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맞은 3대의 스포츠카

사치스러운 2시터 스포츠카를 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바람 난 EV 유행 속에서 위기를 맞은 3대의 스포츠카를 만났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황금기는 언제였을까? 불안하게 털털거리지만 정직하게 돌아갔던 카뷰레터 엔진이 그리운 시절이다. 어느덧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은 좀비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퍼졌고, 최근엔 배기 가스조차 없는 전동화 바람이 거세다. 내연기관의 불안한 미래는 빠르게 다가왔다. 대형 세단은 갈 곳을 잃었으며, 스포츠카는 성능 경쟁이 아니라 운명이 걸린 생존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3대의 스포츠카를 불러 모았다. 스포츠카의 짜릿한 운전 재미를 다시 한번 검증할 것이며, 그들의 생존 전략도 면밀히 살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주인공은 SUV와 플래그십 세단으로 먹고사는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다. 설명에 모순이 있지만 사실이다. 포르쉐는 카이엔과 파나메라를 불티나게 팔면서 911의 꿈을 키운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911이 아니라 718 카이맨이다. 911보다 현실적이며 순수한 주행 성능을 지향하는 스포츠카로서 718 카이맨 중에서도 2.0ℓ 기본형 카이맨을 선택했다. 두 번째는 재규어 F-타입 P300이다.

F-타입은 지금까지 재규어를 성공적으로 대표한 이미지 리더다. 재규어다운 성능과 디자인을 모두 품었으며, 동시에 E-타입의 후계자로서 재규어의 전통을 눈부시게 빛냈다. 한편 F-타입 P300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스포츠카를 의미한다. 풍요로웠던 V6 엔진과 V8 엔진 대신 직렬 4기통 인제니움 엔진을 올렸고 무게와 배출가스를 줄였다. 즉, 옛날 같았으면 품격에 금이 갈 만한 4기통 엔진을 과감히 선택한 것이다. 현실에 타협한 씁쓸한 행보 같지만 그만큼 가격도 내려갔으니 소비자 입장에서 접근성은 좋아졌다.

마지막은 닛산의 Z카 혈통을 지켜낸 370Z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일본 포니카의 자존심이며 여전히 아날로그 매력이 넘친다. 거세게 들이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지만, 생생한 VQ 엔진과 후륜구동의 주행 질감은 언제나 짜릿함을 선사한다.

우리는 3대의 스포츠카와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부터 드라이브에 나섰다. 기온은 적당히 올랐고 건조한 바람을 가르며 달리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나는 가장 먼저 718 카이맨에 오른 뒤 엔진을 깨웠고 복잡한 서울을 빠르게 벗어났다. 목적지는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와인딩 로드가 펼쳐진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718 카이맨은 봄 날씨에 맞춰 핀 개나리처럼 샛노란 컬러를 뽐냈다. 사실 시승차가 아니면 감히 도전하기 부담스러운 컬러다. 회색 도시에서 노란색 잔영을 남기는 일은 너무도 쉬웠다. 비록 기본형일지라도 최고출력은 300마력에 달하며 0→100km/h 가속을 단 4.9초 만에 끝낸다.

비록 2.0ℓ의 4기통 엔진이라도 미드십이 주는 매력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시동과 함께 울려 퍼지는 엔진 사운드는 시트 뒤에서 웅성거린다. 수평대향 특유의 박력 있는 음색도 느낄 수 있다. 엔진 회전수를 높이면 방방거리는 소음으로 비좁은 콕핏을 가득 채운다. 포르쉐 홈페이지에는 카이맨의 배기 사운드를 자랑스럽게 게시했다. “그래서 듣기 좋은 소리야?”라고 묻는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강렬하고 건조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는 감성을 자극하지만, 여전히 4기통 엔진의 투박한 소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카이맨(981) 초기 모델의 쾌청한 자연흡기 엔진 소리를 듣고 나면 718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지도 모른다.

트림 소재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고급스럽다. 스티어링 휠은 좀 작아질 필요가 있다

F-타입 P300은 사각 머플러를 달았다. 소리는 약해졌지만 팝콘은 튀길 수 있다

한편, 쉽게 좁혀지지 않는 거리로 보아 앞선 F-타입도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은 것 같았다. 직사각형 머플러는 요란하게 떨리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토했다. 4기통 엔진에 터보차저를 물린 조건은 카이맨과 같았지만 한결 정제된 배기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기어를 내릴 때마다 엔진 회전수를 보정하는 소리까지 경쾌하게 도드라졌다. 사실 F-타입에 4기통 인제니움이 올라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걱정부터 앞섰다. V6와 V8의 F-타입이 워낙 섹시한 소리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제니움 엔진 사운드를 완벽한 소리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운드 튜닝의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었고 우아한 F-타입과 제법 잘 어울렸다.

구식 스타일이지만 운전에 집중하기엔 모자람이 없다. 높은 시트와 틸트만 되는 스티어링 휠이 NG

익숙한 외모의 370Z는 마치 노장을 보는 것 같았다. 2009년 첫 출시 이후로 소소한 변화만 있을 뿐 볼륨감 있는 실루엣과 화려한 스타일은 세월의 흐름을 전부 막지 못했다. 하지만 호쾌한 엔진 사운드가 귀를 홀리며 마음까지 훔쳤다. rpm이 치솟으며 목청을 한껏 높였고, 절정에서 터지는 폭발적인 가창력에 소름이 쭈뼛 돋는다. 셋 중 CO₂를 가장 많이 내뿜지만 가장 호쾌하게 반응하는 VQ 엔진은 틀림없는 명창이었다.

커다란 태코미터는 고회전형 VQ 엔진을 다루는 데 유용하다. 뿔처럼 솟은 패들 시프트도 마찬가지

재래식 엔진의 매력은 비단 소리에만 그치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370Z를 시승했는데, 718 카이맨의 300마력과 F-타입의 300마력이 허무맹랑한 ‘물주먹’처럼 느껴졌다. 반면 370Z는 가속 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부터 마초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제원상 370Z는 333마력으로 다른 둘보다 33마력 더 높다. 하지만 우렁찬 엔진 소리까지 곁들인 가속력, 7500rpm까지 시원하게 쏟아지는 출력을 경험하면 33마력이 아니라 적어도 100마력 차이처럼 느껴진다. 7단 자동변속기도 아직 쓸 만하다. 출시 당시 빠른 변속과 적극적인 rpm 보정 기능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실력은 여전했다. 길게 이어진 알루미늄 패들 시프트는 다루기 편했으며 무리하게 기어를 내릴 땐 경고음을 보내 변속기 상황을 운전자와 공유한다. 단, 모던한 F-타입의 8단 퀵 시프트는 닛산보다 더 빠를 뿐 아니라 다이내믹 모드에서 실감 나는 변속을 연출했고, 카이맨의 PDK는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가장 영민하다.

370Z의 움직임은 순수한 스포츠카다웠다. 때로는 거칠고 포악했으며 잘 다룰 땐 예리하게 반응하며 운전자와 호흡을 맞췄다. VQ 엔진은 경쾌한 회전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점진적인 토크 변화로 운전의 재미를 일깨웠고, 적당히 단단한 서스펜션은 승차감과 자세 제어 능력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이 이뤄졌다. 후륜구동의 특징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오버스티어로 코너를 파고들 수 있었으며 공포와 스릴 사이를 절묘하게 오갔다. 그러나 단출한 콕핏은 세월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절벽 같은 센터패시아 위에는 멀티 게이지가 걸려 있는데, 평소에는 쓸모없는 정보이며 차라리 컬러 디스플레이가 간절하다. 보기에 멋진 시트도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시트의 높이가 너무 높아 헤드룸이 부족하며 높낮이도 조절할 수 없다. 게다가 오직 틸트만 되는 스티어링도 운전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한편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는 멀쩡한 카이맨에 4기통 엔진을 달면서 ‘718’이라는 이름까지 내걸었다. 명분은 그럴듯했다. 수평대향 4기통 엔진으로 1000여 번의 우승을 거머쥔 포르쉐의 레이스카가 바로 718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수평대향 6기통은 4기통으로 줄이고 배기량은 고작 2.0ℓ에 불과했다.

배기량으로 보나 실린더 수로 보나 분명 다운사이징인데, 포르쉐는 ‘라이트사이징(Rightsizing)’이라 말하며 카이맨을 변호했다. 그러나 정작 가속 페달을 밟아보면 우려했던 실망감이 깨끗하게 사라진다. 718 카이맨은 굳세고 야무지며 쏜살같이 튀어나간다. 활기는 7000rpm까지 단박에 이어진다. 경쾌한 가속 반응, 민첩한 부스트, 매콤한 펀치력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다. 수치로 따지면 과거의 카이맨보다 모든 게 우월하다. 최고출력은 25마력, 최대토크는 9.2kg·m가 늘었으며, 0→100km/h 기록은 무려 1초를 앞당겨 4.7초를 자랑한다. 하지만 가속 과정만큼은 너무나 다르다. 구형 카이맨이 정확한 잽으로 상대를 요리하는 아웃 복서라면, 718 카이맨은 제대로 어퍼컷을 날리는 인파이터 복서 같다.

단정한 인테리어는 질리지 않는다. 한글을 지원하는 터치스크린과 완벽한 드라이빙 포지션을 제공한다

콕핏 환경은 718 카이맨이 가장 이상적인 스포츠카에 가깝다. 낮고 독립된 공간에서 손을 뻗으면 쏙 들어오는 기어 레버와 적당한 크기의 스티어링 휠을 만날 수 있다. 시트는 엉덩이를 쿡 찌를 정도로 단단했지만, 나의 빈약한 체형마저 완벽하게 감쌌고 단단한 쿠션은 오랜 시간 운전할 때 오히려 피로가 덜하다. 인테리어는 자극적인 파워트레인에 비하면 모범생같이 바르게 정리했고, 덕분에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데일리 스포츠카로 잘 어울린다. 370Z와 비교하면 똑똑한 편의 장비가 넘쳐나고 한글을 지원하는 터치스크린과 애플 카플레이도 갖췄다. 스포츠카에 편의 장비는 사치로 통했던 과거와 달리, 부쩍 세련된 구성과 뛰어난 상품성이 최근 포르쉐의 인기 비결이다.

20″ 휠을 끼운 718 카이맨의 승차감은 다소 신경질적이다

카이맨의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맥퍼슨 스트럿 구조에 앞뒤 무게 배분은 46:54로 이상적이다. 짧은 서스펜션 스트로크에 20″ 휠까지 끼워 단단한 승차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와인딩 로드에서 카이맨은 물 찬 제비처럼 날아다닌다. 급격한 헤어핀 코너조차 가차 없이 뛰어들었고, 스티어링 명령에 날카롭게 머리를 돌렸다. 스티어링 특성은 뚝심 있게 중립 상태를 유지했다. 복잡한 연산을 단숨에 해결하는 슈퍼컴퓨터처럼, 몇 번을 시도해도 실수가 없다. 덕분에 운전에 미숙한 사람도 프로 드라이버처럼 통쾌하게 몰 수 있다. 718 카이맨은 다루기 쉽고 빠른 스포츠카로 진화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카이맨의 통제력이 운전자를 넘나든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최신 911도 마찬가지다. 포르쉐는 더 이상 드라이버를 믿지 않는다.

카이맨과 함께 산길의 정상에 다다를 즈음, 재규어 F-타입 P300으로 갈아탔다. 팝업식 송풍구와 운전자 중심의 콕핏 설계, 약간 큰 스티어링 휠과 권총 자루 같은 기어 레버까지, 인테리어에서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F-타입은 여전히 멋진 콕핏을 자랑했다. 다이얼과 토글 스위치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했으며 조작하기도 편했다. 굳이 달라진 점을 찾자면 작은 버튼 주위의 소재 정도랄까? 그렇다고 V6나 V8 모델과 큰 차별을 두지도 않았다. D컷 스티어링 휠과 본격적인 퍼포먼스 시트는 없을지라도 재규어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잘 살아 있다.

와인딩 로드의 성지. 중미산 길에서 스포츠카 3대의 운전 재미를 다시 한번 검증했다

F-타입 P300의 엔진은 미국 <워즈오토>에서 뽑은 ‘2018 10대 베스트 엔진’에 선정된 인제니움이다. 마찰력을 줄인 알루미늄 인텐시브 구조의 2.0ℓ 엔진에 터보차저를 조합해 최고출력 300마력을 발휘하며 최대토크는 40.8kg·m에 달한다. 알루미늄 구조는 강철보다 열 속성이 뛰어나며 무게도 가볍다. 여기에 최첨단 가변 밸브 트레인 기술을 투입했고, 반응 속도가 빠른 트윈 스크롤 터보차저를 달아 출력과 효율을 동시에 잡았다. 배기량은 줄었지만 출력은 충분하다. 저속에서 풍만한 토크가 살아나고 회전수를 올렸을 때 시원한 한 방도 남아 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히 느껴진다. V6 슈퍼차저 엔진의 드라마틱한 회전 질감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며, V8 엔진의 야성적인 힘과는 거리가 멀다.

뽑으면 권총이 될 것 같은 기어 레버. 성능으로 보나 스타일로 보나, 007의 본드카로 제격이다

F-타입은 앞서 시승했던 둘보다 신사적으로 달렸다. 펑펑 터지는 배기음을 제외하면 엔진은 잘 정제된 전기모터처럼 힘을 냈고,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은 노면 충격을 온전히 상쇄하며 차체를 진정시켰다. F-타입은 여전히 세련된 감각으로 선회한다. 엔진에서 52kg, 새로운 시트에서 8kg을 감량해 V8 모델보다 한결 날카로워졌으며 여전히 언더스티어와 오버스티어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운전 재미로 따지면 카이맨과 370Z의 손을 들어줄 수 있지만, 카이맨보다 부드러우며 370Z보다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다. 즉, F-타입은 본격적인 트랙보다 도심을 누비는 세련된 장난감이며 영리하게 진화한 현대적인 스포츠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8880만 원의 가격은 F-타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한몫한다. V6 모델보다 최소 1180만 원 저렴한 가격으로 F-타입의 관능적인 매력을 누릴 수 있다. 그동안 F-타입은 매력적인 모델임이 틀림없었지만 제법 큰 비용이 따랐다. 게다가 비슷한 가격대에 잘나고 멋진 라이벌이 차고 넘쳤다. 비록 매끈한 V6와 터프한 V8은 포기해야 하지만 저렴한 P300은 F-타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다.

 

이번에 만난 3대의 스포츠카 모두 실용성을 과감히 포기한 2시터 스포츠카다. 오직 높은 연비와 실용성만 추구하는 냉정한 자동차 생태계에서 스포츠카의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마치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감각기관으로 멸종한 생물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날, 3대의 스포츠카는 나름의 생존 전략으로 우리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370Z는 마치 야생마처럼 짜릿한 스릴을 주었고 카이맨은 레이스카에 버금가는 활기로 우리를 놀라게 했으며, F-타입은 고급스러운 품격과 뜨거운 열정으로 보답했다. 나는 시승을 마치며 그들의 생존 가능성을 지지하기로 했다. 빨리 달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변치 않을 테니까.

 

Nissan 370Z

Price 5190만 원

Engine 3696cc V6 가솔린, 333마력@7000rpm, 37.0kg·m@5200rpm

Transmission 7단 자동, RWD

Performance 0→100 5.5초, 250km/h, 8.8km/ℓ, CO₂ 198g/km

Weight 1555kg

Jaguar F-Type P300

Price 8880만 원

Engine 1997cc I4 가솔린 터보, 300마력@5500rpm, 40.8kg·m@1500~4500rpm

Transmission 8단 자동, RWD

Performance 0→100 5.7초, 250km/h, 9.8km/ℓ, CO₂ 172g/km

Weight 1650kg

Porsche 718 Cayman

Price 8200만 원

Engine 1988cc F4 가솔린 터보, 300마력@6500rpm, 38.7kg·m@1950~4500rpm

Transmission 7단 PDK, RWD

Performance 0→100 4.7초, 275km/h, 9.4km/ℓ, CO₂ 179g/km

Weight 1440kg

김장원 | 사진 최대일

김장원

너무 진지할 필요 없어요. 쉽고 즐거운 자동차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bejangwon@carmagazi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