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이 시작됐다

절치부심해 내놓은 현대의 야심작 팰리세이드를 시작으로 국내 대형 SUV 시장에 지각 변동이 시작됐다. 과연 이 게임의 승자는 누구인가

이렇게까지 뜨거울 줄 누구도 몰랐다. 최근 가장 핫한 시장인 SUV에 등장한 새 모델이니 반응이 나쁘지는 않으리란 정도였다. 차와 사람으로 복작거리고 어디든 주차난에 허덕이는 우리나라에서 대형 SUV가 대중적으로 얼마나 크게 성공할까 생각했으니까. 결과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출시 일주일 만에 2만 대가 넘게 계약됐고, 차를 받으려면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는 등 품귀 현상까지 생겼다. 바로 현대의 야심작 팰리세이드 이야기다. 자신만의 특별하고 독특한 영역을 찾아 나서고 구축한다는 광고 설정에 맞게 팰리세이드는 최근 주춤했던 현대차의 현재와 미래에 긍정적인 장밋빛을 선사했다.

그러면서 대형 SUV 시장에 먼저 진출해 선전하고 있는 모델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어느 영역이건 새로운 스타의 등장은 판을 키우고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법. 팰리세이드에 대한 기대 이상의 시장 반응에 최근 등장한 수입 SUV들이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혼다 파일럿과 닛산 패스파인더를 팰리세이드와 함께 불러냈다. 덩치 큰 SUV 3대가 모이니 어지간히 넓은 주차장이 꽉 찬 듯 버겁다. 커다란 차가 주는 위압감은 듬직하고 든든하면서 동시에 우악스럽고 거추장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대형 SUV라는 범주에서 녀석들의 디자인과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커다란 얼굴과 크고 높은 차체, 기존 SUV보다 길게 뽑아 만든 뒷공간은 기본이다. 그 안에서 나름의 해석을 통해 다른 느낌의 디자인과 감성 품질을 만들었다.

최신작 팰리세이드는 수평보다 수직 형태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강하고 웅장한 느낌을 강조한다. 커다란 얼굴 가운데 자리 잡은 커다란 무광 크롬 프런트 그릴은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대형 SUV 특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세로 형태의 길고 굵은 주간주행등은 대형 SUV 이상의 카리스마를 만든다. 옆에서 보면 차급에 어울리는 비율의 무게감과 부피감이 인상적이다. 3열 창문에 크롬 테두리를 빼고 어둡게 만들어 높아서 껑충해 보일 수 있는 차체를 시각적으로 낮추는 효과를 의도했다.테일램프 역시 세로로 긴 헤드램프와 맥락을 같이하며 미적 완성도를 높인다.

남성스러운 겉모습과 달리 단정하고 아늑한 팰리세이드 실내. 반전 매력 뿜뿜

커다란 차체를 아래위로 모두 감싼 커다란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선다. 디지털 계기반과 가로로 길어 시원하고 선명한 모니터를 하나의 패널로 감싼 디자인은 최근 독일 브랜드에서 익히 보던 것과 비슷하다. 세로로 길고 웅장해 존재감 뽐내던 겉모습과 달리 실내는 수평 라인에 단순함을 더해 대체로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독특한 것은 센터패시아와 센터터널 어딘가 있어야 할 기어 노브를 없애고 전자식 버튼으로 대체한 기어 셀렉터 구성이다. 거치적거리는 막대를 없앤 덕에 공간 구성이 깔끔하고 활용도가 높아졌다. 기어 변속 버튼 옆 다이얼을 돌려 4가지 주행 모드와 3가지 터레인 모드를 고를 수 있어 비싸고 좋은 차를 즐기는 맛이 난다.

시승 모델은 2+2+3 시트 구조의 7인승 모델이다. 1열과 2열의 독립 시트는 등받이 각도 조절은 물론 자세가 안정적이고 편안해 회장님과 연예인들도 좋아하겠다. 2열 시트 사이 공간을 통해 3열 시트로 드나들거나 크고 작은 짐을 부리기도 좋다. 3열 시트는 버튼으로 접었다 펼 수 있다. 3열 시트를 접으면 1300ℓ가 조금 안 되고 2열 시트까지 접으면 2447ℓ로 커지니 이삿짐 차로도 손색없다. 곳곳의 USB 포트(시트에도 존재한다)와 지천에 널린 수납 공간은 가족 모두에게 즐겁고 요긴한 아이템이다.

3.8ℓ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에 8단 자동변속기와 호흡을 맞추며 네 바퀴를 굴리는 팰리세이드의 가속 페달에 무게를 더한다. 커다란 차체는 295마력과 36.2kg·m를 내는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의 부드러운 반응과 비례해 묵직하게 속도를 낸다. 크고 높은 차체에 롤링과 바운싱으로 뒤뚱거릴 만도 하건만 기대 이상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요철을 지나고 코너를 돌아나간다. 비교적 짧은 댐핑 스트로크와 신경 써 만든 단단한 뼈대가 만나 탄탄하고 안정적이면서 묵직한 주행감을 완성한다. 앞차와의 거리와 속도, 차선 이탈을 감지하고 스티어링까지 조율하는 반자율주행 시스템은 반응이 정확하고 자연스러워 정차 구간과 고속도로 모두에서 운전의 수고스러움을 덜어준다.

팰리세이드 역시 변속 버튼으로 디자인과 공간 활용성을 꾀했다. 커다란 다이얼을 누르고 돌리면 주행 모드와 터레인 모드를 바꿀 수 있다

선택 가능한 주행 모드는 컴포트와 에코, 스포츠, 스마트. 가속 페달 반응을 무디게 만들고 가능한 한 높은 단수로 달리며 효율성을 높이는 에코 모드에서도 주행에 답답함은 크지 않다. 기본적으로 반응이 날카로운 대배기량 엔진 덕이다. 스포츠는 초반 가속이 약간 화끈하지만 이름처럼 대단히 스포티해지지는 않는다. 스마트는 운전자의 주행 패턴과 상황에 최적화해 달리는 모드지만 실제로 그 특징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혼다 파일럿으로 옮겨 탄다. 혼다의 대형 SUV는 북미에서 연간 10만 대 이상 판매되는 인기 모델이다. 혼다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플라이 윙 디자인으로 트렌디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만든다. 여기에 풀 LED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다이내믹한 스키드 플레이트와 앞과 옆 사이드 가니시에 크롬으로 악센트를 넣어 젊고 경쾌한 아빠차 느낌을 풍긴다. 파일럿 시트는 팰리세이드와 같은 2+2+3 구조. 284마력 최고출력과 36.2kg·m 최대토크를 내는 3.5ℓ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은 9단 자동변속기와 궁합을 맞추며 네 바퀴를 굴린다.

일렬로 주르르 줄 선 파일럿의 변속 버튼. 이 부분만 보면 람보르기니로 착각할 수도 있다

대형 SUV라고 믿기 힘든 부드러운 변속과 안정적이면서 편안한 주행 감각은 흡사 차고 높은 세단을 모는 듯 안락하다. 주행 상황에 따라 연소하는 기통수를 제어해 효율성을 키우는 가변 실린더 제어 기술은 제법 괜찮은 실제 연비를 보여주기에 칭찬할 만하다. 2단 출발 기능으로 최대한 부드럽고 완만하게 가속하며 세단 뺨치는 승차감을 선사한다. 직관적이고 적극적으로 작동하는 스타트 스톱 시스템은 이질감이 적고 반응이 빨라 거치적거리지 않다. 대형 SUV에서 운전 재미를 논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굳이 따진다면 세 모델 가운데 운전 재미는 파일럿이 가장 좋다. 안락함이라는 기본 틀 안에 혼다 특유의 벼린 감각을 잘 가미해 기대 이상으로 코너를 공략하고 도로를 훌륭히 물고 달린다. 세 녀석 모두 4륜구동이지만, 파일럿의 트랙션 배분과 조율이 좀 더 공격적이고 날카롭다.

트렌디하고 세련미 넘치는 파일럿 실내. 실용성과 스타일 모두 따지는 오빠차 느낌

실내 구성은 적당히 트렌디하고 무난하다. 더 선명하게 진화한 디지털 계기반과 안드로이드 기반 8″ 디스플레이 모니터가 대시보드 가운데 자리 잡았다. 뒷좌석 승객을 위해 천장에 10.2″ 모니터를 달아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강조한 것은 파일럿이 유일하다. 가족 모두가 즐거운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한 혼다의 컨셉트가 묻어난다. 혼다 센싱도 업그레이드돼 운전이 더 안전하고 편안해졌다. 운전자 보조 시스템인 혼다 센싱은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을 비롯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 도로 이탈 경감 시스템, 후측방 경보 시스템, 크로스 트래픽 모니터 등을 전체적으로 조율해 안전 운전을 돕는다. 전동으로 접었다 펼 수 있는 팰리세이드와 달리 수동으로 움직이는 3열 폴딩 시트는 실사용자들에게 은근히 불편한 단점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닛산 패스파인더를 마주했다. 최근 닛산의 디자인 언어인 V모션 그릴이 강렬하다. V자 형태의 크롬 라인이 이전보다 더 굵고 선명해지면서 존재감을 강조한다. 폭이 좀 더 얇아진 헤드램프와 부메랑 같은 LED 주간주행등, 좀 더 두툼하고 남성스러워진 앞 범퍼가 선명한 인상을 만든다. 2박스 스타일의 대형 SUV지만 곡선을 가미해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근육질 남성성을 차체 곳곳에 새겼다. 프런트 그릴에서 시작해 도어를 가로질러 테일램프까지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은 자칫 커서 밋밋할 수 있는 커다란 차체에 디자인 포인트를 만든다. 평범한 뒷모습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아이템을 품고 있다. 바로 트레일러 견인 장비다. 추가 장비를 견인하며 본격적으로 자연을 경험하고자 하는 아웃도어 마니아들을 위한 비장의 아이템이다. 추가 장비 견인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요긴하겠지만 장비를 끌고 아웃도어를 즐기는 문화가 별로 없는 국내에서 이 장점이 얼마나 부각될지는 미지수다. 참고로 닛산 측에 따르면 약 2270kg까지 견인이 가능하단다.

클래식해서 푸근한 아빠차 느낌의 패스파인더. 추억 여행을 떠나보자

실내 구성은 세 녀석 가운데 가장 클래식하다. 좋게 말해 고풍스럽고 단순해 보기 좋고 쓰기 쉽지만 나쁘게 말하면 촌스럽고 무성의하다. 도어 트림 일부와 센터패시아를 장식한 우드 트림, 물리적으로 누르고 돌려 쓰는 버튼이 많은 센터패시아에서 아빠차 감성의 향수가 물씬하다. 시트는 7인승이지만, 두 녀석과 달리 2+3+2 구조. 알티마에서 최근 선보인 무중력 시트처럼 편안하고 안락해 앉는 맛이 일품이다. 2열 시트가 어른 셋이 앉을 수 있는 벤치 타입이지만 쉽게 접고 펼 수 있는 EZ 플렉스 시팅 시스템과 유아용 시트를 제거하지 않고 수평으로 움직일 수 있는 래치 & 글라이드를 넣어 실용성을 키웠다.

패스파인더의 심장은 닛산이 오랫동안 선보인 3.5ℓ 6기통 VQ 엔진이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직분사 VQ35DD 엔진이 아닌 일반 엔진을 얹었다. 이는 국내 소비자들이 정숙성을 과하게 따지는 시장 분위기를 감안해 직분사 방식에서 생기는 소음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다. 닛산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실내는 물론 외부에서도 엔진 소음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언제나 정숙하다. 최고출력 263마력, 최대토크 33.2kg·m의 성능은 미국 출시 모델의 284마력보다는 낮지만 약 2.1t의 차체를 이끌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두 바퀴와 네 바퀴 중 고를 수 있는 패스파인더. 아빠 차에 화려한 주행 모드는 없어도 괜찮다는 걸까?

변속기는 X트로닉 CVT, 국내에는 4륜구동 모델만 선보인다. 패스파인더는 가볍게 가속 페달을 튕기면 진득하게 움직이고 꾸준하게 반응한다. 시트에 몸이 파묻히는 강렬함 대신 꾸준하고 듬직하게 속도를 올린다. CVT가 고회전을 물고 시끄럽게 달릴 거란 예측과 달리 차분하고 진중하게 속도를 높인다. 닛산은 대형 SUV에서도 그들의 특화 기술 중 하나인 CVT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다. 하체 감각은 세 녀석 가운데 가장 대형 SUV답다. 댐핑 스트로크가 길어 롤링과 바운싱이 제법 있어 모는 재미는 떨어지지만 한결같이 편안하고 부드럽다.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하체 감각이지만, 움직임이 불안할 만큼 물렁거리거나 허둥대지는 않으니 크게 걱정하지 말자.

여전히 뜨거운 SUV 시장에 신성 팰리세이드가 가세하며 국내 대형 SUV 시장의 빅뱅이 시작됐다. 팰리세이드는 화려하고 풍성한 편의 장비, 실제 소재보다 고급스럽게 치장할 줄 아는 능력으로 만든 실내, 부드러우면서 힘 좋은 대배기량 엔진과 무난한 변속기, 편안한 시트와 공간 활용성, 합리적인 가격이 장점이다. 파일럿은 기술의 혼다답게 벼린 핸들링과 훌륭한 밸런스를 바탕으로 한 운전 재미, 첨단 기술을 듬뿍 담아 만든 에지, 혼다 특유의 남성스럽고 날카로운 맛이 좋다. 패스파인더는 클래식한 감성으로 친근하고 부드러우며 여유 넘친다. 조용한 엔진과 편안한 시트, 부드러운 승차감으로 가족 모두 평온하다. 별도의 견인 장비로 더 과감한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도 즐길 수 있다. 대형 SUV 시장에 매력적인 모델들이 늘면서 보다 더 흥미롭고 즐거운 일상을 쉽고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선택은 당신의 몫. 무엇을 선택하건 당신의 삶은 지금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Nissan Pathfinder
Price 5340만 원
Engine 3498cc V6 가솔린, 263마력@6400rpm, 33.2kg·m@4400rpm
Transmission X트로닉 CVT, AWD
Performance 0→100km N/A 초, N/A km/h, 8.3km/ℓ, CO₂ 208g/km
Weight 2105kg

Honda Pilot
Price 5490만~5950만 원
Engine 3471cc V6 가솔린, 284마력@6000rpm, 36.2kg·m@4700rpm
Transmission 9단 자동, AWD
Performance 0→100km N/A 초, N/A km/h, 8.4km/ℓ, CO₂ 201g/km
Weight 1965kg

Hyundai Palisade 3.8
Price 3475만~4261만 원
Engine 3778cc V6 가솔린, 295마력@6000rpm, 36.2kg·m@5200rpm
Transmission 8단 자동, AWD
Performance 0→100km N/A 초, N/A km/h, 8.9km/ℓ, CO₂ 192g/km
Weight 1870kg

이병진 사진 최대일, 김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