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즐겨라, 그 경험 전체를 담아낼 테니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이 있다. 여행지를 가든, 특별한 이벤트를 하든, 색다른 경험을 하든 사진으로 남겨야 훗날 떠올리기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느라 그 상황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 또 있을까?

고프로가 새로운 카메라 퓨전(Fusion)을 발표했다. 이번엔 앞뒤로 렌즈를 달아 360도 영상을 담아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VR 카메라와 같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편집 기능인 오버추어를 사용하면 원하는 부분만 골라 평면 영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고프로는 “경험 그 자체를 기록한다”고 정의한다. 모든 걸 담아내니 촬영하느라 그 상황을 누리지 못하는 바보가 되지 말라는 말이다.

확 바뀐 외모

퓨전은 지금까지 고프로가 선보인 히어로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정사각형으로 크기를 좀 더 키웠고 렌즈를 앞뒤에 하나씩 달았다. 각 렌즈는 180도 화각을 지닌다. 재질은 전작과 비슷한 고무 재질. 옆면에는 빗살 무늬를 넣었다.

버튼 구성도 그대로다. 왼쪽 버튼은 전원 및 메뉴 이동을 담당하고 앞쪽에 있는 건 촬영 및 선택 기능을 수행한다. 덕분에 외관은 달라졌지만 사용법은 그대로다. 메뉴 버튼을 눌러 영상이나 사진, 타임랩스 등 원하는 모드를 선택하고 촬영 버튼을 누르면 된다. 설정을 바꾸는 것 또한 마찬가지. 기존에 히어로 시리즈를 사용해 봤다면 그리 낯설지 않겠다. 물론 처음 접한다 해도 두 개의 버튼만 익히면 되니 부담은 덜하다.

전원 버튼 위에는 배터리 충전이나 데이터를 전송하는 USB 타입C 단자가 자리한다. 오른쪽에는 배터리와 마이크로SD 메모리카드 수납부를 배치했다. 배터리는 2620mAh로 약 70분간 사용할 수 있는 용량. 메모리카드는 두 개를 넣어야 한다. 하나를 모두 채우고 다른 하나를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렌즈 하나에 메모리카드 하나가 연결되는 구조다. 그러니까 앞을 보고 있는 렌즈로 담은 영상은 메모리카드1에, 뒤쪽 영상은 메모리카드2에 저장한다.

아래쪽에는 마운트가 달려 있다. 기존 고프로 액세서리와 호환 가능한 규격이다. 이번에는 마운트를 분리하거나 위치를 조절하도록 만들었다. 약간의 여유를 두어 활용도를 높인 것.

퓨전은 5.2k 해상도의 360도 영상을 담아낸다. 크기는 작지만 고화질을 지원한다. 이미지는 1800만 화소까지 찍을 수 있다. 4개의 마이크도 넣었다. 소리가 나오는 위치나 방향까지 그대로 살리기 위한 설계다. 손떨림 방지 기능도 강화했다. 물론 흔들림을 완벽히 잡아낼 정도는 아니지만 웬만한 흔들림에는 끄떡 없다. 수심 5m 방수는 기본. 음성 인식 기능도 지원한다. 우리말 포함 10개 언어를 알아듣는다. 하지만 아직은 답답하다. 일부 명령은 아예 못 알아 듣는다.

패키지에는 퓨전 본체와 그립, 케이스, 배터리, USB 타입C 케이블, 평면/곡면용 마운트가 들어 있다. 퓨전 그립은 삼각대 역할에 22~56cm 범위 내에서 4단계로 조절하는 연장봉 기능을 더했다. 기존에 있던 쇼티(Shorty)의 좀 더 큰 버전이라고 보면 되겠다. 실제 써 보면 굉장히 유용하다. 활용도가 넓고 사용하기도 편하다. 이거 하나면 다른 액세서리는 안 써도 될 정도다.

쉽고 편하게 담아내는 360도 영상

촬영을 시작하면 각 렌즈가 180도 화각으로 주변을 담아낸다. 기본 제공하는 퓨전 그립으로 땅에 세우든지 들고 다니며 찍으면 된다. 사실 촬영할 때 팁이나 주의할 점은 없다. 주변을 모두 담아내기 때문에 사방을 모두 신경 써야 한다는 것 정도?

가급적이면 고프로 앱과의 연동을 권한다. 물론 퓨전의 경우 주변을 모두 담기 때문에 촬영 전 따로 디스플레이를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앱에 연결하면 조작이 편하다. 버튼을 여러 번 눌러 원하는 메뉴에 들어갈 필요 없이 앱에서 바로 누르면 된다. 먼 거리에서도 바로 컨트롤하는 것도 장점이다.

촬영한 영상이나 이미지를 리뷰하기에도 좋다. 두 개의 렌즈가 촬영한 영상을 자동으로 이어붙여 하나의 완벽한 360도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에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돌리거나 두 손가락으로 확대, 축소도 가능. 단 카메라를 들고 있는 부분은 자동으로 잘라낸다. 그래서 아랫부분이 약간 어긋난다. 해상도는 다소 낮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높은 해상도를 지니고 있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

놀라운 오버캡처

퓨전에 앱을 연동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오버캡처다. 오버캡처는 360도 영상에서 원하는 부분을 골라 평면 영상으로 만드는 기능이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우선 퓨전으로 촬영한 영상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내려받는다. 퓨전에 저장된 콘텐츠로는 오버캡처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미디어 라이브러리에서 편집하고자 하는 영상을 선택한 후 오른쪽 중간에 있는 오버캡처 버튼을 누르면 빨간색 네모 모양의 녹화 버튼이 나타난다. 이 버튼을 클릭한 후 영상을 재생하면서 확대, 축소하거나 화면을 움직여 원하는 부분에 맞추면 된다. 원하는 부분이 끝나면 다시 한번 버튼을 눌러 녹화를 멈춘다. 그러면 하나의 평면 영상 클립이 탄생한다.

화면을 움직이거나 확대, 축소하는 건 상당히 빠르다.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바로 적용된다. 구체형 이미지를 만들거나 360도 영상을 길게 만드는 효과, 특정 사물을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도 거뜬하다. 단 부드러운 카메라 워킹을 위해서는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미리 영상을 보면서 움직일 거리나 확대, 축소 정도를 미리 체크하고 시뮬레이션을 해야 부드럽게 연출할 수 있다. 두 손을 이용해 확대하거나 화면 양 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단 시간이 좀 걸린다. 퓨전에 있는 영상을 내려받는데 다소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오버캡처로 녹화한 영상을 저장할 때도 마찬가지. 용량도 꽤 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넉넉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성능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 건 기본. 실제로 아이폰6S에서는 다소 버거운 부분이 있었다. 아이패드 프로 10.5 정도 되니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더라. 참고로 결과물은 1080p나 720p로 저장한다. 물론 제작한 영상은 SNS에 바로 공유할 수 있다.

색 보정 같은 좀 더 세밀한 편집이 필요하다면 데스크톱PC 버전인 퓨전 스튜디오를 사용하면 된다. USB 타입C 케이블로 퓨전과 PC를 연결하면 스티칭 과정이 끝난 영상을 바로 얻을 수 있다. 역시 파일을 옮길 때는 시간이 걸린다. 단 화면 움직임이나 카메라 워킹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더 편하다. 마우스로 일일이 조절하는 것보다 터치로 조작하는 것이 빠르고 수월하다.

VR 카메라 그 이상

퓨전은 360도를 담는 소형 VR 카메라다. 작은 크기에 쉬운 사용법으로 고화질 영상을 담아낸다. 하지만 단순히 VR 카메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 일반 영상 제작 기능까지 아우르고 있기 때문. 그래서 반드시 함께 언급해야 하는 기능이 바로 오버캡처다.

물론 일반 영상 제작 측면에서 보면 효율성은 떨어진다. 일부를 얻기 위해 전체를 찍는 셈이니. 하지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분명하다. 카메라에 신경 쓰느라 그 상황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일이 없어진다. 여러 장비나 전문가가 없어도 다양한 카메라 워킹이나 효과를 줄 수 있다. 구도를 먼저 잡고 피사체와 카메라의 동선을 짠 뒤 촬영하는 기존의 영상 제작 과정이 확 줄어든다. 고퀄리티의 영상을 만드는데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도 않다.

개선의 여지는 있다. 조금만 써도 본체의 발열이 심하다. 결과물의 용량이 너무 커 파일 전송이 오래 걸린다. 웬만큼 성능이 되지 않으면 버벅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OS 기반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아직 퓨전에 연결하지 못한다. 업데이트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감감무소식. 앱과의 연동이 필수니 안드로이드 사용자라면 조금 더 기다리길 권한다. 가격은 89만 원. 그냥 가격만 놓고 보면 다소 비싸다. 하지만 퓨전의 장점과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생각하면 그만큼의 값어치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으리라.

고프로가 퓨전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카메라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즐겨라. 그 경험 자체를 담아낼 테니. 우리는 그 경험을 충분히 즐긴 후 나중에 원하는 부분만 골라내면 된다. 통으로 VR 콘텐츠를 만들든지.

익스트림 스포츠나 색다른 경험을 즐긴다면 추천. 촬영하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추천. 단 성능 좋은 디바이스가 없다면, 파일 전송 시간을 못 기다리겠다면, 안드로이드 기기를 사용한다면 조금 더 기다리길 권한다.

위 영상은 퓨전으로 촬영하고 애플 아이패드 프로에서 오버캡처를 통해 평면 영상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영상 퀄리티보다는 이런 카메라 워킹과 효과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흐린 날이고 색 보정은 일절 손대지 않았다.

일단 경험 그 자체를 담고 나중에 골라내면 끝
VR 콘텐츠는 물론 일반 평면 영상 촬영에도 유용

한만혁

일상에 일상을 더해 이상을 이루는, 지극히 차가운 현실주의자. 제품을 보는 관점 역시.
mh@gearba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