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변속기의 매력을 찾아서

A, B, C 페달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는가?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 클러치 페달을 말한다.
양발과 양손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수동변속기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의 주인공은 총 3대다. 현대자동차 아반떼 스포츠와 알파 로메오 미토, 순수 스포츠카의 대명사 로터스 엘리스 스포츠 220(이하 엘리스)을어렵게 한 자리에 모았다. 로터스는 정식으로 수입하기에 시승차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나머지 모델은 우연히 그리고 극적으로 이번 기획을 성사시켰다. 시승차를 운영하는 브랜드에서는 로터스를 제외하면 어느 곳도 수동 모델이 없었다. 자동변속기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기획을 포기하려던 순간, 막내 기자가 “제 차 수동인데요”라는 짤막한 멘트가 고막을 자극했다. 잊고 있었다. 그가 아반떼 스포츠를 사려고 할 때 변속기를 고르는 과정에서 조언을 요청했었다는 것을. 나는 듀얼 클러치를 추천했지만, 역시나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럴 거면 조언을 왜 해달라고 했던 건가. 아무튼, 이제 한 대만 더 구하면 된다. 때마침, 병행 수입 업체인 헬로우코퍼레이션에서 알파 로메오 미토 수동 모델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원하는 촬영 날에 흔쾌히 차를 빌려주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렇게 3대의 수동기어 차가 모였다.

나는 과천에 위치한 로터스 매장에서 엘리스 키를 받아 들고 차로 향하는 중, 10년 전쯤 처음으로 엘리스에 오를 때가 생각났다. 보통의 자동차를 탈 때처럼, 엉덩이 부분을 먼저 밀어 넣었다가 낑낑거리며 다시 원위치했던 기억이 있다. 체격이 많이 작지 않는 이상, 절대 그렇게 올라탈 수 없는 모델이 엘리스다. 차 문을 열면, 오른발을 들어 페달이 모여 있는 부분에 최대한 밀어 넣어 엉덩이를 시트에 밀착시킨다. 이후, 홀로 남아 있는 왼쪽 다리를 왼손으로 강하게 당겨 두 발을 가지런하게 만든다. 이 방법은, 일반적인(비만…) 40대 아저씨가 엘리스에 오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시동을 걸면, 우렁찬 엔진음이 뒤쪽에서 생생히 들린다. 클러치 페달을 밟고 1단에 밀어 넣는다. 철컥거리며 출발 준비가 끝마쳤음을 알려준다. 아주 천천히 페달에서 발을 떼며, 엔진에서 나오는 힘을 변속기로 이어주는 시점을 찾아본다. 반클러치라고 부르는 그 부분 말이다. 차가 꿈쩍 안 한다고 급하게 페달을 떼면, 강하게 울컥거리며 엔진은 잠들어 버린다. 클러치 페달의 반발력이 생각보다 세다. 하지만, 수동변속기를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익숙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엘리스 특성상,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 기어를 변속하면 아무리 클러치 페달 조작을 부드럽게 한다고 울컥거리기 일쑤다. 부드럽게 하는 방법? 엔진 회전수를 많이 높이면 엄청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기어를 바꿔 문다.

현재 단수는 2단,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 회전수가 5000을 넘기자 4기통 슈퍼차저 엔진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그 상태를 유지하면 계기반에는 나이스한 변속 시점을 알려주는 신호가 들어온다. 총 3개의 알람이 순차적으로 들어오는데, 첫 번째 신호가 켜지면 기어를 잽싸게 바꾼다. 엘리스는 이제야 뭔가 제대로 된 운전 패턴이라는 듯, 부리나케 가속을 이어간다.

매끈한 기어 변속은 운전자를 들뜨게 한다. 2단에서 5단까지 위아래, 양옆까지 금속 소재의 기어 레버를 움켜쥔 채 정신없이 흔들다 보면, 수동변속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실수로 인한 오버런(예를 들면, 4단에서 5단으로 넣어야 하는데 3단으로…)이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나머지 두 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미토의 키를 잡아 들고 아주 편안하게 차에 올랐다. 엘리스의 영향인지, 시트가 그렇게 부드럽고 편할 수 없었다. 운전 시야는 레인지로버에 올라 탄듯 멀리까지 보였다. 알파 로메오는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브랜드다. 정식이든 아니든, 오늘은 그런 게 중요하진 않다. 그냥 고마울 뿐이다. 클러치를 밟고 기어 레버를 움직이려고 하니, 진공청소기에 빨려 가듯 쏙쏙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반발력이 약하게 느껴지는 클러치 페달을 떼며 주행을 시작했다. 미토의 엔진이 화끈한 성격은 아니다. 엘리스와는 반대로, 회전수를 무턱대고 올리는 것보다 적절히 사용하며 기어를 바꿀 때 온순하게 반응한다. 엘리스가 철컥거리며 기어 레버를 물었다면, 미토는 두부 뭉치에 숟가락을 찔러 넣는 느낌이다.

3단에서 4단을 오가는 주행 패턴이 무난하다. 6단 수동이지만, 6단까지 넣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고속도로를 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시내에서는 4단으로도 충분하다. 같은 수동변속기지만, 커피까지 마실 수 있는 여유를 미토는 허락해줬다. 어느 차에나 달려있던 컵홀더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엘리스를 탈 때는 생수병을 들고 탔는데, 어느 순간 동승석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귀여운 디자인이지만, 제법 잘 달린다.

기어 레버 왼쪽에 자리한 스위치를 다이내믹에 위치시키면 서스펜션 감쇠력까지 단단하게 바뀐다. 코너에 따라 2단 혹은, 3단에서 가속 페달을 눕히며 스티어링을 꺾으면 생각보다 날랜 동작을 보이며 빠져나간다. 토크 벡터링의 덕을 제대로 본 것이다. 기대 이상이다. 엔진 회전수를 올리면, 고로롱거리는 배기 사운드도 점점 운전자를 즐겁게 한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리어뷰 미러를 쳐다보니 한국의 자존심 아반떼 스포츠가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냉면집에서 자주 찾게 되는 겨자통 컬러의 아반떼 스포츠가 곧이어 따라 들어왔다. 미토를 한동안 따라오던 아반떼 스포츠는 엘리스는 당연히 안 되겠지만, 미토는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가 의미심장하게 내비친 얄팍한 미소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따라오는 줄 알았으면 좀 더 달릴 걸” 거짓말이었다. 적어도 타이어 비명까지는 들었으니 해볼 만큼은 해봤다고 생각한다.

미토의 움직임에 감동을 받았지만, 아반떼 스포츠가 잘도 따라붙었다. 출력이 더 세기에 직선 구간에서 벌어진 거리를 빠르게 좁혔을 수도 있다. 차를 바꿔탔다. 미토로 아반떼 스포츠를 따라온다면, 내 운전 실력이 미천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반떼 스포츠를 다시 봐야 할 상황인 것이다. 아반떼 스포츠의 클러치는 미토보다도 부드러웠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나면 털어주던 스폰지를 발로 밟는 것 같았다.

기어 레버를 받아들이는 감각도 좋았다. 미토와 비슷하지만, 트래블이 더 짧게 느껴졌다. 수동변속기에 이런 건 장점이라 생각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기어를 바꿔 물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옛날 버스 기사가 상체를 숙이며 기어를 바꾸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아무튼, 클러치 페달과 기어 레버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다. 겨자통 컬러만 제외하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엔진 회전수를 올리지 않아도 울컥거리지 않고 나긋나긋하다.

200마력을 넘게 뽑아내는 엔진은 회전수를 올려도 거칠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제법 빠르다. 본격적으로 토크를 토해내는 구간에 이르면 확연히 움직임이 빨라진다. 거기에 맞춰 기어 레버를 옮기는 맛이 아주 좋다. 많은 걸 절제한 채 운전자에 순종하는 느낌이다. 여기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성능을 쥐어짜도 운전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고성능 자동차로 할 수 있는 건, 뻥 뚫린 직선도로에서 5초 정도 가속 페달을 바닥에 붙이고 달리는 게 전부다. 한계까지 밀어 붙이는 건 서킷에서나 가능하다. 일반 도로에서 그렇게 용감한 사람은 흔치 않다.

아반떼 스포츠는 다르다. 한계까지 밀어붙여도 두려움이 생기진 않는다. 의도한 대로 움직이고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성질을 낸다. 무엇보다, 기어 레버를 움직이며 엔진 회전수를 조리하는 기분이 상큼하다. 자동변속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수동변속기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운전의 재미 말고는 수동변속기를 찾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 클러치 페달과 기어 레버를 밟고 흔들 때, 평소 느끼지 못했던 재미가 생긴다.

기어 레버 끝에 손을 얹어 가속 페달을 밟으면 미세하게 전해지는 진동이 순전히 내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올해 들어 가장 인상 깊었던 시승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글 최재형 | 사진 최대일, 김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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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ce 1965만 원
Engine 1591cc I4 가솔린 터보, 204마력@6000rpm, 27.0kg·m@1500~4500rpm Transmission 6단 수동, FWD
Performance 0→100 n/a, n/a km/h, 11.6km/ℓ, CO₂ 142g/km
Weight 1350kg

Alfa Romeo Mito Super
Price 4200만 원
Engine 1368cc I4 가솔린 터보, 170마력@5500rpm, 25.5kg·m@2500rpm Transmission 6단 수동, FWD
Performance 0→100 7.4초, 220km/h, N/A km/ℓ, CO₂ N/A
Weight 1170kg

Lotus Elise Sport 220
Price 8350만 원
Engine 1798cc I4 가솔린 슈퍼차저, 220마력@6800rpm, 25.5kg·m@4600rpm Transmission 6단 수동, RWD
Performance 0→100 4.6초, 234km/h, 13.3km/ℓ, CO₂ 173g/km
Weight 914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