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를 걸친 디스커버리

터프가이 디스커버리가 도시 깍쟁이가 됐다고 한탄하는 당신. 과연 그 소문이 사실일까? 직접 확인에 나섰다

시간은 흐르고, 유행은 변한다. 고대 로마나 칭기스칸의 몽골처럼 라이벌 없이 당대를 풍미하던 존재들은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며 소멸했다. 전세계 만인들의 폰이었던 노키아, 필름과 아날로그 카메라의 아이콘이었던 코닥, 코니카 등도 안타깝지만 추억으로 전락했다.

독보적 존재가 영유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시대를 앞서는 도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동차라고 다르지 않다. 시대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모델일수록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조금만 방심하면 경쟁자에게 추월당하고, 시장에서 외면받는다. 그래서 더더욱 강단과 결기, 도전이 필요하다.

신형 디스커버리가 등장했다. 디스커버리는 옛날부터 스타일의 아이콘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28년 간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아우르며 글로벌 대형 팬덤을 거느렸다. 랜드로버는 시대를 이끌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신형을 재해석했다. 아이콘의 정점에 선 모델의 영광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이들은 보기좋게 돌아왔다.

컨테이너박스 같았던 디스커버리 스타일은 호불호가 극명했다. 물론 디자인은 취향의 문제다. 신형 디스커버리 디자인은 엄청나게 멋있게 변했다. 크고 두툼한 엉덩이와 작고 날카로운 테일램프, 한쪽으로 치우친 번호판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 부분은 옛날부터 디스커버리의 매력포인트. 독특한 디자인에 대한 판단은 개인 취향의 문제다. 고유의 박스디자인을 트렌디하게 재해석해 매력을 키웠고 이번에도 대성공. 물론 사람들은 구형 디스커버리의 영웅적 실용성에 찬사를 보냈었다. 이는 박스카 디자인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공기저항 때문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비효율성 또한 인정해야 한다.

신형 디스커버리는 공기역학적으로 진일보했다. 유연하게 옆을 타고 흐르는 기류가 뒤에서 부드럽고 빠르게 갈라져 사라지는 디자인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공기저항을 줄이고 연비를 높인 신형은 랜드로버 라인업 중심에 포진했다. 레인지로버와 디스커버리 스포츠 사이의 중심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효율성을 키운 신형 디스커버리. 하지만 이들의 아이덴티티인 계단식 루프라인의 박스 스타일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완존한다.

 정신 없고 시끄럽다는 디젤 편견을 버리자. 이 엔진은 정숙하고 강력한 V6 디젤이니까

정신 없고 시끄럽다는 디젤 편견을 버리자. 이 엔진은 정숙하고 강력한 V6 디젤이니까

고요한 엔진을 흔들어 깨운다. V6 디젤은 부드러우면서도 정숙했다. 도로에 넘쳐나는 4기통 디젤들과는 회전질감의 차원이 달랐다. 넉넉하고 우아하게 반응하고 소리냈다. 5미터에 육박하는 커다란 덩치는 여전히 묵직했지만, 구형에 비하면 새털처럼 가볍고 반응이 영특했다. 에어서스펜션은 운동성능과 승차감을 절묘하게 저울질했다. 뭉툭하지 않지만, 날카롭지도 않았던 이전 스티어링 반응과 완전히 달랐다. 정확하고 믿음직하게 화답했다. 신형 플랫폼과 거의 새로 만든 에어서스펜션은 큰 차체가 주는 묵직함만이 아니라 스포티한 기질까지 더했다. 구형과 젊고 스포티한 디스커버리 스포츠 사이의 지점을 제대로 겨냥했다. 장거리 여행과 크로스컨트리의 안락함을 의도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구형과 신형의 섀시는 감과 귤만큼 차이가 크다. 레인지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 뼈대인 D7 플랫폼에 알루미늄을 과감히 넣어 만든 신형 디스커버리는, 덕분에 구형보다 약 450킬로그램 이상 가벼워졌다. 그럼에도 더 넓고 길어져 우람해졌으며, 높이는 한껏 낮춰 안정감을 챙겼다. 앞쪽 더블위시본 서스펜션은 역동성, 뒤쪽 멀티링크는 종횡 강성을 끌어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결론적으로 구형보다 안락하면서 동시에 역동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디스커버리는 상남자 기질 다분한, 묵직하고 편안한 패밀리 SUV다. 개발자들 또한 스포티함에 일부러 큰 힘을 쓰지는 않았다. 랩타임이 중요한 모델이 아님을 너무 잘 아는 그들은, 신형을 개발하면서 뉘르부르크링에 올리지 않았다. 그보다 안락한 승차감에 집중했다. 온로드와 오프로드 모두에서의 자신감과 폭넓은 능력 발휘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실내는 흠잡을 데 없었다. 아니, 과할 정도로 훌륭했다. 곳곳에 레인지로버의 흔적이 드러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한결같이 넓고 호화로운 실내에는 그 어디에도 저렴하고 딱딱한 흔적은 없다. 최대한 서스펜션을 낮췄음에도 여전히 높은 운전석에 올랐다. 세상 모든 SUV들의 루프를 내려다보며 달리는 맛은 랜드로버가 아니면 불가능하리라. 물론, 트럭과 버스는 논외다.

가느다란 스티어링으로 거인을 다루는 독특한 맛과 재미. 데칼코마니 대칭 디자인도 랜드로버 전매특허

가느다란 스티어링으로 거인을 다루는 독특한 맛과 재미. 데칼코마니 대칭 디자인도 랜드로버 전매특허

아기바구니처럼 폭신하고 안락한 시트에 앉아 팔을 팔걸이에 걸쳤다. 이처럼 넉넉하고 편안한 운전석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스티어링은 묘하게 고혹적이었다. 엄지에 딱 닿는 크루즈컨트롤과 인포테인먼트 조절버튼은 깔끔한 데칼코마니 디자인. 가느다란 스티어링 휠을 잡고 커다란 차체를 흔들어대는 맛도 이 녀석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다.

오프로드 능력자의 강력한 무기고

오프로드 능력자의 강력한 무기고

신형 실내는 당황스러울 만큼 윤택했다. 구형의 뭉툭했던 공조장치 다이얼은 알루미늄으로 테두리를 감싸고 정보를 원 가운데에 보여주는 보석 같은 다이얼로 바뀌었다. 드라이브모드 앞에 몰아뒀던 지형반응버튼들 또한 깔끔한 다이얼로 진화했다. 이들은 모두 윤기 나는 피아노블랙 마감재의 바다 위에 떠 있었다. 그 뒤로 큼지막한 팔걸이와 냉장고로도 쓸 수 있는 깊고 넓은 수납공간이 있다. 그러고 보니 곳곳에 수납공간들로 넘쳐났다. 공조장치 패널 안쪽에도 마법의 공간이 존재할 정도였다.

계기반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했다. 두 개의 타코미터와 속도계 사이에 커다란 정보창으로 수많은 정보를 보여줬다. 다루기 쉽고 보기 좋은 10인치 터치스크린은 10점 만점에 10점짜리 아이템. 상큼한 디스플레이는 예리한 반응과 직관적 기능을 뽐냈다.

 디스커버리 침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편히 잠드소서~

디스커버리 침실에 오신 걸환영합니다. 편히 잠드소서~

시트는 2-3-2의 3열 구조. 2열과 3열은 전동버튼으로 접었다 펼 수 있어 안락한 가족차와 공간 넓은 밴 사이를 오갔다. 2, 3열시트를 접으면 2천500리터짜리 최고급 밴으로 변했고, 3열만 접어도 무려 1천230리터나 됐다. 시트를 완벽히 접으면 평평한 바닥이 드러나 훌륭한 2인 침실이 됐다. 2열 헤드룸과 레그룸은 차고 넘쳤고, 3열 시트도 180센티미터 밑이라면 충분했다. 첨단 디스커버리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2, 3열시트를 제어할 수도 있다. 이름은 인텔리전트 시트 폴드 시스템.

엔진은 2.0리터 4기통과 3.0리터 V6 디젤 두 가지. ZF 8단 자동기어박스와 호흡을 맞추며 네바퀴굴림으로 곳곳을 누빈다. 랜드로버는 디스커버리 사상 처음으로 4기통 엔진을 라인업에 보탰다. 4기통 디젤의 최대토크는 1천500rpm부터 50.8kgm를 토한다. V6의 61.2kgm@1천750rpm과 견주어도 만만한 수치가 아니다. 참고로, 이 녀석은 V6를 품고 풍성한 옵션에 마감재와 액세서리를 추가한 스페셜 버전인 퍼스트 에디션 모델.

진짜 반전매력이란 디스커버리를 두고 해야 할 말. 도시남처럼 생겼지만 타잔처럼 움직인다

진짜 반전매력이란 디스커버리를 두고 해야 할 말. 도시남처럼 생겼지만 타잔처럼 움직인다

부드럽고 매끈한 디자인만 보고 터프가이가 도시남으로 변절했다는 오해는 말자. 신형 디스커버리는 여전히 강력한 오프로더. 그 이유는 차고 넘친다. 느린 속도의 오프로드용 크루즈컨트롤이 운전자에게 스티어링만 맡기는 전지형 돌파 컨트롤, 지형반응시스템 2, 네바퀴에 이상적으로 토크를 나눠 쓰는 네바퀴굴림과 ZF 8단 자동기어박스 등이 그것이다.

녀석과 함께 오지 캠핑장으로 떠났다. 매끈한 도로 위에서 묵직하고 부드럽게 내달렸다. 시속 100km를 1천500rpm 밑으로 유지하며 진득하게 움직였다. 코스는 온전한 아스팔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갈과 바위가 만개한 진정한 오프로드가 등장했다. 주행모드를 오토에서 바위타기로 바꿨다. 다섯 가지(온로드, 눈길, 도강, 모래, 바위) 가운데 마지막 모드였다. 지형반응시스템의 두뇌가 출력과 스티어링 반응, 트랙션을 세밀하게 조율하며 자갈과 바위를 타고 넘기 시작했다. 신형 디스커버리의 초월적 오프로드 능력과 고상한 고급스러움이 묘하게 어울렸다. 트랙션컨트롤은 V6의 매끈하고 넉넉한 힘을 네 바퀴에 딱 맞게 나눠 시의적절 힘을 썼다.

에어서스펜션은 차체를 높이 띄워 알루미늄 보디를 보호하면서 거침없이 바위를 오르내렸다. 34도 접근각과 30도 이탈각은 어지간한 장애물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녀석은 이제까지 랜드로버 가운데 단연 최고. 환상적인 스티어링과 체중감량이 도드라졌고, 첨단기술이 빛을 발했다. 지형반응시스템 2는 강력한 하드웨어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매끈한 디자인과 비례해 오프로드 능력까지 줄어든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면, 그건 당신의 의지와 열정이 나약해진 것. 걱정말자. 신형 디스커버리는 구형이 하지 못한 것과 당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걸 해치울 수 있는 터프가이 능력자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