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30가 뛰어든 해치백 전쟁

애꾸눈이 된 챔피언 폭스바겐 골프, 기회를 엿보는 푸조 308, 체면 지키기에 바쁜 볼보 V40. 그들 사이를 겁도 없이 끼어든 건 현대 i30다. i30는 냉혹한 해치백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가 줄곧 세단의 매력에 사로잡혀있지만, 사실 유럽은 해치백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고 간결한 2박스 형태. 트렁크 대신 하마 입처럼 커다란 해치게이트가 해치백의 정의다. 그렇다면 해치백의 진짜 매력은 무엇일까? 일찍부터 모터리제이션(편집자주: 자동차가 생활 속에 밀접하게 파고들어 널리 보급된 현상)이 시작된 유럽 사람들은 왜 해치백을 사랑했을까? 답은 실용성이다. 붐비는 도심에서 운전하려면 작은 차가 필요하다. 또한, 작은 차에 사람이든 짐이든 많이 실으려면 유연함을 갖춰야 했다. 해치백의 뒷좌석은 기꺼이 짐칸이 되기도 했고, 해치게이트를 열면 큰 짐을 넣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자존심에 상처 난 골프. 기회를 엿보는 308. 둘 사이는 여전히 뜨겁다

자존심에 상처 난 골프. 기회를 엿보는 308. 둘 사이는 여전히 뜨겁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해치백 사랑은 ‘골프’라는 대부를 낳았다. ‘해치백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골프. 하지만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로 자존심에 금이 갔다. 그래도 골프는 여전히 전설로 통한다. 국내에는 중고차밖에 없지만, 유럽에서는 7.5세대로 거듭나며 폭스바겐의 재기를 꿈꾼다. 한편 기회를 잡은 건 푸조 308이다. 이미 SCR(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시스템으로 배기가스 위협에서 한 발짝 물러나, 까다로운 환경기준에 완벽하게 대응했다. 사실 308은 골프의 유일한 라이벌이다. 오래도록 골프와 함께 경쟁하며 운명을 함께했고, 모터스포츠에서의 화끈한 성능을 바탕으로 확실한 운전재미를 고집했다. 볼보는 조금 달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둘보다 존재감이 없었다. 아마 둘의 오랜 명성에 기가 눌린 듯했다. 하지만 최근 볼보의 물오른 감각이 V40을 감쌌다. 밋밋한 V40에 보석 같은 헤드램프를 달았고, 실내의 감각적인 인테리어도 돋보였다. 다행히도 V40은 체면을 지킬 수 있었다. 앞선 둘보다 더 비싸 보였고, 여전히 스웨덴풍 접근 방식이 먹혀들었으며 세련된 이미지가 드라이버를 빛내주었다.

그렇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해치백은 무엇일까? 마침 i30가 ‘아이유인나’ CF로 주목을 받았다. 상큼한 두 연예인을 통해 반짝 빛나긴 했지만, 단순한 광고효과이기에 분명 시들해질 것이다. i30는 하루빨리 성능을 증명해야 한다. 라이벌로 지목한 골프 앞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지, 308보다 짜릿한 핸들링을 뽐낼 것인지, V40보다 더 고급스러운지, 쟁쟁한 글로벌 해치백과 함께 i30의 자질 검증이 필요했다.

우리가 i30를 불러들인 이유가 명확해졌다. i30가 글로벌 해치백의 수준을 따르고 있는가? 또는 향후에 발전 가능성이라도 있는지 궁금해서다. 솔직히 유럽 출신 해치백과 어깨를 나란히 겨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랑스럽다. 폐쇄적인 미디어 소통 방법이나 국내 소비자에게 얄팍한 자세로 원성을 사고 있는 현대지만, 유럽 해치백을 상대할 순수 국산 해치백이 있다는 사실은 즐거운 일이다. 우리가 탄 i30는 디젤엔진 모델. 프리미엄 트림으로 온갖 편의장비를 두르고, 내비게이션 옵션까지 갖춘 ‘풀옵션’ 사양이다. 그래서 가격은 다소 비싼 2천753만 원. 그래도 볼보에 비하면 1천만 원 가량이 싸고, 푸조 308에 비해도 300만 원 저렴하다.

다음은 신차를 살 수 없는 골프의 차례(조만간 7.5세대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 TDI 엔진을 올린 볼륨모델을 섭외했다. 볼보 V40은 150마력짜리 디젤엔진을 올린 D3다. 그 중에서도 첨단 안전장비를 두른 모멘텀 트림. 그런데 반칙은 푸조 308이 저질렀다. 180마력짜리 디젤엔진을 올린 308 GT가 불쑥 끼어 들은 것. 우리는 우월한 308 GT를 빼려 했지만, 철저히 출력 싸움을 배제하고 해치백 격전장에 풀어주기로 했다.

한데 모인 넉 대의 해치백은 하나같이 풍만한 뒤태를 뽐내며 국도를 달렸다. 처음은 골프가 선두에 나섰다. 낮은 시트포지션과 쾌적한 실내, 꼭 필요한 장비만 알뜰하게 담은 콕핏은 실용주의가 빛났다. 다소 밋밋한 디자인 때문에 지루했지만 운전자중심 설계는 오차가 없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스티어링 휠과 기어레버가 손안에 있었고, 넓은 헤드룸을 비롯해 광활한 시야가 눈 앞에 펼쳐진다. 곤욕을 치른 2.0 TDI 엔진은 여전히 발랄했다. 주문대로 출력을 왈칵 쏟아냈고 오롯이 가속으로 이어졌다. 6단 DSG는 제식훈련을 하듯 절도있게 기어를 바꿔 물었고, 기어를 내릴 때마저 경쾌한 rpm 보정이 이어졌다. 속도를 높이자 골프가 실력발휘에 나선다. 요란한 노면을 차분하게 걸러내는 승차감. 코너 앞에서 진지하게 파고드는 뚝심이 만나 숙성된 주행질감을 선사했다.

뒤따르던 308이 마냥 보고만 있질 않았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골프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고성능 기질을 꺼내 들었다. 308은 골프에 비하면 미래형 콕핏에 가깝다. 복잡한 버튼을 모조리 집어삼킨 디스플레이가 증거. 그럼에도 철저히 운전자를 부추기는 콕핏 형태였다. 예를 들면 접시만한 스티어링 휠, 언제나 운전자만 바라보는 계기반이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실제로 작은 핸들은 주차하거나 격렬하게 달릴 때조차 신통하다. 물론 끈적한 미쉐린 타이어와 스포츠 서스펜션이 한몫 거들었지만, 작은 스티어링 휠이 주는 기쁨이 선명했다. 308은 달리는 와중에 자꾸만 조커를 꺼내 들었다. 남들보다 우월한 180마력이 고속도로에서 이빨을 들어낸 것. 결국, 가속페달을 놓는 일이 허다했다. 우리는 차라리 경쾌한 핸들링에 집중하기로 했다. 308은 코너 앞에서 주저함이 없다. 일단 코너 중앙으로 머리를 쿡 찔러 넣고서 끈질기게 노면을 움켜잡는다. 바쁜 와중에도 서스펜션은 실수가 없다. 요란한 슬라럼을 가장 야무지게 정복한 해치백이다.

어이~ 볼보! 대체 힙업 운동을 얼마나 한 거야?

어이~ 볼보! 대체 힙업 운동을 얼마나 한 거야?

찰진 핸들링으로 308이 끼를 부릴 때, 볼보 V40이 우직하게 뒤따랐다. 볼보는 넷 중에 가장 근엄한 태도로 우리를 맞았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고급스러운 소재가 최신 볼보의 품격을 뒷받침했고, 푸근한 시트가 옆구리를 감싼다. 하지만 시트포지션이 너무 높고 룸미러가 너무 가깝다. 따라서 각박한 헤드룸에 머리를 가둬야 했다. 그래도 스타일 하나는 인정할 만했다. ‘토르의 망치’가 빛나는 헤드램프와 세로형 그릴, 무엇보다 바싹 추켜올린 엉덩이가 섹시한 뒤태를 장식했다. 섬세함을 따져도 역시 V40이 라이벌을 압도했다. 특히 인테리어 소재나 디스플레이가 정교하고 예쁘다.

엔진은 가장 씩씩하게 반응했다. 출발부터 툭 터져 나오는 반응속도가 넷 중에 가장 빠르다. 하지만 정작 신호등 레이스에선 뒤처졌다. 그래도 승차감은 최고다. 노면과 시트 사이에 매트리스를 끼워 넣은 듯, 유연하고 부드럽게 요철을 타고 넘었다. 그만큼 롤링도 많았다. 그래서 스티어링 휠을 함부로 돌리면 자세제어장치를 꺼내 들며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V40이 소심하게 달리는 동안, 대한민국 대표 i30가 야무지게 엔진을 돌렸다. 136마력을 발휘하는 1.6리터 U2 엔진은 수치상 출력이 가장 떨어졌다. 그래도 정숙성만큼은 흠잡을 데가 없다. 엔진소음 및 진동과의 완벽한 단절. i30 콕핏은 프리미엄 수준에 걸맞은 NVH 성능을 뽐냈다. 실내는 골프보다 진보하고 볼보만큼 고급스러웠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감싼 스티어링 휠, 수동기어처럼 짧은 기어노브가 기본에 충실했고, 플로팅 타입 디스플레이는 보기에도 다루기에도 좋았다. 더 이상 현대의 품질에 의심할 필요가 없다. 촉촉한 대시보드는 물론, 작은 버튼까지 마감이 수준급이다. 때 이른 더위에 에어컨을 최대로 틀었다.

i30는 3단계 통풍시트로 등에 밴 땀까지 식혀주었다. 어쩐지 이날, 유독 i30를 노리는 기자가 많았다. 그외 편의장비에서도 i30가 압도했다. 오토 크루즈컨트롤을 비롯해 스마트 하이빔, 열선 스티어링 휠로 격차를 벌렸고, 볼보의 전매특허인 첨단 안전장비(전방에 장애물과 보행자를 인식해 충돌이 예상되면 스스로 제동한다)조차 i30가 흉내 내고 있었다.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잘난 i30에 푹 빠졌다. 미남은 아니어도 빠지지 않는 외모가 우리를 다독였고, ‘작은차지만 넓은 실내’라는 조건도 만족스러웠다. 이제 남은 건, 오직 달리기 실력. 과연 i30는 선배벌 해치백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낼 것인가? 우리는 가능성을 꿈꾸며 i30와 꼴찌로 출발했다. 이미 선두는 308이 꿰찼고, 이어서 골프와 V40이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우리는 i30의 출력 열세를 예상하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포츠모드를 눌렀다. 액셀 반응이 당겨지고, 핸들이 무거워졌지만 왠지 소꿉장난하는 기분이 든다. 즉, i30에게 드라이브모드는 애교에 불과했다. 차라리 기어레버를 당겨 내 손에 변속을 맡기기로 했다. 다행히 7단 DCT(Dual Clutch Transmission)는 상큼한 변속을 이어갔다. 골프의 DSG와 비교하면 i30가 더 유순하다. 골프는 직결감이 살아있고, i30는 기어에 그리스를 바른 듯 더 부드러웠다. 엔진은 2.0리터급 라이벌을 상대하기엔 이미 벅차다. 그래도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았다. 정제된 사운드와 부드럽게 치솟는 회전질감 모두 합격점이다.

이제 오감을 서스펜션에 집중했다.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 구조는 308을 제외하면 모두 같은 조건. 하지만 가장 날카로운 건 오히려 308이었다. 한편 i30는 볼보를 여유 있게 제치며 코너를 물고 늘어졌다. 유연한 댐퍼와 탄탄한 스프링의 만남. 짧은 스트로크 안에서 승차감을 위한 마지막 배려가 남아있었다. 뒤쪽 멀티링크는 신의 한 수다. 코너를 향해 자신 있게 내던질 수 있는 패기. 즉, 극단적인 상황에서 노면을 잡아채는 끈기를 발휘했다. 하지만 자세제어장치가 발목을 잡았다. 조금만 더 자유를 주었다면 분명 알싸한 해치백의 유혹에 빠졌을 텐데, 너무 냉정한 자세제어장치가 i30의 일탈을 가로막았다.

비록 단 하루의 짧은 시승이었지만 승패는 모호해졌다. 하나같이 알찬 매력을 뽐냈고, 그렇다고 완벽한 해치백도 없었다. 분명 골프는 노련했다. 달리기 성능에 충실하고 합리적이며, 오래 탈수록 진한 매력이 흘러나왔다. 308은 골프보다 더 당돌하다. 차를 좋아하고 운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308을 선택할 것이다. 볼보는 누구보다 섬세하다. 언제나 푸근한 주행품질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i30는 기대 이상이다. 더이상 유럽 출신 해치백과 비교해도 무리가 없었다.

벤치마크에 성공한 i30. 앞으로가 더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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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i30는 경쟁을 즐기며 라이벌을 압도하기까지 했다. 좋은 선배가 수두룩한 만큼, i30의 성장은 비약적이다. 결국, 우리는 i30에게 최고의 점수를 주었다. 단지 태극기를 의식한 선택이 아니라, i30의 가격경쟁력과 비약적인 성장에 큰 점수를 주었다. 쟁쟁한 라이벌 앞에서 i30의 도전은 호기로웠다. 우리는 당돌한 i30에게 응원을 보내며, 언제가 골프 GTI와 겨룰, i30 N의 화끈한 데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