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고 붙어보자, 기아 스팅어

자동차메이커가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에 도전하는 일에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차 본연의 만듦새는 물론이고, 경쟁브랜드 및 경쟁제품 파악 등 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메이커가 가진 경험치. 이미 가지고 있는 자질과 자원, 또 기술과 그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인력이 풍부하다면 일은 조금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 기아가 바로 이런 조건에 있는 회사다.

기아가 난생처음 만들어 보는 스팅어에 왠지 모를 기대를 걸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 201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컨셉트카 형태로 첫선을 보였던 스팅어는, 빼어난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은 동시에, 기아가 그란투리스모 장르에 첫 발을 내딛는 모델로 한껏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6년 만에 양산차가 등장했는데, 컨셉트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화려한 디자인이 세간의 눈길을 다시 한 번 사로 잡았다. 그로부터 수 개월 뒤에야 한국에 정식으로 나온 스팅어를 접할 수 있었다.

첫 만남부터 느껴왔던 것이지만, 디자인이 훌륭하다. 디자인 기아를 외치며 체질을 개선해보겠다던, 그렇게 촌스러울 수 없었던 기아는 이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체질은 K5가 개선한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기아의 피터 슈라이어가, 현대기아차그룹의 피터 슈라이어가 되고 나서, K3나 니로 같은 조금은 요상한 것도 가끔 탄생하곤 했다. 그래도 형제 브랜드인 현대와 차별되는 정체성을 완전히 정립한 것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유럽디자인센터가 그려낸 스팅어는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스포트백 스타일로, 그야말로 유럽감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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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옆에서 봤을 때 스팅어의 비율이 당당하다. 그란투리스모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는데, 제대로 살려냈다. 독창적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우긴 어려워도, 완성도가 높다. 창의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한계 속에서 그려낸 최선의 결과다. 다만, 아쉬운 점은 꽁무니다. 다른 브랜드가 엿보인다. 스팅어 레터링까지 판박이다. 이렇게 그려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도 싶은데, 대답은 뻔하다. 디자인은 유행이라는 말.

그래도 차에 오를 생각을 하니 조금씩 흥분감이 고조됐다. 워낙 기대를 걸었던 차이기도 하지만, 기아가 천천히 알려온 개발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차들 대부분 그런 과정을 겪는다고 해도, 국산차 회사가 거의 처음으로 도전하는 장르라는 점에서 관심이 갔다. 그러면서도 들었던 짤막한 생각은, ‘스팅어는 기대를 확신으로 바꿔줄 수 있을 차일까?’라는 의문.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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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버튼을 누르면 곧 만나게 되는 3.3리터 가솔린터보의 묵직한 엔진음은 더없이 좋았다. 원래 가지고 있던 소리에 ‘조각’까지 더했다. 소리가 주행감성에 꽤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의미있는 결과로 보여진다. 단순히 달리는 일에만 기아가 신경을 쓴 건 아니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아마도 기아에서 주행감성을 얘기할 수 있는 첫 번째 모델이 스팅어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만들어낼 차에도 비슷한 기술이 들어 갈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예상돼 더 좋았다. D컷 스티어링은 치밀하게 손에 들어왔다. 돌리는 데 걸리는 일 없이 의지대로 차를 움직인다. 민첩하고, 간결하다. 시트에 착 달라붙는 느낌도 괜찮다. 여러모로 운전자를 배려한 디자인과 소재 구성이다. 프리미엄이라는 수사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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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페달을 밟음과 동시에 풍성한 성능이 느껴진다. 최고출력 370마력, 최대토크 52.0kg・m의 넉넉한 힘이 발끝에서 엉덩이로 전해진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에도 긴장감이 서릴 법도 하지만, 스팅어에겐 그런 일은 없다. 그란투리스모를 모는 즐거움만 만끽하면 된다. 정말 편안하게 속도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운전할 수 있었다. 뒷바퀴굴림 전용 기어는 엔진의 힘을 여유롭게 사용했고, 하체는 안정적으로 차를 떠받쳤다. 스티어는 옵션으로 현대차그룹이 자랑하는 네바퀴굴림시스템을 얹을 수도 있지만, 뒷바퀴굴림만으로도 쌩쌩 잘 달린다. 성능적인 부분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기아의 설명. 아무래도 네바퀴가 모두 굴러가면 주행안정성은 높아지나, 재미는 좀 떨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스팅어는 정말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0→시속 100km까지 불과 4.9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기아의 주장을 면밀히 따져보지는 않았어도, 감각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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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팅어가 태어난 신규 뒷바퀴굴림 플랫폼은, 그란투리스모인 스팅어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스포츠세단으로 개발되고 있는 제네시스 G70도 같은 것을 쓰는데, 활용법은 장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스팅어의 경우 370마력의 3.3리터 터보엔진을 얹으면서 엔진 위치를 뒤쪽으로 조금 밀었다. 성능 좋은 차들에게 공식처럼 따라붙는 ‘저중심 설계’다. 시트 또한 최대한 아래로 내려, 공간과 시야를 효과적으로 확보했다. 지붕이 지나치게 낮은 것 아니냐고 늘 불평하는 ‘앉은 키 서장훈’인 사람도 차에 푹 파묻혀 운전을 즐기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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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편의장비는, 국산차의 프리미엄 모델 답게 굉장히, 또 대단할 정도로 호사스럽다. 현대 과학기술의 혜택이 몽땅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 브랜드인 현대와 기아가 전세계 소비자에게 칭찬받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렴하게 구입 했는데, 가치는 높다. 물론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호의 가득하게 평가해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메이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헤드업디스플레이, 어라운드 뷰 모니터, 체형에 따라 운전석이 바뀌는 익스텐션 시트, 세이프티 파워 트렁크, 휴대전화 무선충전시스템, 렉시콘 프리미엄 사운드, 여기에 자율주행으로 나아가는 통합시스템 드라이브 와이즈(고속도로 주행보조, 전방충돌경고, 차로이탈경고 등으로 구성)가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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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두를 넣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실제 시승차로 기아가 준비한 차는 모든 편의장비가 들어간 최상위 트림. 가격은 4천880만 원으로, 드라이브 와이즈와 와이드 선루프까지 더하면 5천110만 원까지 올라간다. 다행스럽게 앞서 밝혔듯 시승차에서 네바퀴굴림시스템은 빠졌다. 만약에 욕심을 부리고 싶다면 5천110만 원에서 230만 원(다른 트림 250만 원)을 추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스팅어를 완전히 즐기기 위해서 5천340만 원을 갖고 있어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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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기서 스팅어의 딜레마가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는 제네시스라는 럭셔리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으로 고급 제품군 나름의 대우에 나섰지만, 기아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여러 속사정이 있다), 그래서 이 가격이 대중브랜드로 합당한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질 게 뻔하다. 스팅어를 시작으로 기아차가 구축할 플래그십 뒷바퀴굴림 세단 ‘LH’, 플래그십 SUV ‘ON’ 등의 고급차 라인업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제 아무리 고급화를 한다고 해도 브랜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기아는 스스로 스팅어를 볼륨모델이 아닌, 니치마켓을 겨냥한 차종으로 설정했다. 월 1천 대의 소박한 판매목표가 이를 증명(물론 계약 개시 15일 만에 2천700대 계약을 달성했다는 자랑을 곁들었다)한다. 이는 점차 약해지고 있는 중형세단 세그먼트의 집중력이 더 떨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똑같은 중형세단이지만 르노삼성 SM6가 중형 위의 중형세단이라는 기치로, 시장을 평정했다는 걸 배웠다면 어땠을까? 그란투리스모도, 스포츠세단도 좋은데, 새로운 개념의 중형세단이라는 점도 동시에 강조할 순 없었나. 본인들의 정한 틀 안에 스팅어를 억지로 끼어맞춘 느낌이 들었다.

어찌되었건, 스팅어의 기본적인 상품성은 굉장히 뛰어나다. 완벽한 것은 아니어도, 완벽에 점점 가까워 지는 느낌이다. 획일화 된 국내 자동차시장의 유리천장을 깨어줄 것으로 기대가 큰데, 어떻게 시장에 녹아들 것인지 아직은 미지수다. 소비자는 예측할 수 없기에, 그걸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