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랭글러, 돌아온 오프로드 아이콘

모험을 즐기는 당신이 들으면, 솔깃할 만한 두 가지 소식이 있다. 첫째, 이차는 한반도의 모든 지형을 누빌 수 있다. 둘째, 이차가 완전히 새로운 지프 랭글러라는 사실이다

도로가 아닌 곳을 누빌 때 자유로움을 느끼는가?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곳을 정복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가? 만약 당신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면 고민 없이 지프 랭글러를 애마로 꼽았을 것이다. 랭글러는 지프의 근원이자 SUV의 시초라 할 수 있는 4×4 오프로더다. 수많은 SUV가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진화했다면, 랭글러는 거칠고 험준한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고독한 외길 인생을 걸어온 지프 랭글러가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한 건 도심형 SUV가 우후죽순 생겨날 때다. 지난 77년 동안 랭글러는 유행과 거리가 멀었지만 개성은 오히려 빛났다. 어느덧 랭글러는 많은 사람의 위시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으며, 터프한 오프로더 스타일은 도심 속에서 더욱 반짝였다.

새로운 랭글러가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17 LA 모터쇼 현장이었다. 많은 사람과 오프로드 마니아를 설레게 하는 장면이자, 무려 11년 동안 활약한 JK 플랫폼의 랭글러가 배턴을 넘겨주는 모습에 기대감이 더욱 부풀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사하라 사막 대신 태백산맥이 솟아오른 한반도 땅에 새로운 랭글러 사하라가 등장했다. 우리는 신형 랭글러를 살펴보기에 앞서 운전석에 서둘러 올랐다.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는 곳으로 모험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 빠르고 편리한 스마트폰 대신에 피처폰을 들고 있는 기분이랄까? 랭글러를 모는 느낌이 딱 그랬다. 대시보드 위로 우뚝 선 윈드실드와 묵직한 스티어링 휠을 잡은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센터패시아는 여전히 많은 버튼이 남아있으며 묵직한 기어 레버가 손아귀를 가득 메운다. 하지만 새로운 랭글러 안에는 디지털 기술로 가득하다. 터치에 반응하는 8.4″ 디스플레이가 4세대 유커넥트(Uconnect)를 품고서 안드로이드 오토 및 애플 카플레이로 스마트폰과 궁합을 맞춘다. 더 이상 차에 타고 내릴 때 리모컨 키를 누를 필요 없으며, LED 인테리어 라이팅과 알파인 프리미엄 스피커가 눈과 귀를 달랜다.

무엇보다 인테리어 품질이 대폭 개선됐다. 강인한 오프로더 분위기를 풍기는 인테리어와 입석 버스에서나 볼법한 손잡이가 그대로 남아있지만, 메탈 느낌으로 멋 부린 버튼과 고급스러운 트림 소재가 펼쳐진다. 더 이상 거친 오프로더의 감성을 탓할 필요 없다. 시트의 감촉이나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조차 매끈하게 다듬었으며, 세련된 스티어링 휠을 돌릴 때면 랭글러의 파격적인 세대교체를 여실히 실감할 수 있다.

일단 서울을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이 강남 한복판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나는 연비를 높이기 위해 2륜구동(뒷바퀴 굴림)으로 고정했다. 신형 랭글러에 올라간 엔진은 실린더와 배기량을 줄여 다운사이징을 실현했다. ‘작은 엔진에 스틸 프레임 보디의 조합, 정말 괜찮을 걸까?’ 나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수많은 사거리를 통과했지만 끝내 출력 갈증은 느끼지 못했다. 자동 8단 변속기도 한몫 거든다. 비록 스포츠 세단의 명민한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지만 시종일관 부드럽게 기어를 바꿔 물며 효율을 높인다. 아스팔트 위에서 랭글러는 눈에 띄게 성숙했다. 비록 우람한 차체를 경쾌하게 다룰 순 없어도 성가신 진동을 다스리며 부드럽게 순항하기를 즐겼다.

스티어링은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며 정확성보다 편안함에 초점이 맞춰졌다. 서스펜션 길이는 여전히 여유롭다. 그렇다고 승차감이 무른 것도 아니다. 뚜렷한 오프로더의 반응과 거동이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눈에 띄게 안락한 이유는 바로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시스템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인피니티가 즐겨 쓰는 기술과 비슷하다. 차량 내외 소음을 상쇄시켜 세단처럼 조용한 실내를 유지한다.

마침내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는 곳에 도착했다. 노면은 바위와 자갈로 이뤄져 있으며 바퀴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난다. 척박한 땅에서 랭글러 사하라는 남다른 스타일을 과시했다. 77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얼굴은 지프 고유의 7-슬롯 그릴과 동그란 헤드램프가 남아 있으며 랭글러의 시초가 되는 CJ 형태가 그대로 이어졌다. 가장 반가운 건 역시 상징적인 원형 헤드램프와 사각형 테일램프다. 여전히 구시대적인 형태를 띠지만 속을 LED로 채워 네오클래식 스타일을 추구했다.

랭글러가 오래된 형태를 고집한다는 건, 전통적인 이유도 있지만 험로에서 가장 기능적이기 때문이다. 펜더에 자랑스럽게 붙어있는 트레일 레이티드(Trail RatedⓇ) 배지가 지프의 자부심을 의미한다. 랭글러는 장애물을 넘나들기 위해 44°의 접근각, 27.8°의 램프각, 37°의 이탈각을 자랑하며 76cm의 도강 능력을 갖추고 있다.

랭글러가 드디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미지근한 전자식 4륜구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레버를 움직여 2H, 4H 오토, 4H 파트타임, 4L을 선택하면 랭글러는 어떤 험로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는다. 웬만한 비탈길은 ‘4H 오토’만으로 충분하다. 가파른 바위 언덕을 올라갈 때면 조금씩 주춤했지만 네 바퀴가 부지런히 접지력을 찾아 끈질기게 기어오른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저 멀리 시선을 던진 채 스티어링 휠을 붙잡고서 가속 페달을 밟는 것뿐이다. 랭글러는 오히려 속도를 더 높였다. 타이어에서 흙먼지가 진하게 일었고 실내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옆에 탄 사진 기자는 A필러 손잡이를 생명줄처럼 잡고선 헤드뱅잉을 하고 있다. 그에게 록커의 피가 흐르는 게 분명하다.

랭글러는 한계가 매우 높았다. 바퀴 자국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곳이라면 랭글러가 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드높은 자갈 언덕으로 차 머리를 돌렸다. 어찌나 가파른지 마치 벽면을 향해 돌진하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랭글러는 아무런 간섭없이 앞바퀴를 걸쳐 올렸다. 드디어 2.72:1의 로 기어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계기반 속 노면 정보는 30°에 육박했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럼에도 랭글러는 침착하게 자갈 언덕을 기어오른다. 랭글러가 잠시 멈춰서기도 했지만 순전히 내 탓이었다. 너무 기울어진 나머지 불안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언덕 중턱에 걸린 채, 다시 가속 페달을 밟으면 망설임 없이 일보 전진이다. 정말이지 랭글러에 불가능이란 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랭글러는 도심에 사는 가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아스팔트 위보다 비포장도로에서 빛을 발하며 매끈한 스타일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그러나 랭글러의 터프한 매력에 헤어나오기란 쉽지 않다. 꼭 험로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모험을 즐기지 않아도 괜찮다. 지프의 아이콘으로 도심 속을 누비거나 랭글러의 잠재력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상상해보라. 강인하고 전통적인 오프로더로 빌딩 숲을 가르는 당신.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JEEP WRANGLER

Price N/A Engine 1995cc I4 가솔린 터보, 272마력@5250rpm, 40.8kg·m@3000rpm,
Transmission 8단 자동, AWD
Performance 0→100 N/A, N/A km/h, 8.2km/ℓ,
CO₂ 210g/km
Weight 2120kg

김장원

너무 진지할 필요 없어요. 쉽고 즐거운 자동차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bejangwon@carmagazi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