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로 떠난 여름 휴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상륙한 테슬라. 활발한 사전 예약은 물론, 자체 충전 인프라까지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그럼, 테슬라를 타고 동해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일까? 큰마음 먹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지난 6월 30일. 서울과 양양을 잇는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했다. 서울 올림픽대로 강일IC에서 시작, 경기도 남양주와 양평, 강원도 춘천과 홍천을 거쳐 인제를 지나, 마침내 동해안이 보이는 양양까지 이르는 151.6km 길이의 고속도로. 이로써, 서울에서 동해안까지 2시간 반, 각종 모터스포츠 대회와 트랙 데이가 열리는 인제스피디움까지는 1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이뿐 아니라, 다들 여름휴가를 떠나는 이맘때쯤이면 포화 상태에 이르는 영동고속도로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줄, 대체 도로의 역할도 충분히 해줄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퍼졌다. 물론 차가 안 막히면 그렇다는 얘기다.

새로이 개통한 화제의 고속도로를 달려 동해안까지 가보긴 해야겠는데, 어떤 차로 달려보면 좋을까 머리를 맞대고 의견이 분분했다. 우리는 전기차의 가능성에 주목하기로 했다. 점점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전기차를 타고, 우리나라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 올라, 당일치기로 시원한 바다를 마음속에 품고 돌아오는 것(싱싱한 회까지 먹으면 더 좋겠지만…). 우리 스스로 내린 미션이었다.

물망에 오른 건 주행 가능 거리 400km에 조금 못 미치는 쉐보레 볼트 EV(383km)와 테슬라 모델 S 90D(378km). 이론상으로는 서울에서 출발해 고속도로를 왕복, 바닷가를 다녀올 수 있었다. 때마침 모델 S의 자율 주행 기능인 오토파일럿을 써먹을 수 있다는 소식과 함께, 동해안과 강원도 원주에 테슬라 전용 충전기와 슈퍼차저가 새롭게 자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렇게 테슬라 당일치기 동해 여행이 시작됐다(말만 여행이지, 고된 여정이었다).

(위) 남은 충전 시간 5시간 35분? 어이, 장난이지? (아래) 이러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충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런,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바쁜 스케줄 탓에 시승차 배터리가 48%만 남아 있던 것. 청담동 테슬라코리아에서 받은 차는, 곧바로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 마련된 슈퍼차저 급속충전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40여 분을 꽂아두자 95%까지 충전 완료. 100%까지 가득 채우고 싶었지만, 언제 비가 내릴지 몰랐고, 오늘 안에 내 방 침대에 누우려면 서둘러야 했다.

이제부터 자율 주행 주문을 외운다. 이욥!

이제부터 자율 주행 주문을 외운다. 이욥!

길은 간단했다. 올림픽대로에 올라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양양까지 줄곧 직진만 하면 됐다. 앞차를 따라 달리며 스스로 조향까지 하는 건 8km/h를 넘으면 가능하지만, 차 많은 시내에서는 오토파일럿 기능이 원활히 작동 안 할 수 있으니 크게 추천하진 않는다는 제품 담당 설명자의 말을 떠올리며 올림픽대로에 오를 때까지 참았다. 제법 속도가 붙기 시작할 무렵, 스티어링 칼럼 왼쪽에 붙은 레버를 두 번 당기자 오토파일럿 작동. 그러면 8개의 카메라와 12개의 초음파 센서가 힘을 합쳐 광범위한 영역을 감지한다. 그리고, 제한속도까지 순식간에 속도계를 올린다. 200km/h까지도 가능하다 했지만, 내가 그리 간 큰 사람은 아닌지라 패스.

파란색 스티어링 휠 아이콘이 떴다면, 자율 주행 중이라는 신호

파란색 스티어링 휠 아이콘이 떴다면, 자율 주행 중이라는 신호

개미 한 마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 자동차와 사람 등 웬만한 크기의 물체를 감지해 컴퓨터가 두뇌를 굴린다. 오토파일럿이 감지하는 최대 거리는 앞 250m, 옆 80m, 뒤 100m 수준. 고속에서 코앞으로 갑자기 끼어드는 차만 아니라면 알아서 거리를 조절하는 건 당연한 일. 굽은 길을 따라 달리다가도 차로를 변경하려 방향지시등을 켜면 슬그머니 차선을 넘어 옆 차로에 머물고, 이때 스티어링 휠을 잡으라는 경고 문구가 뜬다. 차마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렸지만, 자율 주행에 좀 더 익숙해지면 두 손 놓고 햄버거라도 먹으며 유유자적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쭉 뻗은 길에서는 1분이 약간 지나면 손으로 잡으라는 경고 문구가 뜨니, 정말 느긋하게 달리기 좋다.

다행히 우리가 양양까지 향하기로 한 날은 평일 오후. 교통량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달렸다. 개통일 다음 날인 7월 1일 토요일에는, 새로 뚫린 길을 타고 동해안까지 가려는 사람들이 몰려 도로를 가득 메웠다고 하던데 천만다행이다. 한창 휴가 떠날 차로 붐빌 7~8월의 고속도로를 생각하면,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서울양양고속도로를 가장 여유롭게 달려볼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3년 전 이맘때쯤 주말, 바닷가로 여름휴가 떠난다며 두 친구와 함께 강릉을 오가는 데 15시간 넘게 걸렸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손발이 떨린다. 서울양양고속도로의 효용성을 알아본답시고, 다음 기획으로 휴가철 주말에 이 고속도로를 타고 동해안 다녀오라는 명령이 떨어지진 않겠지?

꼭 오고 싶던 곳 중 하나였는데, 이렇게 올 줄이야

도로는 대부분 평탄했다. 강원도라고 생각이 안 들 만큼 고저 차도 심하지 않을뿐더러 완만하게 굽은 길도 거의 없고, 무엇보다 터널, 터널, 터널의 연속. 백두대간을 관통하다시피 길을 뚫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산으로 가로막힌 좌우 풍경에, 깨끗한 길이 시원스레 뚫려 있으니 졸음이 몰려올 법도 했다. 게다가 모델 S는 해도 해도 너무 조용했다. 설상가상으로 내린천휴게소 전까지 졸음쉼터는 겨우 한 곳만 있었다. 아무리 오토파일럿을 켜둔다 해도, 나처럼 잠 많은 사람에게는 졸음쉼터가 필수다, 필수!

하늘에서 내린 내린천휴게소건만,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조차…

그래서 처음 발걸음을 멈춘 곳이 내린천휴게소. 150km 약간 넘는 길이의 고속도로에는 가평, 홍천, 내린천까지 총 세 곳의 휴게소가 있다. 내린천휴게소는 양양IC까지 향하는 여정의 마지막 휴게소. 도로 위로 우뚝 솟은 건물 옥상 전망대에 많은 사람이 올라가 경치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평일인데도 제법 사람이 많은 걸 보니, 확실히 도로의 인기가 좋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전기차 충전기가 없는 거지? 우리는 130km를 달리는 동안, 서울에서 충전해왔던 85.5kWh 전력 중 벌써 27.9kWh나 사용했는데? 슬슬 불안해졌다.

그렇다. 미리 밝히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는 동해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라 불리는 헌화로까지 다녀오기 위해 양양IC에서 빠져 강릉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런 뒤엔 경포대 씨마크호텔에 새로이 들어선 데스티네이션 차저(완속충전기)를 이용해, 강릉 순두부를 먹을 동안만이라도 조금은 충전해야겠다 싶었다. 그 정도면 최강의 급속충전기 슈퍼차저가 있는 원주 한솔오크밸리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뿔싸! 예상이 빗나갔다. 그것도 아주 크게.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헌화로(여자 친구와 함께 가보고 싶었지만…)에서 비바람과 파도가 휘몰아치는 동해안을 실컷 구경한 대가는 컸다. 씨마크호텔로 돌아오기까지 총 주행거리는 292km. 그동안 사용한 전력량은 61.6kWh. 남은 배터리 잔량은 16%. 내가 정말 모델 S를 살 수 있을 만큼 사정이 넉넉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씨마크호텔에서 충전기 꽂아둔 채 하룻밤 묵었을 테지만, 아쉽게도….눈물이 날 것 같아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너에게 나를, 아니 테슬라를 보낸다

일부러 밥을 천천히 먹고, 동행한 두 선배(여자는 없다)와 함께 경포대 해변을 걸으며 커피까지 마셨는데도, 2시간 20분 동안 충전한 배터리는 40%. 컴퓨터가 지금까지 내 주행 습관을 계산해 알려준 예상 주행 가능 거리는 150km 수준. 원주에 있는 슈퍼차저까지 정말 아슬아슬하게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어느덧 시계는 오후 10시.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를 거다, 슈퍼차저야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를 거다, 슈퍼차저야

이번 도전을 왜 내가 한다고 했을까. 강릉에서 원주로 넘어가는 영동고속도로가, 대관령을 넘는 줄 몰랐다. 고개를 몇 번이나 넘었을까? 어느새 배터리는 25%, 주행 가능 거리는 70km까지 곤두박질쳤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닫은 뒤, 가속페달을 조심스레 달래가며 슬금슬금 기어갔다. 게다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이었지만, 워낙 느리게 달렸기에 뒷바퀴를 굴리는 전기모터는 그냥 꺼버리고 싶었다. 대형 트럭에도 길을 내준 채 60~70km/h로 속도를 유지하고 회생 제동을 최대한 끌어올렸지만, 테슬라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목적지 도착 시 예측 배터리 잔량은 7%. 이대로는 언제 차가 멈출지 몰랐다. 재빨리 주변 충전소를 찾으니, 평창휴게소에 AC3상 충전기가 있다는 검색결과. 먼저 도착해 있을 선배들에게 죄송하다는 전화를 걸 정신도 없이, 정신 바짝 차리고 서둘러서 충전기를 찾아갔다.

오늘은 정말 날이 아닌 것 같다. 휴게소 충전기는 계속해서 ‘결제 카드 인식 오류’라는 답만 되풀이했다. 폭우를 헤치고 온 결과가 이거라니. 결국, 남은 배터리 18%로 나머지 76km를 달려야 했다. ‘오류 없는 멀쩡한 충전기가 30km마다 만들어지기 전까지, 다시는 전기차를 타지 않으리라’고 곱씹으며 기어가길 1시간 반. 마침내 도착한 한솔오크밸리 내 슈퍼차저 앞. 이미 도착해 시커먼 어둠과 장대비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선배들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한 선배가 소리를 질렀다. “야! 얼른 충전되게 전원 꺼놔라!” 미안해, 모델 S야. 너와 12시간을 넘게 함께했지만, 아직도 정 붙이기 어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