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석 칼럼] 자동차 디자이너여, 전기 SUV부터 시작하라

나는 젊은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전기차 SUV 스케치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지난 4월 2018 베이징 모터쇼에 다녀왔다. 몇 년 전 중국 모터쇼는 짝퉁 디자인과 비현실적인 컨셉트카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뻔뻔스럽게 베낀 디자인을 발견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그래도 베이징 모터쇼는 여전히 명백한 중국 모터쇼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과시, 과감하고 실험적인 신기술, 극단적인 디자인이 넘쳐난다.

요즘 중국에서 탄생한 자동차는 광기가 서려 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이다. 여전히 중국은 10년이 넘도록 두 자릿수의 판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작년은 주춤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낮은 비율로 성장했는데 이는 호황기가 끝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해도 될까?

2017년은 낮은 비율로 성장했지만 거의 2900만 대의 차가 팔렸다. 이 판매량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팔린 판매량의 두 배 이상이다. 지난 10년 동안 정신없이 성장한 중국 시장은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10년 전인 2007년에는 10분의 1 정도였다. 그러나 베이징과 상하이를 포함한 여러 대도시는 빠르게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중국에서 자동차를 파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모든 자국 및 해외 브랜드는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으며 그 대답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바로 전기차다. 2018 베이징 모터쇼 어디에서나 전기차 컨셉트를 만날 수 있었다. 전기차의 범위는 추상적인 모형 모델부터 양산에 근접한 모델까지 다양했다. 중국 정부는 계속해서 전기차 판매를 장려하고 있다. 전기차는 판매세가 없다. 이 정책은 2020년까지 계속된다. 이로 인해 오는 2025년 중국 자동차 판매량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5~50%로 예상된다.

나는 2018 베이징 모터쇼에서 전기차에 나타난 재미있고 공통적인 특징을 세 가지 발견했다. 첫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벤처기금에서 수억 달러를 모아 전기차 프로토타입을 내놓는다. 둘째, 이름 있는 유럽 브랜드에서 디자인 책임자를 찾고 중형 SUV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보통 이런 모델은 얇고 멋있는 헤드램프와 실내에 큰 터치스크린이 있다. 셋째, 이름을 자동차회사처럼 보이지 않는 영어나 독일어로 지었다. ‘링크 & 코(Lynk & Co)’, ‘바이턴(Byton)’, ‘니오(Nio)’, ‘벨트마이스터(Weltmeister)’, ‘싱굴라토(Singulato)’, ‘에이아이웨이스(Aiways)’, ‘엑스팽(XPeng)’ 같은 브랜드를 들어본 적 있는가? 모두 새로 태어난 중국 전기차회사다.

나는 베이징 모터쇼의 전기차 분야에서 적어도 24개가 넘는 회사를 봤다. 그럼 어떻게 1~2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이렇게 많은 중국 전기차회사가 튀어나올 수 있는 걸까? 나는 전기차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전기차의 단순한 구조와 기술 특성 덕분에 자동차산업의 진입장벽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전기차를 개발하는 것은 내연기관 차보다 훨씬 간단하다. 먼저 움직이는 부품의 수가 확 줄어들었다. 피스톤이나 크랭크 샤프트 그리고 점화 플러그 같은 부품이 필요 없다. 배터리팩과 서스펜션, 터치스크린 같은 부품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다시 말해 수억 달러가 있으면 누구든지 전기차회사를 만들 수 있다. 그럼 다른 전기차와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까? 답은 디자인이다. 나는 젊은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전기차 SUV 스케치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중국에서 전기차가 늘어나는 현상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베이징 모터쇼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린 곳은 바로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SUV였다. 세단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24″ 크롬 휠을 단 SUV였다. 이 차는 엄청 크고 화려한 빨간색 외장에 커다란 크롬 그릴로 치장했다. 실내는 흰색 가죽으로 꾸미고 로즈 골드 색상으로 도금해 섬세함을 살렸다. 하긴 이보다 더 중국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임범석 교수

미국 ACCD를 졸업하고 혼다 디자이너를 거쳤다. 이후 한국인 최초 AACD 교수를 역임하며 미래 자동차업계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웠다. 2015년부터 중국으로 활동무대를 넓혀 글로벌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