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크루즈, “너 아반떼, 서킷으로 좀 나와!”

쉐보레 크루즈가 최강의 경쟁자 아반떼를 서킷으로 불러냈다. 자신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 다른 말로 마음이 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크루즈 월간 판매는 2천 대 내외 수준. 쉐보레가 애초 설정한 목표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군산공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월 4천 대는 판매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쉐보레가 신형 크루즈의 국내 생산을 결정한 건, 끊임 없이 나오는 군산공장 철수 보도를 차단하기 위해서. 그럼에도 실질적인 효과는 없어, 이대로는 면이 서지 않는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애끓는 크루즈로서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순간이다. 출시 초반 가격 논란이 불거졌고, 품질관리 측면에서 생산을 미뤘던 것이 악재로 작용한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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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크루즈가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건, 본연의 상품성. 특히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서는 자동차 본질에 크루즈가 더 가깝다는 걸 적극 강조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서킷으로 아반떼를 초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6리터 GDI 엔진을 얹은 아반떼와 1.4리터 가솔린터보를 올린 크루즈의 대결은 결말이 이미 정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후발주자는 분명한 비교우위를 점하고 싶은 게 보통의 심리일 테고.

먼저 아반떼에 올랐다. 아반떼는 ‘국민 준중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녀석. 세대를 거듭할수록 상품성이 높아져, 글로벌시장, 특히 북미에서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가격 대비 가치가 높다고 인정받는 대표적인 차다. 국내 소비자 인식도 대부분 그렇다. 더욱이 아반떼의 주요타깃인 20대 후반 30대 초중반 소비자의 경우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사이에 아반떼와 시작을 함께 했던 터라, 아반떼와 같이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대. 그래서 아반떼는 국민적 지지도가 높다. 월평균 8천 대는 거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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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대중성이 독이 된 것일까? 서킷에서의 움직임은 다소 촐랑댄다는 느낌이다. 연속코너에서 차를 이리저리 돌리면 몸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으며, 브레이크를 밟는 발끝의 감각은 가볍기 짝이 없었다. 아반떼가 과거보다 역동적으로 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의 평균적인 소비자를 만족하게 해야 하는 차라는 점에서, 스포츠 세팅보다는 승차감을 우선하는 세팅이 먼저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아반떼에는 호평 가득한 아반떼 스포츠도 있으니, 굳이 볼륨 모델을 단단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다음은 크루즈. 아반떼와 같은 마음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터보엔진이 내는 153마력의 넉넉한 힘이 차를 거뜬히 앞으로 밀어낸다. 게다가 이전 세대보다 100킬로그램 이상 가벼워진 덕에 가속력은 더 와닿는다. 젠3 오토 트랜스미션과의 궁합도 나쁘지 않다. 전반적으로 경쾌하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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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 코너를 하나씩 공략하면서 크루즈 진가는 더 드러난다. 아반떼가 좌우로 출렁거리는 느낌이 강했다면, 크루즈는 그보다는 자세를 제대로 잡아내며 돌아나간다. 브레이크도 역시 묵직해 큰 코너에 진입하기 위한 급제동도 꽤 안정적이다. 실제로 눈 앞에 가고 있는 차를 봐도, 아반떼로 운전했을 때보다 크루즈가 좌우 흔들림이 적었다. 두 차 모두 앞 맥퍼슨 스트럿을, 뒤 토션빔을 넣어 조건이 같다고 가정했을 때, 크루즈의 하체 세팅이 좀더 스포츠주행에 적합하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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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 주행을 마친 후, 슬라럼과 고속 차선 변경을 테스트하는 코스로 향했다. 크루즈와 아반떼의 스포츠주행을 조금 더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마련된 것. 한 줄로 늘어선 콘을 요리조리 통과해야 하는 슬라럼 코스는 차의 안정성을 가늠할 수 있다. 두 차를 모두 경험해 본 결과, 서킷에서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다른 참가자들도 똑같은 말을 했다. “크루즈가 낫네!’ 또, 아반떼는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이 크루즈에 비해 가볍다. 스포츠모드로 바꿔줘야만 크루즈의 핸들과 비슷한 무게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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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는 같은 준중형 차급에서 경쟁하고 있지만, 지향점은 조금 다르다. 크루즈가 월등히 좋은 차도, 아반떼가 처참히 나쁜 차도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달리는 일에 자신이 있는 크루즈는 아반떼가 쌓아놓은 공고한 아성이 부럽기만 하다. 잘 만든 차가 많이 팔리지 않으니 속상함을 어디에 하소연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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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가 가진 기본기는 좋다.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자동차의 기본기는 시장성패를 가늠짓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크루즈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쉐보레도 그 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크루즈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올 하반기 추가할 디젤 버전도 그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