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P 막내의 당찬 도전기

작지만 강한 근육질 SUV 레니게이드의 오프로드 강화 버전 트레일호크. 당돌한 막내는 최강 오프로더 랭글러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거칠고 매력적인 두 형제가 진흙탕에서 한바탕 날뛰었다

어이, 이봐, 오늘의 주인공은 나라고! 5초 동안 앞이 보이지 않아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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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물 터지듯 온갖 SUV가 넘쳐난다. 이제는 소형차까지 거의 모든 차급에 걸쳐 덩치 키우고 키 높인 크로스오버가 쏟아져 나오고, 저마다 SUV라며 제 세상인 것처럼 활개 치는 이때. 묵묵히 역사와 전통을 이어나가는 SUV 명가가 있다. 오직 SUV만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90% 정도쯤은 확실한 SUV 전문 메이커 지프. 군용차로 시작해 지금껏 이어온 76년 역사 동안, 지프의 차 만들기는 오직 SUV라는 경계 안에서 시대의 흐름을 타고 도전과 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프에 열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곳이 길이 아닐지라도 어디든 과감히 뛰어들도록 부추기는 도전 정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이 바로 그것. 모노코크 보디의 수많은 도심형 SUV가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든 지금, 지프의 역사와 혈통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최강의 오프로더 랭글러에 열광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랬던 지프가, 다루기 쉽고 몸값은 덜한 소형 SUV의 인기가 높아지는 걸 눈치챘다. 가만히 앉아서 다른 브랜드가 배 불리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서둘러 소형 SUV를 개발하면서도, 지프 특유의 강점을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태어난 지프의 막내 레니게이드는, 4륜구동과 로 기어, 지형 반응 주행 모드 등 동급 모델보다 탁월한 오프로드 능력을 갖춘 동시에, 작은 차의 강점인 개성 만점 디자인과 지프 전통의 디자인 요소를 모두 아우를 수 있었다. 한 지붕 피아트 가족과의 협업으로 미국 본토 아닌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화끈하게 달아오른 전 세계적 트렌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도 했지만, 레니게이드는 소형 SUV가 인기 높은 한국에서도 브랜드 최고의 살림꾼으로 우뚝 섰다. 부침 없이 꾸준히 팔리는 랭글러와는 또 다른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지프의 오프로드 강화 버전인 트레일호크 모델이 막내이자 가장 신차인 레니게이드를 통해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도 이런 이유였다.

오늘은 세차하지 않고 촬영 OK. 그래야 더 자연스럽고 멋질 테니까. 맨날 이런 차만 했으면 좋겠네

오늘은 세차하지 않고 촬영 OK. 그래야 더 자연스럽고 멋질 테니까. 맨날 이런 차만 했으면 좋겠네

소형 SUV 특유의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디자인을 박스카 스타일에 담는 동시에, 네모난 얼굴과 근육질 덩치로 듬직하고 굳센 인상을 강조한 레니게이드. 트레일호크라고 해서 큰 변화를 택하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다. 심미적인 변화보다는, 기능적인 진화를 택한 것. 대표적으로 앞 범퍼 아랫단을 싹둑 도려내 진입각을 21˚에서 30˚까지 키웠고, 변속기와 연료 탱크, 트랜스퍼 케이스 등 주요부품을 보호하기 위해 하체 대부분에 스키드 플레이트를 둘렀다. 이것만 해도 신체 능력은 크게 높아진 상태. 이에 더해, 언제든 오프로드로 뛰어들 수 있도록 트레일호크 전용 17인치 휠에 사계절용 오프로드 타이어를 끼운 것도 일반 레니게이드와의 차이점. 붉은색 트레일 레이티드 배지와 견인 고리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데, 원래는 앞 2개, 뒤 1개씩 총 3개의 붉은색 견인 고리가 달려 있어야 정상이지만, 국내에서는 자동차 법규상 보행자 보호를 위해 앞 견인 고리는 빠졌다.

인테리어는 소소한 변화에 그쳤다. 눈에 띄는 건 송풍구와 기어레버 패널, 시트 박음질 등 실내 이곳저곳에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정도에 불과하다. 늘어난 오프로드 장비로 인해 불어날 수밖에 없는 몸값은, 가죽 시트 대신 수동 조절식 직물 시트를 얹고, 차로이탈 경고 시스템과 같은 운전자 보조 장비 등을 빼면서 최대한 억제했다. 그래도 후방 카메라와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 등의 장비가 꼭 필요하다면, 트레일호크 대신 100만 원 높은 몸값의 최상위 트림 리미티드를 고려해봐야겠다.

우리는 레니게이드 트레일호크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지프 가문 최강의 오프로더 랭글러 루비콘을 대동하고 수풀과 진흙이 뒤섞인 오프로드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트레일호크에 추가된 바위 타기 주행 모드를 시험해볼 겸 험준한 바위산으로 가고 싶었지만, 아직 덜 여문 막냇동생에게 무자비하게 굴 수는 없었기에 최소한의 배려를 베풀기로 했다. 트레일호크가 20:1 크롤비를 갖추었다고 한들, 73.1:1의 크롤비와 스웨이 바 분리 기능, 앞뒤 차축을 모두 잠그며 네 바퀴에 동력을 똑같이 나눌 수 있는 액슬 록 기능까지 갖춘 랭글러 루비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랭글러 루비콘이 무심한 눈초리로 바위를 성큼성큼 타고 넘을 때, 레니게이드 트레일호크는 긴장한 채 바위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정복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장마 중간에 찾아온 맑은 날. 이 녀석들이라면 폭우가 내려도 든든할 거야

오지로 향하기까지 레니게이드에 먼저 올랐다. 아무래도 강철 프레임 보디의 랭글러보다는, 유니 프레임 보디의 레니게이드가 온로드에서는 ‘비교적’ 더 조용하고 승차감도 편안하며 안정적이라는 생각이었다. 랭글러처럼 옆으로 지나는 차를 내려다볼 만큼 우월한 시야는 아니지만, 소형차 감각의 동급 모델보다는 시트 포지션이 훨씬 더 SUV다웠다.

성능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크게 부족하지도 않은 170마력, 35.7kg·m의 2.0ℓ 디젤 심장은 시끄럽고 거칠게 툴툴댈 뿐, 감흥도 없고 주목할 이유 또한 없었다. 2.4ℓ 가솔린 심장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오직 앞바퀴만 굴리는 레니게이드에만 올라갈 뿐이었다. 그보다는 무려 9단까지 잘게 쪼갠 ZF 자동변속기를 동급 최초로 품었다는 사실이 더 인상적이었다. 1~2단은 기어비를 넓게, 오버드라이브 기어인 6단부터는 기어비를 촘촘히 세팅해, 저단에서의 강한 힘과 고단에서의 효율성을 두루 갖추려 시도한 결과물로, 지프 내에서도 레니게이드에만 허용된 특권이었다. 그런데 사실, 도심에서도 쏘다닐 시간이 많을 소형 SUV치고는 저속 기어비가 넓은 탓에 초반 가속이 굼떠서 완벽한 궁합은 아니었다. 내년에 모델 체인지를 앞두고 있는 랭글러는, 온로드에서는 그야말로 구닥다리였다. 오프로드만 신나게 누비고 다닐 게 아니라면, 3.6ℓ 가솔린엔진보다도, 5단 자동변속기의 업데이트가 시급했다. 후속 모델에 새로운 디젤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올라갈 계획이라는 걸로 위안 삼아야 했다.

오라고 할 때는 그리 애타게 찾아도 내리지 않던 비가 며칠간 폭포수처럼 쏟아진 덕분에, 아스팔트를 조금만 벗어나도 물기 머금은 수풀이 우거졌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짓무른 진창투성이였다. 까딱하다가는 바퀴가 진창에 빠져 언제 어떻게 접지력을 잃고 허둥댈지 모르는 상황. 두툼한 전용 타이어를 신은 랭글러가 기운차게 앞섰고 레니게이드가 부리나케 뒤를 쫓았다. 타이어가 조금씩 헛돈다 싶을 때쯤, 비로소 오프로드 전용 마법 주문을 외웠다. rpm을 균형 있게 유지하며 가속페달 반응을 평소보다 더디게 만들어 접지력을 확보하는 진흙길 주행 모드로 돌려두고, 4륜구동으로 스르르 전환.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분명 랭글러는 로 기어를 물린 데다 앞뒤 액슬을 잠그는 건 물론, 스웨이 바까지 분리하는 오프로드 기능을 총동원했을 게 틀림없었다. 형님의 아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도심형 SUV 같다고? 이런 진창길도 빠른 속도로 내달릴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아스팔트 위에서 느긋하게 대응하던 서스펜션은, 거친 길에 들어서자 숨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노면의 굴곡에 따라 차체가 휘청휘청했지만, 여기에서는 어느 정도 보디 롤이 있어야 승차감이 편안했다. 온로드에 특화된 서스펜션은 이곳에 들어와봤자 덜커덕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전방 주시, 전방 주시!” 앞에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물웅덩이가 나타났다. 거침없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랭글러. 차체 짧은 2도어 모델이라면 더 활기차게 다이빙했겠지만, 4도어 모델은 신체적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랭글러는,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깨며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데 도가 튼 궁극의 오프로더. 그 앞에, 가지 못할 길이란 없었다. 이번엔 레니게이드 차례. 잘라낸 앞 범퍼가 진입 장벽을 허무는 데 주효했길 바랄 뿐이었다. “입수!” 물살을 거칠게 가르며 뛰어든 레니게이드. 보이지 않는 바닥은 분명 입자를 알 수 없을 만큼 잘게 쪼개진 흙이었을 테지만, 레니게이드는 거침없었다. 트레일 레이티드 배지는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물 밖으로 박차고 나오며 외쳤다. “어디든 가서 한바탕 굴러보자고요!”

이세환 , 사진 김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