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 10분의 사투, 레고 테크닉 부가티 시론 조립기

“이번 생에는 글렀어.” 부가티 시론을 처음 봤을 때 했던 말이다. 하지만 레고 테크닉 부가티 시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슈퍼카를 넘어 하이퍼카라고 불리는 부가티 시론을 손에 넣을 기회는 흔치 않다

부가티 시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다운사이징을 비웃는 W16 엔진과 4개의 터보,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2.5초도 걸리지 않는 비현실적인 가속 능력, 30억 원이 넘는 가격 말이다. 500km/h까지 적혀 있는 계기반과 플래그십 세단 부럽지 않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까지 이야기하려면 입이 모자랄 정도다.

그런데, 얼마 전 부가티 시론의 연관 검색어 하나가 더 늘었다. 바로 ‘레고 테크닉 부가티 시론’이다. 지난 6월 1일 공개된 레고 테크닉 부가티 시론은 57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품절 대란을 일으킬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레고 테크닉은 포르쉐 911 GT3 RS를 선보여 자동차와 레고 마니아를 열광시킨 전력이 있다. 레고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레고로 이런 것도 만든다고?’라는 호기심을, 레고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꼭 한번 만들고 싶다’는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3599개. 8분의 1 크기의 부가티 시론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레고 브릭의 개수다. 24시 레이스카가 1219개, 포르쉐 911이 2704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부가티 시론이 한층 더 복잡한 구조임을 가늠할 수 있다. 슈테판 빙켈만 부가티 대표는 “레고 테크닉 부가티 시론은 업계 최고의 두 브랜드가 만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결합을 보여주는 완벽한 본보기로 레고 및 부가티 팬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제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의 말이 사실일지 알아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직접 만들어보는 것.

850분의 사투, 도전의 시작!

0분
호기롭게 시작했다. 어림잡아 반나절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레고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나였다. 레고 테크닉 제품은 처음이었지만, 그래 봤자 레고라고 생각했다.


3분
조립에 앞서 2권으로 나뉜 조립설명서를 대충 훑어봤다. 공부할 때 예습이 중요하듯, 레고도 만들기 전 전체적인 조립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다.


75분
오랜만에 느껴지는 레고 손맛(?)이 반가웠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는 정교한 설계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만약 무언가 들어맞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의 실수이지 레고의 잘못이 아니다.


160분
순식간에 2시간 40분이 지나갔다. 무언가에 이토록 몰입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배는 쉬엄쉬엄하라며 아이스커피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한 모금 마신 후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혹시 쏟으면 큰일이니까.


255분
4시간이 지났지만,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건 리어 서스펜션과 엔진뿐이다. 이제 겨우 뒤쪽 절반을 완성했을 뿐인데, 슬슬 손가락이 아리기 시작했다.


365분
전면부를 완성했다. 16개의 노란 피스톤이 힘차게 솟구치는 걸 보니 아드레날린도 같이 솟구치는 기분이다. 이제 앞뒤로 나뉘어 있던 차체를 하나로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380분
문제가 터졌다. 차체 뒤쪽 엔진에서 나온 출력을 앞바퀴로 이어주는 동력축이 제자리를 벗어난 것. 어쩐지 순조롭다 싶었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분해한 후 다시 조립하려면, 최소 2시간 이상을 허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때 편집장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는 차분히 구조를 살펴보더니 집게를 이용해 손이 닿지 않던 동력축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450분
드디어 첫 번째 조립설명서를 끝내고 두 번째 조립설명서를 펼쳤다. 엔진, 서스펜션, 변속기, 섀시 등 자동차가 굴러가기 위한 기본 요소는 갖춘 상태다. 이제 멋진 외관을 만들어갈 일만 남았다.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아파 일어서서 조립했다.


520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일단,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는다. 벌겋게 달아오른 엄지와 검지는 힘을 잃었고, 검지 대신 사용하던 중지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눈이 침침해졌다. 조립에 필요한 브릭을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했다. 보다 못한 선배가 선수 교대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720분
내가 말한 반나절은 6시간이 아닌 12시간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아무튼, 꼬박 12시간 동안 만들었는데도 뜯지 않은 상자가 2개나 남아 있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반드시 완성해야만 했다.


790분
드디어 마지막 상자다. 부가티 시론은 어느새 꽤 그럴듯했다. 휠만 끼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앞범퍼와 사이드미러 등 소소한 부위가 남아 있었다.


850분
환호할 힘도 없었다. 조립설명서를 더 넘길 페이지가 없다는 걸 인지한 순간, “끝!”이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책상 위로 쓰러졌기 때문. 완성된 부가티 시론은 멋진 풍채와 사실적인 디테일을 뽐냈다. 만드는 과정에서 자동차 설계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단, 조립설명서에 경고 문구 하나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주의: 하루 만에 만들면 극도의 피로를 느낄 수 있음’이라고 말이다.

 

레고Ⓡ 테크닉 42083 부가티 시론 브릭수 3599개 크기 14cm×56cm×25cm 가격 57만 원

박호준 사진 김범석

박호준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엉덩이는 무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