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7 VS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왕좌는 누구의 것?

영민한 BMW와 우아한 마세라티가 맞붙었다. 날카로운 삼지창과 바이에른 배지의 명예를 걸고 벌이는, 브랜드 수장들의 한판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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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십(Flagship). 본래는 함대의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기함을 의미한다. 기함은 특별한 존재다. 전투상황을 파악하고 정확한 명령을 내리며, 때로는 누구보다 빨리 이동해 전열의 중심이 돼야 한다. 그래서 플래그십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상품으로 통한다. 브랜드에서 갈고 닦은 첨단기술의 결정체이자, 브랜드 정체성을 한데 압축한 상품. 예를 들면, 독일 뮌헨을 대표하는 BMW 7시리즈와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의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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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리즈는 BMW가 제출한 자기소개서 같은 존재. 7시리즈만 면면이 살펴봐도 BMW의 브랜드 철학, 디자인 컨셉트, 첨단기술 등 BMW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7시리즈는 언제나 선두자리에서 혁신을 선보였다. 모든 라인업 중 최초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반자율주행과 제스처 컨트롤 등 첨단기술을 올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심지어 낯선 디자인을 우리에게 설득하는 일도 7시리즈 몫이다. 그렇다면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는 어떤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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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트로포르테는 마세라티의 레이싱 DNA를 물려받은 첫 번째 양산차였다. 실용성을 위해 네 개의 도어를 달았을 뿐, 콰트로포르테는 레이스카와 다를 게 없었다. 최초 콰트로포르테는 상징적인 V8 엔진을 고집했고, 당시 유럽에서 시속 200km로 질주하는 단 석 대의 그랜드투어러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콰트로포르테는 수려한 디자인으로 유명했다. 베르토네의 마르첼로 간디니, 이탈디자인의 조르제토 주지아로, 피닌파리나 등 거장의 손길을 거쳐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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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한 BMW와 감성적인 마세라티가 한 자리에 섰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기함과 기함의 만남. 정확히는 BMW 740d x드라이브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S Q4의 대결이었다. 뮌헨 출신 740d는 마치 오늘의 자리를 의식한 듯 도도한 자태를 뽐낸다. 하염없이 뻗어난 길이가 기함의 자격이자 우월한 신체조건이었다. 딱 벌어진 어깨선과 잘 정돈된 세단 실루엣, 그리고 5살짜리 꼬마도  알아볼 수 있는 키드니 그릴이 BMW임을 각인시켰다. 7시리즈는 외형부터 철저한 독일 공학도의 손길이 느껴진다. 황금비율에 맞춰 각도기로 일일이 잰듯한 C필러 각도와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공기저항계수까지 계산한 에어브리더까지. 모든 선과 면에는 의미가 있었고 불필요한 꾸밈은 없었다. 7시리즈가 주도한 BMW 패밀리룩은 한결 보기 편해졌다. 단정하고 멋졌으며, 똑똑한 BMW다웠다. 시승차는 M 패키지로 한껏 치장한 상태. 더 우람한 범퍼, 한결 낮아진 자세, 감각적인 테일파이프가 변화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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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리즈 디자인에 푹 빠져있을 때, 마세라티가 나타났다. 사실 눈앞에 나타나기도 전에 알아챘다. 이미 저 멀리서부터 배기음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첫인상부터 7시리즈와 딴판이다. 쩍 벌어진 그릴과 우아한 디자인, 그리고 날카로운 선들이 차체를 타고 넘실거린다. 특히 리어 펜더 위에서 부푼 캐릭터라인과 C필러에 콱 박힌 마세라티 삼지창이 유난스럽게 반짝였다. 콰트로포르테는,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의 모습이 확연히 달랐다. 가까이서는 화려한 디테일에 시선을 빼앗기고, 멀리서는 큰 덩어리가 뽐내는 유려한 자태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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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리즈와 콰트로포르테를 번갈아 몰았다. 보통 비교시승 할 때는 더 꼼꼼히 시승 느낌을 기억해 둔다. 하지만 둘 사이에서 굳이 메모조차 필요가 없었다.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른 기함이다. 740d는 합리적인 3.0리터 디젤엔진을 품었다. 디젤이라 조금 우려했지만, 다행히 소음도 진동도 없는 정숙한 심장이다. 6기통 디젤엔진을 두고 출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최고출력 320마력, 최대토크는 무려 69.4kg·m에 달하며, 5미터가 넘는 차체를 가지고 시속 100km까지 5.2초 만에 돌파한다. 달리는 과정에서 오차는 없다. 운전자가 원하는 출력을 정확히 예상해 네 바퀴에 힘을 실었다. 계기반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실내는 여전히 평온한 상태. 거친 아스팔트를 달리든, 쏜살같이 추월하든, 7시리즈는 기함의 자태를 잃지 않는다. 덕분에 운전자는 꼭 필요한 정보만 전달받는 함장이 되었다. 빠르게 질주해도 언제나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반응한다. 때로는 고집 세고 너무 사무적이어서 정 붙이기 힘들었던, 독일 세단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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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가 정교한 질주를 이어갈 때, 룸미러 속 콰트로포르테가 바싹 다가왔다. 마치 먹이를 집어삼키려는 백상아리처럼 떡 벌어진 그릴이 거울 속에 가득 찼다. 시승차는 최고출력 410마력을 자랑하는 콰트로포르테 S Q4. 7시리즈보다 자극적인 V6 가솔린 터보엔진이다. 콰트로포르테는 740d와 속도경쟁을 피하지 않았다. 조용하게 내달리는 7시리즈를 따라 아스팔트를 박차고 추격하기 시작했다. 드라이브모드는 이미 스포츠. 엔진은 사납게 반응했고, 차가운 알루미늄 패들시프트를 건드리면 전광석화처럼 변속했다. 어김없이 머플러 연주가 시작됐다. 우렁찬 바리톤 음색으로 시작해 날카로운 소프라노까지 이어지는 소리의 향연. 여섯 개의 실린더에서 터지는 폭발음이 아름다운 음색으로 울려 퍼진다. 환상적인 배기음은 마세라티의 상징이다. 마세라티는 별도의 사운드튜닝 부서에서 레이스카의 박력 있는 사운드를 재현한다.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연주가와 작곡가를 투입하고, 소리를 조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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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사운드에 흠뻑 취한 사이 어느새 7시리즈의 꼬리를 물고 있다. 몇 번을 다시 달려도 콰트로포르테가 한 수 위다. 하지만 90마력의 차이만큼 둘 사이가 벌어지지 않는다. 마세라티가 가솔린엔진의 활기 덕분에 고속구간에서 조금씩 앞으로 치고 나가는 정도다. 콰트로포르테가 7시리즈를 완전히 따돌리려면 아름다운 배기음 말고 다른 매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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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력을 인테리어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콰트로포르테 콕핏은 가죽과 나무가 주재였다. 시트와 대시보드는 두툼한 가죽으로 질감을 제대로 살렸고, 섬세한 바느질이 품격을 높였다. 각종 트림은 깊은 광택으로 반짝이는 우드그레인이 주를 이루었다. 시트는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의 손길이 닿았다. 감각적이면서 고급스럽다. 일단 품격 면에서는 합격점. 그렇다면 얼마나 똑똑한 장비를 품고 있을까? 콰트로포르테는 8.4인치 터치스크린을 올렸다. 더불어 애플의 카플레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 등 다양한 UI를 지원한다. 하지만 더 이상 혁신은 없다. 예를 들면 똑똑한 인포테인먼트 설계라던가, 윈드실드에 비치는 헤드업디스플레이, 다양한 정보가 쏟아지는 계기반도 없었다. 군데군데 버튼에서 정교함이 떨어졌고, 아날로그 시계는 감성을 자극하기엔 어딘가 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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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7시리즈는 호화찬란하다. 마치 7시리즈 실내에서 ‘CES’라도 열린 듯 온갖 디스플레이와 터치식 버튼이 우리를 자극했다. 대시보드 상단에는 8.8인치 터치스크린이 올라가고, 이제는 복잡한 i드라이브 대신 손가락 터치에도 반응한다. 헤드업디스플레이는 더 넓고 깔끔하게 변모했다. 속도뿐만 아니라 제한속도정보, 내비게이션, 라디오 주파수, 통화 목록 등 수많은 정보가 앞 유리에 쏟아진다.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극한 기술은 ‘제스처 컨트롤’이다. 이제 운전자는 어떠한 버튼도 누르지 않고 손동작만으로 조작할 수 있다. 오디오 볼륨을 줄이거나 전화를 받는 과정도 허공에 휘젓는 손동작으로 대신할 수 있다. 물론, 얼마나 실용적으로 다룰지는 운전자의 몫이다. 참고로 우리는 호기심에 몇 번 해보다가 불편해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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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를 향해 비틀어진 콕핏이 영락없는 BMW전통이다. 7시리즈는 정교하고 고급스러웠으며, 매우 똑똑한 미래형 콕핏을 제시했다. 빈틈없이 몸을 감싸는 가죽시트며,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버튼이 품질을 높였다. 뒷자리로 옮겨도 마찬가지다. 완벽하게 독립되는 상석 구조와 시트에서 허리 한번 굽히지 않고, 7시리즈의 모든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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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트로포르테와 7시리즈 둘의 만남은 감성적 매력과 이성적 매력의 충돌로 성난 불꽃이 튀었다. 우아한 콰트로포르테는 안팎으로 낭만주의다. 아름다운 디자인이 시선을 사로잡고, 고막을 때리는 명쾌한 배기사운드가 가슴을 울린다. 달리는 과정은 더 아름답다. 부드럽게 치고 오르는 엔진을 다스리며 팽팽하게 전해지는 스티어링 감각이 영락없는 스포츠카다. 콕핏에 앉으면 금세 뒷좌석을 잊게 한다. 운전기사를 둬야 한다면 차라리 뒷자리를 양보하고 내가 핸들을 잡을 것이다.

한편, 7시리즈는 운전석에 타거나 뒷좌석에 앉아도 한 없이 편안하다. 시대를 앞서는 첨단기능이 넘쳐나고, 세련미 넘치는 인테리어는 감동 그 자체다. 사소한 디자인조차 존재 이유가 있었고, 정교한 설계를 몸소 체감할 수 있다. 7시리즈는 달리는 과정마저 이성적이다. 마치 치밀하게 구성된 소프트웨어를 다루듯, 운전자가 명령하면 풍요롭게 가속하고,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자로 잰 듯이 코너를 파고들며 또 돌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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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 기함의 만남에서 점수를 매겨가며 승패를 나눌 생각은 없다. 한쪽은 뼛속까지 낭만파, 다른 한쪽은 도로 위의 수퍼컴퓨터처럼 냉철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으로 돌아가면 7시리즈 손을 들어줬을 것이다. 아무래도 7시리즈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결국 나는 BMW 키를 손에 쥐었다. 여러모로 안전한 선택이라 믿었다. 그런데 콰트로포르테가 마성의 사운드를 연주하며 먼저 사라진다. 나는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감성이냐, 이성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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