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갯길 위의 황제 찾기

에디터에게 와인딩에 어울리는 차를 부탁했다.
그들이 가져온 차는 무엇이고 가져온 이유가 궁금하다

 

LEXUS LC 500h
아름다운 뒷 모습과 편안함을 갖춘 렉서스 럭셔리 쿠페

와인딩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구불구불한’을 뜻하는 영어 단어(Winding)다. ‘와인딩 하러 가자’라고 말하는 의미에서는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행위를 말한다. 와인딩과 드라이빙은 운전이라는 개념에서는 같지만 고속도로를 달리거나 경치 좋은 곳을 즐기기 위해 주행하는 드라이빙과는 달리 와인딩은 운전자에게 드라이빙 테크닉을 요구한다.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돌리며 코너를 공략하는 와인딩은 목표를 달성하는 맛이 있다. 날씨 좋은 4월 어느 날 와인딩을 하기 위해 에디터 3명이 모였다. 각자 와인딩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차를 타고 왔다.

내 선택은 렉서스 럭셔리 하이브리드 쿠페 LC 500h다. 멀티 스테이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한 LC 500h는 3.5ℓ 가솔린 엔진(최고출력 299마력)과 전기모터(최고출력 179마력)를 사용해 총 시스템 출력 359마력과 최대토크 35.7kg.m를 발휘한다. 여기에 CVT+4단 자동변속기(가상 10단)를 맞물린다.

내 선택에 대해 많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와인딩에 더 적합한 차들이 많지만 LC 500h를 선택한 이유는 미래지향적인 외관과 편안하고 우아한 실내,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통해 얻는 친환경적 이미지는 드라이빙 테크닉을 연마하며 성취감을 얻는 와인딩보다 경치를 즐기고 편안함을 우선시하면서 환경을 생각하는 내 취향과 맞았다. LF-LC 컨셉트를 재해석한 LC 500h 겉모습은 렉서스의 파격적인 디자인이 눈에 익어서 큰 감흥이 없다. 하지만 볼수록 빠져드는 테일램프 디자인과 강렬한 선을 사용해 입체적으로 표현된 뒷 모습은 아름답다.

LC 500h의 8방향 전동 시트는 푸근하고 편하다. 통풍과 열선 기능을 지원하고 요추와 골반 지지대도 장착됐다. 흔히 스포츠카 시트는 단단하고 약간 불편한 시트를 생각하지만 LC 500h는 다르다. 계기반은 LFA에서 봤던 것과 같이 중앙 원형 태코미터가 운전자 조작에 따라 우측으로 이동하며 차량 정보를 나타낸다. 전체적인 실내 디자인은 낮은 시트 포지션과 동승석과 구분된 운전자 중심의 레이아웃, 수평을 강조한 대시보드 등 간결하면서 고급스럽다. 그러나 마치 만화캐릭터 ‘슈렉’의 귀를 떠오르게 만드는 주행 모드 셀렉터는 실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스타트 버튼을 눌러 LC500h를 깨웠다. 평상시 주행은 안락함과 정숙성을 자랑하는 렉서스답다. 푹신한 시트와 고요한 실내는 스포츠카보다는 럭셔리 세단을 타는 느낌이다. 본격적으로 고개가 시작되면서 슈렉 귀를 만져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변경했다. 만화 <이니셜 D>의 주인공처럼 가파른 고갯길을 공략하면서 물컵에 담긴 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드라이빙 테크닉을 상상하면서 코너에 진입했다.

후륜구동, 2t이 넘는 무게 때문에 허둥대지 않을까 긴장하면서 스티어링 휠을 돌렸다. LC 500h는 내가 원하는 궤적을 그리며 코너를 탈출했다. 자신감이 붙어 처음보다 속도를 좀 더 높여 코너에 집입했다. 안정적으로 빠져나온 처음과 달리 내가 생각한 궤적보다 멀리 그리며 코너를 돌았다. 속도를 바꿔가며 코너를 돌때마다 다른 반응에 자신감은 줄어들었고 긴장감은 높아졌다.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해서 몇 번을 반복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와인딩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LC 500h는 불안했던 코너와 달리 안정적이면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LC 500h는 날카롭고 빠릿빠릿한 조종 성능을 제공하는 스포츠 쿠페보다는 이름처럼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럭서리 쿠페로 구불구불한 산길보다는 평탄하고 넉넉한 도로가 어울린다.
글 전우빈

LOTUS ELISE SPORTS 220
이보다 더 즐거울 수 없다

봄이다. 따뜻한 날씨에는 와인딩 달리기가 제 맛이다. 과연 와인딩 타기에 최고의 차는 무엇일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서킷과 와인딩에서 재미만 추구한다면 최고의 차는 로터스다. 가벼워서 빠르고 낮고 작아서 날카롭다. 거치적거리는 옵션 따위 필요없다. 그저 달리기에 필요한 것들만으로 충분하다.

엘리스 스포츠 220을 몰고 산으로 달렸다. 녀석은 가벼운 게 정답이라는 신념 하나로 로터스를 만든 창립자 콜린 채프먼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더불어 로터스를 순수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만든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엘리스 스포츠 220은 엘리스 S의 924kg이라는 무게에서 10kg를 덜어내고 크고 작은 변화를 더해 더 잘 달리고 돌고 서도록 진화했다. 토요타 코롤라 엔진을 공유하지만 엘리스의 무게는 단 914kg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된다. 슈퍼차저를 얹은 1.8ℓ 가솔린 엔진은 6단 수동변속기와 호흡을 맞춘다.

최고출력 217마력과 최대토크 25.5kg·m는 엔진 출력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수준. 하지만 무게당 마력비로 계산하면 어마무시하다. 덕분에 0→100km/h는 4.6초면 충분하다. 재료가 같아도 제각각 맛이 다르듯 녀석은 무섭게 매콤하고 적당히 달콤해 중독성이 강하다. 가벼운 차체는 가속 페달을 밟는대로 번개같이 치고 달렸다. 수동변속기로 원하는 엔진 회전수를 찾아 달리는 맛은 또 어떻고. 코너 위에서는 타이어가 바닥을 잡고 돌아나가듯 안정적이면서 날카롭게 공략했다. 실제 속도도 다른 차들보다 훨씬 빠르지만 체감속도는 그 이상이다. 생김새는 전형적인 스포츠카다. 작은 크기, 낮은 시트 포지션, 논파워 스티어링, 알루미늄 수동 기어 노브,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인 알파인 카 오디오 등이 그렇다. 스티어링 휠 디지인과 그립감 또한 그저 달리는 데 충실하다. 작고 무거운 스티어링 휠은 차의 움직임만 충실히 전한다. 스티어링의 기본 기능 외에 어떤 버튼도 존재하지 않는다. 버킷 시트 또한 단단하다. 그래서 더 정확히 몸을 다잡고 차의 움직임을 쉽고 정확히 읽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산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기어를 바꿀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소리와 몸으로 직접 전해지는 출력이 슬슬 마음을 들뜨게 한다. 단단한 뼈대, 엔진 회전수와 비례해 안정적으로 출력을 선사하는 슈퍼차저의 특성 덕에 수동변속과 스로틀 개폐량 조절만으로도 언더와 오버스티어를 만들거나 대응할 수 있는 재미 또한 크다. 차의 반응을 몸으로 느끼고 서로 대화하듯 차와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주행은 로터스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차체는 가볍지만 논파워 스티어링 휠이라 차가 가볍다는 체감은 적다.

본격적으로 코너에 진입하면 가벼운 차체에 마음이 즐겁다. 밸런스가 뛰어나고 횡그립의 한계가 높아 진입속도 자체가 우월하다. 출력도 적당해 탈출 전 미리 가속 페달을 밟아도 크게 무리가 없다. 녀석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언제든 몸으로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렇다고 대놓고 마구 쏘아대면 안된다. 로터스는 퓨어 스포츠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첨단 장비들은 거의 없다. 첨단 기술이 대응해줄 마지막 2%를 마인드 컨트롤하며 노련하게 달리며 즐겨야 한다. 이또한 와인딩에서 주는 로터스만의 즐거움이자 매력이다. 차와 내가 교감하고 이런 저런 정보들을 공유하며 굽이진 길과 속도, 노면의 이음매와 굴곡들을 헤쳐나가는 맛이 그만이다. 단언컨대 와인딩에서 로터스보다 즐거운 녀석은 없다.
글 이병진

 

RANGE ROVER SPORT SVR
덩치 큰 SUV는 와인딩에 부적합할까? 운전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꽃피는 봄이 오면,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사람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낮 기온이 10℃를 넘어가면 겨우내 차가웠던 아스팔트가 타이어의 성능을 받아들인다. 마니아들은 기분 좋은 봄을 만끽하기 위해 차를 정비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찾아 떠난다. 그런데, 와인딩 코스에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차가 좋은 걸까? 당연히 쿠페 보디를 떠올린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우리의 이번 기획은 와인딩을 즐길 수 있는 자동차를 모아보자는 거였지만, SUV가 끼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었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넘어 마세라티, 벤틀리, 롤스로이스까지 SUV를 내놓고 있다. 저마다 그들의 정체성과 최신 기술 등을 나열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간다. 왜 SUV 한 대를 이번 기획에 포함시켜야 했는지 지금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다른 차는 생각하지 않았다. SUV여야 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SUV를 끌고 나갔다가는 욕만 먹을 게 뻔했다.

‘오~ 이것도 괜찮겠네’라고 만들고 싶었다. 문제는, 이런 기획에 어울릴만한 SUV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포르쉐 카이엔? 얼마 전 등장한 새로운 카이엔이 떠올랐지만, 340마력의 최고출력과 6.2초의 0→100km/h 가속 성능으로는 이곳에 부르기가 모호했다. 물론, 와인딩이 아니라면 차고 넘치는 훌륭한 성능이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델 라인업 전체가 SUV로만 이루어진 브랜드. 감이 오나? 랜드로버와 지프다. 지프로 와인딩? 그럼 남은 건 하나다.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 차를 고르고 나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덩치는 크지만, 와인딩을 달리기엔 손색없을 훌륭한 제원을 보여주는 녀석이 아니던가.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은 랜드로버의 SVO 기술 센터에서 만든 괴물이다. 5.0ℓ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으로 575마력의 최고출력과 71.4kg·m의 최대토크를 쏟아낸다. 덕분에 0→100km/h 가속 성능은 4.5초 만에 끝낸다. 무게가 2445kg의 덩치가 보여주는 실력이 그렇다. 디자인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보디 컬러는 붉은색이지만, 보닛은 카본을 둘러 ‘고성능’을 표현하고 있다. 엄청난 면적의 에어 인테이크는 들이마시는 산소량이 많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쿼드 테일 파이프는 튜닝카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보디 컬러와 톤을 맞춘 가죽이 동공을 확장시킨다. 손으로 만지기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위아래 2개로 나뉜 디스플레이 모니터는 다소 복잡하게 보이지만, 익숙해지면 원하는 기능을 재빨리 불러낼 수 있다. 화려한 디자인으로 눈이 행복했다면, 이제 귀다. 시동이 걸렸을 때 들려오는 영물의 으르렁거림이 매력적이다. 매력적이라고 표현했지만, 너무 부족한 표현이다. 직접 들어야만 한다.

우리의 시승코스에서 본격적인 포효를 느끼기로 했다. 기어 레버를 왼쪽으로 밀면 스포츠 모드다. 가속 페달의 반응은 민감해지고 rpm 바늘을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패들 시프트를 잘 사용한다면 더욱 재미나게 코스를 즐길 수 있겠지만, 한 번의 실수가 리듬을 망치기 때문에 철저히 입력된 로직으로만 즐기기로 했다. 분당 회전수가 오를수록 포효는 커졌다. 그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회전수가 좀 더 높았으면 하는 아쉬움까지 느껴진다. 아래편 모니터 오른쪽에 ‘헬멧’ 아이콘을 누르면 엔진 반응, 기어 변속, 서스펜션 등의 세부적인 조율이 가능하다. 그런데, 기어 레버를 왼쪽으로 밀어 두는 스포츠 모드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4륜구동 시스템은 영리하게 토크를 나누며 끈질기게 라인을 물고 늘어졌고 무게감이 적당한 스티어링 휠은 운전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미리 알아채기라도 한 듯 시선을 두는 곳으로 움직였다. 약간의 직진 코스가 나온다면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지만, 자칫 오버 스피드로 코너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번 기획에 SUV를 포함시킨 계획에 ‘반은 후회, 반은 만족’이다. 아무리 출력이 세다고 한들, 와인딩에서는 그 성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촬영을 위해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고속 도로에서 오히려 최고의 SVR 맛을 봤다. 그래도 현재 시점에서 최고의 와인딩 SUV를 꼽으라면, 당연히 이 녀석을 고를 것이다.
글 최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