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자의 오래달리기, 푸조 5008 SUV GT

사자는 단거리 강자다. 기습을 성공하지 못하면 사냥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프랑스 출신 사자는 달랐다. 오랫동안 멀리 잘 뛴다

GT는 그랜드 투어러의 줄임말이다. 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차라는 뜻이다. 재밌는 점은 가성비를 앞세우는 저렴한 가격대의 차부터 억 소리가 나는 슈퍼카까지 모두 GT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다 아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푸조 5008 SUV GT 때문이다. 5008 SUV는 1.6ℓ 디젤 엔진을 품은 알뤼르와 GT 라인 그리고 2.0ℓ 디젤 엔진의 GT로 트림이 나뉘어 있다. 지난 2월 GT 라인을 시승했으니, 이번엔 업그레이드된 출력을 자랑하는 GT를 불러냈다.

겉모습만 보면 하위 트림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사자가 할퀸 듯한 강렬한 후미등 디자인은 여전하다. 방향 지시등을 켜면 일반적인 차와 다르게 주황색 불빛이 아래에서 위로 사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그래픽도 마찬가지. GT라는 레터링을 제외하고서 유일하게 다른 점은 휠이다. GT만 19″ 휠을 신는다. 투톤 컬러를 선택할 수 있는 5008의 ‘쿠팡쉐’ 옵션과 짝을 이루듯 휠도 투톤이다. 개인적으로 18″ 휠보다 예뻐 보인다.

외부에 비하면 내부는 조금 더 차이가 있다. 알칸타라를 듬뿍 사용했다. 시트는 물론 도어 트림과 대시보드에도 알칸타라를 둘렀다. 그냥 두른 것도 아니고 퀼팅 자수를 입혀서 말이다. 시트만 보면 고급 세단이라 해도 믿겠다. 함께 탄 선배는 시승 내내 틈날 때마다 알칸타라를 어루만졌다. 그만큼 촉감이 좋다. 인테리어를 자세히 훑어보면 가죽, 직물, 알칸타라, 크롬,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가 섞여 있는데, 지저분하거나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잘 어울린다.

프랑스 출신이어서 그런지 역시 옷 입는 솜씨가 남다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아이-콕핏이다. 콕핏이라는 단어가 항공기의 조종석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일까? 5008의 운전석에 앉으면 파일럿이 된 기분이 든다. 팔각형에 가까운 작은 운전대, 비행기의 토글 스위치를 떠올리게 하는 공조 장치 버튼, 운전자 쪽으로 잔뜩 틀어진 디스플레이 덕이다. 전투기 조종간을 닮은 기어 레버도 멋지다.

달라진 점을 확인했으니, 이번엔 5008 GT가 이름값을 하는지 알아볼 차례다. 우선, GT는 안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랫동안 차 안에 갇혀 있는 게 고통스럽다. 앉는 자세, 즉 시트가 중요하다. 앞서 말한 디자인과 별개의 문제다. 제아무리 고급 소재를 사용한 시트여도 앉았을 때 불편하면 의미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5008의 시트는 두루 적당한 수준이다. 너무 푹신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쿠션이 몸을 잘 받쳐준다. 내 몸에 맞게 시트의 볼륨감을 조절할 수도 있다. 게다가 1열 시트에는 마사지 기능이 있어 휴식을 취할 때 유용하다.

2열에는 접이식 테이블이 있는데, 스마트폰을 거치해 동영상을 보거나 간식을 먹을 때 좋다. 등받이 각도와 시트 위치를 각각 독립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장점. 7인승이므로 3열까지 있지만, 앉았을 때 시야가 C필러와 D필러에 가려 답답하다. 굳이 7명이 타야 하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시트를 빼놓는 것도 방법이다. 트렁크 쪽에서 끈 하나만 잡아당기면 손쉽게 분리된다.

그리고 GT는 잘 달려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잘 달린다’는 폭발적인 가속 능력이나 예리한 코너링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장거리를 레이싱하듯 달리면 차보다 운전자가 먼저 지친다. GT의 주행 성능은 고속 주행에서의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 장거리 주행으로 주의력이 떨어진 운전자를 돕는 주행 보조 기능도 빠트릴 수 없다. 2.0ℓ 디젤 엔진은 배기량이 400cc 늘어나면서 최고출력은 60마력, 최대토크는 10.2kg·m 올랐다. 마력당 무게비를 따져보면 1.6ℓ 모델(1:13.6kg)보다 2.0ℓ 모델(1:9.5kg)이 더 가볍다.

이는 주행 중에도 느껴졌는데, 1.6ℓ 엔진과 달리 2.0ℓ 모델은 200km/h까지 어렵지 않게 도달한다. 150km/h 이상으로 달려도 불안한 기색이 없다. GT에만 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앞차와의 간격을 곧잘 유지하는 편이다. 옆 차선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경우를 테스트해보진 못했지만, 앞선 차가 속도를 줄이면 5008 GT도 부드럽게 감속했다. 차선을 넘어가면 스티어링 휠을 안쪽으로 돌려 사고를 막아주는 기능도 있다.

결과적으로, 5008 GT는 안락한 공간과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제공해 GT의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는 차다. 19″ 타이어를 신고도 14.2km/ℓ나 되는 고속도로 연비(실제 고속도로 주행 시에는 더 좋게 나온다)는 운전자에게 금전적 안정감(?)까지 준다.


LOVE 남들과는 다른 프랑스 감성

HATE 어드밴스드 그립 컨트롤은 어디 갔지?

VERDICT 여유가 있다면 GT가 맞다

Peugeot 5008 SUV GT

Price 5390만 원

Engine 1997cc I4 터보 디젤, 180마력@3750rpm, 40.8kg·m@2000rpm

Transmission 6단 자동, FWD

Performance 0→100 N/A, N/A km/h, 12.9km/ℓ, CO₂ 147g/km

Weight 1725kg

박호준 사진 최대일

박호준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엉덩이는 무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