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거북의 등장, 혼다 CR-V

10년 전인 2007년 대한민국 수입 SUV 1위는 CR-V였다. 전세계적으로 성장세가 가파른 SUV시장에서 혼다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22년 전, 세상에 없던 SUV 한 대가 등장한다. 컴팩트 레크레이셔널 비히클, 혼다는 이를 줄여 CR-V라고 이름 붙였다. 세계최고 소형차라 칭송받는 시빅 플랫폼을 사용해 태어난 SUV의 등장이었다. 출시 후 지금까지 160여 나라에서 약 870만 대가 판매됐다. 미국에서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연속 SUV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 발을 들인 2004년부터 4년 연속 국내 수입차 전체 베스트셀링 톱3에 이름을 올렸고, 2007년에는 수입 SUV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렇게 잘 나갔던 CR-V였건만, 국산차 성능이 좋아지고, 유럽산 디젤 SUV 맹공에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그리고 디젤엔진 SUV 사이에서 가솔린엔진은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물론, 럭셔리 대형 SUV나 달리기 성능이 월등한 가솔린모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5세대로 돌아온 CR-V의 인상이 범상치 않다. 날랜 닌자 얼굴이지만 덩치는 큰, 닌자거북 같다. 테마는 직선을 강조해 역동적이면서 마초적인 디자인을 완성했다. 앞뒤 램프는 모두 LED. 특히, CR-V의 상징이었던 세로 방향 테일램프에 수평 디자인을 덧대 ‘L’자 형태로 거듭났다. 디자인만 바뀐 건 아니다. 길이와 너비는 각각 35밀리미터 늘어났고, 높이는 5밀리미터, 휠베이스는 40밀리미터를 키워 비율도 좋아졌다.

큼지막하게 자리한 기어레버. 미안하지만, 인테리어는 국산 SUV가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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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신문물이라면 바로 애플 카플레이?

그나마 신문물이라면 바로 애플 카플레이?

실내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좋아진 건 아니다. 전체적인 테마는 이전 모델과 비슷하지만, 디테일을 세심하게 다듬었다. 깔끔해진 계기반과 디스플레이 모니터(애플 카플레이를 심었다), 헤드업디스플레이, 퀼팅 스티치가 적용된 가죽시트 등 고급스러움을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넓어진 휠베이스는 2열 거주공간의 개선을 의미한다. 또한, 기존모델보다 56리터 커진 트렁크공간은 1천110리터. 2열시트를 접으면 2천146리터의 공간이 생긴다. 날카로워진 겉모습과 고급스럽게 다듬은 실내, 넓어진 공간은, 차급을 생각하면 나무랄 데 없다.

1.5리터 터보엔진이 5세대 CR-V를 상징한다고 봐도 좋다. 직렬 4기통 1.5리터 터보엔진은 193마력의 출력을 내고, 24.8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기존 2.4리터 자연흡기엔진보다 5마력 올라갔지만, 토크는 0.2kg·m 하락했다. 떨어진 토크에 섭섭할 필요는 없다. 토크를 토해내는 엔진회전수가 자연흡기엔진(3천900rpm)보다 대폭 앞당겨진 2천 rpm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더욱 경쾌하게 차체를 밀어낸다. 엔진과 궁합을 맞추는 무단기어는 양날의 검이다. 오너에 따라 한없이 좋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안락하고 여유롭게 다니는 이들에게 무단기어는 최고의 선택이다. 조용하고 정숙하게 기어비를 바꾸며 탑승객에게 정숙성과 부드러움을 선물한다. 승차감을 위한 서스펜션 세팅도 매우 만족스럽다. 부드러움과 단단함의 절묘한 타협점을 기가 막히게 잡아냈다. 반면,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도 뭔가 한 템포 느린 반응과 기어를 바꿔 무는 느낌 없이 높은 엔진회전수에 바늘이 고정된 채, 속도를 올려나가는 방식은 스포티한 드라이브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마이너스다.

혼다코리아는 파일럿에만 혼다센싱(차선이탈방지, 자동제동시스템, 어탭티브 크루즈컨트롤 등)을 넣어 판매 중이고, 이후 들어온 모델, 그러니까 어코드 하이브리드와 5세대 CR-V 등에는 혼다센싱을 빼버렸다. 물론,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해서 그랬을 것이다. 혼다센싱을 넣고 다른 기능을 빼는 건 어땠을까? 네바퀴굴림과 혼다센싱을 바꾼다면? 앞바퀴를 굴리는 모델로도 CR-V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연료효율도 더 좋아질 테고. 모든 SUV가 바퀴 네 개를 모두 굴리기 때문에 잘 팔리는 건 아닐 거다. 발상의 전환이 아쉽다. 10년 전 누렸던 영광의 순간이, 5세대 CR-V가 터보엔진을 얹고 나타났다고 해서 재현될 수 없다는 건 혼다코리아 직원들도 알 것이다. 물론, CR-V 자체의 상품성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유럽 디젤엔진 혹은 국산 SUV에 대항할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는 이야기다.

LOVE  카리스마 있는 외모, 넓어진 공간, 안락한 승차감
HATE  시대에 어울리는 인테리어가 시급하다
VERDICT  재미는 없지만, 승차감 좋은 가솔린 S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