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페와 카브리오의 절묘한 만남, 그란투리스모

환상적인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한 필수품은? 해외항공권? 리조트 숙박권? 아니, 내 선택은 긴 여정 동안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들려줄 V8 마세라티였다

어느덧 내 나이 서른셋. 혈기왕성한 20대 그때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왁자지껄한 여름 밤을 보내기엔 조금 지치는 나이. 그렇다고 아이 또는 부모님과 함께 떠나기엔 조금은 이르고 아쉬운 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후로 지금까지의 과정을 곱씹어보는 시간이 절실했다. 흐르는 풍경에 고민과 잡념을 흘려보내고 싶었다. 그래도 얼마나 될 지 모를 여정 동안, 함께 해줄 자동차는 뭔가 특별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짐이 많지도, 시간이 빠듯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직접 운전하는 그 시간 동안 보고 듣고 느끼는 데 충실하고 싶었다.

많은 고민 끝에, 이탈리아산 그랜드투어러를 꼽았다. 오직 감성 가득한 V8 자연흡기엔진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마세라티였다. 마세라티 라인업 중 V8 자연흡기엔진을 품에 안은 건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 좀더 정교한 성능을 보여줄 쿠페 그란투리스모. 언제고 푸르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달리게 만들어줄 소프트톱 그란카브리오. 고민을 잊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언제 어디서 봐도, 마세라티의 실루엣에는 풍만한 볼륨과 매끈한 곡선이 넘실거렸다.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는, 유독 낮게 내려앉은 차체에 육감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더 물씬했다. 피닌파리나와 함께 빚은 외모는, 예술적이라는 표현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세상의 빛을 본 지 수년이 흘렀지만, 가치 높은 예술품이 고결한 자태를 잃지 않는 것처럼, 복잡한 도로에서든 한적한 휴양지 어디서든 지나가는 시선을 붙잡아둘 매력이 충만했다.

수수한 레이아웃의 인테리어는 오히려 번잡하지 않아 좋았다. 몸을 감싸는 폴트로나 프라우 가죽시트는 긴 여정에서도 피곤함을 잊게 해줄 만큼 포근했고, 큼지막한 가죽 스티어링 휠과 쇠뿔처럼 솟은 패들시프트를 잡으면 사람들의 불평 따위는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머리를 비우려 떠나는 여정에 복잡한 인포테인먼트시스템도 필요 없었다. 옆좌석에 작은 짐가방 하나 던져두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냉수 담은 텀블러를 컵홀더에 나란히 꽂아둔 채 길 따라 흘러가며 V8 사운드만 즐기면 그만이었다.

세상에 등장한 순서대로, 그란투리스모의 키를 먼저 쥐었다.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았다고 해도, 일단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키를 꽂고 돌리자, 고요하던 새벽 골목길이 삽시간에 4.7리터 V8 엔진의 깊은 울림소리로 가득 찼다. 웅장한 교향악단의 연주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고속도로 진입로는 이미 출근 중인 차들로 붐볐다. 노멀모드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와중에 ‘고오오오’거리며 울리는 소리는, 환상적인 연주를 위해 조용히 목청을 다듬고 있다는 준비신호. 고속도로가 좀 한산해질 무렵, 스포츠모드로 바꿨다. 곧바로 기어를 낮게 바꿔 물더니 사납게 ‘왕왕’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풀 드로틀에 세상이 요동치듯 도로에 웅장한 연주가 울려 퍼졌다. 기어레버를 수동모드에 두고 패들시프트를 튕기며 지휘할수록, 내가 움직인 경로를 따라 끝없는 메아리가 이어졌다. 이렇게 격렬하게, 그리고 신나게 달려본 게 언제였던가?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지만, 배기사운드에 취해 홀린 듯 가속페달을 밟고 스티어링 휠을 돌렸다. 스카이훅 서스펜션을 한껏 조인 스포츠모드에서도 편안한 승차감, 도로를 단단히 움켜쥔 채 흩뿌리는 460마력의 성능은, 이 차가 어디든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고성능 그랜드투어러라는 명백한 증거.

정수리가 타들어 갈 것 같은 태양열을 피해 바다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중이다

정수리가 타들어 갈 것 같은 태양열을 피해 바다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중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들이치는 바람에 어렴풋이 바다내음이 섞일 즈음, 저 멀리 푸른빛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오르자 하늘을 향해 달리는 것만 같았다. 마세라티의 고향인 지중해의 바람과 바다, 태양이 이런 느낌일까? 하늘을 향하는 동안, 이탈리아 오케스트라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잡념은 잠시 잊고, 곡조에 따라 오르내리는 이 감정을,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인적 드문 해변. 갈매기가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해변위에 도착한 그란투리스모 옆으로 그란카브리오가 나란히 섰다. 소프트톱을 고이 접어 넣는 데 걸리는 시간은 28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운전석에 앉아 그 과정을 올려다보는 내내, 그란투리스모와 함께한 설렘과 흥분을 떠올렸다. 그란투리스모가 들려준 연주는 웅장하고 때로는 비장했으며, 나를 부드럽게 감쌌다. 똑같은 V8 엔진이 만든 소리가 아무런 장애물을 거치지 않고 목덜미 가까이에서 울려 퍼질 상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전율이 일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오후 1시. 한 여름에 작열하는 태양만큼 뜨거운 게 또 뭐가 있을까? 지난날의 들끓던 사랑과 열정, 욕망? 모르겠다. 지금은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자 여기 왔고, 내 곁에는 들끓는 심장을 가진 마세라티 두 대만 있을 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곁에 끼고 한참을 달렸다. 텅 빈 해안을 가득 채운 건 배기플랩을 한껏 연 그란카브리오의 웅장한 사운드. 이따금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특별한 차를 타고 자유로운 여행을 만끽하는 자를 향한, 부러움과 시샘이 가득 담긴 시선.

관객 없는 텅 빈 무대였지만, 열정은 충만했던 연주회.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관객 없는 텅 빈 무대였지만, 열정은 충만했던 연주회.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나긋나긋한 승차감과 예리한 핸들링의 절묘한 조화로 도로를 정복하는 그란투리스모와 달리, 그란카브리오는 한결 여유로웠고 감성적이었다. 단지 바람과 하늘을, 찬란한 햇살을 가림막 없이 마주하는 것만으로 감상에 젖은 걸까? 보다 생동감 넘치는 마세라티 사운드를 듣고 있어서일까? 아니, 굴곡진 도로를 넘실거리며 타넘는 하체와 지붕 없는 차체는 한결 무른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대로 좋았다. 우리는 오픈톱 모델에 강력한 성능과 날카로운 코너링 실력을 기대하지 않았다. 매혹적인 디자인과 하늘을 가득 품은 실내, 그리고 무엇보다 7천rpm까지 힘들이지 않고 매끈하게 돌아가는 V8 엔진을 품은 그란카브리오가 선사하는 호쾌하고 장엄한 연주는, 야외홀 오케스트라가 부럽지 않을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두 대의 마세라티를 타고 떠난 휴가길. 피할 수 없는 교통체증, 한낮의 따사로운 태양, 남들의 시선 모두 마세라티와 함께하는 여정 내내 방해물이 될 수 없었다. 그저 내 추억노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소재였을 뿐. 마세라티 V8 형제의 협주곡을 감상하며 일상에서 벗어났던 시간. 잠시 풀어놨던 고삐를 다시 당긴다. 다시 한 번 내 뒤로 이탈리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아스라이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