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E-페이스, 형만 한 아우 있다

F-타입의 레이싱 DNA와 F-페이스의 SUV 노하우를 바탕으로 탄생한 E-페이스는 재규어의 유망주가 확실하다

재규어를 매력적이라고 느낀 적이 없다. 멋있고 잘 달리는 건 알겠는데, 굳이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는 소리다. ‘주면 받을 거면서 거짓말하고 있네’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심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사 누군가 당장 재규어를 주더라도 처치 곤란이다. 마음에 없는 차를 비싼 유지비 내가며 탈 이유는 없지 않나. 더 솔직히 말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드림 카가 뭐냐고 물었을 때 재규어를 1순위로 꼽는 사람은 드물다. 실제로 재규어는 2017년 4125대를 팔아 수입 승용차 브랜드 중 12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F-페이스가 판매량의 26.3%를 뒷받침한 덕이다.

그래서 E-페이스의 열쇠를 받아 들었을 때까지도 감흥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시승 후 마음이 180° 바뀌었다. 원고를 쓰는 지금도 E-페이스가 눈에 어른거린다. 일단, E-페이스는 실물파다. 매끈한 도장과 탄력 넘치는 몸매는 실제로 봐야 멋지다. 한 눈에도 E-페이스가 F-타입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시작은 헤드램프다. F-타입의 헤드램프는 정면에서 보기엔 작고 둥글지만, 보는 시점을 차의 측면으로 옮겨갈수록 길쭉한 럭비공처럼 생겼다. 이는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보닛과 조화를 이뤄 차의 앞부분을 더욱 날렵하게 보이게 한다. 헤드램프에서 운을 띄운 날렵함은 벨트 라인을 타고 A필러가 시작하는 지점으로 이어진다. A필러에서 위아래로 나뉜 윈도 서라운드는 뒷유리 언저리에서 다시 만나는데, 전체적인 모양이 뾰족한 화살촉처럼 생겼다. 뒷바퀴 위 성난 엉덩이 역시 F-타입과 닮았다. 배기구와 리어 램프 사이에 칼로 그어 놓은 것처럼 뚜렷한 라인이 들어가 있는 것도 마찬가지. 물론 E-페이스는 F-타입처럼 2인승 쿠페가 아니기 때문에 비율 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다.

베이지색 가죽을 선택했으면 조금 나았으려나?

실내에서도 닮은꼴은 이어진다. F-페이스의 기어 레버가 레인지로버처럼 둥근 다이얼 방식인 것과 달리 E-페이스는 F-타입과 같은 권총 손잡이 모양이다. 동승석에 마련된 세모꼴 손잡이와 라이카 렌즈를 흉내 낸 공조장치 다이얼 역시 F-타입의 그것과 판박이다. 다만, 프리미엄 이미지를 내세우는 차의 인테리어치고 단조로운 느낌이 든다. 재규어도 이를 의식했는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은빛 알루미늄을 곳곳에 사용했다. 또한, 앞 유리 하단에 큰 재규어를 뒤따르는 새끼 재규어 데칼을 숨겨 놓았고 공조 장치 아래 수납 공간과 센터 콘솔박스 바닥에 재규어 무늬의 고무매트를 깔았다. 사소한 것들이지만, 귀엽게 봐줄 만하다.

자고로 기어 레버는 잡는 맛이 있어야지

외모가 F-타입을 빼닮았다는 건 확인했다. 다음은 주행 성능을 살펴볼 차례다. 이안 칼럼은 E-페이스의 주행 감각이 키 큰 핫 해치를 운전하는 느낌일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길 바라며 시동 버튼을 눌러 자고 있던 재규어를 깨웠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교통량이 적은 도로에 들어서기 무섭게 곧바로 주행 모드를 다이내믹으로 설정했다. 기어 레버를 왼쪽으로 당겨 변속 세팅도 스포츠로 바꿨다. 항속 주행 중 갑자기 가속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았다. 운전자가 달리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챈 E-페이스는 순식간에 기어를 내려 물고 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2.0ℓ 인제니움 엔진이 rpm을 올리며 울부짖는 소리는 사자의 포효만큼 우렁차진 않지만, 재규어의 울음소리 정도는 된다. 두툼한 토크를 바탕으로 최고 249마력을 발휘하는 E-페이스는 속도가 올라가도 노면을 잘 붙잡으며 달렸다. 상황에 따라 동력을 앞뒤로 영리하게 나누는 드라이브 라인 덕이다. 때때로 어떤 차는 매우 빠르게 달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정숙하거나 부드러워서 재미없는 경우가 있는데, E-페이스는 그렇지 않다. 줄곧 신나게 달리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시승 중 패들 시프트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굳이 임의로 조작하지 않아도 9단 자동변속기가 재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본격적인 레이싱을 즐기고 싶은 운전자를 위해 랩타임, 중력가속도, 스로틀과 브레이크 페달링을 기록하는 기능도 있다.

치솟은 아드레날린 수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주행 모드를 에코로 바꿨다. 에코 모드를 시작하면 계기반에 속도, 가속, 브레이크 점수를 보여주는 아이콘이 등장한다. 급가속이나 급제동을 하면 1~5단계로 나눠진 해당 아이콘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식이다. 컴포트 모드는 다이내믹 모드에 비교해 한결 나긋나긋하다. 주행 모드에 따라 뚜렷하게 달라지는 세팅 값은 다양한 활용도를 지녀야 하는 SUV의 특성을 잘 반영했다. 레인·아이스·스노 모드에서 활성화할 수 있는 저마찰 발진 기능과 앞뒤 휠 아치에 넣은 가니시,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은 오프로드 주파 능력마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제 보니 E-페이스는 욕심꾸러기다.

E-페이스는 현재로선 경쟁자가 없어 보인다. 푸조는 약하고 볼보는 무르다. X1과 X2는 부재중이고, Q3는 소식조차 없다. 그나마 메르세데스-벤츠가 있지만, 경쟁모델을 논하기엔 가격대와 차체 크기가 조금 다르다. 재규어에 의하면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소형 SUV가 920만 대 팔렸다고 한다. E-페이스는 그 인기를 차지하기에 충분하다.

LOVE  화끈한 주행

HATE  화끈(?)한 가격

VERDICT  재규어가 달라졌어요

Jaguar E-Pace P250

Price 6160만 원

Engine 1998cc I4 가솔린 터보, 249마력@5500rpm, 37.2kg·m@1200~4500rpm

Transmission 9단 자동, AWD

Performance 0→100 7.0초, 230km/h, 9.0km/ℓ, CO₂ 189g/km

Weight 1895kg

박호준 사진 김범석

박호준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엉덩이는 무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