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포르토피노, 정교한 엔지니어링의 결과물

‘페라리 서울?’ 만약 페라리가 서울이라는 모델을 내놓았다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캘리포니아가 그랬다. 1950년대 미국에서 컨버터블의 인기를 겨냥해 페라리는 ‘250GT 캘리포니아 스파이더’를 출시했다. 그러나 더이상 미국을 위한 페라리는 없다. 캘리포니아의 뒤를 잇는 포르토피노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포르토피노는 이탈리아 최고의 명소로 손꼽히는 작은 도시다. 아름다운 바다와 언제나 여유로운 항구가 있으며 마을엔 유서 깊은 성이 자리 잡은 세계적인 휴양지다. 휴양지와 로드스터의 만남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환상적인 조합이다. 어쩌면 페라리와 포르토피노의 만남은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페라리 컨버터블을 타면 유독 시선이 부담스럽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면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 반듯한 자세조차 어색해진다. 수많은 컨버터블을 타봤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맞다. 사람들은 이차가 평범한 컨버터블이 아니라 페라리라서 내 존재가 궁금했을 거다. 서울 속 포르토피노는 너무나 튀고 화려한 페라리였다. 그래도 하드톱을 벗겨 냈다. 부담스러운 시선, 피부를 따갑게 하는 자외선, 머리는 바람으로 엉망이 됐지만 포르토피노의 매력을 놓칠 순 없었다.

빨간 하드톱은 14초 만에 트렁크 속으로 들어간다. 하드톱 루프를 여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윈드실드 위로 햇살이 들이치는 광활한 시야와 귀마개를 뗀 것처럼 엔진의 거친 숨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포르토피노의 V8 터보 엔진은 우렁찬 소리 만큼 기세가 대단했다. 푸른 신호등과 함께 터보차저가 맹렬히 돌기 시작하면 괴수 같은 파워를 과시했다. 최고출력은 무려 600마력에 달한다. 작정하고 달리면 단 3.5초 만에 100km/h를 돌파한다.

사납고 열정적인 엔진은 정교한 엔지니어링의 결과물이다. 지난 2016, 2017 올해의 엔진상 수상에 빛나는 페라리의 V8 터보 엔진은, 새로운 부품과 엔진 조정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전 캘리포니아보다 40마력이 늘어났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피스톤과 커넥팅로드를 적용하고 흡기 시스템의 구조를 전면 수정했다. 무엇보다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배기 시스템의 기하학적인 구조다. 새로운 일체형 주조 방식의 배기 헤더는 터보 랙을 줄이고 스로틀 반응을 살리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픈톱 상태에서 포르토피노는 순수 스포츠카의 열정과 희열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엔진은 7500rpm까지 치솟으며 엄청난 토크를 토해냈다. 덩달아 한껏 달아오른 테일 파이프에선 성난 포화가 작렬했다. 드라마틱한 가속 과정과 비현실적인 가속력이 기쁨과 공포 사이를 오간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성가시게 들이치는 바람조차 까맣게 잊고 말았다.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퓨얼 컷에 걸린 엔진이 성화를 냈다. 포르토피노는 집요하게 레드존에 집착했다.

속도를 갈망하는 포르토피노가 매력적인 건 의외로 편안하며 운전하기 매우 쉽다는 점이다. 두툼한 가죽 시트는 옆구리를 죄기도 하지만 캘리포니아보다 한결 부드럽고 각도도 완만하다. 커다란 10.2″인포테인먼트는 동승석에 앉은 사람도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현대적이며, 과감한 인테리어와 정교한 공정이 만나 세련된 GT의 콕핏을 제시한다.

오픈톱 환경도 쾌적하다. 페라리는 본래 바람을 다루는 일에 능수능란하다. 포르토피노는 신형 윈드 디플렉터를 적용해 내부 공기 흐름을 30% 줄였으며 바람 소음도 크게 줄었다. 속도 경쟁에선 열성적이지만 운전자에겐 자상하게 타이르며 한계에 도전한다. 새롭게 적용된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은 언제나 날카로운 핸들링을 보여준다. 페라리 라인업 최초로 3세대 E-Diff3와 F1 트랙션 컨트롤을 적용했으며, 이는 한계 상황에서 접지력을 확보하고 조정 능력을 향상시킨다.

포르토피노 위에선 누구나 레이서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일방적으로 소통하는 구식 스포츠카의 고집은 말끔히 사라졌다. 신사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오픈톱 GT의 진가를 경험할 수 있다. 포르토피노와 함께 환상적인 오픈 에어링을 만끽했지만 아쉬운 게 딱 하나 있었다. 지금 달리는 이 도로가 포르토피노의 해안도로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김장원 사진 최대일, 김범석

김장원

너무 진지할 필요 없어요. 쉽고 즐거운 자동차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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