볼보코리아는 물 들었을 때 힘차게 노젓기 위해 폴스타라는, 고성능 모델까지 투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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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폴스타의 파워트레인은 3.0리터 V6 엔진에 싱글터보를 얹고 최고출력 350마력, 최대토크 51.0kgm를 냈다. 6단 기어박스에 할덱스 네바퀴굴림시스템으로 도로를 짓이겼다. 기술의 발전과 다운사이징의 흐름은 폴스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2.0리터로 배기량을 낮추고 터보와 수퍼차저를 동시에 쓰는 트윈차저 시스템으로 367마력과 47.9kgm의 토크를 토해냈다. 아이신 8단 기어박스와 보그워너 네바퀴굴림시스템으로 초창기 폴스타 뺨칠 만큼 화끈했다.

고성능 모델답게 보이지 않는 부분도 한껏 가다듬었다. 30단계까지 감쇄력 조절이 가능한 올린즈 서스펜션으로 운동성능을 키웠고, 카본 스트럿바로 미세하지만 비틀림강성도 높였다. 브렘보 6피스톤 브레이크시스템은 출력을 압도했다.

시동버튼을 눌러 엔진을 깨웠다. 주행모드는 노멀과 스포츠 두 가지. D에서 기어노브를 왼쪽으로 젖히면 S모드다. 900rpm을 유지하는 공회전 시 배기음은 기본모델보다 약간 힘찼다. S로 노브를 젖히면 1천rpm을 살짝 넘으며 배기음이 좀더 살아난다. 그렇다고 M이나 AMG처럼 호기롭게 그르렁거리진 않는다. 가속페달에 무게를 싣자 넉넉한 토크로 시원하게 가속했다. 배기음이 제법 살아나지만 수퍼차저 돌아가는 소리가 묻힐 만큼 대범해지지는 않았다. 엔진회전수 사용이 적극적인 S모드에서는 사운드에 카리스마가 묻어나지만, 그래도 모범생 티를 벗어나진 못했다. 터보와 수퍼차저는 초반부터 레드존(6천500rpm부터)을 넘어 6천800rpm 부근까지 꾸준하고 시원하게 몰아붙였다. 올린즈로 무장한 하체는 단단하기보다 딱딱했다. 매끈한 도로 위에서는 껌처럼 달라붙어 달리는 맛이 좋았지만, 방지턱이나 고르지 못한 길 위에서는 경박하게 통통거렸다.

좋지 않은 길에서는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일체형 서스펜션 튜닝 차를 타는 나에게도, 단단해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20인치 휠과 편평비 낮은 스포츠타이어 탓도 컸다. 당장 좀더 부드럽게 감쇄력을 조절하고 싶지만, 예약 잡고 기다려 서비스센터에 들러야 가능하다.

넉넉한 출력 덕분에 언제든 원하는 만큼 가속했다. 한겨울에 스포츠타이어지만 네바퀴굴림시스템과 안전으로 무장한 녀석은, 과도하게 안전해서 가속을 부추겼다. 충분히 빠른데, 신기하게 심심했다.

세단과 왜건을 번갈아가며 도로를 누볐다. 같은 플랫폼에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두 녀석은 98퍼센트 같았다. 저돌적이고 과격한 핸들링에서 형태에 따른 운동성능의 차이가 이따금 보일 뿐이었다. 뒤가 약간 더 무겁고 뭉툭한 왜건이라서 뒷부분이 16분의 1박자 늦게 반응하는, 미세한 차이였다. 고출력 네바퀴굴림 모델에서 이쯤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반응과 감각이 닮아있다. 취향과 상황에 따라 무엇을 고르든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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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스타 개발팀은 일반도로 위에서의 재미와 밸런스에 초점을 맞춰 차를 완성했다. 서킷에서의 과격한 날카로움보다 공도에서 부드럽고 강력한 움직임을 목표로 했다. 충분히 빠르지만 핸들링은 무난했고, 뛰어난 안정감만큼 운전재미는 심심했다. 안전한 볼보는 덜 자극적이지만, 그래도 안전한 고성능차를 만들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더 짜릿한 야생마 대신 조련된 경주마를 만든 셈이다. 스칸디나비안 럭셔리의 고성능은 이런 건가? 기대가 큰 만큼 실망과 아쉬움도 적지 않은 법. 안전한 볼보는 고성능차의 후발주자. 그만큼 자기표현에 더 적극적이고 더 기세등등해야 한다.

LOVE  트윈차저엔진의 식을 줄 모르는 패기와 열정
HATE  과하게 안전해서 심심하고 아쉬운 운전재미
VERDICT  안전하게 잘 나가는 경주마를 원한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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