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석 칼럼] 도플갱어 자동차 디자인

‘도플갱어’라는 단어를 아는가? 자신과 쌍둥이는 아니지만, 완전히 똑같거나 거의 비슷하게 생긴 다른 사람을 뜻한다. 도플갱어는 사람뿐 아니라 자동차에도 적용할 수 있다. 도로를 돌아다니는 차를 보라. 모두 독창적인 디자인을 원하지만, 도플갱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앞 그릴이 대표적이다.

‘큰 것이 더 좋다’는 법칙을 따라 만든 탓에 사람들이 그릴을 보고 가장 먼저 인식하는 것이 바로 크기다. 모든 브랜드가 가능한 한 그릴을 크게 만든다. 두 번째로 사다리꼴 모양을 들 수 있다. 밑부분이 더 길거나 그 반대가 되도록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경향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곡선을 더해 브랜드만의 그릴을 만든다. 여기에 지나치게 큰 브랜드 엠블럼을 빼먹으면 안 된다. 엑스트라 라지 크기의 그릴 가운데 라지 크기의 크롬 엠블럼을 단다.

아우디와 쉐보레, 아우디와 스바루를 보면 도플갱어를 찾은 것 같다. 재규어는 새로운 그릴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최근에 나온 링컨의 신형 컨티넨탈에서 비슷한 모양을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고급 브랜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그릴도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직사각형 안에 엑스트라 라지 크기의 삼각별 엠블럼을 달아놨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도플갱어 찾기는 그릴에 그치지 않고 테일램프에도 계속된다.

어큐라부터 볼보, 스바루, 토요타까지 테일램프를 디자인할 때 랍스터 집게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ㄷ’자형 테일램프는 너무 흔해졌다. 일부 모델은 부드러운 표면에 단순한 그래픽을 넣지만, 혼다 시빅은 랍스터 집게발 모양을 강조하기 위해 3D 그래픽으로 차별화했다. 이런 디자인이 처음 나왔을 때는 ‘멋있고’, ‘참신’했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도플갱어가 튀어나오면서 평범해졌다.

10년 전엔 모든 자동차가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었다. 요즘은 그저 도플갱어 집단처럼 보인다. 왜 그렇게 됐을까? 패션 디자인처럼 자동차산업도 따라야 하는 유행 같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기가 침체되고 매출이 줄어들면서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여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자동차회사는 잘 팔릴지 확신이 없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놓기보다 안전하게 비슷한 패턴을 따라 한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경향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모든 자동차회사가 가능한 한 공기역학 성능이 뛰어난 자동차를 만들고자 하면서 전체적인 실루엣이 비슷해지고 있다. 앞부분을 볼륨감 있게 만드는 것은 보행자 안전 규정에 따른 것이며, 필러를 두껍게 만드는 것은 전복 사고가 났을 때 탑승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안전성을 위해 허리선을 점점 더 높이고 있다. 많은 디자인 특징이 안전 규정을 따른다. 가끔씩 자동차가 아닌 장갑차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하지만, 창조적인 디자인은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기발함을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독창성이다.

진정한 창조를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당연히 위험에는 실패가 포함돼 있다. 너무 독창적으로 보이게 만들다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렉서스는 이렇게 시도했다. 2014년 렉서스 IS에 처음 선보인 스핀들 그릴을 떠올려보자. 그들의 시도는 자동차를 지나치게 파격적으로 만들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작고 새롭게 디자인된 IS에서는 잘 어울렸지만 오래된 LS와 LX에 이식했을 때는 어색했다. 이는 독창적인 디자인이었지만, 나는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결국 F 스포트 트림에서 메시 패턴으로 바뀌고 나서야 멋있어졌다. 어쨌든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한 렉서스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어느 브랜드도 이전에 시도한 적 없는 독창적인 그릴 디자인을 들고 나오길 바란다. 너무 이상한 나머지 다른 브랜드로 고객이 발걸음을 돌리게 해서는 안 된다. 보다 독창적인 브랜드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독창성은 전체적인 디자인 테마뿐 아니라 사소한 디테일에서 더 많이 드러날 것이다. 창조적인 결과는 용감해야 나올 수 있다. 자동차회사여, 용감해져라.

글 : 임범석(미국 ACCD를 졸업하고 혼다 디자이너를 거쳤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ACCD 교수를 역임하며 미래 자동차업계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웠다. 2016년부터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 글로벌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다)

임범석 교수

미국 ACCD를 졸업하고 혼다 디자이너를 거쳤다. 이후 한국인 최초 AACD 교수를 역임하며 미래 자동차업계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웠다. 2015년부터 중국으로 활동무대를 넓혀 글로벌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