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밴티지, 애스턴 마틴 역사에 방점을 찍다

훌륭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건 애스턴 마틴의 자랑스러운 자산이다. 환골탈태한 밴티지가 훌륭한 역사에 방점을 찍는다

만약 당신이 2억 원의 예산으로 스포츠카를 골라야 한다면 어떤 차를 살 것인가? 포르쉐 911? 성능으로 보나 유용함으로 보나 좋은 선택이다. AMG GT? 독일차 기술력의 정수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애스턴 마틴 밴티지는 어떨까? 과연 애스턴 마틴의 빛바랜 명성에 베팅을 걸만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탁월한 선택이다. 사실 지난 애스턴 마틴의 행보는 무미건조했다. 한때 거친 성능과 빼어난 디자인으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했지만 정체된 DB11과 밴티지는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에 반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아성은 대단했다. AMG는 세 꼭지 별의 걸작이라고 할 만한 AMG GT를 내놓았고 아우디는 아이언맨을 닮은 R8을, 포르쉐는 911의 이상적인 진화를 보여주었다. 쟁쟁한 독일 브랜드가 합리적인 슈퍼카 시장에 눈독 들인 사이에 애스턴 마틴은 생기를 잃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밴티지는 다르다. 극적인 변화를 성공적으로 받아들였으며, 한때 잘 나갔던 애스턴 마틴처럼 아름답고 총명하다.

무려 13년 만의 변화다. 911이 996에서 991로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밴티지는 단 한 번의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그만큼 변화의 폭도 크다. 외모는 이전 밴티지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으며, 근본적인 뼈대와 심장 모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새로운 밴티지는 아름다운 스포츠카의 전형이다. 선명한 표정과 근육질 차체의 조화는 마치 지면에 딱 달라붙은 레이스카를 방불케 한다. 선명한 헤드램프는 LED를 채워 날카롭게 그렸다. 범퍼는 상징적인 애스턴 마틴의 그릴로 채워져 있으며, 널찍하고 매끈한 보디는 바람을 가르듯 날렵한 형태를 이룬다. 과거 밴티지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낮게 기울인 윈드실드와 화살촉처럼 예리한 실루엣은 애스턴 마틴이 오래도록 간직한 디자인 특징이다. 밴티지의 화려한 성능에 걸맞은 공기역학적인 디자인도 더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펜더 그릴은 휠 아치에 걸린 바람을 효과적으로 배출시키며 날개처럼 뻗어난 디퓨저는 공기 흐름을 매끄럽게 다스려 다운포스를 확보한다. 절정은 밴티지의 뒷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얇은 LED로 수놓은 테일램프는 새로운 애스턴의 상징이며, 트렁크는 민첩한 맹수의 꼬리처럼 치켜 올라가 있다.

오직 두 명만 허락한 스포츠카 콕핏은 엄청난 진화에 성공했다. 단조로웠던 센터패시아를 무너뜨리고 우락부락한 인테리어에 조형미를 더해 미래의 슈퍼카에 오른 기분이다. 계기판은 마치 전투기에서 쓰일 법한 디지털 클러스터로 채웠으며, 투명한 시동 버튼과 애스턴 마틴 고유의 시프트 버튼이 시선을 모은다. 무엇보다 인포테인먼트의 변화가 핵심인데, 이는 메르세데스의 힘을 빌렸다. 터치에 반응하는 터치패널과 다이얼 조합으로 다양한 미디어와 기능을 다룰 수 있다.

모든 게 화려하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건 역시 시트다. 두툼한 소가죽으로 정교하게 다듬은 시트는 다양한 운전 자세를 제공하며 운전자를 감싸 안는 백허그 실력도 훌륭하다. 낮게 파묻히는 정통 스포츠카의 콕핏에서 진하게 풍기는 가죽 향기도 일품이다. 시트 위치가 매우 낮지만 시야가 좋다. 예리한 A 필러가 가파른 코너를 노려볼 수 있도록 머리보다 높이 솟아있다. 두툼한 스티어링 휠은 잡기 편하도록 굴곡이 있으며 기다란 패들 시프트가 자꾸만 손길을 바란다.

시동 버튼에 V8 엔진이 활기차게 돌아간다. 괴수의 목청에서 우렁찬 포효가 울려 퍼졌다. 사실 밴티지 엔진은 AMG에서 가져왔다. 적수로 꼽히는 AMG GT의 심장을 애스턴이 매만져 밴티지에 이식한 것. 작고 최적화된 V8 엔진은 밴티지 안에서 510마력을 뿜어낸다. AMG 엔진은 여로모로 밴티지에 잘 어울린다. V형 실린더 안에 2개의 터보차저를 올려 터보 랙을 줄이고, 줄어든 크기로 엔진룸 깊숙이 엔진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런트 미드십을 실현한 밴티지는 앞뒤 무게를 정확히 50:50을 유지한다. 한 가지 문제는 터보차저의 지나친 열기인데, 밴티지의 보닛을 열어보면 그릴에서 시작해 터보차저로 연결되는 에어 터널을 볼 수 있다.

고작 2000rpm에서 69.8kg·m에 달하는 최대토크가 쏟아지므로, 가속 페달만 밟아도 무서운 가속력을 선사한다. 엔진은 7000rpm까지 순식간에 오르며 정점에 다다를 때마다 격렬하게 폭발한다. 무척이나 공격적이지만 적은 스로틀에도 정교하게 반응해 놀랍다. 이토록 건강한 엔진은 트랙에서 기지를 발휘할 것이다. 트랜스미션은 ZF의 8단 자동변속기다.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토크 컨버터 방식의 유연함과 민첩함을 동시에 만족하며, 패들 시프트 명령에 열화와 같이 반응해 흥을 돋운다.

주행 모드는 기본인 ‘스포츠’를 넘어 ‘스포츠+’와 ‘트랙’으로 구성됐다. 트랙 모드는 너무 예민하고 강렬해서 피곤할 정도다. 스포츠 모드는 점잖게 GT의 분위기로 가속하며, 가장 좋은 건 스포츠+ 모드다. 팽팽한 긴장감과 머플러에서 작열하는 폭발음을 감상하는 설정으로 여러모로 완벽하다. 참고로 트랙 모드는 이름처럼 트랙에서만 쓰길 권장한다.

그렇다면 쟁쟁한 911, AMG GT, R8을 상대할 만한 무기는 무엇일까? 밴티지의 저력은 코너를 탈출할 때 나타난다.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 밴티지는 애스턴 마틴 최초로 전자식 디퍼렌셜(E-Diff)을 탑재했다. 510마력에 달하는 출력을 온전히 아스팔트에 뿌리려면 응당 갖춰야 할 장비다. 전자식 디퍼렌셜은 자세 제어 장치랑 연동해 운전자의 의도를 파악한다. 휠 속도와 보디 롤, 스로틀 여부와 횡가속도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1000분의 1초 만에 반응하며, 코너의 정점에서 최고출력을 쏟아부을 때 눈부시게 빛을 발한다. 밴티지는 완벽한 무게 배분과 밴티지를 위해 개발된 P-제로 타이어 그리고 마법을 부리는 전자 제어식 서스펜션이 만나 환상적인 주행 능력을 발휘했다. 냉철한 전자식 스티어링은 감각이 살아있고 언더스티어를 오버스티어로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자세 제어 장치를 모두 꺼버릴 수도 있지만, 차마 도로에서 2억 원을 고스란히 날려버릴 수 없기에 1단계에 머물렀다.

전자식 댐퍼는 단계별 차이가 분명하고, 이 역시 트랙이 아니라면 스포츠+가 이상적이다. 언제라도 부담스러운 힘이 쏟아지므로 코너 중심에서 스로틀 조작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밴티지의 한계는 늘 기대를 웃돌아 나를 당황케 했다. 밴티지는 모든 코너를 철저히 계산적으로 빠져나온다. 핫 해치의 경쾌함이라기보다 정통 스포츠카의 진중함으로 가득했으며 정교한 기술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밴티지의 인상적인 성능에 푹 빠져버렸지만 왠지 성에 안 찼다. 이 잘난 밴티지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서킷으로 달려가야 한다.

밴티지를 몰아보면 애스턴 마틴의 고루한 느낌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다. 밴티지는 아름답고 강력하며 매우 세련된 기술력을 품은 스포츠카로 다시 태어났다. 비로소 역사와 전통만 운운했던 애스턴 마틴이 아니라, 최고의 스포츠카로 현실적인 감각과 뛰어난 성능을 증명한 셈이다. 애스턴 마틴의 훌륭한 역사와 전통은 비로소 진정성을 갖게 됐다. 밴티지가 애스턴 마틴을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LOVE
아름다운 외모에 걸맞은 주행 성능
HATE
다소 투박한 인테리어와 완성도
VERDICT
이제 남다른 선택을 해도 후회가 없다

Aston Martin Vantage
Price 1억9800만 원
Engine 3982cc V8 가솔린 터보, 510마력@6000rpm, 69.8kg·m@ 2000~5000rpm,
Transmission 8단 자동, RWD
Performance 0→100 3.6초, 314km/h, 9.7km/ℓ, CO₂ 236g/km
Weight 1530kg

김장원

너무 진지할 필요 없어요. 쉽고 즐거운 자동차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bejangwon@carmagazi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