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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에서 생긴 일

2013.02.27 / minia


한 커플이 있다. "눈(雪)은 눈(目)으로만 봐야 해서 눈이다"라고 우기는 여자 A와 "눈밭에서 구르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열혈 스키어 남자 B. 첫 일본 여행을 앞둔 두 사람은 끝없이 다퉜다. 온천이냐 스키냐, 쇼핑이냐 먹부림이냐로 죽도록 싸우던 그들이 결국 합의를 봤다. 목적지는 홋카이도에 위치한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 파우더 스키의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남자는 토마무엔 없는 게 없다는 말로 여자를 꾀어냈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파우더의 나라, 스키어들의 로망, 홋카이도로! 두 남녀의 토마무 탐방기 밀착 인터뷰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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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B의 짐은 절반이 스키 장비다. 자신의 키만큼 큰 스키 가방을 지고 공항에 나타난 남자친구를 보고 여자 A가 경악을 한다. 


여자 A : 공항에서 스키 가방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 남자, 일본 가서 하루 종일 스키만 타려고 이러는 거 아닐까요? 전 심심해서 어떡하죠?


남자 B : 솔직히 스키어라면 이 정도 장비는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실 이번에 파우더 용으로 스키도 장만하고, 그러다보니 장비가 늘어나서 스키 투어백을 새로 샀거든요. 수화물 초과로 인한 추가 비용 지출도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으니깐요. 물론 여자친구한텐 빌린거라고 거짓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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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A : 솔직히 싫은 척 따라오긴 했는데, 도착해서 보니까 건물이 너무 멋있더라구요. 해가 어슴푸레 저물어가고 있는데 창문마다 반짝반짝 거리는 조명이 흘러나오고.


남자 B : 와. 딱 도착했는데 슬로프가 눈에 딱 들어오는 거에요. 건물 뒤로 슬로프 불빛이 번쩍거리는데… 경사가 장난이 아닌거죠. 이거다! 아주 그냥 제대로 라이딩을 해야겠구나. 


남녀가 토마무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오후 5시. 북해도의 짤막한 해가 이미 산 너머로 몸을 감추는 시간이다. 여자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서 있는 타워 빌딩의 고운 자태에 감탄했고, 남자는 그 뒤로 빛나고 있는 야간 슬로프의 불빛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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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A : 방도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어요. 침대 위에 나란히 조명이 달려있는데 그게 너무 귀엽더라구요. 27층이었는데, 전망도 근사하고. 


남자 B : 방 인테리어요? 방이야 침대 있고 화장실 있으면 그게 그거죠. 전망? 전 아직 못 봤는데… 근데 여기서 스키장이 내다 보이나요? 일단 스키 가방부터 정리해야겠네요.


두 남녀의 동상이몽이 시작됐다. 객실 이곳 저곳을 살펴보는 것은 여자의 몫이다.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벌써 가습기도 꺼내놓고 커피도 보글보글 끓이고 있다.


남자 B : 이제 뭐할거냐구요? 몰라서 물으시나요. 슬로프가 저렇게 빛나고 있는데. 일단 야간 스키를 한 타임 타고 내려와야죠. 


여자 A : 음? 야간스키?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오느라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스키에요. 일단 구경 좀 해야겠어요. 제가 미리 알아보고 왔는데 아이스 빌리지가 짱이래요. 


밤이고 아침이고 온종일 야무지게 스키를 타려던 남자의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토마무엔 볼거리가 너무 많았다. 벌써 카메라를 목에 걸고 남자의 손을 잡아끄는 그녀와 야간 스키 대신 '야간 투어'에 나가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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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A : 꺅. 여긴 정말 제 스타일이에요. 어쩜 이렇게 예쁘죠? 저거 정말 얼음으로 만든 건물이에요? 다 들어가 봐야겠네요. 잠깐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셔틀버스에서 내려 나무 숲을 따라 쭉 걸어 들어가면 아이스 빌리지가 나온다. 이름처럼 환상적인 풍경이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아이스 빌리지를 밝히고 있다. 여자는 벌써 사진찍기에 바쁘다. 못 이기는 척 이끌려온 남자 B도 신나게 셔터를 누르고 있다. 몇 커플이 다가와 사진을 부탁한다. 로맨틱한 분위기 때문인지 유독 커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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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B : 역시 추울 땐 술 한잔해야죠. 때마침 아이스 바가 있더라구요. 아까 바텐더 보셨어요? 귀엽던데… 역시 일본 여자들은 말투가 상냥해. 그쵸? 빈속에 보드카 한 잔 쭈욱 마셔주니까 속이 뜨끈뜨끈한게 좋네요. 


여자 A : 칵테일을 얼음컵에 주더라구요. 그게 너무 예뻐서 추운 줄도 모르고 마셨어요. 네? 바텐더가 귀엽냐구요? 흥, 눈이 좀 낮으신 거 아니에요?


아이스 빌리지엔 얼음으로 만든 이색 건물이 가득하다. 아이스 바 다음엔 기념품을 파는 샵을 들렀다. 차가운 얼음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나무로 만든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여자는 기어코 깜찍한 모양의 열쇠고리와 컵을 구입했다. 새파란 조명의 얼음 교회 안에 들어가 기도하는 척 기념사진까지 찍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진다. 


여자 A : 첫 저녁식사는 니니누푸리에서 먹기로 했어요. 7~8분쯤 걸린다기에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제법 멀더라구요. 통로가 춥기도 하고… 그냥 셔틀버스 탈 걸 그랬나봐요. 


니니누푸리는 토마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스토랑 중 하나다. 무조건 그 곳에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여자 A의 고집에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로맨틱하지만 거리가 제법 멀기 때문에 배가 많이 고픈 상태라면 시간을 잘 맞춰서 셔틀 버스를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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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A : 들어가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지더라구요. 어쩜 그렇게 멋지죠? 창문 밖으로 전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있고, 눈이 펑펑 내리는데… 그 장난감 있잖아요. 스노우볼. 그 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거짓말 같은 풍경이었어요. 이런 레스토랑은 처음 봐요. 


남자 B :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걸 보니까 저도 좋더라구요. 밥도 맛있고. 뷔페라서 엄청 먹었어요. 스테이크를 구워주는데 그게 입에서 살살 녹아요. 한 네 번 가져다 먹었나? 


느끼는 것들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이 걸로 첫날 밤의 일정이 모두 끝이냐고? 아니다. 아직 토마무 리조트의 필수 코스인 물의 교회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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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B : 솔직히 밥 먹고 나니까 졸리고 피곤했는데, 여자친구가 하도 졸라서 갔어요. 여기까지 와서 왜 교회를 가야 하는지… 교회도 안 다니는 애가. 근데 직접 보니까 생각이 좀 달라지긴 해요. 멋지네요. 창문 너머로 십자가가 은은하게 빛나는걸 보니 없던 신앙심이 생길 것 같은 그런 기분? 


여자 A : 전 너무 감동 받았어요. 사진으로 보고 너무 멋져서 꼭 남자친구랑 와봐야겠다고 마음 먹었거든요. 여기서 결혼식을 많이 한대요. 여름엔 눈이 녹아서 호수에 십자가가 비치는데 그게 정말 예쁘더라구요. 네? 교회도 안 다니면서 왜 왔냐구요? 저 초등학교 때 교회 다녔거든요? 


물의 교회는 유명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자연의 요소를 건축물과 어우러지게 만들어 하나의 완벽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 매일 저녁 9시부터 30분간만 방문할 수 있으니 토마무를 찾았을 때 꼭 한번 눈에 담아오자. 결혼식 장소로 유명하기 때문에 특히 여자들이 좋아한다. 참고로 이곳에서는 일요일에 종교행사가 없다. 일본에서는 교회를 결혼식장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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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B : 오이시이! 역시 아침엔 햄버거지.


다음날 아침 식사는 더 타워에서 가까운 Hal에서. 그 자리에서 수제 햄버거를 구워주는데 이게 아주 별미다. 햄버거를 두 개나 받아오는 남자 B를 보고 "아침부터 느끼한 음식을 잘도 먹는다"고 비난하던 여자 A. 그런데 본인도 맛을 보더니 게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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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스키를 탈 시간이다. 셔틀 버스를 타고 마운틴 하우스에서 하차했다. 한국에서부터 고이 장비를 챙겨온 남자 B의 눈이 빛나고 있다. 시즌에 한 번 스키장을 찾을까 말까한 초보 스키어 여자 A는 스키와 부츠를 렌탈해 왔다. 그런데 남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어디론가 가서 각서(?)같은 것을 쓰더니 노란색 과녁 모양의 조끼를 입고 나타난다. 여자가 눈을 껌벅거리며 이게 뭐냐고 물으니, 남자는 당당하게 '겨울산 해방지역'에 다녀오겠단다. 


남자 B : 제가 스키 경력이 10년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시시하게 놀고 갈 순 없잖아요? 파우더 스노우에서 제대로 타고 내려와야죠. 한국에선 진짜 오프 피스테를 즐기기 어렵거든요. 아, 근데 여자친구가 무슨 죽으러 가는 사람 마냥 울고 보채서… 좀 피곤했죠.


여자 A : 아니 왜 그 위험한 걸 한대요? 그것도 저랑 같이 와서? 둘이 같이 초보자 코스에서 타면 되지 않냐고 살살 달래서 데려올 땐 언제고… 몰라요. 맘에 안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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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B : 와. 솔직히 조끼 입고 헬멧까지 쓰게 하니까 이게 정말 내가 가도 되는 코스가 맞나 무서웠거든요? 여자친구가 징징거리길래 멋있는 척 하려고 홧김에 올라와 버린 것도 사실이에요. 근데 정말 끝내주더라구요. 파우더 스노우 위로 라이딩을 하니까 구름 위에서 미끄러지는 것 처럼 폭신하고…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이 동네는 슬로프랑 비슬로프의 경계가 아예 없어요. 그냥 내가 달리면 그게 길이에요. 나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면 진짜 스릴 만점. 중독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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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A의 매달림에도 불구하고 당차게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남자 B. 전세계 스키어들과 우정(?)을 나누며 신나는 한 때를 보내는 듯 하다. 


여자 A : 전 원래 운동은 젬병이에요. 스키도 몇 번 못 타봤어요. 남자친구한테 배워보려고 따라온건데… 지 혼자 신나서 절 버리고 갔네요. 


남자 B : 제일 재밌는 곳은 곤돌라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 내려오는 글로리 코스에요. 8번 리프트를 타면 최정상 지점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거기도 경사가 장난이 아니에요. 당연히 파우더 코스죠. 바로 앞에 내려가는 사람이 제대로 안보일 정도면 경사는 말할 필요도 없죠. 완전 절벽인데 거길 내려가는 느낌이 정말 날아가는 것 같더라구요. 여자친구요? 이따가 챙겨주면 되죠. 뭐. 한 번만 더 타고 올게요. 


토마무는 사실 가족형 리조트다. 스키장의 규모도 홋카이도의 수많은 리조트에 비하면 아담한 편. 그러나 그 난이도까지 만만하게 볼 곳은 아니다. 이곳에서도 최고 설질의 파우더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최상급자 코스를 즐길 수 있으니까. 덕분에 남자는 정오가 넘도록 라이딩을 즐겼고, 여자는 홀로 초급자 코스를 헤매다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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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는 냉전 그 자체였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남자 B는 오후엔 한눈 팔지 않겠노라며 스키를 포기하고 다른 놀거리를 찾아 나섰다. 잔뜩 뿔이 나있는 여자친구의 화를 풀어주어야 한다. 이럴 땐 몸치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스노우 액티비티가 최고다. 싫다고 튕기는 여자 A를 스노우 레프팅을 위한 보트에 앉혔다. 거센 엔진 소리를 내뿜으며 스노모빌이 눈밭 위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꺄,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성공이다. 


여자 A : 화가 좀 풀리더라구요. 재밌었어요. 때마침 눈이 펑펑 와서 온몸에 눈을 맞으면서 달리는데… 무섭지도 않고 스릴만점이에요. 한 번 더 타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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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B : 여기 와서 다행이에요. 볼거리가 많으니까 스키를 잘 못 타는 여자친구한테 미안하지도 않고. 이제 그만 싸워야죠. 


여자 A : 내일 오후엔 수영장에 갈 거에요. 엄청 큰 수영장이 있더라구요. 일본에 있는 실내 풀장 중에 제일 크대요. 파도도 친다는데 너무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사실 비키니도 두 개나 챙겨왔어요. 


결국 둘만의 합의점을 찾았다. 남자 B는 갖은 애교(?)끝에 야간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여자 A는 홀로 온천을 즐겼다. 한밤중에도 불빛이 환하게 비치는 야간 슬로프를 따라 걸으며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취향도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이번 여행은 서로에게 딱 맞는 장소를 고른 셈이다. 이따금 눈이 내리긴 했지만, 여행 일정 내내 날씨가 맑았다. 현지 스텝들은 이런 날씨가 흔치 않다며 놀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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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를 타는 남자도, 스키를 모르는 여자도 행복한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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