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흡기엔진,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터보, 수퍼차저를 품거나 전기모터를 이용하는 하이브리드, 혹은 전기차.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자연흡기를 고집하는 이들에 대한 오마주

자동차시장에서 다운사이징이 더는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자연흡기엔진을 올린 신차가 등장했을 때 관심이 가는 세상이 됐다. 아, 물론 자연흡기엔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해당 하겠지만.

오늘 우리는 2, 4, 6, 8기통 자연흡기엔진을 모았다. 점점 사라져가는 자연흡기엔진에 대한 존경과 동시에 실린더 개수에 따른 엔진 특성을 살펴보고자 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2기통. 전세계를 샅샅이 뒤져보면 두 개의 실린더를 올린 자동차가 분명 있다. 대표적인 자동차가 피아트 500. 물론, 국내에도 피아트 가 정식으로 들어오긴 하지만 4기통만 한국땅을 밟는다. 그래서 2기통을 제외할까 생각했지만, 모터사이클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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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실린더는 각각 650cc. rpm을 제법 높게 가져가며 달리면, 자동차 이상 기름을 먹어댄다

사실, 모터사이클은 다운사이징과 큰 연관성이 없다. 터보나 수퍼 차저엔진을 올린 모델은 구경도 못해봤다. 과거에는 2행정 엔진으로 비슷한 배기량보다 센 출력을 내기도 했었지만,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더이상 2행정 엔진은 트랙용 모델이 아니면 생산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터사이클도 점점 다운사이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지 수퍼차저를 올린 양산형 모델과 터보를 품은 컨셉트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는 기술의 발전과도 무관하지 않다. 예전 터보엔진은 배기가스가 원활하게 뿜어져 나와야 본격적으로 공기를 압축할 수 있었다. 때문에 터보랙이 심했고, rpm이 올라가면 갑자기 큰. 힘을 쏟아냈다. 상대적으로 무겁고 네 개의 바퀴를 달았던 자동차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모터사이클은 다르다.  무게가 가볍고, 뒷바퀴(그것도 하나)에 큰 힘이 순식간에 전해지는 순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하지만, 지금은 기술 발전으로 터보랙이 줄어들어 극단적으로 힘을 뿜어내는 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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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2 엔진. 실린더 각도는 75도. 옆에서 보고 있자니 선명하게 드러나는 ‘V’. 간만에 다리를 힘껏 들어올려 수퍼두크에 올라앉았다. 두툼한 장갑으로 스타트버튼을 누르자 멋진 배기음이 터져 나온다. 사타구니 깊숙이 밀려 들어오는 떨림. 자동차가 이런 떨림을 전해온다면 ‘똥차’ 소리를 들어도 모자랄 터.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다르다. 오히려, 진동이 적으면 감성을 잃게 된다. 물론, 조용한 스쿠터나 6기통 엔진을 올린 모터사이클은 이렇지 않다. 그렇다, 이건 일부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감성을 깨우는 힘.

왼발을 이용해 기어를 밟아 출발준비를 마쳤다. 클러치레버를 조금씩 풀자 기어와 엔진이 만나기 시작한다. 1.3리터 배기량은 흔히 말하는 반클러치 상태에서도 미끄러지듯 아스팔트를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큰 덩치에 비해 쉽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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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좀 쥐어짠다는 엘리스도 모터사이클에는 안된다

드로틀을 비틀면 즉각 반응하는 엔진은 심장 고동까지 조절하는 신기한 능력을 보여준다. 바람을 가르는 모세의 기적은 서비스다

드로틀을 비틀면 즉각 반응하는 엔진은, 심장 고동까지 조절하는 마술을 보여준다. 굳이 rpm을 높게 쓸 필요도 없다. 두툼한 토크는 속도를 쉽게 올렸고, 한가롭게 떠다니는 바람은 순식간에 가슴을 때리기 시작했다. 계기반에 표시된 분당회전수는 무려 1만2천rpm. 그런데, 2천500rpm에서 대부분의 토크를 쏟아내는 이 녀석의 본능을 깨우기 위해서는 뇌에 주름을 펴야만 가능할 것 같다. 6천500rpm에 서 최대토크가 터지고, 8천870rpm에서 최고출력이 나온다. 괄약근 이 한계에 다다르지 않는 이상, 1만rpm은 그냥 숫자일 뿐이다. 그렇다, 범접할 수 없는 꿈의 영역이다. 180마력의 최고출력은 189킬로그램의 무게를 감당한다. 1마력당 1.89킬로그램만 커버하는 셈. 손목을 비트는 것만으로 앞바퀴를 아스팔트에서 쉽게 떨어뜨리며 모세의 기적처럼 바람을 가른다. 고막을 때리는 사운드와 함께 기어를 올리면, 또 다른 연주를 이어가며 두 개의 실린더는 바쁘게 움직인다. 굽잇길을 송사리처럼 빠르고 매끄럽게 휘저으며, 높다란 가드레일에 부딪혀 증폭되는 사운드를 느끼던 중, 사이드미러에 봄을 알리는 샛노란 녀석이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산길을 제 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니는, 현존하는 4기통 자연흡기엔진의 최고봉. 엘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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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차는 4기통 자연흡기엔진이 제법 많다. 아반떼, K3, 쏘나타, SM6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딱히 매력 있는 엔진은 아니다. 그냥 차체에 어울리는, 고만고만한 성능을 내는…. 그런데, 그 녀석들을 제외하고 나니 생각나는 차가 없었다. 수입차는 디젤엔진이 대부분 이었고, 가솔린엔진은 다운사이징을 받아들여 터보차저를 한두 개씩 끼고 있었다.

로터스는 토요타 엔진을 가져와 엘리스를 위해 그들만의 열정을 불어넣어 특별한 엔진으로 바꾸었다. 엑시지나 에보라도 마찬가지. 1.6리터 자연흡기엔진이 뭐 별거 있겠느냐마는, 평범한 엔진을 받아들인 브랜드가 로터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출력을 올리는 대신, 무게를 줄이는데 열을 올리는 브랜드. 가벼운 차체, 민첩한 운동성능,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순수 스포츠카 브랜드다.

기어레버를 움직이고 클러치와 가속페달에 진군을 명령하면 소음은 사운드로 바뀐다. 앞쪽이 아닌 뒤에서 생생하게 들려온다

다리를 먼저 넣어야 할지, 엉덩이를 먼저 넣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엘리스. 무심코 상체부터 넣었다가는 그대로 후진해야 하는 기이한 경험을 해야한다. 실내는 이렇다 할 기능도 없다. 소니 오디오가 달려있고, 차디찬 금속재질의 기어레버가 전부다. 도어트림 옆에 스위치를 누르면 윈도가 내려가는 게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엘리스의 진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4기통 자연흡기엔진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소리는, 앞쪽이 아닌 운전석 뒤에서 생생하게 들려온다. 아이들링 상태에서는 분명 소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기어레버를 움직여 진군할 것을 명령하면 소음은 사운드로 바뀐다. 야성미를 뽐내며 회전하는 네 개의 실린더는 분당회전수가 오를수록 고막을 자극한다. 코너를 만나면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게 당연하건만, 이 차는 핸들링 귀신으로 소문난 엘리스다.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되면, 밟고 있던 가속페달에서 아주 조금만 힘을 빼고 핸들을 돌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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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레버, 윈도스위치, 소니오디오, 애프터마켓용 내비게이션, 공조기가 인테리어의 전부다

전동식이든 유압식이든 파워 스티어링은 엘리스에게 사치. 무거운 핸들은 정교하게 라인을 그려나가게 해주는 일등공신이다.

5천rpm.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된다. 4기통 자연흡기엔진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사운드와 회전질감은 엘리스가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4마력의 최고출력이 우습게 보인다고? 하긴, 현대차 아반떼 1.6리터 엔진도 132마력이다. 하지만, 무게는 866킬로그램으로 아반떼보다 약 400킬로그램 가볍다. 덕분에 0→시속 100km까지는 6.5초. 운전석에 오를 땐, 구시렁거리다가 막상 내릴 때가 되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엘리스. 이름까지 예쁘다.

4기통은 호들갑스럽다며 6기통 맥시마가 유혹한다. 수입차는 6기통 가솔린엔진이 대부분이었지만, 4기통 터보엔진으로 바뀌면서 얼마 남지 않은 보석이 되어버렸다. 4기통보다 6기통 엔진의 진동이 적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그럴까? 기통수가 많으면 왜 조용해지고 회전질감이 좋아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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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엔진은 흡입, 압축, 폭발, 배기의 4행정을 완성하기 위해 피스톤이 두 번 왕복운동을 한다. 흡입할 때에는 피스톤이 내려가고, 올라오며 압축을 한다. 거기에 폭발을 일으키며 다시 내려가고, 올라 오면서 배기가스를 토하는 절차다. 이렇게 4행정이 완료되면 커넥팅 로드에 맞물린 크랭크샤프트는 2회전(720도)하게 된다. 분당회전수가 800이라는 건 크랭크샤프트가 800번 회전하고, 실린더가 400번 폭발한다는 소리다. 피스톤이 1회 왕복하면 360도(한 바퀴) 크랭크샤프트를 돌리게 된다는 거다.

힘은 4행정 중,’폭발’이 일어날 때. 얻는다. 4기통 엔진은 한 번 폭발로 크랭크샤프트를 180도 회전시킨다. 네 개의 실린더가 폭발행정을 끝마치면 720도(두 바퀴)를 돌린다는 소리다. 4×180 = 720.

6기통 엔진은 실린더가 두 개 늘어난 만큼 180도가 아닌 120도만 돌린다. 네 명이 하는 일을 여섯 명이 하게 되니 일의 양을 줄일 수 있게 된 것. 그만큼 폭발력을 줄일 수 있어 정숙해지고, 여러 개가 일을 하다 보니 많은 힘을 낼 수도 있다. 6×120 = 720. 8기통은 90도 씩만 돌리면 된다. 실린더가 많을수록 엔진이 조용하고 힘이 센 기본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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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은 단 하나. 자연흡기엔진이라는 점

분당회전수가 오를수록 깔끔하고 또렷하게 느껴지는 회전질감은 다운사이징으로 뒤덮인 현재 상황에서는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맥시마의 아이들링, 진동 모두 최고다. 물론, 엘리스에서 내린 직후라 보너스 점수까지 후하게 준 건 사실이다. 특별할 거 없는 실내도 엘리스 후광으로 인해 첨단장비를 가득 품은 듯하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도 한없이 부드러운 회전질감은 6기통의 특권. 어느 영역에서도 고른 토크로 부드럽고 강하게 치고 나간다. 닛산의 무기인 CVT도 한몫한다. 보통 무단기어는 rpm을 고정시킨 채 속도를 이어나가지만, X트로닉 CVT는 자동기어 같이 분당회전수가 변하며 가속한다. V6 3.5리터 엔진은 303마력의 출력을 낸다. 분당회전수가 오를수록 깔끔하고 또렷하게 느껴지는 회전질감은 다운사이징으로 뒤덮인 현재 상황에서는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터보 엔진이 발달해 자연흡기 느낌을 전해준다지만, 순수하게 대기에서 빨아들여 실린더로 공급하는 자연흡기엔진을 대체할 수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호들갑스럽지 않은 선비 같은 존재가 바로 6기통이다. 그렇게 6기통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을 때 깔끔한 보타이와 ‘SS’라는 배지를 달고 으르렁거리는 V8 카마로 SS가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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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마력이 넘는 유럽산 V8 자연흡기를 찾기는 불가능해졌다

“븨 에잇! 븨 에잇(V8! V8!)” 2015년 떠들썩했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도로>속 대사다. 이 장면 하나로 미국인들이 얼마나 V8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비록 악당이 외치는 구호였지만, 사실 미국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V8을 사랑했다.

그들은 넓은 땅덩어리를 여유롭게 다닐 엔진과 오디오시스템만 있으면 됐다. 기름값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싸니까. 앞서 언급했듯 이 6기통은 실린더가 폭발할 때마다 크랭크샤프트를 120도 돌리지만, 8기통은 90도만 돌리면 된다. 잔잔한 폭발이 연속으로 터지며 생기는 독특한 배기음. 입맛에 따라 조용하게, 화끈하게 사운드를 조절 할 수도 있다. 카마로는 머스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머슬카. 사실, 예전에 비하면 V8 엔진의 사운드가 퇴색돼버린 게 사실이지만, 카마로 SS에 올라간 엔진은 OHV(Over Head Valve) 방식이다. 이는 매우 오래된 기술이다. 요즘 차에는 DOHC가 대부분인 상황이라 신기할 정도다. OHV는 푸시로드로 불리는 긴 막대를 이용해 로커암을 들어 올려 밸브를 여닫는다. 그래서 푸시로드 엔진이라고도 한다. 장점으로는 실린더 위에 캠샤프트가 없어 부피를 줄일 수 있다는 점과 부품이 단순해 무게가 가볍다는 게 대표적이다. 단점은 고회전에 불리해 분당회전수를 올리는 데에 한계가 있고 DOHC 방식보다 연료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들은 죽어라 달리는 것보다 독특한 엔진음색과 저속 토크를 중요시하기에 OHV를 사랑한다. 뭐 그렇다고 V8 6.2리터 엔진이 못 달리는 건 절대 아니다.

스타트버튼을 누르자 전기신호를 받은 스타트모터가 플라이휠을 돌린다. 플라이휠과 연결된 크랭크샤프트가 회전하며 여덟 개의 피 스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시동이 걸리기 직전 크랭킹 소리부터 설레게하는 V8.

육중한 토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사운드는 V8 엔진이 사랑받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속도에 상관없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븨 에잇!”을 외치고 있다

걸쭉한 배기음을 토해냈다는 건, 새로운 엔진을 맛보게 해 줄 준비가 끝났음을 알린다. 453마력, 최대토크 62.9kg·m의 힘을 뒷바퀴에 보낸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휠 스핀은 당연하다. 물론, 전자장비가 타이어값을 아껴주기 위해 등장하지만 돈 좀 있다면 번아웃 기능이 있으니 넓은 공터에서 맘껏 태워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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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자연흡기엔진의 순수한 질주

2, 4, 6, 8기통과 함께한 하루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다. 점점 사라져가는 자연흡기엔진. 터보를 얹고 자연흡기 느낌이라고 우기는 엔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당분간은, 어쩌면 우리가 죽기 전까지는 자연흡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잠시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한 그 날의 기억이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