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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끼리 떠났죠

2013.04.29 / minia

성격 급한 두 여자가 봄 새싹이 돋아나기도 전에 올해 첫 캠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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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지만 라이프 스타일도 다르고 취향도 엇갈리는 두 사람이다. 사실 기린씨는 이미 2년 차 캠퍼다. 전 남친을 따라다니며 곁눈질로 배운 캠핑에 흠뻑 빠져 이제 어지간한 장비는 다 갖추고 있다. 남자는 지나가도 취미는 남더라. 워낙 운동 신경도 좋고 활동적인 성격이라 어지간한 남성 캠퍼 수준의 역량을 자랑한다. 


토끼씨는 정반대다. 거주지는 경기도 남양주인데 차가운 서울 여자를 모토로 삼고 있다. 캠핑은 커녕 바깥 활동도 꺼리는 타입이다. 그런데 왜 캠핑에 왔냐고? 며칠 전 잡지에서 패션피플들의 캠핑 라이프를 보곤 자극받은 모양이다. 토끼씨는 트렌드에 몹시 민감한 서울 여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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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낙하리 252번지 박석캠핑장>


미니의 비좁은 뒷 자석에 텐트와 각종 캠핑 용품을 야무지게 쑤셔 넣고 출발! 캠핑장은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은 나무 숲이 캠핑장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어슴푸레 들어오는 햇빛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서울에서 아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공기가 서늘하고 맑다. 아, 좋다! 산을 좋아하는 기린씨가 숨을 깊이 들이쉰다. 탁 트인 공기와 나무 냄새가 캠핑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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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초형 니트 풀오버 13만 8000원 / 빈폴 아웃도어>

<고어텍스 밀리터리 캡 5만 8000원 / 빈폴 아웃도어>


도착의 여유도 잠시. 기린씨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어서 짐을 내리고 텐트를 쳐야 하니까. 고작 1박 2일 일정인데 짐이 제법 묵직하다. 여자들의 여행은 늘 이렇더라. 멋 모르고 주변을 알짱대던 토끼씨는 첫 캠핑의 순간을 SNS에 자랑하기 위한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한 것도 없는 주제에)멋들어진 포즈도 취하고, 찰칵,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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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텐트치기는 영락없이 기린씨의 몫이다. 사이트에 위치를 잡고 폴을 세우기 시작한다. 토끼씨도 어설프게 돕는 시늉을 해보지만 썩 도움은 되지 않는다. 4인용 텐트를 둘이서 치려니 힘들다. 이번 캠핑을 위해 새로 구입한 텐트인데 생각보다 크기가 만만치 않다. 사실 기린씨는 예전부터 쓰던 2인용 텐트를 가지고 오려고 했다. 그런데 토끼씨가 "예쁜 게 최고!"라고 외치며 무려 4인용 텐트를 겁도 없이 사온 것이다. 그것도 첫 캠핑도 와보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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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 바람막이 점퍼 36만 8000원 / 빈폴 아웃도어>

<폭스바겐 캠퍼밴 텐트 65만 9000원 / 더 몬스터 팩토리(http://www.themonsterfactorykorea.com)>


한참을 씨름한 끝에 텐트가 제 모습을 갖췄다. 역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폭스바겐 캠퍼밴의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 놓은 사랑스러운 디자인을 보라. 캠핑장 풍경이 갑자기 화사해졌다. 실내 공간도 널찍하다. 괜히 여자 둘이 와서 살 부비고 잘 필요는 없겠다. 게다가 투룸 구조다. 괜한 사치라고 토끼씨를 구박하던 기린씨도 완성된 모습을 보니 흐뭇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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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 케틀 9만 3000원 (http://www.savanaoutdoor.com/)>


이제 정말 바빠질 시간이다. 물도 끓이고 나무도 해오고, 부지런히 밥 먹을 준비 해야지. 기린씨가 캠핑장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씩씩하게 장작을 패는 동안, 토끼씨는 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위해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왔다. (이건 후문인데 캠핑장 사장님도 기린씨의 장작 패는 솜씨에 놀랐다고 한다) 길리 케틀은 굴뚝 효과를 이용한 아일랜드 전통 주전자로 내부가 뻥 뚫려 있어 공기로 물을 데우는 원리다. 들고 다니기는 번거롭지만 상당히 근사한 외관을 자랑하니까 무조건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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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액션테이블 2만 1000원 / 스노우 피크>

<스태킹 머그 세트 14만 5000원 / 스노우 피크>

<브리카 모카포트 10만 2400원 / 비알레띠>

<쿠필카 44 3만 6000원 / 쿠필카 55 3만 5000원>


테이블도 꺼내놓고 의자도 쪼르르 세워보았다. 이제 제법 캠핑장 구색은 갖추었다. 요즘 캠핑 장비 장만에 한참 재미 들린 기린씨가 살림살이 자랑을 시작한다. 사이즈 별로 차곡차곡 담겨있는 스노우피크의 스태킹 머그컵과 커피 마니아들의 필수 아이템인 모카포트. 토끼씨는 쿠필카의 식기 세트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원목으로 만든 친환경 그릇으로 나무 느낌을 그대로 살린 감성적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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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액터 스토브 33만 5000원 / MSR>


힘든 일을 했더니 배가 고프다. 야외에선 식사 준비도 일이다. 일단 먼저 몸을 녹일 따뜻한 커피 한잔이 필요하다. 기린씨가 스토브에 불을 붙이고 물을 보글보글 끓인다. 브랜드가 MSR이라서 별명이 '미쓰리(MSR)버너'인 녀석. 버너와 코펠이 일체형이라 편리할 뿐만 아니라 1리터 물을 끓이는데 2분 50초면 완료! 순식간에 커피 완성. 야외에서 맡는 커피향은 어쩐지 더 향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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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로우 테이블 20만 9000원 / 어네이티브>

<라운지체어 15만 3000원 / 어네이티브>


토끼씨는 본격적인 SNS 활동에 나섰다. 옷도 산뜻하게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서 폼을 잡는다.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다. "갑갑한 도시를 벗어나 캠핑을 왔다. 드립 커피 한잔 하는 중…"이라며 어쩐지 허세 가득한 글도 함께. 사실 그녀가 한 일이라곤 텐트 칠 때 옆에서 폴대를 들고 서 있었던 것 밖에는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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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원피스 12만 8000원 / 노스페이스>

<버클리 미드 13만 5000원 / 노스페이스>


토끼씨의 패션이 심상치 않다. 캠핑 용품이라고는 텐트 하나밖에 안 챙겨 왔으면서 패션은 열심히 연구한 모양이다. 생전 관심 없던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캠핑룩을 장만해왔다. 생각보다 예쁜 옷이 많았던 모양이다. 카드 할부를 6개월이나 끊어서 잔뜩 구입했다고 한다. 산뜻한 원피스와 빨간 운동화가 편안하고 센스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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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트 재킷 26만 8000원 / 노스페이스>

<케쥬얼 웰트화 15만 8000원 / 빈폴 아웃도어>


기린씨는 좀 더 편안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캠핑장을 찾은 이상 장작을 패거나, 텐트를 치는 중노동도 감수해야 하는걸. 움직임이 많을 걸 감안해서 에스닉한 패턴에 품이 넉넉한 아우터를 입었다. 여기에 가벼운 워커까지. 역시 2년 차 캠퍼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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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S 16만 4000원 / 스노우피크>


요리 준비를 위해 기린씨가 화로를 꺼내왔다. 사실 이건 기린씨가 아는 오빠(?)에게 빌려온 아이템. 불을 지피고 남은 자국 마저 멋스러운 제품이다. 1.5mm의 알루미늄 합판을 장인이 직접 휘어가며 제작하는 화로로 하루에 고작 40개 정도가 생산되는 레어템이다. 캠핑장의 자연환경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화로대를 사용하는 센스를 잊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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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치고 짐 정리하고, 불 피우고, 장작까지 패느라 정신없던 기린씨에게도 드디어 휴식시간이 왔다. 토끼씨가 요리는 본인이 맡겠다며 나섰다. 평소에 블로그를 운영하며 본인의 요리 솜씨를 유감 없이 뽐내오던 그녀다. 단점이 하나 있으면 손이 너무 크다는 점? 마트를 싹쓸이해온 듯 식재료로 바구니가 가득 찼다. 둘이서 먹기엔 조금 많아 보이는데? 오늘의 메뉴는 오일소스 토마토 스파게티와 소시지 꼬치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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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물을 끓였던 미쓰리 스토브는 작지만 활용도가 높다. 이번엔 스파게티면을 투하하고 보글보글. 화력이 세서 금방 익는다, 면도 더 탱탱하다. 마늘과 브로콜리, 토마토를 넣고 볶다가 잘 삶아진 스파게티면을 넣고 조금 더 볶아주면 끝. 훌륭하게 요리를 마친 토끼씨가 어김없이 인증샷을 남긴다.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아서 후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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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꼬치구이 차례다. 소시지와 각종 야채를 보기 좋게 꼬치에 끼고, 굽기만 하면 끝. 화로 앞에 앉아서 재료들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캠핑장 가득 맛있는 냄새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까맣게 그을린 브로콜리는 어찌나 고소한 맛이 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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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초보를 데려온 덕에 종일 고생한 기린씨가 먹성 좋게 식사를 시작했다. 역시 캠핑은 장비가 반, 먹는 게 반이다. 야외에서 먹으면 뭐든 맛있는 법이지. 뜨끈뜨끈한 꼬치를 한 입 뜯고, 맥주도 한 캔 마시고. 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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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매트 9만 2000원 / 어네이티브>

<에스닉 백팩 9만 8000원 / 노스페이스 화이트 라벨>


배부르게 먹었으면 따뜻한 실내에서 쉬어가야지. 텐트 안이 제법 아늑하다. 여기에 어네이티브의 캠핑 매트를 깔았더니 폭신하고 안락한 느낌이 더하다. 한참 조잘조잘 떠들던 두 친구가 말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실을 한 가닥 씩 꿰어 팔찌를 만들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도시의 소음을 한참 벗어난 공간에서 복잡한 생각 없이 노닥거리고 있자니 기분이 나른해진다. 이런 게 캠핑의 묘미로구나. 토끼씨는 캠핑에 푹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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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카드 후드 니트 베스트 13만 8000원 / 빈폴 아웃도어>


팔찌를 네댓 개쯤 만들고 나니 몸이 찌뿌둥하다. 두 사람은 다시 텐트 밖으로 나왔다. 슬슬 해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토끼씨는 또 옷을 갈아입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캠핑룩을 제대로 연구해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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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날씨가 급격히 추워진다. 화로대 위에 작은 장작불을 지폈다. 기린씨가 미리 부지런하게 장작을 마련해 놓은 덕이다. 불가에 앉으니 분위기가 확 다르다. 와인도 한 잔씩 마시고, 사진도 예쁘게 찍어서 SNS에 자랑도 하고. 토끼씨가 얼마 전부터 배우고 있다는 우크렐레를 가져왔다. 폼만 그럴싸하게 잡았지 연주 솜씨는 형편없다. 기린씨가 비웃으며 우크렐레를 빼앗아 제멋대로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엉망이지만 장작불을 쬐며 띵, 땅, 띵, 똥 소리를 듣고 있자니 놀러 온 기분은 제대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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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타닥, 불꽃 소리도 듣기 좋다. 장작이 사라질 때마다 새 나무를 채워 넣어야 불이 보기 좋게 올라온다. 해질녘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훈훈한 기운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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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캠핑장은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옆 사이트에는 다른 캠퍼들이 자리를 펴고 모였다. 여럿이 왔는지 시끌벅적하다. 깜깜한 어둠 위로 작은 조명과 불,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모여든다. 기린씨와 토끼씨도 밀린 수다를 나누느라 불가를 떠날 줄 모른다. 술이 한 잔 들어가니 학창시절 이야기와 지나간 남자친구들의 이야기가 안주가 된다. 두 사람은 십년지기 친구였지만 이렇듯 느긋하게 대화를 나눈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래서 다들 캠핑을 오나 봐. 좋다."


"다음엔 여럿이서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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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 캠핑을 올 땐 좀 더 따뜻해져 있겠지. 두 사람은 더 많은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올 것을 약속했다. 아마 더 떠들썩하고 잊지 못할 밤이 될 것이다. 토끼씨는 더 요란한 패션을 선보일 것이고, 기린씨는 한껏 늘어난 캠핑 살림살이를 자랑하겠지. 서늘한 잠자리와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 나무가 타오르는 냄새, 신선한 바람, 묵혀둔 이야기… 캠핑엔 즐겁고 반짝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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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스타 가솔린 랜턴 22만 7000원 /콜맨>


이렇게 두 여자의 요란한 캠핑 이야기는 끝. 밤새 캠핑장을 환하게 지켜주던 랜턴 불빛 뒤로 이른 봄, 파주의 밤이 내려앉았다. 


이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봤다. 숨어있던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까지 보너스로 감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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