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 칼럼] 휠베이스에 관한 고찰

자동차의 목적에 따라 휠베이스는 달라진다. 하지만 크고 넓은 차를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의 자동차 선택 패턴은 단순하다

자동차 선택에 있어 만국 공통의 최우선 판단 기준은 역시 주머니 사정이다. 그런 뒤 예산 범위 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브랜드를 고르고, 개인적 취향이나 필요, 주변의 정서에 따라 각자 맞는 모델을 찾는 식이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의 자동차 선택 패턴은 단순하다. 국산차보다는 수입차, 소형차보다는 중대형 승용차에 대한 선호가 극단적으로 높고, 세단과 SUV가 아닌 승용차를 찾아보기 힘들다. 크고 넓은 차를 선호하지만, 달리기 또는 핸들링 성능보다는 높은 연비와 디자인을 더 우선하는 경향도 많다. 한국 시장에는 자동차를 사회적 서열의 척도로 여기는 사회·문화적 풍토가 만연하기 때문에, 엔지니어 입장에서 해석의 여지가 없다.

이유는 다르지만 중대형 승용차를 선호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반면, 유럽에선 대형 승용차가 매우 드물다. 유럽 승용차 대부분은 소형 해치백이고 인기 중형 모델도 세단보다 왜건 형태가 주를 이룬다. 유럽과 미국의 자동차 선호도가 이처럼 명백한 대조를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선 2시간 정도 거리는 ‘근처’라 부를 정도로 장거리 주행이 일상적이다. 도로 폭이 넓고 커브도 적어서 안정적인 크루즈 성능이 중요하다. 이에 비해 유럽은 도로가 좁고 커브, 회전 교차로가 많기 때문에 자동차의 핸들링과 달리기 성능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 유럽, 두 문화권은 단지 각 지역의 도로 환경에 맞는 자동차의 인기가 높을 뿐이다.

소형차와 중대형차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휠베이스의 길이다. 휠베이스는 자동차의 주행 안정성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안정성은 자동차가 횡방향으로 가해지는 불규칙한 자극을 얼마나 잘 견디며 달릴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운동하는 물체의 동역학은 다음의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힘(모멘트)의 총합 + 감쇠력 + 탄성 저항력 = 외력’. 자동차의 방향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직진축과 자동차의 머리가 이루는 각도로 알 수 있다. 감쇠력과 탄성 저항력 모두 자동차의 방향 전환을 방해하는 쪽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자극에 둔감해진다. 탄성 저항은 회전각이 커질수록, 감쇠력은 회전각의 시간 변화율이 커질수록 커진다. 감쇠력과 탄성 저항은 타이어의 접지력, 자동차의 질량과 관성모멘트 그리고 휠베이스의 직접적 지배를 받는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감쇠력은 휠베이스가 길수록 커진다. 탄성 저항력은 기본적으로 휠베이스가 길수록 커지지만, 무게중심이 후방에 쏠려 있다면 일정 속도에 도달했을 때 자세가 불안정해진다. 요컨대 휠베이스가 길어지면 차체의 회전을 방해하는 전체적 저항이 커져 안정성이 높아진다. 비대칭 하중 배분으로 인해 원치 않는 회전모멘트가 발생해도 숏 휠베이스보다 회전각이 작다. 제동 시 앞바퀴로의 하중 이동도 숏 휠베이스보다 적어 뒷바퀴의 접지력 손실도 적다.

하지만 휠베이스가 길어지면 과속방지턱 같은 장애물에 바닥이 닿을 가능성도 커진다. 이 문제를 피하려면 차의 지상고를 높여야 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한 무게중심 상승은 또 다른 부작용이다. 반대로 휠베이스가 짧으면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민첩성은 좋아진다. 각자의 도로 환경에 필요한 미덕이 민첩성이었던 유럽은 소형차를, 안정성이 필요했던 미국은 대형차 위주로 발전한 것이다.

이 밖에도 휠베이스 치수 결정에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휠베이스 황금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동차 제조사는 자동차의 설계, 용도, 미관, 실용성, 생산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휠베이스의 치수를 결정한다. 휠베이스의 길이는 실내 공간의 넓이도 결정짓는다. 휠베이스가 길면 내부 공간도 넓어진다. 선택한 휠베이스 치수가 자동차의 용도에 적합한지도 살펴봐야 한다. 휠베이스가 길어지면 차의 전체적인 길이가 늘어나고, 따라서 프레임과 서스펜션을 보강하기 위해 추가 비용이 생긴다. 완성된 자동차의 미관도 고려해야 한다.

글 : 김남호

김남호 박사는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메커니컬 엔지니어링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르노에서 F1과 첫 인연을 맺었고, 현재 르노 스포트 F1 팀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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