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없다면, 컨버터블!

 

컨버터블 타기 좋은 날 복잡한 서울을 누비고 다녔다. 미세먼지 없는 서울은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도시다

서울에서 드라이브는 예상대로 치열했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나섰건만 출발한 지 5분도 안되어 출근 전쟁에 휘말리고 말았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 것밖에 없었다. 모닝커피가 간절했지만 앞차는 도무지 갈 생각이 없다. 옆에 선 쏘나타 운전자는 연신 코털을 뽑고 있었고, 뒤따르던 티구안 운전자는 바쁘게 퍼프를 두드리며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도로 위에서 서울 사람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서울에서도 낭만적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고 주장한 나는 사진기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래도 차가 커서 다행이었다. 옹색한 미니 컨버터블이었으면 그는 벌써 차를 버리고 달아났을 것이다. 촬영에 필요한 삼각대와 사다리 그리고 거대한 카메라 장비와 조명까지 온전히 트렁크에 실을 수 있었다. 이 차가 실용성이라고는 1도 없는 카브리올레였지만, 제법 널찍한 뒷좌석과 310ℓ의 트렁크를 갖추고 있었다.

커피를 대접하겠다는 핑계로 드라이브스루에 들렀다. 사진기자는 남자 둘이서 민망하다며 지붕을 닫자고 했지만 나는 그대로 들어갔다. 오늘만큼은 남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우리는 E-클래스 카브리올레(이하 E 카브리올레)와 함께 종일 루프를 열고 달려야 한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 운이 따랐다. 미세먼지조차 없는 파란 하늘과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공기는 오픈 에어링을 즐기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출근 시간이 지나자 길거리에 차도 조금 줄어들었다. 그제야 V6 엔진은 흥얼거리며 아껴둔 힘을 쏟아낸다. 333마력을 발휘하는 M276 엔진은 E 400(세단)에서도, 여러 AMG 43에서도 경험했던 엔진이다. 모델마다 조금씩 출력이 다르지만 풍만한 토크와 매끈한 회전 질감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엔진이다. 하지만 오늘은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을 필요가 없었다. 이 넉넉한 컨버터블은 품위를 강요하듯 부드러운 가속을 즐겼으며, 서울은 엔진을 쥐어짤 만한 여유도 주지 않았다.

주행 모드는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인디비주얼, 에코로 다섯 가지나 됐지만 굳이 바꾸지 않았다. 그저 컴포트 모드로도 유유자적 빌딩 숲을 누비기엔 충분했다. 지붕을 연 채 3시간을 넘도록 서울을 달렸다. 때 이른 추위가 걱정됐지만 컨버터블 안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설정 온도를 24°C로 맞췄고 시트를 따뜻하게 데웠다. 속도를 높이면 히터 바람이 덩달아 풍성해진다.

나는 에어스카프를 켜 완전무장을 마쳤다. 바깥 공기는 차가웠지만 몸은 점점 따뜻해진다. 마치 노천탕에서 반신욕을 하는 기분이랄까? 훈훈한 공기가 목을 감싸는 탓에 노곤해지다가도 찬 바람을 쐬면 다시금 정신이 맑아졌다. 우리는 한강공원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밤마다 북적이는 반포지구 한강공원도 평일 낮엔 한가롭기만 하다.

텅 빈 주차장 한쪽에 세워진 E 카브리올레는 근사한 자태를 뽐냈다. E-클래스 세단과 얼굴만 닮았을 뿐 늘씬한 실루엣이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백미는 우아한 옆모습이다. 길게 뻗은 보닛과 낮은 캐빈 구조가 역동적인 자세를 만든다. 근육질의 리어 펜더와 감각적인 숄더 라인이 풍만하면서도 스포티한 기운을 뽐냈다. 소프트톱과 궁합도 인상적이다. 팽팽한 소프트톱을 올리면 예리한 쿠페가 되었고, 톱을 벗기면 아름다운 컨버터블 자태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실내는 여유로운 데다가 사치스럽기까지 했다. E-클래스 세단을 닮은 듯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형태만 비슷할 뿐, 감성적으로 카브리올레의 신선함이 남아 있었다. 제트기의 노즐을 형상화한 에어 벤트와 우아한 드레스에서 영감을 얻은 시트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동선을 최소화한 칼럼식 시프트와 손끝에 반응하는 터치 컨트롤은 세단과 다를 바 없지만, 센터 콘솔 앞에 가지런히 모아놓은 메탈 버튼이 E 카브리올레의 특권이다. 단 20초. 거대한 소프트톱이 트렁크로 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메르세데스 카브리올레는 하드톱 대신 모두 소프트톱이 올라간다. 소프트톱은 더 멋스러운 데다가 가볍기 때문에 E 카브리올레의 지붕으로 손색없다. 게다가 방음재를 3겹으로 처리한 소프트톱은 쿠페 못지않은 정숙성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소프트톱의 작동 범위다. E 카브리올레는 무려 60km/h로 달리면서도 우아하게 지붕을 열거나 닫을 수 있다. 바람 소리, 앞차의 엔진 소리, 배달 오토바이의 굉음 사이에서 엔진이 웅웅거렸다. 지붕을 열면 V6 엔진의 존재감이 더 커졌다. 처음으로 ‘스포츠+’를 주문하고서 패들 시프트도 당겨보았다. E 카브리올레는 덩치와 안 어울리게 매서운 속도로 쏘아붙였다. 시종일관 부드러웠던 에어 보디 콘트롤은 빠르게 수축해 안정감을 더한다. 댐퍼가 마치 스포츠카처럼 단단해졌으나 그 흔한 스커틀 셰이크(컨버터블에서 일어나는 차체 진동 현상)도 없다.

차체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지붕 없이도 충분히 단단했다. 차체와 에어 보디 컨트롤의 궁합도 환상적이었다. 컴포트 모드에서 느끼지 못했던 정교한 움직임이 속도를 높여도 계속됐다. V6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의 조화도 만만치 않다. 평소엔 마냥 얌전했던 엔진과 변속기도 거침없이 힘을 쏟아냈다. 그러나 화끈한 성능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한강 다리 위에서 아주 잠깐이었다. 결국 한강 다리를 몇 번이나 건넜는지 모르겠다.

서강대교부터 성수대교까지 우리의 유일한 활주로가 되어주었다. 달릴 때만큼은 모든 게 완벽했다. 엔진이 힘을 쏟는 동안 히터가 실내를 데우고 에어스카프가 목을 따뜻하게 감쌌으며, 에어캡이 앞뒤로 솟아올라 안으로 들이치는 바람을 말끔하게 막았다. 그동안 버메스터 오디오가 볼륨을 한껏 올려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더 이상 빠르게 달릴 필요도 없었다. 한강을 건너며 쾌청한 하늘 아래 강남과 강북을 감상하는 일이 전부였다. 스포츠+ 모드도 어울리지 않았다.

E 카브리올레는 오픈 에어링을 즐기며 여유롭게 순항할 때 더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다이내믹한 서울을 느리게 달렸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느리게 달릴 수밖에 없었다. 남산 소월길이나 북악 스카이웨이 같은 유명 드라이브 코스는 신호등과 다른 차들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E 카브리올레는 느리게 달려도 드라이브의 묘미를 일깨우며 환상적인 오픈 에어링을 선사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서울을 달렸지만 세단이나 SUV에선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순간이다. 어느덧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컨버터블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계절이다. 복잡한 서울을 달리든 한가로운 지방 도로를 달리든 상관없다. E 카브리올레와 함께라면 언제나 낭만적인 드라이브가 될 것이다.

글 김장원 | 사진 김범석

Mercedes-Benz E 400 Cabriolet
Price 9660만 원
Engine 2996cc V6 가솔린 터보, 333마력@5250~6000rpm, 48.9kg·m@1600~4000rpm
Transmission 9단 자동, RWD
Performance 0→100 5.5초, 250km/h, 9.9km/ℓ, CO₂ 176g/km
Weight 1955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