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블레이저는 쉐보레를 구원할 수 있을까?

쉐보레가 오래간만에 새 모델을 공개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GM이 새 모델을 만든 셈이다. 작년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사건을 기억하나? 바로 한국에서 GM을 철수한다는 내용이었다. 군산 지역 파탄설이 나돌고 민심은 물론 문재인 정부의 여론까지 악화되며 한동안 홍역을 치른 사건이었다. 다행스럽게 GM과 정부가 타협점을 찾았고 정부 지원과 GM의 다양한 수정 안과 새로운 계획안이 발표됐다. 그 가운데 한국GM에서 개발해 만들고 전 세계에 판매하는 전략 모델을 배정하는 안도 내용에 포함됐다. 그리고 그 주인공 트레일블레이저가 등장한 것이다.


트레일블레이저는 어깨가 무겁다. 자동차 모델 가운데 하나인 트레일블레이저라기 보다 한국GM 직원과 개발자들의 부담감이 적잖았을 것이다. 트레일블레이저의 성공 여부와 시장 가능성이 그들의 생존과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판가름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니까.
그만큼 트레일블레이저는 어떤 새 모델보다 많이 고민하고 애써 개발하고 완성했다. 국내 등장한 최근 여론과 분위기를 보면 나름 선전하고 있는 듯싶다. 기아의 콤팩트 SUV인 셀토스의 대항마로 거론되고 가격경쟁력과 다양한 모델을 통한 고르는 재미 등이 장점으로 회자되고 있다.
과연 정말로 트레일블레이저는 쉐보레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차 자체의 장단점과 매력을 살피고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이 녀석을 초대했다.


트레일블레이저는 크게 세 가지 디자인으로 나뉜다. 기본 모델과 다이내믹한 디자인을 강조한 RS, 아웃도어와 오프로드 콘셉트를 내세운 액티브가 그것이다. 참고로 RS는 랠리 스포츠의 앞 글자를 따왔다. 같은 모델이지만 안팎의 디자인을 달리 꾸미고 서스펜션 높이와 휠 크기를 달리하고 타이어에 차별성을 꾀하면서 모델마다 나름 이름값하는 차이를 부여했다.
우리는 시승 모델로 오프로드 콘셉트를 가미한 액티브 모델을 초대했다. 이 녀석은 정통 오프로더에서 영감을 받았다. 앞모습에 X자 형태의 프로텍터 디자인을 넣어 정통 SUV 특유의 터프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차체 아래에는 다크 티타늄 크롬 소재의 스키드 플레이트와 스퀘어 타입 듀얼 머플러, 17인치 전용 알로이 휠과 스포츠 터레인 타이어를 적용했다. 덕분에 겉모습부터 오프로드 SUV 제법 풍긴다. 실내는 아웃도어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아몬드 버터 색 실내도 마련했다.
콤팩트 SUV 지만 차체 크기도 제법 크다. 셀토스보다 크고 투싼보다 작다. 길이는 4425, 높이 1660, 폭은 1810mm다. 실내공간을 좌우하는 휠베이스는 2640mm로 뒷공간도 제법 여유로워 가족 SUV로 두루 쓰기에도 적당하다.


트렁크 용량은 460리터로, 2단 러기지 바닥을 적용해 높낮이를 2단계로 조절할 수 있으며 6 대 4 비율로 뒷시트 등받이를 접으면 뒷공간은 최대 1470리터까지 늘어난다.
앞 좌석 중앙 센터패시아 아래와 콘솔박스에 넓은 수납공간을 만들어 각종 소지품들을 수납할 수 있으며 원형 컵홀더 안쪽으로는 가로와 세로로 홈을 파 둬 스마트폰이나 지갑 등 자잘한 소지품을 보관할 수도 있다. 또한 운전석과 보조석 아래에도 공간을 마련해 운전자와 탑승자가 가방, 신발 수납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엔진은 두 종류로 1.2리터 가솔린 E-터보 프라임 엔진과 1.35리터 가솔린 E-터보 엔진이 올라갔다. 경량 알루미늄 소재를 기반으로 중량을 낮추고 터보차저와 초정밀 가변 밸브 타이밍 기술을 통해 불필요한 연료 소모를 줄여 최적의 배기량으로 최고의 성능과 연비 효율을 달성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E-터보 프라임 엔진은 기본형인 LS와 LT 트림에 올라가며 최고출력 139마력, 최대토크 22.4kg.m을 낸다. 말리부에서 먼저 선보인 E-터보 엔진은 LT 트림부터 고를 수 있으며 프리미어와 RS, 액티브 모델에는 기본으로 들어간다. 이 엔진은 최고출력 156마력, 최대토크 24.1kg.m를 낸다.
기본이 되는 앞바퀴 굴림 모델에는 무단변속기가 올라가며 네 바퀴 굴림을 선택하면 9단 자동변속기가 호흡을 맞춘다. 토션 빔의 단점을 구조적으로 보완한 Z-링크 리어 서스펜션도 추가된다.


액티브 모델은 1.35리터 터보 가솔린 엔진에 9단 자동변속기가 올라갔다. 네 바퀴 굴림 모델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특이하게 버튼으로 앞바퀴 굴림과 네 바퀴 굴림을 고를 수 있다. 이른바 스위처블 AWD라 부르는 이 시스템은 앞뒤 구동력을 상황에 따라 알아서 배분해 씀으로써 다양한 환경에서 가장 최적화된 운동성능을 찾으려 최선을 다한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면 기본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물론 콤팩트 SUV에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정숙함이다.
가속페달에 무게를 더하면 초반 발걸음이 제원표 상 출력보다 화끈하고 경쾌하게 차체를 내몬다. 내딛는 발걸음을 가뿐하게 만든 다분히 의도된 메이커의 세팅이다. 다부지게 잘 생긴 콤팩트 SUV가 묵직하고 진득하게 반응하는 것보다 다소 민감하리만큼 잽을 날리듯 움직이는 게 더 잘 어울린다. 부드럽고 진중한 움직임과 반응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속페달을 다루는 요령을 익힐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9단 자동변속기는 기다란 기어노브 옆에 달린 버튼으로 수동 변속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어노브 자체가 너무 뒤로 빠져 있어 다루기 불편하다. 기어노브의 D 모드 아래 L 모드를 완벽한 수동 모드로 만든 세팅도 독특하다. 이는 트래버스에서도 똑같은 세팅이어서 당시에도 신선하고 생경했는데, 트레일블레이저에서도 여전히 의도를 가늠하기 쉽지 않은 결과물이다. D 모드에서는 변속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무조건 자동, L 모드에서는 버튼을 눌러 변속해주지 않으면 레드존 근처에서 엔진이 윙윙 거리기만 하는 완전한 수동 모드다. 과연 L은 어떤 단어를 뜻하는 것일까?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부디 답글을 부탁드린다.
9단 자동변속기는 수더분하고 부드럽다. 톱니를 꽉 조여 엔진 출력을 타이어로 내모는 직결감 대신 여유롭게 반응하고 나긋나긋 움직인다. 부드럽게 변속하고 적당히 힘을 낸다. 콤팩트 SUV에 이 정도면 무난하게 합격점을 줄만하다.


아쉬운 점은 부자연스러운 핸들링이다. 잠든 사람을 흔들어 깨우듯 초반 허둥대는 핸들링 반응을 조금 움직여 깨우면 묵직하고 제법 쓸 만해진다. 문제는 초기 반응의 둔탁하고 허우적대는 이질감이다.
하체는 적당히 탄탄하고 부드럽다. 셀토스가 다소 과하게 탄탄해 운전하는 맛이 좀 있었다면 코란도는 다소 과하게 부드러워 승차감은 좋았지만 쪼는 맛은 달렸다. 이 녀석은 이 둘 사이의 어디쯤 존재한다. 적당히 안락하고 적당히 달리는 맛도 있다.
하지만 트레일블레이저 액티브로 굽이진 고갯길을 달리며 재미를 추구하지는 않는 게 좋다. 우선 스포츠 터레인 타이어는 스포츠 주행에 결코 적합한 타이어가 아닌 탓이 가장 크다. 한계 그립이 낮아 굽이진 고갯길에서 미끄러지는 상황이 생각보다 쉽게 일어난다. 대신 액티브는 비포장도로나 아웃도어에서 두각을 발휘한다. 굵고 깊은 트레드 패턴이 흙과 이물질을 움켜쥐며 단단하게 산과 들을 헤치고 나설 수 있다. 매끈한 아스팔트를 달리며 재미를 좀 더 즐기고 싶다면 RS가 좋겠다.


쉐보레가 나름대로 운명의 한판승을 결심하며 개발해 소개한 트레일블레이저. 취향 따라 선택 가능한 다양한 모델과 디자인, 윗급 모델에 옵션을 더하면 다소 비싸지지만 시작하는 기본 가격은 경쟁력 있는 차 값, 무선 카 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 전동 해치 등 동급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풍성한 편의 장비, 작은 배기량으로 절약 가능한 세금과 제원보다 괜찮은 실제 달리기 성능 등 장점이 다분하다. 이 정도면 쉐보레의 앞날에 어느 정도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글 이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