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클래스의 색다른 변화

명성을 지키며 새롭게 태어난다는 건 대단히 어렵고 힘든 일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든든한 동맹군 AMG와의 협업으로 G-클래스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모델로 바꾸어 놓았다

자동차 브랜드는 그들의 이익과는 별개로 전통을 이어오는 모델이 존재한다. 물론, 그 모델이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준다면 최상의 모델일 것이다. 메르세데스에 G- 클래스가 바로 그런 모델이다. 이번에 공개된 새로운 G-클래스는 언제나 그렇듯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은 전혀 다른 차가 되었다.

프랑스 페르피냥 공항. 비행기에서 내리자 담 넘어 가지각색의 G-클래스가 서 있다. ‘어떻게 변했을까?’ 한국과 체코, 폴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등 총 28명의 기자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공항은 따로 입국 절차 같은 것도 생략할 만큼 크기가 작았다. 정기적인 운항도 거의 없는 장소. 그들이 왜 이런 곳을 시승 장소로 잡았는지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곳은 1979년 초기 모델의 론칭 행사가 열렸던 장소다. 참고로 ‘G-클래스’라는 모델명은 1993년부터 사용됐다. 얼마 되지 않은 관광객들이 새로운 G-클래스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제법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덕분에 나도 그들 틈에 끼었으니, 유럽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내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출발 전 천천히 G-클래스를 둘러볼 수 있었다.

G-클래스는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입히기 매우 어려운 모델(불가능하다는 게 맞겠다)이다. 럭셔리 오프로더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 존재하기에 그렇다. 이전 모델은 동그란 헤드램프 아래로 가로 형태의 주간 주행등을 입혔지만, 이번 모델은 램프 전체에 동그랗게 주간 주행등을 심었다. 센스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귀엽다’라는 반응이었다. 귀엽든 센스가 넘치든 간에 긍정적으로 디자인이 바뀌었다는 건 확실했다. 보닛 위에 돌출된 턴 시그널 램프, 누르고 문을 여는 손잡이(문을 닫는 소리까지 이전 모델과 똑같이 만들었다), 동승자의 몸을 지탱해줄 대시보드 손잡이, 디퍼렌셜 록, 그리고 트렁크에 자리 잡은 스페어타이어가 여전히 G-클래스임을 암시한다. 디자인은 크게 바뀐 건 없지만, 숫자는 많이 바뀌었다. 전장은 53mm 길어지고 전폭은 무려 121mm 넓어졌다.

실내는 전통과 현대의 오묘한 조화로 꾸몄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와이드 스크린 콕핏, 커맨드 시스템, 그리고 앞쪽에 자리한 디퍼렌셜 록 버튼(무려 3개다) 등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느낌을 전해줬다. 특히 스티어링 휠의 디자인 변경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손끝에서 느껴지는 촉감도 매우 좋았다. 기어 레버 역시 스티어링 칼럼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기존 자리에는 커맨드 시스템이 대체하며 수많은 명령을 기다린다.

이번 시승에는 G 500과 AMG G 63을 몰아볼 수 있었는데, 먼저 G 500을 타기로 했다. G 63을 먼저 느끼고 G 500을 탄다면, G 500이 의문의 일패를 당할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웅장한 배기음을 토해내며 이내 잔잔한 음색으로 바뀐다. 우리나라에는 G 500이 들어오지 않아(350 d와 G 63, G 65만 판매) 처음 타보는 모델이다. 투박한 외모와는 반대로 대배기량 왜건을 몰고 있는 듯 정제된 움직임을 보여주며 주차장을 부드럽게 빠져나간다. 이윽고 도로 끝이 지평선과 맞닿은 곳에 다다랐다. 본격적인 주행이 가능해진 장소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자 rpm이 치솟으며 배기 사운드가 한층 두터워진다. 가속 페달은 신경이 곤두선 채 오른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한다. 422마력의 최고출력은 언제나 경쾌한 답을 내놓으며 화끈하게 속도계를 올린다. 태코미터가 치솟을수록 배기 사운드는 더욱 격정적으로 변하고 업 시프트 바로 전까지 황홀경에 빠뜨리며 기어를 바꿔 문다. 더욱 좋은 소식은, 9G 트로닉 덕에 이런 기쁜 사치를 여러 번 느낄 수 있다는 것.

유럽 시골 동네는 유난히 원형 교차로가 많다. 교차로에서 코너링이 얼마나 변했는지 직접 느꼈다. 분명 다른 차다. 이제 구형이 돼버린 G-클래스는 돌덩이 같은 승차감과 둔하게 느껴진 움직임으로 ‘그냥 오프로더’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G-클래스는 과거의 단점을 말끔히 씻어내며 패밀리 SUV 영역까지 넘보기 충분했다. SUV라는 느낌보다는 고성능 왜건의 느낌이 강하다. 물론, 왜건보다 시야도 좋다. 마치 GLC 43이 SUV라기보다 핫 해치 같은 움직임을 보여줬을 때와 같다. 핵심은 더블 위시본 프런트 서스펜션과 어댑티브 댐퍼. 온로드 주행 성능을 높이고자 AMG와의 협업으로 G-클래스에 처음 도입됐다. 댐퍼는 노면 상태를 파악해 적합한 댐핑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온로드에서는 더욱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오프로드에서는 단단한 댐핑을 보여주며 승객을 안심시킨다. 이 모든 것에 기초는 단연 프레임이다. 메르세데스 오프로드 제품 그룹 총괄 구나 구텐케 박사는 “사다리 타입 프레임에 서스펜션과 구동계를 연결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새로운 G-클래스는 크기는 커졌지만, 170kg 정도를 감량했다. 초고강도 철과 알루미늄 등 여러 새로운 소재를 복합적으로 적용한 성공적인 다이어트다. 특히, 보닛과 도어는 알루미늄이다. 뒤틀림 강성은 약 55% 높였으니, 역동성과 안락함 그리고 실내에서 느껴지는 소음과 진동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전혀 다른 차라고 생각된 이유는 이렇듯 복합적인 요인 덕분이다.

드디어, G 63을 몰아볼 시간이다. G 500을 몰면서 좋다는 인상은 당연했지만, 한편으로는 ‘G 63은 도대체 어떻게 바뀐걸까?’였다. 외형상 큰 차이라면, 라디에이터 그릴이 세로(G 500은 가로) 형태라는 것과 2열 도어 양옆 하단으로 뽑아낸 머플러다. 기존 G 63은 5.5ℓ 바이터보 엔진이었지만, 당연히 4.0ℓ 바이터보 엔진으로 바뀌었다. 출력은 585마력, 최대토크는 무려 85.7kg·m. 덕분에 0→100km/h까지는 단 4.5초면 충분하다. 정통 오프로더에 이런 수치가 나온다는 게 어이없지만, 이런 모델을 만든 이가 AMG라면 수긍이 간다. 배기음은 G 500보다 성량이 풍부하다. 나파 가죽으로 감싼 스티어링 휠을 잡고 가속 페달을 힘껏 누르자 무섭게 포효를 시작하며 등을 시트에 묻어버린다. 속도는 빠르게 올라가지만, 불안한 구석은 없다.

가벼워진 무게와 새로운 서스펜션 설정 덕분에 믿음이 간다. 감성적인 면은 배기 사운드만으로도 충분하다. 멀게만 느껴지던 이정표는 순식간에 머리 위를 스치며 사라졌다. 기존 모델은 구동력을 앞뒤 50:50으로 나누었던 반면, 이번 모델은 40:60으로 뒤쪽에 좀 더 할애했다. 정통 오프로더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은 채 온로드에 많은 공을 들인 모습이다. 시승 코스의 일부 구간은 와인딩 코스다. 유럽 시골길은 다 비슷하지만, 산길을 달리는 건 솔직히 겁이 날 정도다. 도로의 폭이 좁은 건 차치하더라도 가드레일이 없는 구간도 많고 있더라도 빈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3분 정도 스티어링 휠을 돌리고 강한 감속이 반복되니 그런 불안한 마음은 모두 사라졌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언제나 믿음직스럽게 반응했다. 운전자가 의도하는 만큼, 밟는 대로 속도를 줄이기에 정확하게 코너를 대할 수 있다. 물론, 큰 힘으로 페달을 밟으면, 덩치가 무색하게 잡아 세운다. 유일한 불만은 2열에 대충 던져 놓은 짐이 앞으로 쏠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목적지. 산길 입구에 자리 잡은 장소에는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G-클래스가 여러 대 있었다. 이어 관계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점심 먹고 오프로드를 탈래? 아니면 타고 와서 먹을래? 원하는 대로 해주지만, 타고 와서 먹는 걸 추천해. 1시간 정도 달릴 거야.” 미러 렌즈를 끼고 있는 관계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옅은 미소만 보이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출발점에 서 있는 G- 클래스는 큰 바위에 앞바퀴를 걸쳐 놓고 있었다. 낑낑대며 운전석에 오르자 인스트럭터가 동승석에 탔다. 출발 신호에 맞춰 가속 페달을 누르자 마치 평치를 출발하듯 차가 움직였다. 이윽고 사선으로 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라고 말을 던졌다. 분명 일반 SUV로는 불가능한 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건 앞으로 일어날 코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산길을 따라 속도를 올리며 달리다 보니 거대한 돌산이 나타났다. 아무리 밑창에 좋은 소재를 쓴 산악용 신발이라도 팔을 쓰지 않고는 불가능한 코스. 평평한 흙으로 된 코스도 아닌, 중간중간 큰 바위와 움푹 패인 땅. 먼저 올라가고 있는 G-클래스로 인해 구르기 시작한 돌멩이는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구르고 나서야 멈추는 그런 코스였다. ‘이런 길을 1시간을 다닌다고?’

앞차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출발 신호를 받았다. 범퍼가 큰 돌에 걸릴 것 같았지만, 보닛이 하늘로 뜨더니 등반을 시작했다. 3m 정도 움직이더니 타이어는 헛돌 뿐 앞으로 나가질 않았다. “컴포트 모드는 여기까지”라는 짧은 말을 끝내고는 로 기어 버튼을 누르고 대시보드에 자리한 마법의 아이템, 디퍼렌셜 록 버튼을 누르는 인스트럭터. 센터 디퍼렌셜을 잠갔다. 계기반에는 어느덧 ‘G-모드’가 활성화됐다. G-모드는 로 기어로 선택하거나 디퍼렌셜 록 버튼 중 하나만 눌러도 자동으로 변경된다. 이 모드는 댐핑과 스티어링 특성을 험로 주행에 특화 시키고 불필요한 변속을 막아주는 오프로드 전용 모드다. 단지 버튼 몇 개 눌렀을 뿐인데 차는 오르기 시작한다. 큰 바위를 피하려 하자 인스트럭터는 그냥 넘어가라며 돌리기 시작한 스티어링 휠을 반대로 낚아챘다. 오르막보다 더한 내리막은 공포심이 더욱 배가된다. 주의 사항은 간단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말고 엔진 브레이크로만 내려가라.’ 사람의 발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려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인간의 보행 속도보다 더 느린 속도로 차근차근, 아주 간단하게 내려왔다. 때로는 뒤쪽 바퀴 하나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이후 코스는 G-클래스를 믿고 쉽게 오르고 내릴 수 있었다.

다음은 G 63에 올랐다. 이번에는 험로보다는 오프로드 고속 주행이다. 아무래도 공포심은 험로보다는 덜 할 거라고 생각됐다. 그냥 컴포트 모드로 달려도 된단다. WRC 코스처럼 생긴 길을 달리기만 하면 된다. 주행을 시작하자 인스트럭터는 속도를 올리라고 재촉한다. 60km/h까지 속도를 올렸을 때 처음 등장한 코너에서 가속 페달을 떼 속도를 줄이려고 했지만, 속도를 더 올리고 돌아나가라는 말만 한다. 매우 빠른 속도라고 생각했지만, 인스트럭터는 무언가 크게 실망한 듯한 뉘앙스로 “모어…, 모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아주 잠깐, 인스터럭터가 내뱉는 ‘more’라는 말이 영어가 아닌, 내가 알 수 없는 언어의 ‘줄이다’라는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라면 눈앞에 다가온 코너가 처음이자 마지막 코너가 된다는 소리다.

그는 영어를 하고 있던 게 맞았다. 마치 아스팔트에서 부드럽게 돌아 나가듯 아주 쉽게 코너를 빠져나갔다. 이어진 코스는 시원하게 뚫린 직선 주로였다. 과감하게 가속 페달을 눕혀 웅장한 사운드를 토해내게 했다. 속도계는 80km/h 되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정신 차리고 운전에 임했는데, 갑자기 길이 안 보인다. 바퀴 자국이 없는 게 아닌, 길이 사라졌다. 무언가 이상해서 브레이크를 밟으려는 찰나, 인스터럭터가 또 앵무새 놀이를 시작한다. “모어! 모어!” 순간, 정신없이 비포장 도로의 상태를 읽던 서스펜션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시야에 들어온 길은, 이상하리만치 차와 떨어져 있었다. 나의 동공은 커질 대로 커졌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건 인스트럭터의 환호였다. “Yeah!” 그렇다. 우리 일행은 하늘을 날았다. 자동차를 타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타이어가 바닥에 닿자 서스펜션이 잔뜩 긴장하며 충격을 최소화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SUV의 열풍은 세계적이다. 그래서 G-클래스는 경쟁 브랜드를 의식해 온로드 성능과 인테리어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계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G-클래스는 그냥 G-클래스일 뿐입니다. 다른 브랜드가 생각하는 경쟁 모델이 G-클래스일 순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경쟁 모델은 없습니다.”

글 최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