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완전무선 이어폰, B&O E8

아마 올해는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을까. 완전무선 이어폰 말이다. 무선 이어폰에서 양쪽 유닛을 연결한 케이블마저 없애 무선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한 완전무선 이어폰은 지난해 몇몇 제조사가 발 빠르게 선보인데 이어 올해는 전문 음향기기 제조사까지도 손을 대고 있다. 지금까지는 완전무선 이어폰이라는 틀을 구현하는 정도였다면 최근에 나오는 제품은 디자인과 음질까지 다듬고 있는 추세. 대표적인 것이 B&O 베오플레이 E8이다.

E8은 B&O가 처음 선보이는 완전무선 이어폰이다. B&O가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 일단 허투루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그런 제조사는 아니지 않은가. 이번에는 사이즈, 인체공학, 사운드 퀄리티 등 모든 밸런스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B&O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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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면서도 편안한 디자인

우선 패키지. B&O는 최근 모든 헤드폰, 이어폰의 패키지 디자인을 바꿨다. 새하얀 바탕에 제품의 연출 이미지를 시원하게 배치하고 주요 기능을 간결하게 적은 텍스트를 더했다. 제품 자체만 강조하던 이전과 달리 디자인과 활용성, 기능에도 비중을 두는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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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를 열면 본체와 케이스가 나타난다. 그 아래에는 간단한 사용법을 적은 띠지를 붙였다. 내부에는 사이즈별 실리콘 팁 4개와 컴플라이 폼 팁 M 사이즈 1개, 간단한 가이드북, 충전 케이블이 들어 있다. 실리콘 팁은 XS 사이즈를 더해 귀가 작은 사람도 편안하게 착용하도록 했다. 컴플라이 폼 팁은 저음을 강화하고 차음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전체적인 구성품은 풍족하다고 할 수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람도 없는 구성이다.

E8은 야콥 바그너(Jakob Wagner)가 디자인했다.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디자이너로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이 특징. B&O 제품 중에는 H2, H3, H5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E8 역시 심플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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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 바깥 부분은 알루미늄 판에 B&O 로고를 레이저 각인으로 새기고 테두리에 금속 링을 둘렀다. 겉에는 따로 조작 버튼을 달지 않았다. 대신 금속 링 안쪽이 터치패드다. 덕분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게다가 무광 코팅을 입혀 고급스러운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안쪽은 인체공학 디자인을 적용해 부드러운 유선형으로 다듬었다. 귀에 안정감 있게 밀착해 편안한 착용감을 느낄 수 있다. 재질은 폴리머 실리콘. 내구성이 좋고 땀과 물에 강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는 좌우 표식과 충전 단자 접합부를 배치했다. 아랫면에 있는 구멍은 마이크다.

B&O는 오른쪽 유닛을 마스터, 왼쪽을 슬레이브로 구성했다. 오른쪽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한 것. 그래서 1g 정도 더 나간다. 각각 7g, 6g. 실제 착용하면 무게감이 거의 없다. 이어팁과 밀착감만 느껴질 뿐. 일반 이어폰을 낀 것과 비슷하다. 두께도 완전무선 이어폰치고는 얇은 편. 유닛 한쪽의 크기는 23x20x25m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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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완전무선 이어폰처럼 케이스가 기본이다. 역시 작고 가볍다. 73x47x33mm 크기에 45g으로 휴대하기도 좋다. 겉에는 프리미엄 가죽 재질로 두르고 한가운데 B&O 로고를 새겼다. 탄력 있는 패브릭 스트랩도 달았다. 손가락이나 가방 고리에 끼워도 되고 케이스가 벌어지지 않게 묶을 수도 있다. 케이스는 자석을 달아 가방에 넣고 흔들어도 쉽게 열리지 않는다. 굳이 스트랩으로 묶을 필요까지는 없다.

안쪽에는 유닛을 수납하는 홈이 있다. 역시 자석을 달아 좌우만 맞춰 넣으면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고정된다. 수납하는 즉시 자동으로 전원을 끄고 충전을 시작한다. 앞쪽에 있는 주황색 LED는 유닛 충전 상태를 보여주고 뒤에 있는 LED는 케이스 자체의 배터리 잔량과 충전 상태를 알려준다. 마이크로 5핀 USB 충전 단자는 뒤쪽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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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에는 오른쪽 85mAh, 왼쪽 60mAh 배터리를 담고 있으며 한번 충전으로 최대 4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케이스는 365mAh 배터리를 담고 있어 유닛을 두 번 더 충전할 수 있다. 그러니까 총 12시간 동안 쓸 수 있는 것. 색상은 블랙과 차콜 샌드 두 가지. 색상에 따라 케이스와 본체, 원형 테두리의 컬러가 다르다. 참고로 사진에 담은 건 차콜 샌드다.

직관적이고 간편한 사용법

B&O는 처음 사용하기 전 10분 정도 충전하기를 권한다. 유통 과정에서 배터리가 방전됐을 수 있기 때문. 이어폰을 꺼내고 바깥 부분을 터치하면 알림음과 함께 안쪽 LED에 흰색 불이 들어오면서 전원이 켜진다. 이제 양쪽 터치패드를 5초 동안 누르면 블루투스 페어링 모드로 들어간다. 이때 LED 표시등은 푸른색으로 바뀌고 깜빡인다. 그다음 소스 기기에서 E8을 선택하면 된다. 간단하다. 페어링 속도도 빠르고.

귀에 꽂을 때는 터치패드를 누리지 않도록 가급적이면 테두리 쪽을 잡아야 한다. 갑자기 음악이 나오거나 외부 소리가 들려 당황하지 않으려면. 참고로 음악을 듣다가 오른쪽 유닛을 빼면 음악이 멈춘다. 다시 끼면 바로 이어서 재생. 왼쪽은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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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방법은 다소 낯설지만 직관적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다. 오른쪽을 한번 터치하면 재생과 정지, 왼쪽은 트랜스퍼런시(transparency) 기능을 실행한다. 트랜스퍼런시는 외부 소리를 그대로 들려주는 기능으로 성능은 노이즈캔슬링 이어폰 베오플레이 E4와 비슷한 수준이다. 왼쪽이 더 크게 들려 좌우 구분이나 거리감이 명확하진 않지만 소니의 비슷한 기능과 비교했을 때 왜곡이 적고 자연스러워서 좋다.

터치패드를 두 번 터치하면 트랙 이동이다. 오른쪽은 다음 곡, 왼쪽은 이전 곡. 볼륨 조절은 한번 터치한 상태로 있으면 된다. 오른쪽은 높게, 왼쪽은 낮게. 단 미세 조정이 어렵다. 익숙해지면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일단은 소스 기기에서 하는 게 속 편하다. 시리나 구글 어시스턴트 등 음성 명령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오른쪽을 3번 터치하면 된다.

전화가 오면 왼쪽이나 오른쪽을 한 번만 터치하면 된다. 끊을 때는 두 번. 전방향 마이크를 담아 통화 품질이 좋다고는 하지만 주변이 시끄러우면 그 소음까지 같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대중교통이나 거리에선 수월한 통화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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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8을 제대로 쓰려면 베오플레이 앱을 먼저 깔아야 한다. 간단한 사용법을 익힐 수 있고 배터리 잔량도 확인할 수 있다. SW 업데이트도 알아서 진행한다. 트랜스퍼런시 모드의 외부 소리 유입 정도를 앰비언트(Ambien), 소셜(Social), 커뮤팅(Commuting) 3가지 중 고를 수 있다. 순서대로 외부 소리가 작게 들어 오고 현재 듣고 있던 음악의 볼륨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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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음악의 분위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톤터치(Tone Touch) 기능을 지원해 내 기분에 맞게 음색을 바꿀 수 있다. 두 손가락으로 가운데 있는 원의 크기를 넓히거나 웜(Warm), 익사이티드(Excited), 릴랙시드(Relaxed), 브라이트(Bright) 쪽으로 드래그하면 된다. 웜은 저음을 강화하고 브라이트는 고음의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분위기를 세밀하게 조절한다. 잘 모르겠다면 이미 저장된 프리셋을 선택하면 된다. 앱에는 커뮤트(Commute), 클리어(Clear), 워크아웃(Workout), 팟캐스트(Podcast) 등 4가지 프리셋이 기본으로 들어 있다. 물론 나만의 프리셋도 만들 수 있다.

제이버드 런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다. 단 B&O는 분위기를 조절하는 반면 제이버드는 각 음역을 세팅한다는 것이 차이점. 기능은 비슷하지만 그 기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은 전혀 다르다. 런은 제이버드가 제공하는 음질을 내가 원하는 대로 완전히 바꿀 수 있다. 하지만 E8의 경우 기본 음질은 B&O의 튜닝을 따르고 그 안에서 분위기를 바꾸는 수준. 음질에 대한 B&O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음질까지 완전히 바꾸는 제이버드를 더 선호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반인 입장에서는 후자가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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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시원한 사운드

E8은 양쪽 유닛에 5.7mm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넣었다. 재생 주파수는 20~2만Hz. 블루투스 4.2 버전과 AAC 코덱을 지원한다. 여기에 전자유도형 변환기와 DSP(Digital Sound Processing), NFMI(Near Field Magnetic Induction, 근거리 자기 유도) 기술을 적용해 매끄러운 사운드를 재생한다. 90년의 노하우와 기술력을 기반으로 연구를 거듭한 결과다. 덕분에 E8은 B&O 시그니처 사운드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참고로 청음할 때는 LG전자 G6와 애플 아이폰7에 물렸으며 FLAC 등 고음질 음원을 이용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도 고음질로 세팅했다. 또한 E8의 기본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톤터치 기능은 따로 건드리지 않고 실리콘 팁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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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잘 끊기지 않는다. 사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소니를 비롯한 일부 제조사의 완전무선 이어폰 수신율이 기대 이하였던 경험이 있어 이번엔 주의 깊게 체크했다. 어쨌든 E8의 수신율은 합격.

전체적으로 고음의 비중이 높다. 기존 B&O 제품과 같이 맑고 깨끗한 고음을 강조하고 있다. 록 음악의 경우 날카로운 고음을 오가는 기타 소리가 곧게 뻗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음이 장기인 비욘세나 박정현, 국카스텐 하현우 같은 보컬도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가림막 없이 시원한 느낌이다. 약하긴 하지만 치찰음이 들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청음에도 부담 없을 정도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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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음은 원곡에 따라 풍부하게 퍼지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단단한 편이다. 잔향 없이 꽉 잡아주니 깔끔하게 떨어진다. 가슴을 울리는 강한 저음을 선호한다면 다소 가볍거나 심심하게 느낄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 톤터치 기능을 이용하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 차음성을 높이고 저음을 강조하는 폼팁으로 교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보컬을 따로 앞세우지는 않지만 음 분리도가 명확해 보컬이 반주에 묻히거나 뭉개지는 일은 없다. 대편성곡에서도 각 악기의 색깔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악기의 위치까지 느껴질 정도는 아니지만 선명한 사운드를 즐기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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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는 꽤 넓은 편이다. 멀찌감치에서 나오는 사운드는 넓은 무대를 충분히 활용한다. 차이콥스키 <1812 서곡>의 경우 포 소리의 거리감이 실감 나게 전달될 정도. 팝을 들을 때도 보컬이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있어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다. 맑고 깔끔한 사운드에 넓은 스테이지가 더해지니 좀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통화할 때도 귀 옆에서 바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

B&O는 애플과 친하다. 블루투스 연결 상태나 음악 컨트롤 같은 부분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찰떡궁합이다. 그렇다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추천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반응 속도가 약간 느린 정도. 수신율이나 음질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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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 베오플레이 E8은 완성도 있는 완전무선 이어폰이다.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에 적당한 크기와 인체공학 설계로 오래 들어도 편안하다. 여기에 고음을 강조한 깔끔한 사운드와 자기 취향에 맞게 분위기를 바꾸는 톤터치, 자연스러운 트렌스퍼런시 기능까지. 디자인과 편의성, 음질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물론 배터리 수명이나 통화 성능 등 여전히 개선점은 있다. 하지만 완전무선 이어폰이라는 제약을 허물고 수준을 끌어 올린 건 분명하다. 사용할수록 충분한 만족도를 느낄 수 있을 것.

가격은 출시가 기준 39만9000원이다. 타사 완전무선 이어폰을 생각하면 그리 비싸다고 볼 수 없는 수준. 기존 B&O 제품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한 기분이다.

완전무선 이어폰의 제약을 허물고
디자인, 편의성, 음질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한만혁

일상에 일상을 더해 이상을 이루는, 지극히 차가운 현실주의자. 제품을 보는 관점 역시.
mh@gearba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