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한 악동들의 반격, 푸조 208 & 르노 클리오

소형차의 천국 유럽. 특히 프랑스는 작고 날쌘 차를 만드는 데 일가견 있다. 우리는 앙증맞은 외모 속에 예리한 실력을 갖춘 프랑스 해치백의 가치를 돌아보기로 했다

해치백의 고향은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성장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수많은 예술품이 있어 예술과 낭만의 도시라고 불리지만, 도시가 오래된 탓에 건물 사이사이 골목길은 좁고 바닥은 우둘투둘 거칠다. 인류가 자연환경에 적응해 진화하듯, 자동차도 주행 환경에 따라 적응하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좁은 길을 어려움 없이 다니려면 아무래도 작은 차가 알맞았고, 깨끗하지 않은 길 위에서도 거친 진동을 능숙하게 다스리며 편한 승차감을 가져야 했다. 날래고 탄탄한 소형차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 대부분이 파리와 주행 환경이 비슷하고 생활 양식 또한 서로 닮아가다 보니, 인기를 끄는 자동차 역시 자연스레 비슷해졌다. 유럽의 주요 자동차 생산국인 프랑스와 영국, 독일과 이탈리아 어디든 작고 실용적인 차가 사랑받고 있다. 유럽 전역을 통틀어 잘 팔리는 차종은 해치백과 콤팩트 SUV로 나뉜다. 전에는 패밀리카에 더 알맞은 왜건과 미니밴의 인기도 높았지만, 이제는 SUV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지난해 유럽을 석권한 베스트셀러는 48만 대 넘게 팔린 폭스바겐 골프. 그 뒤를 이어 같은 보디 타입인 르노 클리오와 폭스바겐 폴로, 포드 피에스타와 푸조 208이 줄을 이었고, 닛산 캐시카이와 폭스바겐 티구안처럼 도심에 어울리는 콤팩트 SUV 역시 판매량이 많았다.

자세히 보면 로장주 엠블럼 가운데 후방 카메라가 있다. 깔끔한 배치다

100년을 훌쩍 뛰어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 잡은 두 거장 푸조와 르노는, 그동안 작고 훌륭한 차를 수없이 소개했다. 그들이 만든 소형차는 프랑스 국민차의 반열에 오르기 일쑤였고, 프랑스인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랐다. 오늘 자리를 함께한 르노 클리오와 푸조 208은 그들의 조예 깊은 소형차 만들기 노하우가 쌓이고 쌓여 태어난 깜찍한 녀석들이다.

이 둘은 유럽에서는 꾸준히 베스트셀러 리스트 상위에 오르는 B세그먼트 해치백들로, 클리오는 1991년과 2006년 유럽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된 적도 있다. 각각 1세대와 3세대 클리오가 출시한 직후에 받은 상이다. 그동안 유럽 올해의 차 정상에 2번이나 오른 차는 폭스바겐 골프와 오펠 아스트라 그리고 클리오 셋뿐이다. 208은 푸조 콤팩트 해치백 계열인 ‘20X’의 현행 버전으로 지난 2012년 등장했다. 지금의 4세대 클리오가 2012년 등장했으니, 우연하게도 둘의 나이는 같다. 올해 안으로 등장을 앞둔 차세대 클리오와 208은 각각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CMF-B 플랫폼과 PSA그룹의 CMP 플랫폼 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둘 다 세대교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끝물이지만, 앙증맞은 외모 속에 푸조와 르노가 추구하고 있는 제품 철학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프랑스 본토에는 경제성을 중시한 3기통 엔진부터 좀 더 활기찬 4기통까지 다양한 가솔린 터보 엔진과 수동변속기까지 곁들인 모델 라인업이 풍성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오직 효율성 중심의 4기통 디젤 모델만 들어왔다. 100마력도 안 되는 출력보다는 20kg·m를 웃도는 최대토크를 활용해 시원시원하게 달리는 디젤 해치백만 들어온 것이다. 200마력을 뛰어넘는 클리오 RS나 208 GTi 같은 고성능 모델은 우리나라에서는 언감생심. 성능 출중한 프랑스 해치백을 원하는 국내 소비자들은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는 일이다.

푸조와 르노는 지금도 모터스포츠 분야에 꾸준히 참여하며 대외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한편, 대회에서 갈고닦은 기술을 다듬어 양산차에 반영하고 있다. 클리오 RS와 208 GTi 또한 그 결과물 중 하나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레이스 대회가 열린 곳 그리고 지금의 국제자동차연맹 FIA가 있는 곳이 프랑스라는 걸 생각하면, 푸조와 르노가 모터스포츠에 발을 깊숙이 담그고 있는 것도 이해하긴 어렵지 않다.

16″ 휠과 에코 타이어의 컬래버레이션

당당한 자세를 만드는 17″ 휠

클리오와 208이 추구하는 방향은 비슷하다. 작지만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성능을 품은 알짜배기들이다. 두 차를 번갈아 타보면 작은 차가 선사하는 운전의 재미를 저절로 알게 된다. 일부러 스포티한 주행 성능을 강조해서 재미를 한껏 높인 종류의 차는 아니지만, 생기 가득한 발랄한 감각으로 운전에 몰입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운전자보다 더 많은 지배권을 챙기려는 욕심 많은 자동차가 나날이 늘어가는 모습에 비하면, 두 녀석은 한결 친근하다.

핸들링 성능은 클리오와 208이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강점 중 하나다. 한껏 쥐어짜서 한계까지 다다르게끔 재촉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서스펜션을 능숙하게 조절하며 짐짓 여유로운 척 부드럽게 끌어안는 스타일이다. 작디작은 푸조 특유의 스티어링 휠이 들어간 208의 조종 성능이 더 좋을 듯하나, 실제로 큰 차이는 없다. 둘 다 공차중량이 1200kg을 갓 넘길 정도로 가벼운 무게를 자랑하지만, 앞머리에 묵직한 디젤 엔진이 아니라 비교적 가벼운 가솔린 엔진을 올렸다면 작은 차를 몰고 달리는 재미가 한결 나았을 것이다.

회전 한계는 낮으나 힘을 두텁게 발휘하는 디젤 엔진을 달래가며 속도 붙이는 일도 즐겁다. 클리오와 208에 들어간 4기통 디젤 엔진은 1750rpm부터 각각 22.4kg·m, 25.9kg·m의 힘을 내뿜으며 작은 차체를 강하게 밀어붙인다. 작은 차에 알찬 성능을 발휘하는 디젤 엔진을 넣으니, 살살 달래가며 달릴수록 연비가 끝을 모르고 치솟는다. 클리오와 208의 복합연비는 각각 17.7km/ℓ, 16.7km/ℓ이지만, 때에 따라 20.0km/ℓ를 넘기는 일도 쉽다. 디젤 해치백을 찾는 이들이 눈 크게 뜨고 기억해둘 항목이다.

MCP의 꿀렁거리는 느낌을 즐긴다고?

두 차가 달리는 감각에 분명한 차이가 생기는 건 변속기의 역할이 크다. 클리오는 일찍이 국내에 들여온 QM3를 통해 선보인 게트락 6단 DCT를 품었고, 208은 자동변속기와 수동변속기의 장점을 아우른 6단 MCP로 엔진을 조율한다. 맞다. 수동변속기보다 자동변속기를 10배쯤 더 선호하며 자동변속기 운전면허가 허용된 우리나라에서는 이질감 심한 변속 감각 탓에 인기를 못 끌던 그 MCP다. 하지만, 수동변속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다루는 게 귀찮은 게 아니라 즐겁다고 느끼는 이라면, 불편함보다 은근한 재미도 찾을 수 있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타이밍을 맞춰 가속 페달에서 발을 살짝 뗀 뒤 충격 없이 부드럽게 기어를 바꿀 수 있다. 또한, 패들 시프트를 당기며 직접 기어를 바꾸는 재미가 있다. 특히, 굽잇길을 오르내리며 rpm을 가지고 놀 때가 제일 신난다.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어김없이 꿀렁거리는 변속 충격이 생긴다. 그렇다고 시동이 꺼질 일은 없으니, 1종 면허를 따려는 2종 면허 운전자가 수동 변속 연습을 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

작지만 알차고 감각적인 208의 아이-콕핏

208은 운전이 재미있는 것뿐 아니라 실내 분위기도 감각적이고 유쾌하다. 푸조가 신개념 인테리어라며 칭찬을 늘어놓던 아이-콕핏이다. 가슴팍 앞까지 당겨 내릴 수 있는 자그마한 스티어링 휠, 그 너머로 솟아오른 계기반이 만드는 자세마저 독특한데, 마치 카트 운전석에 앉은 느낌이다. 간결하되 독특한 디자인도 범상치 않다. 동급 모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감각이다. 예술과 패션의 나라에서 태어난 자동차답다. 컵홀더 깊이가 얕고 작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미국인처럼 커다란 음료수병을 사방팔방 널려 있는 컵홀더에 꽂아두고 마시지 않는다.

성인 남성 2명이 앉으면 가득 차는 뒷좌석은 차라리 비워뒀다가 짐 공간으로 쓰는 게 편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뒷좌석을 접어두고 커다란 짐을 싣는 용도로 써도 좋겠다. 아마 208을 패밀리카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직 싱글이거나 아이 없는 부부 또는 자녀를 독립시킨 중장년층처럼 뒷좌석에 누구를 태울 일 거의 없는 사람이 가볍게 타고 다니기에 좋은 차 아니던가.

위에서 내려다보듯 보여주는 이지 파킹이 주차를 돕는다

클리오도 마찬가지다. 휠베이스가 208보다 50mm나 길지만 공간의 차이는 크지 않다. 208과 다를 바 없이 시트를 접어두고 여유 있게 활용하는 게 마음 편하다. 클리오의 인테리어는 208에 비하면 단순한 분위기다. 특출한 장식 하나 없이 꼭 필요한 것만 갖춘 기능적인 구성에, 다소 심심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다. 시승차에는 보스 사운드 시스템도 달려 있어 음악이나 즐기면서 달리는 게 속 편하다.

환하게 빛나는 LED 눈망울

도로 위에 올랐을 때 관심을 끄는 건, 아무래도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차 클리오였다. 앞서 지금의 4세대 클리오가 끝물이라고 얘기했는데 뭔 소리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 사정에 맞춰 제품 구성과 가격 등 여러 가지를 꼼꼼히 따지며 조정하느라 도입 시기가 늦은 탓이다. 하지만 사실 남의 관심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누가 뭐래도 자동차는 타는 사람의 주관이 뚜렷하게 반영된 걸 골라야 후회가 없다. 언제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가 타는 차를 고를 텐가? 부드러운 곡선과 말끔한 인상, 큰 눈망울을 가진 클리오는 분명 귀엽다. 5세대 클리오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기대해도 좋겠다.

208도 남부럽지 않은 외모를 가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프런트 그릴이며 형상 뚜렷한 테일램프 디테일도 예쁘다. 무엇보다도 외장 컬러를 13가지나 마련해둬 개성 강한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을 배려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승차는 다소 심심한 회색 계열이지만, 루비 레드와 버추얼 블루, 오렌지 파워 등 한층 다채로운 컬러도 있으니 고르는 재미가 있다. 그래, 작은 차는 이런 맛에도 타는 거다.

해치백은 사랑스럽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차다. 짧은 차체를 이용해 좁은 길도 요리조리 손쉽게 빠져나가고, 앞뒤 긴 세단보다 주차하기도 한결 편하다. 테일게이트를 활짝 들어 올리고 뒷좌석을 접어 트렁크 공간을 알뜰살뜰 이용하는 건 또 어떻고. 하지만 크기가 작아서 없어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크고 넓은 세단과 SUV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해치백의 인기가 시들하다. 프랑스의 유쾌한 해치백을 경험해보면 분명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클리오와 208, 이 둘은 밋밋하고 단조로운 도로 위 풍경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재간둥이들이다. 남이 정해놓은 틀을 깨는 건 본인의 몫이다.


클리오와 208의 쟁쟁한 라이벌들

유럽에서 B세그먼트 시장은 굉장히 치열하다. 아래 소개하는 차들은 대중 시장뿐 아니라 월드 랠리 챔피언십에서도 뜨거운 활약을 펼치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폭스바겐 폴로

출시 이래 세계적으로 1400만 대 이상 팔린 폴로가 MQB 플랫폼 위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더 크고 넓어졌으며 한층 깔끔하고 정갈한 디자인이 특징. 실내에도 최신 디지털 기술을 받아들여 칙칙한 과거의 모습을 벗어던졌다. 200마력을 내는 GTI 버전도 등장해 해외에서는 호평 일색. 국내에 들어올지는 미지수다.

포드 피에스타

포드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피에스타는 무려 40년 넘게 소형차 시장을 지켜온 존재. 현행 7세대 모델은 티타늄과 고급 버전의 비냘레, SUV 스타일을 더한 액티브 크로스오버와 날렵한 인상의 ST 라인 등 다양한 트림을 제공한다. 고성능 버전인 피에스타 ST도 새롭게 추가됐다. 국내 도입? 알 수 없다.

현대 i20

젊은 감각을 앞세워 유럽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유럽에서 선호하는 취향에 맞춰 탄탄한 주행 감각을 갖고 있고, 가솔린 엔진과 수동변속기, 결합감 좋은 7단 DCT를 제공한다. 3도어, 5도어, 액티브로 나뉘며, 액티브 모델이 국내에 들어와 엑센트를 대신할 거란 소문이 무성하다. 엑센트는 아마 단종의 길로…


클리오와 208의 가까운 미래

이제 수명이 거의 다한 클리오와 208이 곧 다음 세대로 진화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그 시기를 2018 파리 모터쇼 즈음으로 보고 있다. 클리오는 르노 컨셉트카 심비오즈에서 선보인 차세대 패밀리 룩으로 갈아입고, 실내에도 최신 르노 모델이 그렇듯 커다란 터치스크린을 품을 것으로 보인다. 반자율주행 기능에 가까운 최신 운전자 지원 장비와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들어갈 예정.

차체는 한결 커지고 한층 예리해진 푸조의 최신 패밀리 룩이 208에도 적용된다. 이를 통해 신형 508 및 3008과 5008의 얼굴과 흡사한 인상을 가질 전망. 푸조의 특징적인 아이-콕핏 디자인은 지금보다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바뀔 예정이고, 업계 소식에 따르면 전기차 버전도 등장한다고 한다.


Renault Clio

Price 2320만 원

Engine 1461cc I4 터보 디젤, 90마력@4000rpm, 22.4kg·m@1750~2500rpm

Transmission 6단 DCT, FWD

Performance 0→100 N/A, N/A km/h, 17.7km/ℓ, CO₂ 104g/km

Weight 1235kg

 

Peugeot 208

Price 2590만 원

Engine 1560cc I4 터보 디젤, 99마력@3750rpm, 25.9kg·m@1750rpm

Transmission 6단 자동, FWD

Performance 0→100 N/A, N/A km/h, 16.7km/ℓ, CO₂ 111g/km

Weight 1220kg

이세환 사진 최대일, 김범석

이세환

사람과 자동차, 당신의 이야기와 우리의 자동차를 함께 나누고픈 1인
serrard@carmagazi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