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찾던 SUV

5008로 시대가 바라는 유행에 걸맞은 SUV 라인업을 완성한 푸조. 그들이 말하는 SUV란 바로 이런 것

푸조는 작은 차 만들기에 일가견 있기로 소문난 전문 메이커. 작달막한 차체에 야무진 핸들링 성능을 버무려 매콤한 실력을 뽐내는 알짜 실력파로 유명했다. 그들이 만든 해치백이 그랬고, 이를 무기 삼아 각종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이름을 숱하게 뽐내며 쌓은 화려한 전적이 이를 증명했다. 그랬던 푸조가 만든 7인승 SUV라는 점에서, 5008 SUV는 실물을 보기도 전부터 내심 기대하게 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적 없던 구형 5008은, 모니터 속 사진만 보면 길고 납작한 비율과 둥글둥글한 차체를 가진 완벽한 크로스오버형 미니밴이었다. 2016년 파리 모터쇼에서 한 단계 진화한 모습을 세상에 공개한 2세대 5008은, 한층 굵직한 직선과 선명한 인상을 지닌 덕분에 제법 강인하고 굳센 SUV다웠다. 푸조가 굳이 신차의 이름에 SUV란 꼬리표를 붙인 이유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예리한 선을 많이 쓴 덕분에, 외모만 봐서는 확실히 강인하고 다부진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르익은 패밀리 룩은 고스란히 스며들어 5008 SUV만의 확실한 개성으로 나타났다. 반짝거리는 크롬 패턴을 점점이 새겨 넣은 프런트 그릴, 아랫단을 날카롭게 도려낸 LED 헤드램프로 꾸민 얼굴은, 앞서 등장한 3008 SUV와 다를 바 없었다. 옆구리를 간지럽혀 길이만 늘인 걸까? 낮고 길쭉한 비율은 옆에서 도드라졌다. 3008 SUV와 같은 EMP2 플랫폼 위에서 태어났지만 확장성 좋은 이점을 살린 덕분에, 휠베이스는 165mm, 차체 길이는 190mm나 잡아 늘일 수 있었다. 뒤로 갈수록 조금씩 솟아오르는 벨트 라인과 맵시 살린 캐릭터 라인을 따라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고, 푸조의 디자인 요소 중 하나인 3D LED 테일램프와 두툼한 범퍼로 장식한 외모에서 견고하다는 인상까지 받았다.

‘이게 7인승 SUV라고?’ 하지만 5008 SUV를 실물로 마주했을 때 개발진에서 숫자를 잘못 받아 적었거나, 미니밴을 SUV로 잘못 듣고 말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겉만 봐서는 푸조의 의중도, 5008 SUV의 깊은 속내도 헤아릴 수 없었다. 4.6m를 약간 넘는 길이와 1650mm에 불과한 높이의 차체 비율은, 아무리 좋게 봐도 7인승 SUV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차라리 같은 그룹의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의 푸조 버전이라고 말하는 게 바람직해 보였다. 국내에서 팔리고 있는 7인승 SUV가 대부분 한 덩치 하는 어깨 깡패들인 탓에, 그런 생각은 더 빠르게 굳어졌다.

2세대 아이-콕핏에 앉아 스티어링 휠을 돌려보면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2세대 아이-콕핏에 앉아 스티어링 휠을 돌려보면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운전석 문을 열자, 오랜만에 만나보는 최신 푸조의 창의적이고 혁신 가득한 변화가 거세게 다가왔다. 운전자 중심의 아이-콕핏 인테리어는 2세대로 진화하며 한결 더 운전자 친화적인 레이아웃으로 거듭났고, 주변을 감싼 소재는 보기에도 좋아졌다. 손길을 부르는 작달막한 스티어링 휠과 그 너머의 계기반 위치만 여전히 친근할 뿐, 불쑥 솟은 터치스크린과 비행기 조종 레버를 닮은 기어 레버 등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인체공학적인 구조와 버튼 배치 덕분에 금세 익숙해졌다. 그 와중에 구석구석 알뜰살뜰 마련해놓은 수납 공간은 푸조의 친절한 배려이자, 이 차가 여럿이 타기 좋은 패밀리카에 합당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는 걸 뜻했다.

문을 열고 시트에 몸을 실었을 때 보통의 SUV처럼 엉덩이를 높이 들어 걸터앉는 느낌은 아니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차에 올라앉을 수 있도록 적당한 높이로 설계한 시트엔, 친절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건 뒷좌석도 마찬가지. 2열과 3열에 놓인 5개 시트 모두 제각각 접고 펼 수 있어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 좋았다. 겉에서 보기엔 저 길이에 어떻게 3열 시트가 모두 들어갈까 싶었지만, 2열 시트 3개 모두 제각각 앞뒤로 밀고 당길 수 있기에 운용의 폭이 넓었다. 특히, 2열 시트 하나하나마다 유아용 카시트를 따로 설치할 수 있다는 건, 다둥이 부모의 부담을 덜어줄 만한 효과적인 설계. 다만 요즘 등장하는 미니밴이나 SUV의 3열이 성인도 제법 탈 만한 공간을 갖춘 걸 생각하면, 5008 SUV의 그곳은 다소 부족했다. 붙였다 뗄 수 있는 3열 시트는 웬만한 어린아이 아니면 앉아 가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좁으니, 쓸 일 없는 평소엔 시트를 떼어다 창고에 보관해두고 남은 공간을 살뜰히 쓰는 게 좋겠다.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가 있다면 반드시 3열에 태워라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가 있다면 반드시 3열에 태워라

뒷좌석에 탈 이들을 위한 기능은 제법 넉넉하다. 넉넉한 사이즈의 파노라마 선루프를 보며 그전까지 채광창 역할만 했던 푸조의 글라스 루프를 떠올렸지만, 이제는 상위 트림에 여닫을 수 있는 선루프를 마련해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차창 대신 햇빛 듬뿍 받아들이는 건 물론 반쯤 열어 공기를 순환하는 데 사용하기 좋다. 1열 시트 등받이에 달린 받침대나 발아래 숨은 수납 공간도 일상에서 쓰기 좋은 기능. 3열부터 맨 앞의 동승석까지 완전히 평평하게 접을 수 있어, 3.2m 길이의 물건까지 부담 없이 실을 수 있다. 크게 쓸 일 없는 3열 시트를 접으면 드러나는 952ℓ 트렁크 공간은, 2열 시트까지 모두 접으면 2150ℓ까지 늘릴 수 있다.

GT 라인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더 강력한 힘을 원한다면 2.0 GT로 눈을 돌리길

GT 라인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더 강력한 힘을 원한다면 2.0 GT로 눈을 돌리길

5008 SUV의 심장은 1.6ℓ와 2.0ℓ로 배기량을 나눈 디젤 엔진 두 종류. 각각 최고 120마력과 180마력, 30.6kg·m와 40.8kg·m의 힘을 뽐냈다. 우리나라엔 알뤼르와 GT 라인 트림으로 나뉘는 1.6 모델이 먼저 들어왔고, 일주일 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파크 어시스트, 360˚ 카메라와 포칼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으로 매력을 더한 5390만 원짜리 2.0 GT 모델이 연이어 들어오며 라인업을 완성했다. 시승차는 4650만 원짜리 1.6 GT 라인 모델로, 4290만 원의 기본형 알뤼르 트림에 앞서 설명한 개폐식 파노라마 글라스 루프와 더불어 차체 외부와 실내에 붙인 GT 라인 엠블럼,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과 발동작으로 트렁크를 여는 핸즈프리 테일게이트 기능을 더해 만족도를 높였다. 푸조 엠블럼 퍼들 램프와 세 가지 향기를 뿜어내는 실내 디퓨저도 GT 라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성 자극 아이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처음엔 나 역시 이 덩치에 120마력은 아슬아슬하지 않을까 싶었다. 결과적으로, 괜한 걱정이었다. 고속도로에 올라 속도를 올려도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혼자 달릴 때는 170km/h 이상까지 끄떡없었고, 일부러 여럿 태우고 달려봐도 고속도로 제한속도 이상까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속도를 붙였다. 오히려 푸근한 서스펜션 덕분에 고속에서도 편안한 승차감과 쫀득한 핸들링이 좋아 자꾸 속도를 내게 만들었다. 뒤에 앉을수록 고속에서 튀는 느낌이 조금씩 짙어지지만, 이 차를 모는 운전자들이 크게 속도 낼 일은 없을 테니, 어린 자녀를 태우든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든 크게 개의치 않아도 좋다. 유럽 신차 안전도 평가 충돌 테스트에서 별 5개로 최고 등급을 받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

5008 SUV가 다른 7인승 수입 SUV와 차별점을 만들 수 있는 핵심 요소는, 가솔린 엔진만 품은 다른 SUV와 달리 효율성 좋은 디젤 엔진을 품었다는 것. 고속도로에서의 효율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시내에서도 정지하고 출발할 때마다 엔진을 스르르 재웠다 조용하게 깨우는 실력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보고 배워야 한다. 비록 험로 주파용 4륜구동 시스템은 없지만, 눈길부터 진흙과 모래까지 다섯 가지 주행 모드에 따라 좌우 바퀴에 토크를 나눠 접지력을 보장하는 그립 컨트롤은 푸조가 합리적으로 선택한 또 다른 무기. 무겁고 비싼 4륜구동 시스템을 넣는 것보다, 상황에 따라 효율적으로 힘을 조절하며 연비 향상에도 도움을 주는 그립 컨트롤 시스템이 요즘 트렌드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한 결과다.

견고하고 입체적인 디자인과 혁신적인 인테리어, 활용도 좋은 실내 공간, 적당한 힘과 여전히 빛나는 핸들링 성능, 무엇보다 연비 좋은 디젤 엔진을 갖췄다는 것까지, 5008 SUV의 장점은 수두룩하다. 단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3열 공간의 기능성. 음, 내가 자녀를 셋이나 둔 아빠 입장에서 수입 7인승 SUV를 사기로 했다면 어땠을까? 내 취향인 운전의 재미나 부드러운 가솔린차보다, 경제적이고 편안하며 다재다능한 차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면 정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Peugeot 5008 SUV GT Line

 Price 4650만 원
Engine 1560cc I4 터보 디젤, 120마력@3500rpm, 30.6kg·m@1750rpm
Transmission 6단 자동, FWD
Performance 0→100 N/A, N/A, 12.7km/ℓ, CO₂ 150g/km
Weight 1640kg

이세환 | 사진 최대일

이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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