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20세기

2001년 2월 27일 H.O.T.가 해체했다. 하지만 콘서트가 열린 이 날이 H.O.T.의 마지막일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해체 소식에 수많은 소녀팬은 기절하거나 자살 소동을 벌였고, 급기야 소속사를 찾아가 스프레이를 뿌리고 입구를 부수는 등 회사 건물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았다.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 ‘오빠들’의 해체는 당시 사회의 꽤 충격적인 이슈였다. 그만큼 H.O.T.는 단순한 딴따라를 넘어 대중가요의 새로운 역사를 이끌었던 또 하나의 문화였다. 대중 가수 최초로 잠실주경기장에 콘서트를 여는가 하면 공연 때마다 넘쳐나는 인파로 인해 서울시에서는 지하철을 연장 운행했고, 전국 모든 학교에서는 수업에 빠지는 학생을 막고자 조퇴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90년대 H.O.T.는 그런 의미다.

그리고 17년이 흐른 지금, <무한도전 – 토토가 3>를 통해 H.O.T.는 공식적인 재결합 소식을 알렸다.

10대들의 우상이자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H.O.T.
이들의 컴백은 90년대 모든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BGM: H.O.T. – 빛)

학생들의 인기 있는 오락거리였던 ‘다마고치’. 당시엔 흑백화면에 비친 조그마한 애완동물에게 밥 주고 놀아 주느라 바빴다. 버스, 교실 등 어디서든지 다마고치 하나로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90년대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국찐이 빵’. 시간이 지나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기업 하나 살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라며 김국진 본인이 농담 삼아 말했을 만큼 그 영향력은 대단했다. 누구나 아는 그 빵, 학창시절 내내 친근한 간식이었다. 그 밖에도 1996년 휴대폰으로 처음 출시되었던 ‘모토로라 스타텍’이나 독립을 기념해 만든 ‘815 코카콜라’ 또한 당시를 회상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이다.

X세대 누구나 기억하는 패션 아이템은 단연 통 넓은 청바지다. 명동의 길거리는 나팔바지를 입은 자와 입지 않은 자, 단 두부류로 나눌 수 있었고 통이 넓으면 넓을수록 ‘뭘 좀 아는’ 패션피플이었다. 그리고 유독 인기가 좋았던 이스트팩 백팩. 대학생을 떠올리면 저절로 그려지는 아이템, 전국 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90년대 전설적인 로맨스 영화로 남아있다. 지금이야 국민 첫사랑 수지가 있지만 당시 청순가련형 대표 스타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였으니까. 또한, 지금까지도 많은 배우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비트>, 남북 간 공작원의 사랑이라는 충격적인 스토리를 그린 <쉬리>. 모두 90년대를 상징하는 대작이다. 또한, 외국영화를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시절 <매트릭스>, <식스 센스>, <벅스 라이프>와 같은 헐리우드 영화는 대중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90년대는 대중가요의 르네상스라 불리던 시절이다. 1992년 서태지와아이들을 시작으로 H.O.T., 젝스키스, 핑클, S.E.S. 등 아이돌 1세대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H.O.T.의 경우 아이돌 최초 연간 최대 음반 판매량을 달성하고 방송 3사 연말 대상을 올킬, 음반을 냈다 하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노래뿐 아니라 패션, 춤 모든 것이 유행했고 음료수, 스티커, 책받침, 향수 심지어는 이들의 DNA를 채취한 목걸이가 열풍이었다. 당시 H.O.T.의 열성 팬이었던 개그우먼 박지선은 ‘우리들만 쫓아다니지 말고 공부도 열심히 하라’는 문희준의 말 한마디에 고려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대중에게 오직 TV로만 접할 수 있었던 ‘연예인’은 화장실도 안 갈 것 같은 신비로운 존재였다.


장동건, 손지창, 이종원, 심은하 등 당시 최고의 비주얼 배우가 출연했던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 실제로 신인이었던 배우 심은하를 하루아침에 스타덤으로 올려 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연재하고 있었던 만화 ‘슬램덩크’와 맞물려 농구의 인기를 폭발적으로 끌어 올렸고 덕분에 당시 대학 농구 선수들 역시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실감하기도 했다. 국민 시트콤의 시조새 <순풍 산부인과>. 평균 시청률 25%, 각종 유행어를 만들어 낸 작품으로 한국형 시트콤의 역사를 새로이 쓴 전설적인 드라마였다.

최수련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어디쯤.
sueryun@gearba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