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파(Nappa) 가죽의 진실

가죽 시트가 직물 시트를 밀어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차지한 지 오래다. 이제는 그냥 가죽으로도 모자라 ‘나파 가죽’을 내세운다. 도대체 나파 가죽이 뭐길래?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파 가죽’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게 분명하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물론 현대자동차와 르노삼성 등 여러 브랜드가 나파 가죽을 인테리어에 사용하기 때문. 나파 가죽과 붙어 다니는 수식어는 주로 ‘부드러운’, ‘고급’, ‘최상의’ 같은 것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파 가죽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냐고? 모호한 나파 가죽의 정의 때문이다. 원래 나파 가죽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나파’에서 생산하던 가죽이다. 지금은 화학 가공처리 기술의 발달로 부드러워진 가죽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파지역에서 생산한 부드러운 양가죽은 전 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얻게 된다. 라이밍 과정, 크롬 태닝, 밀링 가공 같은 가죽 관련 용어는 중요하지 않다. ‘나파에서 만든 부드러운 양가죽=나파 가죽’이라고 기억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1990년을 끝으로 나파의 태너리(가죽 공장)는 전부 문을 닫았다. 더이상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 문제가 불거졌던 탓이다. 보쌈도 아닌데, 원조가 사라졌다.

그럼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파 가죽의 개념이 바뀌었다. 이젠 양가죽이 아닌 소가죽으로 만든 가죽도 나파 가죽이라 부른다. ‘나파에서 만든 부드러운 양가죽’에서 ‘나파’와 ‘양’이 빠지고 ‘부드러운 가죽’만 남은 것이다.

혼란스럽겠지만, 정리하자면 1) 원래 나파 가죽은 나파에서 만든 부드러운 양가죽이다. 2)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의미가 희석되었다. 3) 현재는 양가죽이건 소가죽이건 부드러운 천연가죽이면 통칭 나파 가죽이라고 칭한다.

따라서 나파 가죽이라고 무조건 고급스러움과 연관 짓는 건 곤란하다. 값싼 저질 가죽은 내구성과 착좌감이 인조가죽만 못하다. 확인 결과, 카탈로그에 가죽의 원산지와 등급을 표기한 예가 없었다. 다시 말해, 소비자가 나파 가죽 옵션을 선택하더라도 양가죽인지 소가죽인지, 이탈리아산인지 중국산인지 알 길이 없다는 뜻이다. 같은 나파 가죽인데도 브랜드나 모델에 따라 주름지는 정도나 부드러움의 정도가 다른 것도 그래서다. 그러니 앞으로 누군가 ‘이 차는 나파 가죽을 사용해 부드럽고 고급스러워 최상의 안락함을 제공한다’라고 말한다면, 일단 눈을 치켜뜨자.

박호준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엉덩이는 무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