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진화, 재규어 I-페이스

아무런 소음 없이 4.8초 만에 시속 100km를 돌파한다. 심지어 달리는 동안 배기가스도 없다. 재규어 I-페이스는 전기차 시대의 미래를 밝히는 꿈의 전기차다

재규어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추구하는 브랜드, 고성능과 스포츠카의 감성을 중시하는 브랜드, 실용적인 시도보다 로망을 즐기는 브랜드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차를 본다면 재규어가 얼마나 혁신적인 기업인지 그리고 재규어가 그리는 미래가 얼마나 환상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I-페이스가 국내에 첫선을 보인 건 2018 EV 트렌드 코리아에서였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전기차 전시회에 등장한 I-페이스는 컨셉트카 모습 그대로 양산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미드십 스포츠카를 연상케 하는 실루엣과 실용적인 실내 공간을 선보이고, 재래식 내연기관 대신 순수전기차의 퍼포먼스가 녹아 있었다. 2018년엔 프로필 정도만 공개했다면 2019년은 I-페이스의 해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차가 공존하는 2019년, 새로운 전기차 시대를 예고하는 I-페이스의 진면목을 확인할 차례다.

미드십 스포츠카와 SUV를 결합한 스타일
재규어는 전통적으로 보닛이 길고 캐빈이 뒤로 물러난 형태를 즐겨 썼다. 이러한 형태는 195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자동차 산업이 호황을 이루면서 등장한 스포츠카 형태였다. 스포츠카는 거대한 엔진을 담기 위해 보닛을 더욱 늘였다. 즉, 긴 보닛은 강력한 파워를 상징하는 디자인이다. 하지만 I-페이스는 전통을 따르지 않았다. 보닛은 오히려 짧고 탑승 공간을 앞으로 당긴 캡 포워드 스타일을 따른다. 앞모습은 여전히 재규어 패밀리 룩을 받아들여 선명한 표정과 날카로운 스타일이 남아 있지만 차체는 마치 SUV처럼 높고 거대하다.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조합을 재규어는 훌륭하게 빚어냈다.

I-페이스가 SUV처럼 높은 이유는 단순히 실용성 때문은 아니다. 재규어는 스케이트보드 같은 플랫폼에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바닥에 설치하고 그 위에 탑승 공간을 마련했다. 이와 같은 설계는 순수전기차의 주행 성능을 효율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이며 자유롭고 무한한 디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 결과 I-페이스는 SUV같이 높은 차체와 더불어 넓은 실내 공간을 갖추게 되었으며, 동시에 재규어 특유의 날렵한 디자인도 적용할 수 있었다. 엔진보다 크기가 작은 2개의 전기모터는 앞뒤 차축 공간에 올라간다.

덕분에 내연기관 자동차의 엔진룸으로 쓰였던 공간은 트렁크가 되었고, 더 이상 기다란 보닛도 필요치 않다. 또한 짧아진 보닛만큼 탑승 공간을 앞으로 당길 수 있다. 이는 더욱더 넓은 실내 공간을 의미한다. 한편, 요즘 쏟아지는 순수전기차는 하나같이 독특한 디자인을 무기로 삼았다. 마치 온몸으로 ‘나는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야!’라고 말하듯 파격적이고 괴상한 모습이다.

하지만 I-페이스는 전통적인 재규어 스타일을 고수했다. 겉만 봐서는 이 차가 전기차인지 SUV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확실한 건, 누가 봐도 이 차가 재규어임을 틀림없이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차체와 재규어의 예리한 디자인이 만난 I-페이스는 미드십 스포츠카를 연상케 한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SUV이기도 하고 미래의 스포츠카이기도 하다.

미래의 재규어를 예고하는 인테리어
I-페이스의 실내로 들어가면 재규어의 미래를 만날 수 있다. I-페이스 콕핏은 단순히 전기차를 위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재규어의 미래를 선보이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대시보드 중심엔 터치 프로 듀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주인공이다. 상단에는 10.2″ 고화질 터치스크린이 자리 잡고 아래로는 2개의 다이얼 스위치와 5″ 터치스크린이 기능을 보완한다. 하단 패널은 조작이 쉽도록 공중으로 튀어 올라 있다. 이 같은 입체적인 설계는 디지털 기술의 혜택이자 별도의 수납 공간을 제공하며, 앞으로 선보일 재규어의 인테리어가 될 예정이다. 대시보드는 가죽으로 팽팽하게 감쌌으며 정교한 스티치를 더해 품격을 높였다.

스티어링 휠 안에서 빛나는 계기반은 디지털 기술을 받아들였다. 취향에 따라 내비게이션, 주행 정보, 배터리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고화질로 쏟아낸다. 주행을 위한 기능은 모두 아날로그식 버튼으로 남겨두었다. 하지만 더 이상 재규어의 다이얼 기어 셀렉터는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버튼을 눌러 전진과 후진 그리고 P 기어를 선택해야 한다.

I-페이스의 가장 큰 매력은 성인 5명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과 드넓은 트렁크 공간까지 제공한다는 점이다. 앞좌석 헤드룸과 레그룸은 각각 1013mm, 1040mm, 뒷좌석 헤드룸과 레그룸은 968mm, 890mm다. 수치만 봐서는 가늠하기 어렵겠지만, 뒷좌석 레그룸 길이는 BMW 7시리즈보다 더 길다. 뒷좌석 바닥은 전기차 플랫폼 덕분에 평평하다. 더 이상 어린이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다리가 긴 당신이 앉아도 불편하지 않다. 또한 I-페이스는 5명의 승객과 함께 온갖 짐꾸러미까지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656ℓ의 리어 트렁크는 2열 시트를 접으면 1453ℓ까지 늘어난다.

스포츠카 DNA를 품은 전기차 퍼포먼스
재규어는 I-페이스를 ‘궁극의 고성능 전기차’라고 설명했다. 재규어가 제시한 I-페이스의 제원표를 살펴보면 성능을 짐작해볼 수 있다. I-페이스는 2개의 희토류 영구자석 모터로 구동한다. 각각의 전기모터는 200마력과 35.5kg·m의 토크를 내고, 2개를 합치면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71.0kg·m를 발휘한다. 하지만 무게가 만만치 않다. I-페이스의 공차중량은 2285kg으로 비슷한 덩치의 F-페이스보다 약 300kg 무겁다. 프레임을 가득 채운 배터리가 600kg을 차지하고 전기모터가 90kg, 냉각 시스템이 100kg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0→100km/h 가속력은 4.8초를 기록한다. 이는 F-타입 S(380마력)보다도 빠른 수치다. 구동 방식은 앞뒤로 달린 2개의 모터가 각각 앞바퀴와 뒷바퀴를 굴리는 4륜구동이다. 트랜스미션은 모터와 드라이브 샤프트 사이에 위치한다. 구동력을 나누는 디퍼렌셜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브레이크로 작동하는 토크 벡터링 시스템을 넣어 코너링에서 활기를 더했다. 여기에 재규어는 노면에 따라 반응하는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을 조합했다.

I-페이스는 진흙, 빙판, 눈길, 비포장도로 등 노면을 가리지 않고 지능적으로 구동력을 배분한다.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의 4륜구동 시스템과는 다른 방법으로 동력을 제어하기 때문에 매우 정확하고 빠르게 반응한다. I-페이스의 에너지원은 90kW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다. 배터리 셀은 온도에 따라 성능이 좌우되므로 냉각 및 가열 시스템을 추가했다. I-페이스의 배터리는 여름에 20~25°C를 유지하고 추운 겨울에는 가열 회로로 배터리의 열을 올린다. 플랫폼 뒤쪽에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이 올라갔다. 이 시스템은 배터리가 최적의 효율성을 유지하도록 관리한다. 또한 에너지 회생 제동 시스템을 통해 감속하는 동시에 생산된 전력으로 배터리를 충전하기도 한다. 국내 인증 기준으로 I-페이스는 최대 333km를 주행할 수 있다.

국내 표준 규격인 DC 콤보 타입 1 충전 규격으로 국내에 설치된 대부분의 공공 충전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100kW 급속 충전기를 이용하면 40분 만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소름 끼치게 빨리 달리는 테슬라를 비롯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전기차 사이에서, I-페이스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일까?

재규어는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뛰어난 그립과 드라이빙 묘미를 차별점으로 꼽는다. I-페이스의 주행 감각을 가늠하려면 알루미늄 껍데기 속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I-페이스는 근본적으로 백지상태에서 개발되었다. 유연한 알루미늄 D7 플랫폼에서 파생된 D7e 플랫폼을 사용하고, 이는 I-페이스만을 위한 플랫폼이자 전기 파워트레인에 최적화된 설계로 완성됐다. 배터리는 차체 바닥에 낮게 깔고 전기모터 역시 앞뒤로 나눠 50:50에 가까운 무게 배분이 이뤄졌다. 또한 앞쪽에는 F-페이스의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이식받고 뒤쪽에는 전기모터 자리를 피해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대폭 개조했다. 가벼운 알루미늄, 유연한 서스펜션, 낮은 무게중심이 만났으니 I-페이스는 진정한 드라이빙 머신임이 틀림없다. 짜릿한 재미를 안겨주며 운전자에게 확신을 주는 전기차는 흔치 않다. 자동차 제조사라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전기차 유행 속에서 I-페이스는 유난히 빛난다. 이 차는 유행을 좇는 얼리어답터뿐만 아니라, 자동차 골수팬조차 웃음 짓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I-페이스의 가장 큰 매력은, 엔진도 없고 변속기도 없으며 소음과 배기가스조차 없지만, 정말 재규어다운 전기차라는 점이다.

Jaguar I-Pace EV400
Price 1억2470만 원
Engine 전기모터 2개, 400마력, 71.0kg·m
Transmission 1단 자동, AWD
Performance 0→100 4.8초, 200km/h, 주행 가능 거리 333km, CO₂ 0g/km
Weight 2285kg

김장원

김장원

너무 진지할 필요 없어요. 쉽고 즐거운 자동차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bejangwon@carmagazi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